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16화 (16/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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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봉작

    다리우스 백작령 영주성.

    “와! 맛있는데요?”

    “가, 감사합니다.”

    식당에서 암송아지 안심으로 만든 스테이크를 먹으며 나는 연신 감탄사를 토했다.

    역시 이 세상에도 맛있는 음식은 얼마든지 있다.

    단지 내가 그것을 먹을 만한 위치에 오르지 못했던 것뿐이지.

    내 칭찬에 잔뜩 굳어 있는 조리장은 황송하다며 고개를 깊이 숙이고, 식당을 지키고 있는 기사들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왜 이렇게들 굳어 있어요? 같이 식사할래요?”

    나는 넉살 좋게 웃으며 기사들을 불렀지만, 그들은 기겁하며 크게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래요? 맛있는데.”

    나의 제안에 기사들은 작게 몸을 떨었는데, 아무래도 영지전 때 나로 인해 겪었던 일이 트라우마가 된 모양이다.

    덕분에 다리우스 백작의 군대와 재산을 큰 문제 없이 흡수할 수 있었지만, 아무도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조금 씁쓸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반역의 싹을 자르기 위해 선봉대를 몰살하고 남아 있던 병력에게도 죽음의 공포를 심어준 게 바로 나인데.

    나는 품위 있는 척 고기를 썰며 모두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말했다.

    “절 따르게 된다면 여러분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차라리 그냥 기회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저 그렇게 야박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움찔.

    겉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아이지만 행동과 말투를 보면 절대로 어린아이가 아니다.

    아무래도 그 괴리감이 더욱 공포감을 조성하는 모양이다.

    “사망한 선봉대의 가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한 거 알고 있죠? 마드세인의 어느 영주가 자신의 사유재산이나 다름없는 영지민이 죽었다고 보상을 합니까. 심지어 그땐 적이었던 사인데요.”

    나는 아직 국왕으로부터 정식적으로 이 영지의 영주임을 인정받은 상태는 아니다.

    하지만 카이도 남작의 보증으로 영주나 다름없는 생활을 누리고 있는데, 이것은 영지전에 패배한 다리우스 백작령이 카이도 남작령에 복속된 덕분에 가능한 상황이다.

    만약 여기서 카이도 남작이 수작을 부린다면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질 수 있지만···.

    머리에 생각이란 게 제대로 박혀 있다면, 나와 척을 질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이제 슬슬 왕실에서 연락이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영지전이 끝나고 3일째가 되었음에도 소식이 없는 것을 보니 누군가가 중간에 방해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사람을 막 부리지 않습니다. 강제 노역도 일절 없을 거고, 일을 시키면 대가도 확실하게 지불하죠. 영지민이 잘 살아야 영지가 부유해진다고 믿고 있거든요.”

    계속 대답 없는 혼잣말을 하던 나는 기사들에게 듣고 있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내 시선에 그들은 헛바람을 삼키며 놀랐는데, 아무래도 지금까지 한 이야기가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다.

    “쯧, 소귀에 경 읽기네.”

    내가 혀를 차자 그들은 풍에 걸린 사람처럼 몸을 떨었고, 식사를 마친 나는 스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기사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올려 보며 빙긋 웃어 보였다.

    “사, 살려···.”

    이들에게 나는 마왕 같은 존재인 걸까?

    극도의 공포심을 보이는 그들에게 힐을 사용했다.

    “누가 잡아먹습니까? 지금 저흰 적이 아니잖아요.”

    내 행동이 예상 밖이었는지 기사들은 멍한 표정으로 눈을 껌벅거렸다.

    나는 그대로 수고들 하라며 손을 흔들고는 식당을 나섰다.

    “여, 영주님. 여기 포장해놓은 음식들입니다.”

    조리장이 빠르게 뒤따라오며 도시락을 건넸다.

    아직은 정식적으로 영주의 호칭을 쓰면 안 되지만 그걸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고마워요. 저 잠깐 나갔다 온다고 집사에게 알려주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그대로 나는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했고, 부모님이 계시는 노라 마을로 이동했다.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화려한 영주성에서 보잘것없는 나무 주택으로 바뀌었다.

    텔레포트로 도착한 곳은 바로 노라 마을의 내 방이다.

    웃는 낯으로 방을 나선 내 눈에 스프를 끓이고 있는 어머니와 식탁에 앉아있는 아버지와 여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나 왔어!”

    “마법사는 좋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내 인사에 어머니는 핀잔을 주면서도 미소를 지으셨고, 나는 쪼르르 달려와 달라붙는 에리스를 공중에 띄우며 영주성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음식 싸 올 테니. 밥하지 말라니까?”

    “그래도 따끈한 스프를 먹어야지.”

    나는 장식이 화려한 도시락을 펼치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아무거나 잘 먹는다.”

    평소와 다름없는 반응에 피식 웃음을 흘린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이번엔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는?”

    “차라리 재료를 가져와. 그럼 엄마가 양 많고 맛있게 만들어 줄 테니.”

