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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20화 (20/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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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족들을 위한 자리는 굳이 고개를 안 돌리고 눈동자만 굴려도 볼 수 있는 위치였다.

    덕분에 대부분의 졸업생들이 그 장면을 목격했고, 여기저기서 헛바람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드세인 행정 아카데미가 유서 깊은 학교이긴 하지만, 엄연히 이곳은 평민들이 주를 이루는 학교다.

    때문에 귀족들이 오긴 해도 대부분 일선에서 뛰는 남작과 자작 정도지, 백작위 이상의 대귀족이 참석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 요즘 왕국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대마법사 아르비스 후작이 몸소 참석하니, 졸업생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상대는 감히 눈을 마주쳐서도 안 되는 하늘 위의 인물이었다.

    “저, 저 애가 아르비스 후작이라고?”

    입은 떼지 않고 복화술로 랜든에게 말을 건 타일러는 친구가 반응이 없자 살짝 고개를 돌렸다.

    주룩.

    눈가를 타고 흘러내리는 남자의 눈물.

    랜든이 절망 어린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자 타일러는 당황하고 말았다.

    “망했어.”

    왕국에 4번째 공작이 탄생한다면 그건 아르비스 후작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런 인물 앞에서 말실수를 했으니, 울고 싶은 게 당연했다.

    “미, 미안.”

    엄연히 따지면 말실수를 한 건 자신이고 친구는 말렸을 뿐이지만, 지금 총대를 쥐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아르비스 후작이었다.

    타일러는 다시 눈을 굴려 귀족들에게 둘러쌓인 아르비스 후작을 바라봤다.

    “아, 혹시 밖에서 기다렸어요?”

    아르비스 후작의 태연한 물음에 마드세인 행정학교 교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답했다.

    “아무래도 먼저 후작 각하를 맞이하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으로···.”

    “이런, 신경을 못 썼군요. 아직 혼자 다니는 게 편해서요.”

    “그러시군요. 아, 후작 각하. 말씀 편하게 하시지요. 귀족 서열은 저희가 한참 아래입니다.”

    교장이 저렇게 비굴한 인물이었나?

    저러다 지문이 없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열심히 손을 비비는 그를 보며 학생들은 하나같이 못 볼 것 봤다며 미간을 좁혔다.

    학교 내에서 왕처럼 행동하던 그의 악행은 굉장히 유명했다.

    덕분에 생긴 게 쥐를 닮아 학생 사이에서 ‘쥐굴의 왕’이라 불리는 교장이었다.

    “굳이 여러분을 존중하기 위해 경어를 쓰는 게 아닙니다. 그냥 제가 편해서 쓰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 그러시군요. 제가 주제넘은 짓을 했습니다.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분명 자신들을 상대할 때처럼 또박또박 경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왜일까?

    오히려 상대방을 위축시키는 분위기가 풍긴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아이인데 외모와 행동, 권력이 매치가 안 돼서인지 굉장히 기이해 보였다.

    “행사 언제 시작합니까?”

    아르비스 후작의 물음에 교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교장은 단상 아래 위치한 교수에게 손짓을 했고, 고개를 끄덕인 그는 얼른 마이크 역할을 하는 수신 아티펙트를 집어 들었다.

    [지금부터 제327회 마드세인 행정 아카데미 졸업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귀빈 여러분께선 자리에 착석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아르비스 후작의 한마디에 졸업식은 예정보다 15분 빨리 시작되었다.

    귀빈은 귀족들을 가리키는 말, 어차피 아카데미 졸업식엔 일반 학부모가 참석을 못 하는지라 귀빈이라곤 귀족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 어떻게 되는 걸까?”

    울음을 그친 랜든이 복화술로 물어오자 타일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 나쁜 사람 같진 않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귀족들한텐 엄청 까칠한데?”

    “······.”

    도무지 성향이 파악되지 않는 아르비스 후작의 모습에 두 사람은 졸업식이 진행되는 동안 제발 그가 자비로운 인물이기를 속으로 기도했다.

    어느덧 성적 우수자에 대한 표창이 끝이 났고, 다음으로 졸업장 전달식이 진행되었다.

    졸업장은 성적순으로 전달되는데, 이때 귀족들이 교장을 포함한 교수들의 설명을 참고하며 영입할 인원을 고른다.

    [랜든, 타일러, 제라드 단상위로.]

    그리고 랜든과 타일러가 단상에 오르자 조용히 앉아있던 아르비스 후작이 교장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는 모습이 보였다.

    “망했다.”

    뭔지는 몰라도 좋은 의도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자연히 들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두 사람은 굳은 표정으로 졸업장을 받았다.

