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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논 경은 아르비스 기사단의 단장이고, 이 세 사람은 저와 제 가족을 근접 경호하는 호위 기사단 소속입니다. 이쪽이 단장인 콘스탄틴 경이죠.”
“콘스탄틴? 그 자유기사 콘스탄틴 경을 말하는 건가?”
“아시는군요. 맞습니다.”
친절한 답변에도 불구하고 제노아드 공작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그에 애써 관심을 보이지 않던 카르디아 공작을 포함해 주변의 후작들이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다가와 제노아드 공작을 바라보았다.
“단원인 두 사람도 소드마스터를 목전에 두고 있군. 아니, 이미 반쯤 다리를 걸치고 있는 상태야.”
친절한 제노아드 공작의 설명에 카르디아 공작과 후작들은 모두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그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런데, 최상급 익스퍼트로 유명한 콘스탄틴 경의 기운은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군. 마치 제논 경 때처럼 말이야.”
“자네, 무슨 말을.”
기사는 기운을 숨기기로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숨길 수 있다.
다만 기운을 숨기더라도 경지가 높은 상대를 만나면 바로 들통나지만, 비슷한 경우엔 능력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았다.
루이스는 표정 변화 없이 태연하게 답했다.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제노아드 공작은 눈살을 찌푸렸으나, 이어진 콘스탄틴의 이야기에 말을 잃었다.
“저는 아르비스 후작가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너무 개의치 마시길.”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리며 예의를 갖춘 그의 행동에 아인트 공작은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다른 사람들의 심각한 표정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제논 경도 그렇고, 콘스탄틴 경도 그렇고 만난 지 얼마 안 된 자네에게 어찌 이리도 열렬한 충성심을 보이는지 이유가 궁금하군.”
“저는 미래를 제시했을 뿐입니다.”
애매모호한 대답.
그러나 세 명의 기사는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노아드 공작은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 더 물어보려 했으나, 국왕이 등장하는 바람에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폐하를 뵙사옵니다.”
모든 귀족들이 일제히 국왕에게 인사를 건넸다.
귀족들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들이 들어 있는지 모르면서 국왕은 그저 흡족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고개를 들라.”
그리고 고개를 든 귀족들의 표정은 다양했는데, 유독 국왕 근처에 있는 최고위 귀족들의 표정이 안 좋았다.
국왕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무슨 일이냐고 물을 수도 없는 상황이기에 예정대로 작위식을 진행 시켰다.
철컥. 철컥.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제논.
그의 어깨엔 번개와 검이 교차 된 아르비스 기사단의 상징이 그려져 있었고, 대귀족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치며 루이스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루이스는 제논의 성격이 짓궂다고 생각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제논의 그런 행동을 좋지 않게 바라보는 사람이 많았지만, 아무도 참견하지 않았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진행되는 작위식.
그런데 루이스는 왠지 이 상황이 연극 같아 좀처럼 집중이 안 됐다.
“마스터 제논에게 카이트란 성과 함께 백작위를 하사하며 헬리온의 신임 영주로 임명한다.”
짝짝짝.
제논은 자신이 거느리던 용병단의 이름을 성으로 받으면서 ‘제논 로이드 카이트 백작’이 되었다.
“더불어 카이트 백작에게 마드세인 왕국의 보물인 명검 사일론을 내리니, 부디 이 검으로 국가 방위를 위해 힘써주기 바란다.”
국왕은 자신의 허리에 차고 있던 롱소드를 떼어 제논에게 건넸는데, 작위를 받을 때도 덤덤했던 그는 왕국의 보물을 받을 때도 덤덤했다.
그렇게 당사자가 별 감흥을 느끼지 않는 작위식이 끝나고 9번째 백작의 탄생을 축하하는 파티가 시작되었다.
자신이 주인공임에도 제논은 콘스탄틴과 다름없이 루이스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국왕 폐하께서도 어찌 못할 거대귀족의 등장이군.”
“헬리온에 아르비스 후작께서 자금을 투자할까?”
“지금이 기횔세, 지금이 아니면 바쁜 후작께 언제 인사를 드려 보겠는가?”
“내 딸아이의 미색이 제법인데, 한번 후작께 밀어 볼까?”
루이스와 제논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귀족과 어떻게든 연을 만들려 보려는 귀족까지.
많은 목소리가 루이스의 귀를 자극했다.
“그냥 갈까요?”
루이스의 물음에 제논은 고민할 필요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국왕은 눈치껏 자리를 피했지만, 제노아드 공작과 아인트 공작도 덩달아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어디서 귀찮은 이야기라도 나누고 있는 게 아닐까.
루이스는 괜히 정치싸움에 휘말리는 것만은 사양하고 싶었다.
“어딜 그리 급히 가는 건가?”
그런데 카르디아 공작이 루이스의 앞을 가로막는 바람에 탈주할 생각이던 그들은 걸음을 멈춰 세워야 했다.
“어린아이의 몸이라 그런지 파티가 힘드네요. 이만 쉬고 싶어서요.”
