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21화 (2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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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이 싱긋 웃으며 강철 손의 힘을 풀자 제논은 그나마 멀쩡한 오른손으로 검을 집고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검은색의 땅이 물가에 인 파문처럼 일렁이며 거대한 강철 손을 삼켰다.

    난생처음 보는 기이한 현상에 제논은 청년을 향해 물었다.

    “도대체 뭐하는 녀석이냐.”

    “음··· 정체를 밝혔는데, 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당신은 죽습니다. 그걸 원하세요?”

    허공에 바람의 의자를 만들어 앉은 청년의 태연한 대답에 제논은 말을 잃어야 했다.

    하지만 그가 적대적인 인물이 아니란 것 정돈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청년이 자신을 죽이기로 마음먹으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으니.

    “일단 치료부터 해드리죠. 리커버리.”

    그리고 발동된 대마법에 제논의 몸이 순식간에 치료되었다.

    “어?”

    놀란 눈으로 몸을 일으킨 그는 상대가 대마법사란 사실을 알아채며 헛웃음을 흘렸다.

    “하긴 대마법사 정도는 되어야 나를 쓰러뜨릴 수 있지.”

    “이제 좀 대화할 분위기가 된 것 같네요.”

    “모습을 숨긴 대마법사라. 수상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이야기라도 한번 들어 보지.”

    대마법사면 작위가 없어도 대귀족과 동급으로 취급되는 존재다.

    그럼에도 상대에게 여전히 반말을 고집하는 제논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인 청년이 말했다.

    “벽의 끝이 보이는데 도무지 넘을 수가 없고, 소드마스터의 경지가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좀처럼 손에 닿지 않는 상황. 맞으시죠?”

    “뭐, 그렇지.”

    제논은 순순히 인정했다.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내용이니.

    “그 상태로 얼마나 되셨습니까?”

    “한 5년 정도 되었네. 계기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전쟁터를 전전하며, 정신수양에도 힘을 쏟고 있지만 좀처럼 나아가질 못하고 있지. 익스퍼트 최상급까진 빠르게 도달했으나, 마스터의 경지는 좀처럼 잡힐 생각을 안 하더군.”

    10년 전에 최상급 익스퍼트가 되고 5년 전부터 마스터의 경지를 시야에 담고 있는 제논이었다.

    제논의 솔직한 대답에 청년은 자신의 목적을 꺼냈다.

    “그 벽을 넘을 수 있는 계기를 제가 드리겠습니다.”

    “뭐?”

    “아마 제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높은 확률로 지금의 벽을 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말을 잃은 제논은 청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마나의 언약이라도 할까요?”

    마나의 언약을 들먹이는 대마법사의 모습에 실소를 흘린 제논은 이내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래서 내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원하는 대가가 뭐지?”

    “충성맹세입니다. 그냥 말뿐인 충성맹세가 아닌, 마법적 장치가 포함된 충성맹세요.”

    “리스크가 너무 크군.”

    “소드마스터 경지에 대한 욕망이 생각보다 안 강한가 봅니다?”

    제논은 입을 꾹 닫고 청년을 훑어보았다.

    “충성 맹세한다고 이상한 일 안 시키니 걱정 마세요. 작위랑 영지도 받아다 드릴게요. 저는 제 안전을 위해 든든한 세력을 만들고 싶은 것뿐입니다. 그래서 이런 귀찮은 짓을 하는 거죠.”

    “그래놓고 소드마스터가 되지 못하면?”

    “솔직히 그건 제논님의 자질 부족이지 제 탓은 아니거든요? 뭐, 그런 일이 벌어지면 3년만 제 곁에 있어 주세요. 그 뒤엔 쿨하게 놓아 드리겠습니다.”

    자질 이야기에 제논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계기 제공이라는 건 확실한 거겠지?”

    “물론입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을 경우엔 그냥 놓아 드리겠습니다. 물론 저도 마나의 언약으로 위에 내용들을 약속하죠.”

    이내 혀를 찬 제논은 지금까지 뽑혀 있던 검을 검집에 수습하곤 바닥에 털썩 앉았다.

    “본래 모습을 보이시죠.”

    갑자기 존댓말을 하는 제논의 태도에 청년이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씀은?”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지금이라면 악마와 계약하는 마법사들의 심정을 알 것 같은데요.”

    상큼한 웃음을 흘린 청년은 마법을 풀었고, 어린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에 제논은 황당하단 표정을 짓다가 너털한 웃음을 터뜨렸다.

    “어째 방금 모습이 더 진짜 같고, 이게 가짜 같군요.”

    소년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습니다. 루이스 로이드 아르비스 후작입니다. 모습을 감춘 이유는 제논 경이 제안을 거절하는 것에 대비하기 위함이었으니 이해해 주시길.”

