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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세인 왕국 4번째 후작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연회는 작위식이 끝나고 바로 이어졌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파티라니, 정말 귀족이란 존재는 한가한 것 같다.
뭐, 나도 이젠 그 귀족 중 한 명이지만 말이다.
과연 이 나라가 약소국이 맞나 싶을 만큼 화려함의 끝을 달리는 연회장에 고풍스런 음악이 흐르고, 하나같이 값비싼 옷과 장신구로 치장한 사람이 서로 뒤엉켜 영화에서나 볼법한 춤을 춰댄다.
수시로 색상이 변하는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
머리카락이 흩날릴 때마다 빛 가루가 허공을 수놓는 영애.
스스로 조명빨을 연출하며 머리 위에 작은 태양을 달고 다니는 호스트 같은 기사까지, 마치 관종의 잔치가 아닌가 싶을 만큼 귀족들은 별의별 모습들을 연출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두 분이 없었다면 전 지금쯤 깔려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다가오고 싶어 미치겠다는 표정을 짓는 귀족들의 모습에 제노아드 공작과 아인트 공작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두 공작이 함께 있기 때문인지, 함부로 다가오는 귀족이 없어 제법 한가하게 파티장을 활보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누가 귀찮게 굴면 호통을 치게. 지금 마드세인에 자네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으니.”
제노아드 공작의 대답에 나는 한쪽 구석에서 와인을 흡입하는 카르디아 공작을 바라보았다.
“아···. 한 명이 보이는데요?”
“그, 그렇군.”
어째서인지 제노아드 공작이 미안하단 표정을 짓는다.
그에 실소를 흘린 아인트 공작이 내게 말했다.
“자네는 앞으로도 카르디아 공작과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을 거야.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부담 없이 말하게. 내가 발 벗고 나서주지.”
포커페이스인 아인트 공작과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그만큼 내가 구미 당기는 존재라는 뜻이기 때문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앞으로 어찌할 생각인가?”
뜬금없는 제노아드 공작의 물음.
하지만 깊게 생각할 필요 없는 내용인지라 가볍게 답했다.
“수련, 연구, 마탑 창립, 영지 개발, 기분 전환을 겸한 여행 정도일까요?”
내 대답이 신기한가?
두 사람은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정계 진출은 안 할 생각인가?”
해야 할 게 얼마나 많은데, 귀족들하고 기싸움 하라고?
절대 사양이다.
“이제 겨우 12살인 걸요?”
“이제 와 나이를 들먹여봤자 늦었지. 겉모습과 달리 정신 연령은 꽤 된다고 들었네만?”
“그거 체느닐 자작에게만 했던 말인데, 다 알고 있군요.”
“응? 아, 어쩌다보니.”
나는 어린아이인 척이 먹히지 않자 멋쩍은 표정을 지어야 했다.
“실은 괜한 눈치싸움에 심력 소모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네가 당장 정계에 진출하면 꽤나 큰 세력을 만들 수 있을 걸세. 권력을 원하지 않나?”
“후작이면 충분한 권력자죠. 저에게 충성을 맹세한 부하면 모를까 귀족집단의 우두머리는 성격에 안 맞을 것 같아요.”
“모르겠군, 욕심이 많은 듯 보이면서도 정치엔 관심을 보이지 않다니.”
그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단 표정으로 바라보았으나, 나는 오히려 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치판에서 아무리 세력을 키우면 뭐한단 말인가?
어차피 귀족이란 언제 배신할지 모르는 박쥐들이 태반인데.
차라리 그 시간에 내 군대를 키우고 스스로의 전투력을 올리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욕심 많습니다. 8클래스에도 오를 거고, 아르비스 후작가도 엄청 견고하고 튼실하게 키울 거거든요.”
“그런가?”
“하긴 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
단순히 젊은이의 호기 정도로 치부하는 두 사람의 시선에 발끈했으나, 때마침 끼어든 체르닐 자작으로 인해 우리의 대화는 끝났다.
“아르비스 후작님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함께 가시지요.”
공작들이 불렀을 때와 달리, 강제성을 띤 국왕의 부름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님들은 같이 안 가시나요?”
두 공작이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자, 나는 체르닐 자작에게 물었고 그는 언제나와 같은 영업용 미소로 답했다.
“네, 폐하께선 아르비스 후작님만 초대하셨습니다.”
아르비스 후작이란 호칭이 낯설다.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굉장히 좋은 울림이 아닌가 싶다.
잠시 후 그를 따라 도착한 곳은 국왕의 개인 서재였다.
“어서 오게나. 파티는 즐길 만했는가?”
“네, 재밌었습니다.”
나름 말이지.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그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자리를 권했다.
한 상 푸짐히 차려져 있는 다과상.
체르닐 공작이 서재를 나서자 그 공간엔 나와 국왕만이 남았다.
“내가 왜 불렀는지 알겠지?”
