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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세인 왕성, 바이탈 캐슬.
나는 귀족이 되고 처음으로 국왕에게 공식면담을 신청했다.
신분이 신분이다 보니 일정은 최우선으로 잡혔고, 제논을 거느린 나는 왕좌에 앉아 자신의 위엄을 마음껏 뽐내는 국왕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공식면담은 가볍게 안부 인사를 나누는 용도가 아니다.
대신이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 건의할 내용을 국왕에게 밝히는 것인데, 아르비스 후작의 첫 공식면담이란 이야기에 대신들도 관심이 많은지, 세 공작을 포함해 많은 수의 귀족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폐하를 뵙사옵니다.”
내가 인사를 건네자, 국왕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들라.”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한 달이 넘어서야 왕성을 다시 찾아 주다니, 아르비스 후작이 짐에게 많이 무심한 것 같군.”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그간 워낙 바쁘게 지낸 터라.”
“그래 대마법사는 바쁠 수밖에···. 이해하네. 그래서 무슨 일 때문에 공식면담을 신청한 것인가?”
“네, 저는···.”
수근. 수근.
그런데 귀족들은 공식면담에 관한 이야기보다도 내 미스릴 광산에 관심이 더 많은지, ‘하루 채광량이 어느 정도다.’, ‘다리우스 백작령을 먹은 이유가 미스릴 광산 때문이다.’라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신경을 긁어댔다.
당연히 그 중심엔 나를 꺼리는 카르디아 공작이 있었고, 재상 아인트 공작과 제노아드 공작은 미간을 좁히며 수군거리는 귀족들을 노려보았다.
“예의 없으신 분들이 많군요. 감히 후작 각하와 국왕 폐하께서 이야기를 나누시고 있는데, 잡담이라니.”
아무래도 텃세를 부리려 한 것 같은데 내 뒤에 있던 제논이 카르디아 공작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죽거리자, 왕실 대전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국왕은 그런 제논을 무심히 바라보았고, 아인트 공작과 제노아드 공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일개 기사가 할만한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운을 감춰서인지, 아니면 제노아드 공작도 많이 무뎌진 건지, 제논이 소드마스터란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제논의 직설적인 타박에 얼굴을 붉힌 카르디아 공작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고압적으로 말했다.
“일개, 기사 따위가 주인의 위세를 등에 업어 대신들 앞에 날뛰는 모습이 심히 불쾌하군. 한 번 해보자는 건가?”
여차하면 명예를 건 결투도 불사하겠다는 반응.
아인트 공작과 제노아드 공작은 말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카르디아 공작의 말에 제논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나쁘지 않지. 대신 공작께서 직접 나서야 할 거요.”
그리고 개방되는 제논의 존재감.
드드드드.
제논의 기세에 왕실대전 전체가 진동했다.
카르디아 공작과 제노아드 공작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고, 국왕을 포함한 나머지 귀족들은 흠칫 몸을 떨었다.
나는 타이밍 좋게 끼어들며 제논을 제지했다.
“제논 경, 어전입니다. 무슨 짓입니까?”
내 지적에 그는 바로 기운을 거두고 고개를 깊이 숙이며 답했다.
“죄송합니다. 각하.”
국왕의 앞인지라 함부로 주군이란 단어를 사용하진 않았지만, 누가 봐도 그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나를 주인으로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혼란에 빠진 왕실 대전의 분위기를 무시하고 국왕에게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오늘 폐하께 긴히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국왕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고, 굳어버린 카르디아 공작을 힐끔 바라본 나는 진한 미소를 지으며 공식면담을 신청한 이유를 밝혔다.
“저의 기사 제논 경이 이번에 벽을 깨고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부디 능력에 맞는 작위와 영지를 내려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마, 마스터라 하였는가?”
침묵에 빠졌던 어전이 다시금 시끄러워졌다.
나에게 호의적이던 제노아드 공작도 눈에 띄게 당황하며 물어왔다.
“마스터의 탄생은 분명 기쁜 일이지만, 자네 설마 마스터를 부하로 둘 셈인가?”
“이런···. 안됩니까?”
나는 눈을 껌벅이며 국왕을 바라보았고, 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 보았다.
“아니, 안된다기보다야. 그래도 마스터는 국왕 폐하께 충성을 맹세하는 편이 맞지 않나 싶네만.”
작위를 받는 과정에서 귀족은 국왕에게 충성 맹세를 하게 되는데, 이미 받드는 사람이 있는 제논이 다시 충성 맹세를 하는 게 이상한 모양이다.
나의 경우 그냥 말뿐인 맹세인지라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제논 경은 어떠할지.
“저는 아르비스 후작가의 기사입니다. 만약 여기 계신 분들이 저의 충성 맹세를 걸고넘어진다면, 작위와 영지는 필요 없습니다.”
단호한 제논의 반응에 다시금 제노아드 공작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아인트 공작도 생각이 많아 보였다.