루이스의 반응에 카르디아 공작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겉모습만 보면 그럴 만도 할 것 같군. 하지만 굳이 파티의 주인공인 카이트 백작까지 끌고 갈 필요가 있는가?”
또 시비냐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흘린 루이스는 제논에게 물었다.
“더 놀다 오실래요?”
“아뇨, 주군과 함께 가겠습니다.”
국왕이 없는 자리인지라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한 주군이란 단어에 카르디아 공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카이트 백작, 자네는 이제 한 지방의 영주이네, 충성 맹세를 한 아르비스 후작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자신의 영지와 영주민을 살피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싶은데?”
뻔히 보이는 속내.
루이스는 말없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헬리온 영지는 주군께 대리 운영을 부탁드릴 생각입니다.”
자신의 영지를 다른 영주에게 맡긴다니, 생각지도 못한 제논의 발언에 카르디아 공작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자신의 영지를 내팽개치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카르디아 공작의 호통에 잔잔하게 흐르던 음악이 멈추고 파티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진다.
지방 변두리의 귀족들은 물론, 중앙에 진출한 백작, 후작까지, 두 사람의 대치에 감히 끼어들지 못하고 불똥이 튈까 얌전히 물러났다.
“내팽개치는 게 아니니까 대리 운영을 맡기는 겁니다만?”
“자네 대체 국왕폐하께서 하사한 영지를 뭐라 생각하는 건가!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야!”
루이스와 제논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아서일까?
카르디아 공작의 반응은 굉장히 날카로웠다.
“다른 영주에게 대리 운영을 맡기면 안 된다는 내용은 영지 관리법에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너무 당연하니까 없는 게지! 해괴망측한 논리를 들이밀지 말게!”
소년의 모습으로 대놓고 한숨을 내쉬는 루이스의 태도에 카르디아 공작이 발끈했지만, 제논과 콘스탄틴에게서 밀려오는 압박감에 뒷걸음질을 쳐야 했다.
루이스가 왕국의 체제를 존중하는 이유는 괜한 분란으로 허튼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서이며, 아군의 전력을 깎아 먹는 일을 막기 위함이다.
결코, 그들이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
[저와 제논 경을 갈라놓으려고 머리 좀 쓰셨던데 소용없습니다. 공작님께서 무슨 수를 쓰 건 아무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요. 괜히 저희 화나게 하지 마시고, 평범하게 칼바도스의 위협에 대비나 하시죠. 이건 마지막 경고입니다.]
카르디아 공작에게 텔레파시를 보낸 루이스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네며 유유히 파티장을 벗어났다.
텔레파시 내용을 알 수 없는 귀족들은 하나같이 의문을 표했지만, 카르디아 공작은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며 이를 갈았다.
***
10. 기습
마드세인 왕국은 내가 태어난 나라긴 하지만, 전생에 내게 개목걸이를 채워 전장에 내던진 전력이 있는 곳이다.
때문에 나는 조국에 대한 애국심 따윈 전혀 갖고 있지 않으며, 여차하면 미련 없이 나라를 버릴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이렇게 마드세인에 죽치고 있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전생에 내 주된 활동처인 만큼 미래에 대한 기억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만만하지 않은가.
만약 내가 칼바도스나 위스워드 같은 대국에서 이렇게 설쳤으면, 그랜드 마스터를 목전에 둔 샤를로트 공작이나, 8클래스 대마법사인 마르스 공작에게 속절없이 견제를 당하거나 제거당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제국에는 상대하기 어려운 괴물들이 존재하는 만큼 내가 마음껏 영향력을 확대하기엔 대국보다 이런 어중간한 나라가 더 낫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분명히 밝혀 두는데,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이곳 마드세인이 아닌, 칼바도스 제국이다.
전생에 나와 우리 가족을 모두 죽인 녀석들인데, 아무 감정이 없을 수가 없지.
더구나 녀석들이 쓸데없는 야욕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애초에 개목걸이를 찰 일도 없었을 것이다.
칼바도스 제국은 분명 무서운 나라지만, 내가 이대로 순조롭게 성장하여 샤를로트 공작 같은 존재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면, 솔직히 크게 한 방 먹여 주고 싶었다.
당하고만 사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은지라···.
당연히 마드세인의 만행도 봐줄 생각은 없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차라리 성벽을 더 두껍고 높게 짓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굳이 이런 구조로 요새를 보강하시는 이유가···.”
왕국으로부터 명인이란 칭호를 받은 건설 전문가가 내가 제시한 의견에 의문을 표하자 콘스탄틴이 미쳤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에 겁에 질린 전문가는 목을 움츠렸고, 나는 간단히 답을 했다.
“앞으로의 전쟁은 마도 병기 때문에 성벽의 의미가 많이 퇴색될 겁니다. 차라리 이렇게 지형을 바꿔 성벽에 접근하기 힘들게 하는 게 나아요.”
“그, 그렇군요. 이 T자 형태 첨탑의 용도를 알 수 있을까요?”
“그건 군사 기밀입니다. 그냥 이대로 튼실하게만 만들어주시면 돼요.”
“그럼, 공사 비용은 어떻게.”
