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19화 (19/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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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이제 일해 볼까? V1, ‘안타레스’를 꺼내줘.”

    치익.

    내 지시에 격납고가 개방되더니 반파된 기간트가 스르르 올라와 텅 빈 유적의 메인홀을 가득 채웠다.

    오른팔과 얼굴이 뜯긴 거대 로봇에게 다가간 나는 손을 풀며 녀석을 훑어봤다.

    “안타레스 설계도.”

    [중장갑 지상 유닛 안타레스의 설계도를 검색합니다.]

    그리고 내 앞에 거대한 설계도면이 떠올랐다.

    의욕 가득한 표정으로 설계도를 찬찬히 바라보던 나는 얼마 못 가 인상을 찌푸리며 작게 신음을 토했다.

    부품의 명칭과 구조가 자세히 그려져 있으나 해당 부품의 원료와 공정과정, 작동 원리에 대한 설명이 하나도 적혀있지 않았다.

    “각 부품의 공정과정과 작동 원리를 알 수 없을까?”

    [원료 파악은 가능하나, 공정과정과 작동 원리는 기밀입니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더 복잡해질 것 같다.

    “해석하려면 상당히 오래 걸리겠는데.”

    그나마 부담 없이 뜯을 수 있는 녀석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온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그랜달’은 내게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전력인지라, 감히 뜯겠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그래, 어차피 시간은 여유 있어.”

    물론 위치가 위치인 만큼 한가하진 않지만, 7서클이 되고 신체가 재구성되면서 잠을 조금만 자도 피곤함을 못 느끼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일단 외장갑부터 제거하자. V1 부탁해.”

    [안타레스의 외장갑을 제거합니다.]

    그랜달이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밸런스 형이라면, 안타레스의 외형은 누가 봐도 탱커 라는 생각이 들 만큼 장갑이 두터웠다.

    덕분에 외장갑을 제거하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앙상한 뼈대를 드러낸 안타레스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우선은 심장부터.”

    내 말에 V1의 기계 팔이 안타레스의 코어 부분에 향했다.

    *

    대한민국에 살던 시절.

    나는 강남 소재의 백화점에서 주차장 안내 요원으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다.

    여름엔 냉방이 되지 않아 실내임에도 아지랑이가 필 정도로 더웠고, 겨울엔 중무장을 하지 않으면 가만히 서 있는 게 힘들 만큼 추운 곳이지만, 근무하면서 가장 나를 힘들게 한 건 환경이 아닌 바로 사람이었다.

    차가 밀리면 대뜸 반말 또는 욕설을 내뱉는 아저씨.

    주차요원을 필요할 때 부릴 수 있는 짐꾼 정도로 생각하는 아줌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수군대는 또래의 고객까지.

    대한민국이란 사회가 굉장히 비뚤어진 곳이란 것을 아르바이트를 통해 체험할 수 있었다.

    그뿐인가.

    강남 백화점에서 일하면 싫어도 빈부 격차라는 걸 느끼게 되는데, 주차장을 가득 채운 독일제 고급 차량을 보면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 뭐 하는 사람들이지?

    이 나라에 부자가 저렇게 많았나?

    내가 저걸 끌려면 얼마를 벌어야 하지?

    나는 열심히 일하고도 10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받을 뿐인데, 내 월급보다 많은 돈을 한 시간 쇼핑으로 소진하는 사람을 보면 어깨가 처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란 뜻이었으니.

    내가 죽지 않고 계속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나이를 먹었으면 어떻게 됐었을까?

    왠지 좋은 미래가 떠오르지 않았다.

    “······.”

    잠시 지구의 기억을 회상한 나는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쓴 웃음을 흘렸다.

    “이게 무슨 짓인지.”

    소도시 발테르.

    꽃과 붉은 카펫을 깔아 쓸데없이 화려한 도시의 메인도로.

    나는 느릿하게 달리는 오픈형 마력 자동차에 앉아 혀를 차야 했다.

    “모두들 후작 각하의 영주 취임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습니다.”

    내 반응이 좋지 않아서인지, 그동안 국왕의 명을 받아 발테르 영지를 관리해온 톰슨 남작이 열심히 손을 비비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신기하네요. 저는 영지민들의 표정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

    이게 나의 영주 취임을 축하하는 환영식이라는데, 소란스럽게 손을 흔들고 꽃잎을 뿌리면 모를까 모두 쥐죽은 듯 바닥에 바짝 엎드리고 있는지라 도시 전체에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어찌 평민이 각하 앞에 고개를 똑바로 들고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과연 저들은 얼굴도 바라보지 못하는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대한민국에 살면서 부자들을 보며 느꼈던 감정보다 더 짜증 나겠지?

    아니, 어쩌면 귀족이란 것 자체가 하늘 위의 존재처럼 느껴져 아무런 감정이 없을 수도 있겠다.