어차피 나는 놔줄 생각이 없기에 쓸데없는 고민일 뿐이다.
“폐하, 비록 그는 저에게 충성 맹세를 했지만, 분명 마드세인 왕국 소속의 마스터이기도 합니다. 설마 모른 척하실 생각입니까?”
이런 내 물음에 답을 한 것은 국왕이 아닌, 카르디아 공작이었다.
“기사가 두 명의 주군을 섬길 수 없는 법! 어차피 제논 경이 자네에게 충성 맹세를 한 건 얼마 안 되었을 것 아닌가. 여기선 마땅히 국왕폐하께 충성 맹세를······.”
“카르디아 공작 각하. 기사의 맹세를 우롱하시는 겁니까?”
그러나 제논이 살벌한 눈빛으로 노려보자 그는 다시 말을 삼켜야 했다.
나는 잠자코 있는 국왕을 빤히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무슨 이유가 있건 기사의 맹세는 존중받아야 마땅한 법.”
내 눈빛에서 어떤 생각을 읽었을지 모르지만, 국왕은 결국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제논의 의지를 존중했다.
“빠른 시일 내로 작위식을 거행하도록 하지. 제논 경 진심으로 환영하네.”
“감사합니다. 국왕폐하.”
소드마스터의 탄생은 분명 축하할만한 사안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드마스터와 대마법사를 한 명씩만 보유하고 있던 것이 더블스코어가 된 셈이니.
마드세인 같은 약소국에 초월자가 4명이나 속해 있는 것은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그중 절반이 아르비스 후작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지만 말이다.
아마 이걸로 한동안 왕실은 계속 시끄러울 것이다.
제논 한 사람만으로 이 난린데, 마스터 5명에 대마법사 3명을 우르르 데리고 갔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나는 재밌는 상상에 웃음을 흘렸고 그러다가 문뜩 아인트 공작, 제노아드 공작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의 눈에 이전까지 없던 경계심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아챈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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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를 했으면 당연히 기억을 되살려 이득을 취해야지!’
당연하지만 어쩌다 보니 처음부터 마도시대 유적이란 대박을 터뜨리는 바람에 웬만한 것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내가 대마법사가 되고 트레이닝캡슐을 쪼갠다는 아이디어 하나로 엄청난 수하들을 얻으면서 원래라면 시도도 못 해볼 위험한 도전이 가능해졌다.
칼바도스 제국 남부에 위치한 트라칸 산맥.
지금 나와 대마법사 3명, 소드마스터 5명은 완전 무장을 갖춘 채 몰래 국경을 넘은 상황이다.
그리고 대마법사와 소드마스터를 2인 1조, 총 4팀으로 나눠 산맥 구석구석을 탐색하고 있는데, 3일이 지나도록 원하던 것을 찾지 못해 전생에 들었던 이야기가 단순한 헛소문이 아니었나 걱정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알카즈 왕국 출신의 은퇴기사 ‘블레이크’와 골렘장인 ‘엠브리오’가 내 앞에 텔레포트로 나타나 외쳤다.
“주군! 찾았습니다!”
아무래도 단순 헛소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 드디어! 어서 가요!”
기분이 업된 나는 악당 같은 미소를 지으며 텔레파시로 일행들을 모두 불러들인 후, 엠브리오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팟!
텔레포트로 인한 푸른빛이 가시고 눈앞에 등장한 것은 하늘 높이 뻗어있는 협곡이었다.
햇빛이 나무에 가려 어두운 공간.
정면의 절벽에서 마법적 기운이 풍기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빙고를 외쳤다.
“수고했습니다. 엠브리오 경, 블레이크 경.”
내 칭찬에 두 사람은 고개를 숙였고, 마른 침을 삼키는 대마법사와 마스터들을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탐사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에 대마법사와 마스터에 이르는 강자가 무려 9명이나 모였음에도 다들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지금부터 우리가 들어갈 장소가 다름 아닌 ‘드래곤의 레어’였기 때문에.
“다들 포션 든든히 챙겼죠?”
“네!”
“좋아요. 들어갑시다.”
그렇다고 안에 드래곤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해당 레어의 주인은 이미 수만 년 전에 죽은 것으로 알고 있으니.
즉, 빈집털이란 소리.
우린 죽은 드래곤의 레어를 털어가기 위해 불법으로 국경을 넘어 칼바도스 제국령을 활보하는 것이었다.
전생에 들었던 이야기에 의하면 이 레어가 제국의 군자금을 역할을 해주었기에 전쟁이 예정보다 빨리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
비록 레어의 자세한 위치는 모르고 트라칸 산맥에서 찾았다는 이야기만 들은지라 산맥 전체를 수색할 수밖에 없었으나, 대마법사가 무려 4명인 만큼 결국은 원하던 것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칼바도스에서 자랑처럼 이 이야기를 떠들어댄 덕분이다.
