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22화 (22/186)
  • -------------- 22/186 --------------

    쾅! 쾅!

    푸른 검기와 녹색 검기의 충돌.

    아니, 그건 검기가 아닌 검강, 오러블레이드였다.

    오러블레이드의 충돌에 땅이 파이고, 정원수와 별실에 큰 구멍을 만들었다.

    하지만 내 눈을 어지럽게 하는 것은 오러블레이드만이 아니었다.

    7서클에 준하는 수준으로 증폭된 6서클 마법들이 폭죽처럼 하늘로 날아올랐는데, 마법의 수가 상당하다.

    다행히 내부에 있던 시녀들은 모두 도망쳐 나온 상태라 인명피해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위험한 상황 연출에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뭔 난리인지···.”

    나는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는 시녀들에게 7서클의 와이드 배리어를 사용하고는 고도를 낮췄다.

    “그만! 그만들 하세요!”

    내 외침에 신나서 난동을 부리던 검사와 마법사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장소를 가려가며 힘을 확인하셔야죠. 제 집무실을 날려 버릴 생각입니까?”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내가 이 살벌한 사람들에게 훈계하는 게 모양새가 이상했지만, 누구도 내 말을 가벼이 여기지 못했다.

    그리고 면목 없다는 표정을 짓는 이들을 살피던 나는 복잡한 기분으로 말했다.

    “애석하게 일곱분은 벽을 넘지 못했군요.”

    카이트 용병단의 단장 제논과 리치가 되려던 헤르만, 미친개라 불리며 전장을 떠돌던 자유기사 콘스탄틴, 골렘의 장인이라 불리며 전투 골렘 개발에 열을 올리던 은퇴 마법사 엠브리오를 포함해 내가 영입을 시도한 15명 중 8명이 벽을 넘었고, 7명은 벽을 넘지 못했다.

    내 말에 벽을 넘지 못한 검사와 마법사들은 크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르비스 후작 각하 덕분에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머지않아 벽을 깰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나는 자신감에 찬 7명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마음가짐이다.

    그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이어서 그들 모두가 내 앞에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20대 후반 정도로 젊어진 얼굴의 제논이 진지하게 고개를 숙이고, 완전히 꽃중년이 된 헤르만이 크게 외쳤다.

    “아르비스 후작 각하를 제 평생의 주군으로 모시겠습니다!”

    15명.

    숫자로 치면 얼마 되지 않지만 그들의 능력을 생각하면 황제라도 된 기분이다.

    당연히 벽을 넘은 8명은 계약상 평생을 내 수하로 살겠지만, 벽을 넘지 못한 7명을 포함해 자진해서 충성 맹세를 하니, 기쁨이 배가 되었다.

    “이 순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일어들 나세요.”

    내 지시에 그들은 늠름하게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들 한명 한명과 눈을 마주치며 악수를 나눴다.

    “아, 그런데 저 엄청 비밀 많은 사람이라서, 확실하게 ‘마나의 언약’과 ‘피의 족쇄’로 다시 계약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죠?”

    엄숙한 분위기를 깨뜨리는 가벼운 말투.

    원래대로라면 3년만 내 옆에서 구르다가 풀려날 운명이던 벽을 넘지 못한 인물들이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더 없이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소드마스터 5명과, 대마법사 3명, 최상급 익스퍼트 2명과 6클래스 마법사 5명.

    그렇게 총 15명은 나와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완전한 수하가 되었다.

    당장 이 사실이 왕실에 알려지면 국왕이 겁에 질릴 수밖에 없는 수준의 전력으로, 누구와 맞서더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정도면 가족들을 성으로 데려와도 안전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일단 자리를 옮기죠.”

    “네!”

    가볍게 리페어 마법으로 이들이 부순 건물을 복원한 나는 그들과 함께 별관으로 들어갔고, 구석에 몸을 움츠리고 있던 시녀들을 다독여 차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보조 마법 장비

    압출 배리어 브레슬릿 1개 (5단계 압축 배리어 기능)

    -방어구

    합금 경갑옷 세트 3개 (비늘 갑옷, 인조 미스릴)

    합금 중갑옷 세트 5개 (판금 갑옷, 인조 미스릴)

    미스릴 중갑옷 세트 1개 (판금 갑옷, 미스릴)

    -공격 무기

    합금 숏소드 10 (인조 미스릴)

    합금 롱소드 6 (인조 미스릴)

    합금 바스타드소드 2 (인조 미스릴)

    미스릴 롱소드 1 (미스릴)

    -공격 마법 장비

    매직 스펠 브래슬릿 3개 (마법효율 99%, 마력소모 감소 35%)

    아공간 목록을 살피던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이걸 얻었던 이유가 이때를 위한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분배를 할지 고민된다.

    “지금 제게 미스릴 롱소드와 미스릴 중장 갑옷이 있는데, 누가 사용하는 게 나을까요?”

    뜬금없는 내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기사들은 서로 눈싸움을 하더니, 결국 제논이 손을 들었다.

    아무래도 비슷한 시기에 벽을 넘었어도, 약간의 차이는 존재하는 모양이다.

