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25화 (2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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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발전

    “아르비스 후작이 벌이고 있는 영지 개발과 다리우스, 발테르, 록스터를 관통하는 철도 건설로 남부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주변 영주들은 유례없는 대공사를 크게 환영하고 있으며, 부디 철도가 자신들의 영지를 지나갈 수 있게 해달라며 끊임없이 청탁하고 있답니다.”

    “다리우스의 하루 미스릴 생산량이 30kg에 달합니다. 한 달이면 900kg인데 이걸 금으로 치면 무려 18톤에 달하는 양이죠. 18톤이면 마드세인 왕국 전체에서 1년간 생산하는 금의 양보다 많습니다! 아르비스 후작은 지금 세금감면 혜택을 악용하여 무리하게 미스릴을 채굴하고 있습니다. 이건 반드시 제재해야 합니다! 본래 왕국에서 채굴하는 귀금속의 5할은 국왕 폐하의 것이 아닙니까?”

    “아르비스 후작이 막대한 자금을 활용하여 미드랜드 전체에서 기사들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고액의 임금과 소드마스터가 단장으로 있는 아르비스 기사단에 입단하기 위해 몰려든 자유기사와 A급 용병의 수가 무려 500에 달한다고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아르비스 후작을 불러들여 의중을 묻고 무분별한 확장을 제재해야 합니다!”

    “제논 경의 작위식을 최대한 미루던가, 작위와 영지의 급을 낮춰야 합니다. 제논 경이 고위 귀족이 된다면 아르비스 후작의 영향력은 더욱 커져,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마드세인 왕국의 카르가 국왕은 대신 회의에서 쏟아지는 성토에 이마를 짚어야 했다.

    “우리가 지금 아르비스 후작을 제재한다면 자칫 대마법사와 소드마스터를 잃을 수도 있네, 자네들이 원하는 게 그것인가?”

    “이 나라는 폐하의 것이옵니다. 국왕폐하께서 뭐든지 명령을 내리신다면, 아르비스 후작은 거부하지 못할 겁니다.”

    “소드마스터를 기사로 둔 대마법사라면 당장 제국에서도 공, 후작급의 작위를 약속하며 탐낼 수밖에 없는 인재네. 그런데도 자신들을 제재하는 나라에 붙어있을 것이다? 프레드릭 백작, 말이 모순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가?”

    대마법사임이 밝혀지고 일주일도 안 돼 작위를 받은 아르비스 후작과 달리, 제논은 소드마스터 임이 밝혀지고 2주가 지났음에도 작위식이 거행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북부 귀족들의 극심한 반대가 있었기 때문인데, 그들은 왕국 내에 국왕조차 손댈 수 없는 거대귀족의 등장을 바라지 않았다.

    “아니면 차라리 미스릴 광산이 카이도 남작의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하시는 편이···.”

    “허, 이젠 아예 그 두 사람을 적으로 만들자는 거군?”

    다행히 아르비스 후작가에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자칫 그들의 이탈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에 국왕의 근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단, 제논 경의 작위는 제대로 부여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영지도 하사해야 하죠.”

    “카르디아 공작?”

    그런데 웬일로 바른말을 하는 카르디아 공작의 행동에 국왕을 비롯한 제노아드 공작이 눈을 크게 떴고, 재상인 아인트 공작만이 미간을 좁히며 무슨 생각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입장을 지지해줄 거라 생각했던 카르디아 공작이 의외의 말을 하자, 북부의 귀족들은 하나같이 당황했다.

    “본의 아니게 아르비스 후작의 등장으로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지만, 그 정도 판단은 저도 할 줄 압니다. 이 상황에 제논 경의 작위식을 미루면 미룰수록 그들의 마음은 마드세인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소드마스터와 대마법사를 놔줘도 될 만큼 여유 있는 상황도 아니지 않습니까?”

    국왕과 제노아드 공작은 맞는 말이란 표정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다면 이대로 아르비스 후작이 독보적인 남부의 패자가 되어 왕국의 절반을 좌지우지해도 괜찮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르비스 후작이 남부를 좌지우지한다는 건 너무 심한 비약이오. 아르비스 후작이 북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남부에 큰돈을 쏟아부어 지역을 부흥시킨다면, 나라가 득이 되지 어찌 해가 되겠소?”

    “하지만, 그러다가 아르비스 후작이 다른 마음이라도 먹으면 어쩌시려고···.”

    “아르비스 후작도 바보는 아니지, 북쪽에 칼바도스가 칼을 언제 빼 들지 시기를 재고 있는데, 내분을 일으키겠나? 그는 마나의 언약으로 자신이 외부 세력이 아님을 이미 밝혔네. 세작이 아닌 이상 그런 짓은 안 하겠지.”

    구구절절 맞는 말만 하는 카르디아 공작을 보며 국왕은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짓고, 북부의 귀족들은 똥 씹은 표정으로 입을 닫아야 했다.