내가 제시한 헬리온 국경 요새 보강 도면엔 특이한 첨탑뿐만이 아니라, 인조 강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큰 해자가 그려져 있었다.
또 증축되는 성의 규모도 상상을 초월하는 만큼 엄청난 자재가 소모될 수밖에 없으니, 그가 비용 걱정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분명 그 비용은 웬만한 대영주라 해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일 테니.
콘스탄틴의 눈치를 살피기 바쁜 그에게 나는 여유롭게 답했다.
“우선 선금으로 3만 골드를 드리죠. 그리고 자재 구입비는 한 달, 인건비는 일주일 간격으로 결제해 드리겠습니다.”
“오오, 그럼 더할 나위 없죠.”
나는 그에게 복잡한 내용 없이 깔끔한 계약서를 건넸고,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사인을 했다.
“아, 참···. 미리 말할 게 있는데요.”
“네, 각하. 말씀하시지요.”
“저는 횡령을 아주 싫어합니다. 중간에 누군가가 부당이득을 취하는 건 아닌지 수시로 조사관을 파견할 테니,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끔 해주세요.”
그리고 전매특허가 되어버린, 웃으면서 경고하기 스킬을 시전하니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가 서재를 나서고 콘스탄틴과 둘만 남았다.
“의외로 카르디아 공작이 조용하군요. 위협이 통한 걸까요?”
콘스탄틴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왠지 말로 통할 것 같은 인물이 아닐 것 같아요. 분명 수작을 부리려 들겠죠.”
더불어 조소를 흘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런데 굳이 신경 쓸 필요 있을까요?”
내가 마음만 먹으면 카르디아 공작을 쓸어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냉정한 이야기에 콘스탄틴도 동감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들 사이에 문제는 없죠?”
“네, 그렇습니다. 기존 다리우스 영지 출신의 기사들은 이제 완전히 저희 사람이 되었고, 새로 영입한 인원들도 따로 문제는 일으키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아르비스 후작령에 소속된 기사들의 수는 총 670여 명이다.
이중 30명은 다리우스 백작의 휘하였던 인물들이고, 나머지는 모두 새로 영입한 인원들이다.
소드마스터가 이끄는 기사단이란 매리트와 거액의 연봉은 자유기사와 정착하길 원하는 용병이라면 누구나가 고민해볼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델 경이 벽을 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
콘스탄틴과 같이 트레이닝캡슐을 먹었으나, 마스터가 된 기사는 처음 7명 중 5명이었고, 2명만이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둘 중 한 명이 아델인데, 그가 마스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에 나는 내 일처럼 기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별채엔 7명이 트레이닝 캡슐을 섭취하여 다음 경지에 도전하고 있으며, 스텔라와 레이포드는 벽을 넘을만한 인재를 계속 찾아다니고 있다.
또한 마력 전지의 생산으로 기간트를 비롯한 마도 병기의 개발도 척척 진행되고 있어 여러모로 상황이 순조로웠다.
“부디 계속 이 기세가 이어지면 좋겠군요.”
“그럴 겁니다.”
***
“루시엘라. 무슨 생각을 그리 해?”
어느 조용한 숲속.
나무 위에서 기척을 죽이고 있던 루시엘라는 옆에서 말을 걸어오는 동료의 물음에 턱짓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응? 아아, 하프엘프 처음 보는구나?”
저 멀리 홀로 떨어져 활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남성 엘프.
겉모습만 봐선 주변에 포진해 있는 엘프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지만, 정작 엘프인 루시엘라는 그렇지않는지 신기하단 표정을 지었다.
“하프엘프? 저자가 하프엘프야?”
“응, 맞아. 미드랜드에 있는 엘프들은 참 마음씨도 착하단 말이야, 하프엘프같은 불길한 존재를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다니. 괜히 작전 중에 발목이나 잡지 않았으면 좋겠네.”
엘프란 종족 자체가 워낙 배타적인 성향이 강하기에 타 종족의 피가 섞인 하프엘프는 동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하프엘프가 엘븐킹덤의 중요 작전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엘프들이 굉장히 많았다.
“비슷해.”
“뭐가?”
“예전에 인간의 어린아이를 도와준 적이 있거든.”
“인간을 왜 도와줘. 너도 참 이상하구나?”
“그런데 그 아이가 저런 분위기를 풍겼어.”
“그 꼬마의 조상 중에 엘프가 있었나 보지. 오래전엔 우리도 인간들과 교류하던 시절이 있었다잖아.”
“그런가?”
3대가 지나면 외모에서 엘프의 특성은 완전히 사라지기에 조상중에 엘프가 있음에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루시엘라는 어쩐지 도와줄 수밖에 없던 아이를 떠올렸다.
묘하게 친밀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인간의 욕심이 진득하게 배어 있던 눈빛을 가진 아이.
그녀는 문뜩 그 아이가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따각. 따각.
“왔어.”
“응.”
작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
루실엘라는 아이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며 활을 꺼내 들었다.
그런 루시엘라의 눈에 거대한 무언가를 싣고 이동하는 칼바도스 제국군의 마도차량이 보였다.
기습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