뭐, 그들이 누군가가 회귀해서 이득을 가로챌 거라고 어찌 알겠느냐마는 이걸 가로챔으로써 나는 엄청난 이득을 얻고 동시에 칼바도스 제국의 야욕으로부터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게 되니, 1타 쌍피의 이득이라 할 수 있다.
소드마스터 5명, 대마법사 4명.
위험하다곤 들었지만, 대륙 최고의 파티라고 자부할 수 있는 우리가 칼바도스 제국도 해낸 것을 못 이뤄낼 리 없다.
레어를 털 때 칼바도스 제국의 전력은 병력이 많아도 전투력에서 우리와 비교가 안 됐으며, 무엇이 등장하는지 미리 알고 있는 이상 대비가 가능했다.
“심상치 않은 마력이 느껴집니다. 엄청난데요?”
평범한 벽으로 위장하고 있던 절벽의 틈으로 들어오자 풍경이 180도 달라졌다.
마도시대의 유적처럼 매끈한 벽면, 곳곳을 밝히는 LED 같은 푸른 불빛.
드래곤의 레어라고 해서 조금 더 자연적인 무언가를 생각했지만, 마치 마도 제국의 기술자들을 잡아다가 레어를 꾸민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유적의 벽면도 여기처럼 우유를 섞은 것처럼 새하얀 색의 금속이던데, 문뜩 재질이 궁금해졌다.
인조 미스릴처럼 귀하진 않겠지만, 뭔가 특성이 있다면 개발해서 사용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분명 마도시대에서 이런 식으로 벽을 만드는 덴 이유가 있을 테니.
“블레이크 경, 벽의 금속 좀 떼가도록 하죠. 무슨 재질인지 확인 좀 해봐야겠어요.”
“알겠습니다.”
알카즈 왕국의 은퇴기사 블레이크가 오러블레이드를 일으켜 금속을 삼각형으로 잘라냈다.
미스릴이라면 오러블레이드에도 어느 정도 버틸 텐데, 맥없이 잘리는 걸 보면 강도가 그리 강하진 않은 모양이다.
그렇게 주변을 살피며 얼마나 앞으로 나아갔을까?
정면에서 몰려오는 상당한 마력에 나를 포함한 대마법사들은 하나같이 메모라이즈를 해둔 7클래스의 프로텍트 배리어를 펄쳤고, 압축 배리어 브레슬릿(5단계 압축 배리어 기능)을 팔목에 찬 제논이 가장 앞에 서서 만약의 상황에 대비했다.
콰아아앙!
정면에서 일직선으로 날아든 백색의 광선이 배리어를 때리고, 배리어를 뚫지 못한 광선은 산개되어 흩어졌다.
뭔가 싶었는데, 그건 7클래스 급으로 강화된, ‘레이저 캐논’이었다.
전생엔 수많은 병사가 목숨을 잃으면서 소드마스터와 대마법사가 포함된 탐사팀이 투입됐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이 공격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마법 공격은 4개의 프로텍트 배리어 중, 단 한 개도 뚫지 못했고, 우리는 여유롭게 앞으로 나아갔다.
레이져 캐논의 유일한 영향이라면, 이 녀석이 쉬지 않고 날아드는 바람에 눈이 부시다는 것뿐.
약 1분에 걸친 끈질긴 공격이 끝이 나고 사방에서 무언가가 새는 소리가 들려왔다.
“독가스네요. 준비해 온 약을 드세요.”
“네, 주군.”
독가스가 방어막을 뚫지 못할 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만약을 대비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 독은 생화학가스인지라, 7클래스의 리커버리로 치료해도 재발할 수 있으니, 중독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바닥에 묻은 독이 내부에 침투할 수 있는 만큼, 우리는 배리어의 크기를 줄이고 플로트 마법을 사용해 허공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 상태로 앞으로 나아가는데, 더 이상 가스 새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왔던 길을 향해 파이어 블래스트를 사용했다.
내 마법으로 첫 번째 배리어에 금이 갔지만, 이걸로 배리어에 붙었을지 모르는 생화학가스는 모두 타버렸을 거다.
뒤이어 아이스 월로 우리가 지나온 길을 막으면 독가스 걱정은 끝.
“주군, 정면에 거대한 공동이 보입니다.”
“그래요?”
제논의 말에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시력을 높였고, 저 멀리 길이 끊기고 어두운 공간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이동한 통로만 해도 족히 2~3km는 되지 않을까?
드래곤의 레어라더니, 입구만 해도 길이가 심상치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배리어를 두른 채 빠르게 날아갔고, 거대한 원형 공동에 들어섰다.
“아무래도 중간 보스가 등장하려나 봅니다.”
내가 공동의 천정을 올려다보며 말하자 부하들의 시선이 일제히 천장을 향했고, 하늘에서부터 붉은 안광을 반짝이는 은색의 로봇이 떨어져 내렸다.
크아아아!
다만 로봇이라고 해서 기간트처럼 인간형은 아니었는데,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을 가진 샤벨타이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빈집털이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