    그러나 끝까지 카르디아 공작의 달라진 모습을 신뢰하지 않던 아인트 공작이 물어왔다.

    “속내를 밝히시게. 모두 맞는 말이지만 아르비스 후작의 확장을 손 놓고 지켜볼 위인이 아닐 텐데?”

    날카로운 아인트 공작의 물음에 회의장은 잠시 침묵에 물들고 모두의 시선이 카르디아 공작에게 향했다.

    카르디아 공작은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속내랄 것 있겠는가. 상황에 따른 적합한 행동할 뿐이지.”

    “······.”

    “당연히 아르비스 후작의 과도한 미스릴 광석 채취는 누가 봐도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폐하의 호의를 악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네. 이건 귀족으로서 해선 안 될 짓이야. 폐하를 업신여기는 행위가 아닌가?”

    ‘호의를 악용하고 있다’는 문장이 더해지니 아르비스 후작의 행동은 국왕을 배신하고 있다는 것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공식 항의 서한과 함께 미스릴 광산의 채굴량을 3분의 1로 줄이던가. 아니면 미스릴만이라도 세금을 물리는 방안을 제시해야 하네.”

    “후작은 굳이 받아들이지 않아도 상관없는 내용이 아닌가?”

    “거절하면 어쩔 수 없지. 그것 외에 왕실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후작은 낯짝이 그리 두꺼워 보이지는 않더군.”

    지극히 이성적인 반응.

    아인트 공작도 옳은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대신 제논 경에겐 후작위 대신 백작위를 하사하고 후작령 정도 되는 땅을 하사하는 방안으로 가는 것이 합당하다 생각하네.”

    “백작이라···.”

    “그의 맹세는 폐하가 아닌, 후작에게 향해 있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그것도 그렇군.”

    그렇다면 굳이 영지도 후작령에 해당하는 땅을 줄 필요가 없는 것 아닐까?

    하지만 문뜩 아인트 공작의 머릿속에 후작령 수준으로 광활하고 자원도 풍족하지만, 모두가 꺼리는 국왕직할령이 있음을 떠올렸다.

    “설마, 자네?”

    카르디아 공작은 의문을 표하는 국왕에게 말했다.

    “폐하, 헬리온 영지를 제논 경에게 하사하심이 어떠할는지요.”

    “흐음···.”

    헬리온이라 하면 칼바도스 제국과 국경을 직접 맞대고 있는 북부의 최전선.

    칼바도스 제국의 침입을 막는데 가장 중요한 영토였다.

    “헬리온에 소드마스터인 제논 경과 아르비스 후작령의 자금이 투입된다면 본국의 최전선은 더욱 견고해질 것입니다. 본국 입장에서 내릴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결정이라 생각하옵니다.”

    타당한 카르디아 공작의 제안에 아르비스 후작의 입장을 생각하던 국왕과 제노아드 공작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더불어 헬리온이 아르비스 후작의 영향력에 들어간다면 확실히 그의 의중을 알 수 있을 테니, 여러모로 합리적인 방법으로 보였다.

    아르비스 후작에 대한 면세 혜택은 국왕이 내린 선물인 만큼 제재할 명분이 부족했지만, 소드마스터인 제논을 통한 최전선 강화는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카르디아 공작의 의견이 매우 현실적으로 보이는군. 대신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

    소드 마스터를 통한 최전선 강화란 명목이 더해지니 북부의 귀족들도 무조건 반대하지 못했다.

    “좋아, 그럼 봉작 일정을 잡도록 하지.”

    카르디아 공작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발테르 시, 임시 영주성.

    “그도 참 재밌는 사람이네요. 지난번에 봤을 때 공작치고는 좀 모자라 보이더니, 의외로 머리를 굴리는 타입이었나 봐요?”

    나는 맞은 편에 앉아있는 사내를 바라보며 웃음을 흘렸고, 내 미소를 마주한 상대는 불편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무래도 그렇지. 그 역시 정치판에서 구른 세월이 한두 해가 아니니.”

    “그런 카르디아 공작은 예상이나 하고 있을까요? 본인이 머리 굴리는 만큼 저도 머리를 굴릴 수 있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득의양양한 내 모습에 사내는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꿈에도 모르겠지. 내가 이런 배알도 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걸 감히 누가 예상한단 말인가.”

    고개를 끄덕인 나는 마드세인 왕국의 재상 ‘아인트 공작’을 바라보며 물었다.

    “공작님이 보기엔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 같습니까?”

    내 물음에 머리 좋은 아인트 공작은 어렵지 않게 예상안을 내놓았다.

    “우선 제논 경을 북방의 수호자로 만들어 업무적으로 자네와 떼어 놓으려 하겠지. 그다음 둘 사이를 이간질하거나, 자네에게 암수를 쓸 수도 있겠군. 어쩌면 두 가지 모두일 수도 있고.”

    “전 그에게 죽을 만큼 잘못한 적이 없는데요.”