    “제논 경, 중장갑옷 쓰세요?”

    용병이 중장갑옷을 쓴다는 것이 의외였다.

    “네, 저희 카이트 용병단 전투방식은 기사단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걸 제논경에게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나는 아공간에서 은색 케이스에 든 ‘미스릴 중장 갑옷세트’와 ‘미스릴 롱소드’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아공간의 등장에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장비를 보며 감탄사를 흘리는 제논에 의해 묻혔다.

    “오오! 세상에 이런 명검과 명갑이 있다니! 평생 보물로 여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군!”

    기사들은 제논의 장비를 보며 모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는데, 나는 피식 웃으며 나머지 합금 갑옷과 합금 무기를 꺼냈다.

    “다른 분들은 이걸 사용하시면 될 겁니다. 제논경의 장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물건이니 실망하지 마세요.”

    소재만 미스릴과 인조 미스릴의 차이일 뿐, 겉모습과 성능은 거의 차이가 없는 장비들이다.

    그에 나머지 기사들은 언제 부러운 표정을 지었냐는 듯 감탄사를 터뜨리며 바로 무장을 갖췄다.

    미스릴 광산을 소유하고 있는 만큼 얼마든지 미스릴제 무기를 선물 할 수 있으나, 장비는 원재료만큼 중요한 것이 ‘어떻게 담금질을 하냐’의 차이도 굉장히 크다.

    아마 내 광산에서 채굴한 미스릴로 장비를 만들더라도 마도시대의 인조 미스릴 갑옷보다 뛰어난 것은 만들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주군!”

    온전한 마도시대의 장비는 제국의 황제도 쉬이 가질 수 없는 물건.

    그들이 감격하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눈을 반짝이는 마법사들에겐 살짝 미안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일단 대 마법사가 된 세 분에겐 이걸 드리겠습니다.”

    매직 스펠 브래슬릿를 받아든 그들은 하나같이 의문을 표했으나, 내 설명에 눈을 부릅뜨며 기사들처럼 얼른 자신에 팔에 채웠다.

    “매직스태프 같은 겁니다. 마법효율이 99%, 마력소모 감소율이 35%에 달하는 물건이죠.”

    그리고 얼른 간단한 마법을 운용한 그들은 하나같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럼에도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려야 했는데, 나머지 대마법사가 되지 못한 마법사들에게 줄 만한 장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분들껜 빠른 시일 내로 좋은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혀 개의치 않는 그들의 모습에 오히려 더 미안한 감정이 든다.

    그래도 내게 충성 맹세를 한 사람인데, 증표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신 이것을 드리죠.”

    마법사에게 가장 큰 선물은 장비가 아니다.

    “마도서입니까?”

    “네, 마도시대에 만들어진 마도서의 사본입니다.”

    씨익 웃으며 마도서를 한 권씩 나눠주자, 그들은 하나같이 헛바람을 삼키며 내용을 확인했다.

    “그 마도서는 여러분이 죽으면 불타 없어질 겁니다. 마도시대의 마도서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이니, 이해해 주세요.”

    내 조치에 불만을 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 이 중에 7클래스 마법서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터.

    그런데 그들이 받아든 마도시대 마도서는 1~7단계의 마법이 기록되어 있는 통합본으로 그 가치가 어마어마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연구용 외에 마도서의 사본제작은 금지시키겠습니다.”

    마나의 언약으로 엮인 이들에게 나의 지시는 절대 명령권이나 다름없으니 이걸로 유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마법사들은 하나같이 내가 준 마법서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다 큰 어른들의 우는 모습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범상치 않은 선물 증정식이 끝나자, 나를 바라보는 15인의 눈빛엔 긍정적인 감정으로 가득했다.

    특히 마법사들이 내게 보내는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보는 것 같아서.

    *

    남부럽지 않게 성공해서 멋진 외제차 끌고 부모님께 찾아가, 동네 주민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인사드리는 상황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그 장면을 한 번 연출해 보기로 했다.

    유치하지만 제대로 보여주기식으로.

    텔레포트 마법의 이펙트가 사라지고 내 눈앞에 익숙한 농촌 마을의 모습이 보였다.

    “이곳입니까?”

    “네, 맞아요.”

    타일러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옆자리 운전기사를 향해 출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에 함께 텔레포트로 이동해온 마력자동차 두 대가 느긋하게 발티스 영지의 노라 마을로 향했다.

    푸릇푸릇한 밀이 바람에 흔들리고 후각을 공격하는 분뇨 냄새가 추억을 자극한다.

    앞차엔 제논이 평기사 두 명과 함께 앉아있고, 뒤차엔 나와 헤르만, 타일러가 앉아있다.

    나는 놀란 표정을 짓는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그에 주민들은 하나같이 기겁하며 움찔거리고 우리가 탄 마력자동차는 얼마 안 가 익숙한 작은 목제 주택 앞에 멈춰섰다.

    “정말, 주군께서 이 마을에서 자라신 겁니까?”

    제논이 믿기지 않는단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 출세했죠.”

    출세에도 정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표정.