“작위식에서 말씀하신 선물이란 것 때문에 부르셨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있고,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도 있어서네.”
선물은 좋은데 부탁이란 말은 내키지 않는다.
하지만 귀족이 된 이상 국왕의 말을 무시할 순 없다.
나는 내키지 않았으나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선물에 대해 이야기하지. 내가 준비한 선물은 두 가지네.”
나는 눈을 반짝이며 국왕을 바라보았고 그는 헛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하나는 추가 영지고, 또 하나는 3년간 세금면제 혜택이지.”
오오, 좋아.
당연히 영지를 줘야지.
그리고 세금면제 혜택이란 것도 마음에 든다.
이제 곧 미스릴의 채굴이 시작될 테니, 단기적으로 엄청난 자금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3년 동안 인력을 무리하게 늘려서라도 미스릴을 최대한 캘 수 있는 만큼 캐야겠다.
국왕은 내게 커다란 두루마리를 건넸다.
“이게 뭡니까?”
“현재 왕국의 국왕 직할령으로 되어 있는 땅들일세. 그곳에서 하나를 고르면, 영지로 하사해 주지.”
자율 선택인가?
나는 공손히 두루마리를 받으며 국왕이 보이지 않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안 그래도 원하던 국왕 직할령이 있었는데, 괜히 국왕과 흥정할 필요가 없어져서 잘 됐다.
나는 두루마리를 펼쳐 국왕 직할령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곳으로 하고 싶습니다.”
“미리 생각해 둔 영지가 있었군. 응?”
[발테르]
피식 웃음을 흘린 국왕은 내가 손을 가리킨 곳을 바라보며 의문을 표했다.
“발테르 영지? 그리 살기 나쁜 곳은 아니지만, 딱히 특징이 있는 곳도 아닐세. 특산물이라곤 바다에서 잡히는 해산물과 탈리스만(부적)에 쓰이는 토르말린이란 광석밖에 없지. 영지의 규모도 다리우스 영지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네만?”
“괜찮습니다. 제가 토르말린에 관심이 아주 많거든요.”
“그런가?”
내가 발테르 영지를 얻으려는 이유가 바로 그 토르말린 때문이다.
일명 전기석이라 불리는 이 광석은 추후 마법 물품에 빠지지 않고 쓰이는 중요한 물건이 되는데, 지금은 탈리스만을 장식하는 광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토르말린 자체만 해도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지만, 루벨라이트라 불리는 붉은 토르말린은 다이아몬드보다도 비싼 몸값을 자랑하게 된다.
소문에 의하면, 토르말린이 칼바도스 제국의 신병기인 ‘기간트’의 심장에 사용되는 핵심 부품이란 말도 있다.
지금이야 사용 방법이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지, 머지않아 다리우스 백작령을 웃도는 가치를 지닌 곳이 발테르 영지였다.
비록 마드세인 왕국은 칼바도스 제국의 침공으로 발테스 영지를 빼앗겨 얼마 재미를 보지 못하지만, 지금은 토르말린의 가치를 아는 나라는 인물이 있으니 전생과는 다른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음, 그것만으론 부족한 느낌인데.”
하지만 국왕은 애써 인심을 썼는데, 내가 고른 영지가 자기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지 덤을 붙여 주었다.
“그럼 그 옆에 붙어있는 록스터도 함께 주도록 하지. 자네에게 발테스 영지만 하사했다간 내가 소인배로 낙인찍히고 말 테니. 록스터는 제법 큰 철광이 있는 영지니 나쁘지 않을 거네. 두 영지를 합치면 그나마 후작령이라 할만하겠군.”
록스터 영지는 다리우스에 비견되는 제법 큰 영지였다.
3개 영지를 다 합치면 거의 공작령에 비견되는 수준,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다.
“감사합니다. 잘 운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내일까지 행정처리를 끝내고 자네에게 사람을 보내도록 하겠네.”
“알겠습니다.”
국왕 직할령은 남는 땅이 아니다.
왕가의 재산이라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망설임 없이 건네주는 거 보면 마드세인 국왕은 제법 배포가 큰 것 같았다.
아, 아닌가?
그러고 보니 사전에 부탁할 게 있다고 했지?
아무 생각 없이 선물을 덥석 받은 뒤라 걱정이 밀려왔다.
“그래서 앞서 말씀하신 부탁은···.”
내 물음에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 왕국의 대마법사는 카르디아 공작이 유일했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마법사가 아니야. 정치인이지.”
내가 보기에도 그렇다.
대마법사가 된 지 10년도 훨씬 넘었으면서, 서클 프레셔로 느낀 그의 압박감은 그리 크지 않았으니.
퇴보한 건지는 오히려 나보다도 경지가 아래인 느낌이었다.
“그래서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네. 부디 이 나라를 보호할만한 무기를 만들어주지 않겠나?”
“네?”
“케일론 왕국에서 개발한 마력 포대 같은 마도병기 말일세.”