    *

    미드랜드 중서부의 위스워드 제국은 마법사의 국가라 불리며 대륙에서 가장 발달 된 마도공학 기술을 보유한 국가이다.

    “탈리아 그 모지리 년도 벽을 넘었는데, 내가 못 넘을 리 없어.”

    현재 위스워드 제국은 대륙 유일의 8클래스 마법사를 포함해 무려 10명에 달하는 대마법사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마법사들에게 친화적인 나라의 환경도 한몫하지만, 유망한 마법사에게 전폭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는 마법성의 존재가 크게 작용했다.

    “젠장 마나석이 다 떨어졌어! 빌어먹을 이제 돈도 얼마 없는데.”

    하지만 마법성이란 곳도 어디까지나 마법사의 가망성을 놓고 투자를 하는 국가 기관이었지, 자선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었다.

    한 서클에 정체된 지 20년이 넘은 마법사라면 설령 6클래스라 하더라도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투자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6클래스의 마법사 헤르만은 남작위와 함께 마법학교 교수직을 제안한 마법성의 제안을 거절하고 조용한 숲속에서의 은거 생활을 선택했다.

    처음엔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많아, 안락한 수련 및 연구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마법사의 연구와 수련에 한두 푼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히 자금은 마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마나석이 떨어져 진행 중이던 연구가 중지되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쓰러지듯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6클래스의 마법사라면 어디를 가더라도 대우를 받는 위치였으나, 그는 7클래스라는 경지 외에 다른 것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대마법사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은거를 선택했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7클래스의 경지는 그의 속을 태워 새까만 숯으로 만든 지 오래.

    한때 그가 사모했던 여인이자, 라이벌이던 여성도 대마법사가 되어 자신만의 마탑을 세웠는데, 자신은 이게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점차 커지는 자괴감은 절망감이 되어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마나석이라면 남는 게 많은데, 좀 드릴까요?”

    “으아악!”

    그의 나이 50평생 이렇게 놀랐던 적이 있을까?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기겁한 헤르만은 의자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덕분에 허리를 다친 그는 바닥에 쓰러져 낑낑댔고, 얼떨결에 그를 놀래킨 새하얀 복장의 청년은 당황한 표정으로 마법을 영창 했다.

    “자, 잠시만요. 리커버리.”

    청년은 바닥을 뒹구는 노인에게 7클래스의 대마법을 사용했고, 순식간에 허리가 나은 헤르만은 두 눈을 껌뻑이며 낯선 인물을 올려 보았다.

    “귀인은 뉘십니까?”

    헤르만의 물음에 ‘이미지 체인지’로 겉모습을 바꾼 루이스가 그를 잡아 일으켜주며 답했다.

    “저는 타국에 소속되어 있는 7클래스의 마법사입니다. 제가 헤르만님을 찾아온 이유는 영입제안을 하기 위해서죠.”

    상대가 진짜 모습을 감춘 이유를 납득한 헤르만은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용케 찾았군요. 하지만 저는 대마법사께서 직접 움직일 만큼 대단한 마법사가 아닙니다.”

    6클래스 끝자락에 있는 마법사는 분명 대단한 존재지만, 결국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6클래스의 마법사 중 한 명일 뿐이다.

    루이스는 자신의 가치를 낮추는 헤르만의 모습에 싱긋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7클래스의 대마법사는 굉장히 귀하죠.”

    “그게 무슨 뜻이십니까?”

    “저는 헤르만님에게 7서클을 달성하기 위한 계기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헤르만은 눈이 번쩍 뜨이는 말에 루이스를 덮칠 듯이 일어나 그의 어깨를 낚아챘다.

    “그, 그게 무엇입니까?”

    간절함이 가득한 그의 물음에 루이스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아주 간단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헤르만 님께서 벽을 넘으신다면 제게 마나의 언약으로 충성맹세를 해주셔야 합니다. 대신 저 또한 헤르만 님께 이상한 일을 시키는 게 아니라는 걸 마나의 언약으로 보장하죠.”

    “7클래스가 될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안 그래도 리치가 될 계획까지 세우고 있던 참인데요.”

    아무렇지 않게 엄청난 말을 내뱉는 헤르만을 보며 루이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전생에 리치가 되어 위스워드 제국을 공포에 떨게 한 인물이란 것을 떠올리면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저를 따라오세요.”

    제논과 헤르만의 반응은 굉장히 상반되었지만, 그들이 내린 결론은 결국 같았다.

    바로 루이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을 시작으로 미드랜드 곳곳에서 7클래스를 목전에 둔 마법사와 마스터를 목전에 둔 검사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

    8. 빈집털이

    “현재 다리우스 시의 미스릴 생산량은 하루평균 15kg이며, 원석의 채굴 양이 지난주 대비 2배 증가했습니다. ”

    “15kg가 금화로 치면 3만골드인가요?”