    평민은 평민다워야 한다고 어려서부터 숙지를 받았을 테니.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엎드린 영지민들을 바라보는 내 기분이 가히 좋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이기적이라,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개혁주의 정신은 없지만, 이런 광경을 당연하다 여길 만큼 낯짝이 두껍지 못했다.

    “됐고, 속도 높이세요.”

    내가 혀를 차며 말하자 톰슨 남작이 어깨를 움찔거리며 식은땀을 흘렸다.

    “아, 알겠습니다.”

    차량의 속도가 서서히 올라가고 길게 줄지어 엎드린 사람들의 모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반갑습니다. 아르비스 후작 각하, 저는 록스터 영지의 영주대리를 맡고 있던 밀포드 남작이라 합니다.”

    잠시 후 도착한 영주성은 그리 큰 규모의 영지가 아님에도 꽤나 호화로웠다.

    “네, 어서 오세요.”

    밀포트 남작을 비롯해 발테르 영지와 록스터 영지의 주요 관료들과 악수를 나눴다.

    아무래도 키 차이 때문에 모두들 나를 내려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의 표정엔 긴장감이 가득했다.

    “오늘 수도에 일정이 있어서, 회의를 빠르게 진행하겠습니다.”

    “네.”

    집무실로 이동하는 동안 자연히 내 뒤로 사람의 무리가 만들어졌는데, 이 중에 딱 잘라 내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앞으로 발테르와 록스터는 아르비스 후작령의 발테르 시와 록스터 시가 될 겁니다. 시장은 후임자가 정해질 때까지 임시영주인 두 분이 그대로 하시면 돼요.”

    이 부분에 대해선 이미 국왕과 이야기가 되어 있는지라 문제없었다.

    나는 3개의 영지를 모두 시로 만들어 시장을 임명할 생각인데, 조금이라도 내 업무량을 줄이기 위한 방책이었다.

    그래야 마도 병기를 개발하던가 마탑을 키우던가 할 것 아닌가.

    다만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선 유능한 인재들이 필요한데, 미래의 기억을 통해 전쟁 때 이름을 알린 유능한 행정관들을 대거 영입할 생각이다.

    “알겠습니다.”

    “시청은 기존의 영주성을 사용하기로 하고, 여기 발테르 시에 아르비스 영주성과 제 마탑을 건설할 생각이니 기술자 섭외 부탁드려요.”

    “발테르에 말씀이십니까?”

    풍요로운 다리우스를 두고 발테르를 영지의 중심으로 정하는 것이 의외였는지, 톰슨 남작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그러니까 제가 이리로 왔죠.”

    발테르를 주요 거점으로 정한 이유는 별 게 아니다.

    지리학적으로 폐쇄적이고, 다리우스보다 칼바도스 제국에 늦게 점령당하기 때문이다.

    덤으로 전략 물자가 될 토르말린의 생산지였으니,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 자원 수급이 더욱 원활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두 영지를 관통하는 마도 열차와 록스터에 대규모 제철소를 만들 생각인데···.”

    그 후로도 우리는 앞으로 진행할 큰 공사와 행정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약 1시간이 지나 두 사람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사고 가속’으로 수련을 했다는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뜬금없는 톰슨 남작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는 크게 손을 내저었다.

    “죄, 죄송합니다. 딱히 각하의 능력을 의심한 것이 아니라!”

    “그게 아니라, ‘사고 가속’이 무슨 말이에요?”

    내 물음에 그는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각하의 스승 되시는 분께서 은거 중인 8클래스의 대마법사이시고, ‘사고가속’ 마법으로 훈련을 받았다고 들었는데요. 덕분에 신체만 어릴 뿐이지 정신은 성인의 것이라고···.”

    체르닐 자작에게 내뱉었던 빈약한 설정이 아무래도 귀족들의 입을 타고 전해지면서 살이 붙은 모양이다.

    확실히 8서클 마법 중에 사고 가속 마법이란 것이 있다.

    효과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모르는 사람에겐 그럴싸하게 들릴 것 같다.

    더구나 그 말을 뒷받침해주는 게 내 정당함을 밝혀준 마나의 언약이 아니던가.

    “대충 맞아요. 한 사람에게만 밝힌 사실인데, 모르는 사람이 없네요?”

    내 반응에 그는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아무것도 안 해도 자기들끼리 나의 존재를 합리화해주니 얼마나 좋은가.

    *

    마드세인 행정 아카데미의 졸업식은 굉장히 성대하게 열린다.

    그 이유는 졸업식에 영입행사란 것이 있어서인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들을 행정부나 각 귀족 가에서 나눠서 데려가기 때문이다.