“······.”
“물론, 무리한 부탁인 걸 아네. 하지만 카르디아 공작은 할 수 없는 일이지.”
국왕의 부탁에 나는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솔직히 마도시대의 유적을 갖고 있는 터라, 아티팩트 제작에도 관심이 많고 기간트란 것도 개발해보고 싶었다.
적은 인적자원을 커버할 수 있는 것은 질 높은 기술뿐이니.
그러나 나라를 위해 만든다고 생각하면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전생에 개목걸이(폭발 아티팩트)를 차고 전장에 던져져서, 애국심이라곤 티끌만큼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받은 게 많은 상태에서 애원하는 국왕을 보고 있자니, 냉정하게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한참 고민하던 나는 한 가지 방법을 떠올리며 국왕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애초에 저도 그 분야에 관심이 지대했으니까요.”
“오오!”
국왕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졌지만, 원래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이다.
“제가 마도 병기를 개발, 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폐하께서 그것을 사주시겠습니까?”
“음?”
“물론, 국가에는 저렴하게 판매할 생각입니다. 대신 마도 병기 제작만큼은 모두 제 손으로 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욕심으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방법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저는 아직 다른 사람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의 목을 어떻게 조를지 모르는 마도병기의 개발 성과를 남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가···.”
내가 마도 병기를 만들면 분명 마도시대의 기술을 복제한 것이 될 테고, 그런 물건을 카르디아 공작을 포함한 국가기관과 공유했다가 자칫 더 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국가에 관리를 맡긴다면 아무리 기밀이라며 꽁꽁 숨겨도 어떤 방식으로든 새어나가게 될 것이다.
국왕 본인도 카르디아 공작을 신임하지 않는 만큼 내 말을 이해할 거라 생각했다.
“좋아, 알겠네.”
내 말을 납득 했는지, 국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런데 자네 혼자 할 수 있겠나? 자금과 인력도 부족할 텐데?”
“네, 문제없습니다.”
“기술 관리도 잘해야 할 거야.”
“맡겨주십시오.”
내 자신감 있는 대답에 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쩌다 보니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마도 병기로 열을 올리게 되었지만, 왠지 자네라면 대단한 걸 내놓을 것만 같아.”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이제 와서 기대하지 말라고 말하기엔 너무 늦은 느낌.
그래도 나라의 눈치 보지 않고 마도병기 개발할 수 있게 된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왕은 부탁이라며 이야기를 꺼냈지만 원래 내가 하려던 일과도 일맥상통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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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인재 영입
“V1, 캡슐 가공 다 됐어?”
[가공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젠 비밀 아지트가 되어버린 유적 안.
나는 상황실 바닥이 열리면서 등장한 테이블에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테이블엔 은색의 케이스가 가득 올려져 있었는데, 그것을 열자 낱개 포장된 트레이닝캡슐 5개가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효과는?”
[가공과정에서 약간의 손실이 발생해, 이론상 700시간까지 훈련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총 51개에 달하는 트레이닝 캡슐.
나는 그중에서 작은 금색의 케이스를 들며 말했다.
“이게 1년짜리지?”
[그렇습니다.]
참고로 이건 새로 만든 것이 아닌, 내가 갖고있던 여분의 트레이닝 캡슐을 쪼개서 분량을 늘린 열화판이다.
트레이닝 캡슐은 단 한 번밖에 섭취를 못 한다.
그래서 내가 사용하지 못하는 여분의 캡슐의 활용방안을 고민하다가 ‘어쩌면 이걸 나눠 먹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V1에게 물어보니 충분히 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고, 그로 인해 탄생한 것이 바로 대량의 다운그레이드 트레이닝 캡슐이었다.
금색 케이스에 딸랑 하나 들어 있는 녀석이 1년짜리, 나머지 50개는 이론상 700시간 동안 트레이닝을 할 수 있다.
내가 5년에 걸친 수련 끝에 대마법사가 된 만큼, 700시간이 무슨 훈련이 되겠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천만에 말씀.
만약 7서클을 목전에 둔 6서클의 고위마법사가 섭취한다면 한 달이란 기간은 벽을 넘기에 충분한 유예가 될 것이다.
더구나 트레이닝 캡슐은 마법사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사도 정령사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을 잘만 활용하면 고급전투 인력을 내 사람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가능하단 소리다.
벽의 끝이 보이는데 좀처럼 다음 경지로 나아가지 못해 정체해 있는 사람이 꽤 많았다.
그들 하나하나가 내 잠정 고객인 셈.
그리고 그들이 나로 인해 벽을 넘을 경우, 대가는 금전적인 것이 아닌 충성맹세가 될 것이다.
애초에 충성을 맹세하겠다는 사람에게만 약을 줄 거지만 말이다.
“좋아.”
나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트레이닝 캡슐이 든 케이스들을 모두 아공간에 수습했다.
인재 영입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