    “네, 그 정도 됩니다.”

    마드세인 행정 아카데미에서 데려온 타일러의 보고에 나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루 3만 골드의 수입이면 1년에 천만 골드가 넘는 막대한 금액이다.

    “돈 벌기 쉽네요.”

    내 반응에 그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더니, 보고를 이어갔다.

    아무래도 타일러는 미스릴이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 록스터시의 철광, 제일 가치가 낮은 게 발테르의 토르말린이라 생각했는지, 토르말린 채광현황을 가장 나중에 설명했다.

    “토르말린 광산의 채굴량을 더 늘릴 순 없나요?”

    “네? 광산을 확장한 지 얼마 안 됐는데요?”

    “채굴량을 늘릴 수 있으면 최대한 늘려 주세요. 그리고 주변에 토르말린 광맥이 또 있는지 찾아보시고요.”

    “그렇게 지시하겠습니다.”

    현재 토르말린의 가치를 생각하면 이런 확장은 적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토르말린의 몸값은 앞으로 3~4년 후에 기하급수적으로 뛰게 된다.

    상단을 통해서도 타국과 타 영지에서 무한정 토르말린을 사들이고 있는데, 뜻을 모르는 입장에선 내 행동에 의문을 표하는 것이 당연했다.

    어차피 고 다리우스 백작 덕분에 자금은 여유가 있는지라, 나는 팍팍 일을 벌였다.

    고맙습니다. 다리우스 백작님.

    이번엔 행정 아카데미의 수석이었던 달튼이 타일러에게 바톤을 건네받아 자신이 담당하는 업무에 대한 보고를 시작했다.

    “발테르시의 영주성과 마탑, 록스터시의 제철소는 기초 공사에 들어갔습니다. 자재 수급이 원활하고 인부들의 의욕이 대단해 작업속도가 굉장히 빠릅니다. 제철소는 약 3개월, 영주성과 마탑은 9개월 정도면 완공될 것으로 보입니다.”

    “작업 간에 관리자들이 영주민들을 학대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임금도 중간에 누군가가 가로채는 일 없이 영지민들에게 온전히 전달되도록 신경 써주세요.”

    “알겠습니다.”

    역시 이 세계에선 보기 드문 고학력의 인재들이라는 건가.

    일 처리들이 깔끔하다.

    달튼에게서 시선을 돌린 나는 임관 한지 한 달 가까이 되었음에도 영주를 어려워하는 랜든에게 물었다.

    “랜든 경, 새로운 행정 체계 때문에 발생한 문제는 없나요?”

    “네, 네!”

    나는 기존의 영지 운영방식을 바꿔 시청 밑에 구청을 두고, 촌장 제도를 폐지하여 동사무소처럼 마을 관리관을 파견하는 형태로 행정제도를 바꿨다.

    아직 인원 부족으로 모든 마을에 적용된 것은 아니지만, 인력이 확충되고 시간이 지나면 내가 제안한 방식이 완전히 정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을 도입한 이유는 당연히 내가 할 일을 줄이기 위함이다.

    “처음엔 낯선 체제에 곤란을 겪었으나, 한 달 정도가 지난 지금은 많이들 익숙해진 모양새입니다. 행정관들 모두 굉장히 합리적인 행정방식이라며 영주님의 통찰력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입에 발린 말은 할 필요 없다니까요?”

    나는 입에 발린 말을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닌지라 이런 말은 오히려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든다.

    “아뇨! 정말입니다!”

    “랜든 행정관의 말이 맞습니다. 저도 굉장히 선진적이고 체계적인 행정방식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영주님 같이 행정관을 잘 활용하는 주군을 만나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다른 두 사람도 랜든의 말을 지지하고 나섰다.

    나는 알겠으니 그만하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행정관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집무실 밖에서 집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여왔다.

    똑! 똑!

    “여, 영주님! 네이슨 집사입니다.”

    갑자기 그가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린 나는 그의 입실을 허락했다.

    “무슨 일이에요?”

    다리우스 백작의 집사였던 그는 남작의 작위까지 갖고 있는 배테랑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별관에 묵고 계시던 손님들이 깨어났습니다.”

    “오, 그래요?”

    별관에 묵고 있는 사람들이라 하면, 제논과 헤르만을 포함해 내 측근이 될 15명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 그런데. 몇 분이 다짜고짜 난동을 피우셔서···.”

    “엥?”

    나는 그게 무슨 일인가 싶어, 바로 창문 밖을 바라보며 블링크를 사용했다.

    그리고 별관으로 날아가니, 경시할 수 없는 막대한 기운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빈집털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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