    졸업 인원이 인원이다 보니 한참이 지나서야 졸업장 전달식이 끝나고, 드디어 메인 이벤트의 차례가 되었다.

    [그럼 지금부터 행정관 영입식을 시작하겠습니다.]

    행정관 영입식은 귀족들이 한 명씩 지명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룰을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있었다.

    “각하, 먼저 선택을 하시지요. 저희는 각하께서 선택하지 않은 학생들 중에 고르겠습니다.”

    귀족들이 웃으며 선택권을 넘기자, 아르비스 후작은 거절하지 않고 진행 교수가 무릎을 꿇으며 건네는 수신기를 받아 들었다.

    [달튼, 바이론, 크리스, 타일러, 랜든이 다섯 사람을 영입하고자 합니다.]

    “어?”

    아르비스 후작의 선택에 귀족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고, 타일러와 랜든은 멍청한 표정으로 눈을 껌뻑거렸다.

    *

    지목된 다섯 명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고개를 숙였다.

    이걸로 그들은 내 사람이 되었다.

    굳어있는 랜든과 타일러를 빼면 나머지는 모두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는데, 다행히 내 선택을 기뻐하는 모양새다.

    하긴 왕실 행정부에 들어가 사무실에서 행정 업무만 보느니, 대귀족의 영지에서 목에 힘주며 다니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더구나 나는 신생 귀족인지라 빠르게 출세할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었다.

    “각하, 정말 그 다섯으로 되겠습니까? 수석인 달튼을 빼면 성적이 모두 10위권 밖의 학생인데요.”

    마드세인 행정 아카데미의 교장, 프레드릭 남작은 내게 쥐상의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네, 저들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교장은 내 선택을 이해 못 하는 눈치였지만, 내가 자신들을 생각해서 행정관을 지목했다고 생각했는지, 귀족들은 모두 고맙다고 고개를 숙여왔다.

    나는 아까 마주쳤던 랜든과 타일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혹시 내가 해코지를 할 거라 생각했던 걸까?

    내 시선을 느낀 두 사람은 당황하며 허리를 펴고 정면을 응시했다.

    솔직히 수석인 달튼은 잘 모르겠는데, 랜든과 타일러는 바이론, 크리스와 함께 원래 내가 영입하려던 사람들이다.

    원래대로라면 네 사람은 왕실 행정부 소속이 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평화의 시대에 기관의 말단 행정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들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칼바도스와 전쟁이 터진 후 이름을 알린 전시 행정관들이었기 때문이다.

    장교는 군인을 관리하지만, 전시 행정관은 영지와 집을 잃은 피난민을 관리하는 존재들이다.

    잠자리는 물론 배를 채울 식량도 부족한 상황에서 수많은 피난민을 관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네 명은 마드세인에서 가장 큰 규모의 피난민 캠프를 효과적으로 관리했을 뿐만 아니라, 피난민들로 군대의 잡무를 대신 맡아서 처리하는 등, 군인들이 오로지 전투에만 집중 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현장 지휘관들과 병사들 사이에 해당 행정관들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고, 그래서 나도 이 네 명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식량이 부족해 피난민들과 직접 숲에 들어가 야생 곡물과 버섯을 채취하고 전분이 포함된 나무를 캐는 등 자력으로 음식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지렁이로 육포를 만들어 비상식량까지 마련한 것은 굉장히 유명한 일화였다.

    생존력도 생존력이지만, 신경이 곤두선 피난민들을 그토록 잘 관리하는 전시 행정관이

    또 있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분명 이들이라면 영지 관리도 잘하겠지.

    나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럼 더 이상 영입할 학생은 없으십니까?]

    나와 함께 자리한 귀족들이 차례로 데려갈 예비 행정관들을 선택하고, 이 과정에 약 100명 정도의 학생이 선택받았다.

    즉 900명의 학생은 4년간 열심히 했음에도 행정관이 되지 못한다는 소리.

    어두운 얼굴의 학생들을 보니, 대한민국의 취준생으로 취업에 실패한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어째서인지 상당수의 학생들이 내게 애원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는데, 영문을 모르는 나는 냉정하게 무시했다.

    [그럼 없는 것으로 알고 영입행사를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선택받지 못한 900명의 학생들은 절망했다.

    영입행사를 마지막으로 졸업식이 끝났는데도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영입제안을 받은 학생들은 선택받지 못한 동급생들의 눈치를 보며 단상으로 다가가 자신을 선택해준 귀족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고개 드세요.”

    나는 5명의 신입 행정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10분 주겠습니다. 남아 있는 학생 중 여러분이 부하로 쓸 하급 행정관을 5명씩 뽑아 데려오세요. 친분을 떠나 정말로 능력이 있다 싶은 학생들만 데려와야 할 겁니다.”