    4년 동안 피땀 흘려 공부한 결과가 마지막이 되어서야 나오는 것이 잔인하지만, 이 행사의 주인공은 평민으로 이뤄진 학생들이 아닌 영입을 하는 귀족들이다.

    그렇기에 아무도 학생들의 기분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덕분에 행정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졸업식 때마저 긴장감을 풀지 못했다.

    결국, 선택받은 것은 10명 중 한 명꼴.

    평민이 성공자의 반열에 오르냐, 못 오르냐가 유흥이나 다름없는 귀족들의 선택에 달려있었다.

    “타일러, 소문 들었어?”

    침묵 속에 긴장감이 감도는 행정 아카데미의 졸업식장.

    맨 앞줄에 앉아 태평하게 하품을 하던 타일러란 이름의 흑발 청년은 옆구리를 찔러오는 동급생 랜든의 행동에 의문을 표했다.

    “무슨 소문.”

    “왕국 4번째 후작에 대한 소문 말이야.”

    “아아, 새로운 대마법사 말이지?”

    대마법사의 탄생으로 마드세인 왕국은 한창 축제 분위기로 떠들썩한데 모를 리가 있겠는가.

    가뜩이나 칼바도스 제국의 위협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새로운 대마법사의 등장은 국민 모두가 기뻐할 희소식이었다.

    다만 외형이 12살의 소년이라느니, 스승이 8서클의 은거 기인이라는 소문이 돌아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뜬 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뚱한 표정의 타일러는 별 관심 없다는 듯이 다시 하품했다.

    “그 사람이 뭐 어쨌는데?”

    “이번에 국왕 폐하로부터 발테르 영지와 록스터 영지를 하사받았다고 하더라고, 지금 차지하고 있는 다리우스 백작령까지 더하면 공작령에 버금가는 크기인데, 아무래도 신생 가문이다 보니 행정관이 부족할 거 아냐. 그래서 이번 영입행사에서 행정관을 대거 영입할 거라는 소문이 있어.”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4년 동안 공부만 하느라 모두들 지쳤는데, 적어도 마지막 정돈 웃으며 끝내면 좋잖아.”

    “그건 그렇지.”

    “그나저나 귀족이 되자마자 영토가 공작급인가? 우리 국왕 폐하는 배포도 크시네.”

    “엄연히 따지면 조금 다르지, 왜냐면 다리우스 백작령은 그 후작님이 차지한 거니까.”

    타일러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래도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마드세인 왕국의 인구는 대략 1500만명 정도.

    그 중 귀족을 빼면 99.99%가 평민인데, 한 해에 행정관이 될 수 있는 인물은 겨우 100명 남짓이란 소리다.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갈 만한 성공 수치가 아닌가.

    “듣기로 그 후작님이 평민 출신이라고 하던데, 조금은 평민도 살 수 있을 만한···.”

    그리고 혀를 차며 한탄하던 타일러는 기겁을 하며 입을 틀어막는 랜든의 행동에 아차 싶었다.

    국왕의 치세에 의문을 표하는 것은 반역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둘은 식은 땀을 흘리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다행히 교수는 멀리 떨어져 있고 주변 동급생들은 모두 긴장한 상태라 두 사람을 신경 쓰지 못했다.

    “휴···.”

    “말조심 안 해? 나중에 너 감옥 가도, 나 면회 안 간다?”

    랜든의 엄포에 어색한 웃음을 흘린 타일러는 뺨을 두들기며 정신을 차렸다.

    “재밌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헉!”

    하지만 언제부터 있었는지, 새하얀 로브 차림의 소년이 히죽 웃으며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자 타일러와 랜든은 기겁했다.

    “어, 어디서 오셨습니까?”

    11~12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지만, 고생 한 번 안 한 것 같은 외모도 그렇고 복장의 퀄리티가 딱 봐도 귀족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뭘, 그렇게 긴장하세요? 저 막 떠벌리고 다니는 스타일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존댓말을 쓰는 것이 특이하지만, 화법을 보면 겉모습만 꾸민 멍청한 귀족가 도련님이 아니었다.

    새하얀 소년은 마른침을 삼키는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리곤 단상을 따라 귀족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로 이동했다.

    귀족들은 지각을 마치 미덕처럼 여기는 존재들인지라 자리엔 아무도 위치 해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마드세인 행정 아카데미의 교장을 비롯해 귀족들이 헐레벌떡 식장 안으로 들어오자, 졸업생들은 이등병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귀족이 땀 흘리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에도 누구도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당황한 타일러와 랜든도 애써 담담한 척 허리를 세웠지만, 교장과 귀족들이 홀로 자리에 앉아있는 새하얀 소년을 향해 급히 고개를 숙이자 눈이 찢어질 정도로 크게 부릅떠야 했다.

    “아르비스 후작 각하 오셨습니까.”

    인재 영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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