    “자네 존재 자체가 그에겐 위협인 거야. 이번에 자네의 등장으로 그를 지지하던 마드세인 마도 학회와 마법사협회가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거든. 그 두 곳은 카르디아 공작에게 있어 정치적 구심점이 되는 세력일세. 이 상황이 길어진다면 그는 점점 중앙에서의 발언력이 줄어들어 마탑에서 연구만 해야 하는 신세가 되겠지.”

    “그게 더 나은 것 같은데.”

    내 말에 공작은 미친개란 별명으로 유명한 콘스탄틴을 바라보며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그런데 저자 좀 어떻게 안 되겠나? 계속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봐서, 이 자리가 너무 불편하군.”

    나는 고개를 돌려 콘스탄틴을 바라보았고, 그는 무슨 일 있냐는 표정으로 순박한 미소를 지었다.

    “겨우 소국의 공작 따위가 우리 주군에게 하대해서야 쓰나.”

    콘스탄틴의 가차 없는 반응에 아인트 공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나는 아르비스 후작에게 충성맹세를 한 적이 없네만? 그리고 자네가 바로 그 소국 소속이고 나는 공작의 작위를 가진 귀족일세.”

    콘스탄틴은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며 답했다.

    “공작이니 대우를 해달라는 건가?”

    “무슨, 당연한 말을.”

    정색하는 아인트 공작의 반응에 콘스탄틴은 조소를 흘리며 턱을 치켜들었다.

    “어차피 꿇게 될 거, 알아서 기어. 당신 머리 좀 굴러가는 사람이잖아? 작위를 내세우며 잘난 척하기엔 이곳이 위험하단 생각은 못 하나 보지?”

    직설적인 만큼 아프다.

    쐐기처럼 날아드는 콘스탄틴의 대답.

    아인트 공작은 좀 말려보란 식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콘스탄틴 경 그만 하세요.”

    “네, 주군.”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던 콘스탄틴이 내 말 한마디에 조용히 물러나자, 아인트 공작은 다시금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실없는 질문이긴 하지만 하나 물어도 되겠나?”

    “네, 괜찮습니다.”

    아인트 공작은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자네, 정말 첩자가 아닌 거겠지? 타국이나, 어둠의 세력 같은.”

    진지하기에 더 웃긴 질문이었다.

    “한 번 더 마나의 언약을 할까요?”

    아인트 공작도 뒤늦게 민망해졌는지 헛기침을 했다.

    “괜한 걸 물었군.”

    “아닙니다.”

    “제논 경의 작위와 헬리온 영지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주겠다는데, 거절할 필요 없죠. 왕실에서 저와 제논 경을 떼어 내려 한다면, 콘스탄틴 경 데려가서 마스터가 한 명 더 생겼다고 하면 되니까. 그럼 암습 같은 귀찮은 짓은 안 하겠죠?”

    “대신 왕실이 뒤집혀 지겠지.”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아인트 공작은 나의 힘을 일부나마 파악하고 있는 마드세인의 유일한 귀족이다.

    드래곤 레어의 빈집털이 후, 나는 이제 뭐든지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다.

    그런데 소속 왕국의 견제 때문에 속썩이는 일이 발생해서야 되겠는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귀족들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으니, 무슨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여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정보조직이었는데 마드세인의 정보기관을 꽉 쥐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재상인 아인트 공작이었다.

    그럼 아인트 공작을 끌어들이자는 단순한 생각을 실행으로 옮겼고 결국 그와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아인트 공작을 끌어들이는 과정은 다소 과격했지만 말이다.

    “나는 이만 가보겠네.”

    아인트 공작이 지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여 콘스탄틴 경으로 기분 상했다면 제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신경 쓸 것 없네. 내 처지를 이해하고 있으니.”

    “그렇군요. 그럼, 아인트 공작님. 내일 또 뵙도록 해요.”

    나는 서재 한구석에 설치된 텔레포트 게이트로 향하는 공작에게 인사를 건넸다.

    내일 또 보자는 말에 그는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어쩔 수 없단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텔레포트 게이트 위에 올라섰다.

    “텔레포트, 아인트 공작령.”

    그리고 푸른 빛과 함께 사라지는 그를 지켜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좋은 반응이야.”

    “배신하지 않겠습니까?”

    콘스탄틴의 우려 섞인 물음에 걱정할 거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똑똑한 사람이니 알아서 잘 처신하겠죠.”

    “아무래도 저런 정통 귀족은 신뢰할 수가 없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

    제노아드 공작, 카르디아 공작과 달리 그는 순수 정치 귀족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그가 수작을 부린다면 척결하면 되죠. 그때 처리는 콘스탄틴 경에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콘스탄틴은 더없이 공손한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숙여왔다.

    이거 어째 귀족만 되면 끝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은 것 같다.

    부디 귀족들이 칼바도스란 공통의 적을 잊고 제 살을 깎는 멍청한 짓을 안 했으면 좋겠지만, 선을 넘는다면 썩은 부위를 도려 내줄 뿐이다.

    어리바리하게 당해주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았으니.

    발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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