    생각지 못한 지시 때문일까?

    고개를 든 학생들은 멍청한 표정을 짓다가 그나마 눈치 빠른 타일러가 랜든을 끌고 가자 나머지 3명도 얼른 달려나갔다.

    영주로서 내가 일을 적게 하려면 행정관이 많아야 한다.

    그래서 이번에 대거 행정관을 뽑기로 마음먹었지만, 수석인 달튼과 전시 행정관으로 활약한 4명을 빼면 누구를 골라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행정관이란 존재를 첫인상만으로 고를 수도 없으니, 아예 내가 선택한 5명으로 하여금 추가 행정관을 뽑게 한 것이다.

    “상관없죠?”

    행정 아카데미 교장에게 묻자 그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올해는 후작 각하 덕분에 많은 학생들이 행정관이 되는군요. 모두 각하의 은혜를 잊지 못할 겁니다.”

    입에 발린 말만 하는 귀족을 상대하는 건 역시 귀찮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무안해하는 교장을 뒤로하고 가장 먼저 5명을 데리고 달려오는 타일러를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럼 타일러 경은 잠시 앉아서 쉬시고, 타일러 경에게 선택받은 다섯 분?”

    타일러의 뒤에 무릎을 꿇고 있던 5명은 내 호명에 얼른 고개를 들었다.

    “5분 주겠습니다. 가서 여러분의 부하가 될 하급 행정관을 3명씩 더 뽑아 오세요. 친분을 떠나 정말로 능력이 있다 싶은 학생들만 데려와야 할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놀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뜬 타일러를 향해 미소를 짓자, 그는 얼른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렇게 나는 그렇게 피라미드 방식으로 정규 행정관 5명과 하급 행정관 100명을 뽑았다.

    *

    마드세인 왕국 북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 카이트 용병단은 인원수가 30명에 불과하지만, 왕국 최고의 용병단이란 칭호를 갖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구성원 모두가 당장 기사 작위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실력자였기 때문이다.

    용병계에 흔치 않은 소수 정예 집단.

    대부분이 정규 마법사에 해당하는 초급 익스퍼트였고, 4서클 마법사와 비견되는 중급 익스퍼트의 검사도 3명이나 존재했다.

    무엇보다 이 카이트 용병단을 특별하게 만드는 존재가 바로 용병단장인 제논이란 인물이었는데, 그는 소드 마스터를 목전에 둔 최상급 익스퍼트의 검사였다.

    최상급 익스퍼트라면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남작의 작위를 받을 수 있는 수준.

    하지만 그는 오로지 소드마스터의 벽을 넘겠다는 일념으로 수련에만 몰두하며 국왕을 비롯한 많은 귀족들의 영입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만이 들려오는 한적한 숲속에 앉아있던 제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누구냐?”

    그의 물음에 홀로 빛이 나는 듯한 새하얀 청년이 어둠속에서 걸어 나왔고, 이내 그를 마주한 제논이 미간을 좁히며 검을 뽑아 들었다.

    “저는 당신을 도와주기 위해 온 사람입니다.”

    제논은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 청년의 모습에도 헛웃음을 흘리며 검 끝을 상대에게 겨눴다.

    “마법으로 모습을 감춰놓고 그런 소리를 하면 누가 믿겠나?”

    “흠, 어떻게 해야 믿어 주실까요? 마나의 언약이라도 할까요?”

    “필요 없다. 넌 지금 매우 중요한 내 수련을 방해했어.”

    “아, 그렇습니까? 죄송···.”

    까앙!

    제논은 청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짜고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견고한 배리어가 검을 튕겨내고, 순식간에 상대의 수준을 가늠한 제논은 재빨리 검을 수습하며 미완성된 오러블레이드를 휘둘렀다.

    몸 안의 오러가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듦과 동시에 푸른 빛을 머금은 검이 두터운 배리어를 찢어발긴다.

    “허!”

    당황한 청년을 보며 웃음을 터뜨린 제논은 그의 팔을 베기 위해 검을 뻗었으나.

    콰직!

    바닥을 뚫고 올라온 거대한 강철 손에 포박되고 말았다.

    “크윽.”

    사정없이 몸을 움켜쥔 강철 손으로 인해 제논은 어깨와 갈비뼈가 부러지고 말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청년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역시 미완성이라곤 해도 오러블레이드는 위험하군요. 큰 걸 배웠습니다.”

    “이게 무슨?”

    “그나마 살기가 없어서 이 정도로 끝난 거예요. 안 그럼 당신은 곤죽이 됐을 겁니다.”

    인재 영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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