    나는 타일러를 무시하고 기분 좋게 현관문을 열었다.

    “어머니, 아버지, 에리스.”

    원래라면 호칭은 엄마, 아빠에 반말이지만, 부하들이 지켜보는 앞이라 존대를 했다.

    “루이 왔니? 오늘은 왜 대문으로···. 어, 어머나!”

    “무슨 일인데?”

    방에 계시던 부모님은 현관 쪽으로 다가오셨는데, 내 뒤에 위치한 기사들 때문에 기겁하셨다.

    “기사님께서 어찌.”

    내가 귀족이 되었다는 말을 한 적이 없기에 부모님은 당연히 영문을 모를 수밖에 없었고, 평민에게 기사란 공포에 대상이다 보니 긴장하는 것이 당연했다.

    “너, 혹시 무슨 잘못 저질렀니?”

    “오빠!”

    그러거나 말거나 철없는 에리스는 바로 내게 달려와서 안겼다.

    나는 잔뜩 굳어 있는 부모님의 모습에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 귀족 될 거라 했잖아요. 정말 귀족 됐어요. 영지도 받고요. 이젠 두 분도 귀족입니다.”

    “뭐?”

    부모님은 얘가 뭘 잘못 먹었냐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고 에리스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귀족이 뭐냐고 물어왔다.

    “넓은 집에 살고, 예쁜 옷 입고, 맛있은 음식만 먹고 사는 사람이 귀족이야.”

    “와아, 진짜?”

    “저희 새집으로 같이 가요.”

    두 분은 멍한 표정으로 얼떨결에 내가 내민 손을 잡았다.

    내가 위를 추구하게 된 것은 개인의 욕심도 있지만, 분명 가족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앞으로 내 가족들은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살게 해 줄 생각이다.

    “음, 다들 숨어버렸네?”

    내 혼잣말에 타일러가 헛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농부 입장에선 놀라는 게 당연합니다.”

    마을 주민들의 부러움 가득한 시선 속에 부모님을 모시는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지만, 다들 집 안에 숨어 버려서 마을 밖은 휑했다.

    *

    부모님을 발테스 영지 영주성에 모신지 일주일째.

    달라진 생활 방식과 환경이 익숙하지 않은 부모님은 아직 굳은 모습을 보였지만, 어린 에리스는 영주성을 여기저기 활보하며 뛰어다녔다.

    덕분에 시녀들은 식은땀을 흘렸지만, ‘아가씨! 아가씨!’란 외침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것을 보니 이제야 영주성이 사람 사는 곳 같았다.

    “주군.”

    “무슨 일이세요?”

    모종의 작전을 위해 칼바도스 제국 남부의 지도를 유심히 살피던 나는 우르르 집무실로 들어오는 마스터와 대마법사들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일행을 대표해 헤르만이 내 앞에 나가와 무릎을 꿇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번에 왕성으로 가서 저희를 위한 작위와 영지를 청하실 거라 들었습니다.”

    그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애초에 그들에게 능력에 맞는 작위와 영지를 약속했다.

    그러니 국왕에게 이들의 존재를 오픈하고 작위와 영지를 받아 줄 생각이었다.

    소란은 일겠지만, 이 정도 세력이면 설사 국왕이라 해도 우리를 해하지는 못할 터.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제가 줄 수 있는 거라곤 단승작위 남작뿐입니다. 여러분의 능력에 맞는 영지와 작위는 국왕 폐하만이 줄 수 있죠.”

    내 대답에 헤르만이 고개를 들었다.

    “대외적으로 존재를 알리는 것은 소드마스터인 제논 경,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는 그저 최상급 익스퍼트 기사와 6클래스 마법사로 존재를 감추시지요.”

    “네?”

    “굳이 저희의 전력을 한 번에 밝혀 주변을 자극하는 것보단 어느 정도 힘을 감추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나는 놀란 표정으로 제논을 제외한 7명을 바라보았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굳이 제 눈치를 봐서 하는 말이면 그럴 필요 없습니다. 누구도 저희에게 허튼 짓을 못할 테니까요.”

    나라고 그걸 몰라서 이런 선택을 하겠는가?

    당연히 힘을 숨기면 좋지만, 괜히 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낮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입니다. 이미 모두와 이야기가 된 상태입니다.”

    나는 미안하단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부하지만 내 사정을 위해 그들이 희생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주군께선 분명 마드세인 같이 작은 나라에 얽매일 분이 아니니까요. 나중에 더 큰 것을 받기 위해 잠시 몸을 움츠리는 거라 생각해 주십시오.”

    헤르만이 이렇게 말을 잘하는 사람이던가?

    나는 낮은 웃음을 흘렸다.

    “정말 여러분을 영입하길 잘한 것 같습니다.”

    “저희야말로 주군께서 찾아와 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다들 벽을 넘어 으스댈 법도 하지만, 내 입장을 헤아려 주는 모습을 보니 적잖이 감동을 받았다.

    이게 참된 주군과 신하의 관계인 걸까?

    나는 굉장히 인복이 많은 것 같다.

    *

    빈집털이 (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