    “알았어, 내일 올 땐 재료도 챙겨 올게.”

    “에리스는 뭐 먹고 싶어?”

    “사탕!”

    나는 에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공간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건네주었다.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여동생이란 존재가 며칠 만에 굉장히 친밀하게 느껴진다.

    같은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일까?

    “밥 먹고 먹어야 돼.”

    “응!”

    “이런 고급음식을 자꾸 어디서 가져오는 거야?”

    “있어. 조금만 기다려봐. 곧 알게 될 테니까.”

    참고로 부모님께 영지를 손에 넣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지 않았다.

    아직 부모님을 안전하게 지킬 공간이 마련되지 않았기에 한동안은 평범한 농부로서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작위를 받고 정식 영주가 된 다음 주변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면 부모님을 모셔올 생각이다.

    “난 밥 먹고 왔으니 스프 조금만 줘.”

    “왜? 같이 안 먹어?”

    “응, 바로 또 가봐야 돼.”

    혹시나 해서 포장해온 음식에 큐어 포이즌을 사용한 나는 부드러운 송아지 안심 스테이크를 작게 잘라 한입 먹은 뒤,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에리스의 입에도 넣어 주었다.

    “맛있어!”

    성을 내듯 소리치는 여동생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역시 내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가장 마음 편하다.

    ***

    “폐하! 조사를 더 해보아야 하옵니다!”

    왕립마탑의 탑주이자 마도공학부의 장관인 카르디아 공작은 상석에 앉아 이마를 짚고 있는 국왕을 향해 하소연하듯 외쳤다.

    그에 천천히 고개를 든 국왕이 피곤하단 표정으로 답했다.

    “이미 조사를 해봤지만 나온 게 없지 않소. 언제까지 대마법사를 이리 방치한단 말이오? 그는 우리 마드세인의 큰 복이란 말이오.”

    “하지만 너무도 수상하지 않사옵니까? 평민 출신에 11~12살 될 법한 외형을 가진 소년이라니, 타국에서 정체를 숨기고 들어온 첩자일 가능성이 높사옵니다.”

    마드세인의 국왕은 하루라도 빨리 새롭게 등장한 대마법사에게 작위를 하사하고 왕국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카르디아 공작을 포함해 신중론을 펼치는 귀족들의 반발에 쉽게 그럴 수 없었다.

    국왕은 답답하단 표정을 지어야 했다.

    “세상에 어느 국가가 대마법사를 첩자로 사용한단 말이오.”

    “칼바도스 제국이라면 충분히 여력이 되옵니다!”

    “여력이 될 뿐이지, 칼바도스에서 왜 대마법사로 그런 모험을 하겠소!”

    이건 아무리 봐도 카르디아 공작이 자신의 권력이 축소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반대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재상 아인트 공작이 나서서 말했다.

    “카르디아 공작. 자네의 말은 억지로밖에 여겨지지 않는군. 조사야 일단 그를 받아들인 이후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왕립마탑주 카르디아 공작이 마법사를 중심으로 한 세력의 수장이라면 재상인 아인트 공작은 행정관을 중심으로 한 세력의 수장이라 할 수 있다.

    아인트 공작의 날카로운 지적에 굳었던 국왕의 표정이 풀어지고, 카르디아 공작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재상이란 인물이 어찌 그리 안일한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러다가 그가 왕실에서 난동이라도 피우면 어쩌려고!”

    “어느 멍청한 대마법사가 그런 자살행위를 한다는 거지? 그렇게 새로운 대마법사가 정계에 발을 들이는 게 두렵나? 지금 칼바도스의 상황을 보고도 자기 권력 챙기기 급급한 모습을 보니, 자네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군.”

    “뭐, 뭐라?”

    설마 아인트 공작이 이렇게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을 거라 생각 못 한 카르디아 공작은 수치심으로 얼굴을 붉혔다.

    “진정들 하게나.”

    그때 건장한 체구의 국군 총사령관인 제노아드 공작이 흥분한 두 사람을 말렸다.

    “국왕 폐하의 말씀이 옳아. 칼바도스가 우릴 상대하기 위해 대마법사를 첩자로 부린다는 건 비약이 너무 심한 거네. 우리는 지금 손을 뻗어오는 대마법사를 지켜보며 이리저리 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그가 적만 아니라면 정체는 덮어두고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지.”

    왕국을 대표하는 3대 귀족 세력 중 두 곳의 수장이 국왕의 의견을 지지하자, 결국 카르디아 공작의 꼴만 우습게 되었다.

    당연히 나라를 생각하면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만약 새로운 대마법사가 정계에 진출이라도 하게 된다면 마법사를 중심으로 한 자신의 세력은 필연적으로 규모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어찌 쌓아온 권력인데 그걸 내준단 말인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

    카르디아 공작은 끝까지 이번 사태에 대한 신중론을 펼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공작에게 매국노 취급을 받을 뿐이었다.

    결국 그는 분을 삼키며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고, 왕실에선 빠르게 다리우스 백작령으로 사람을 보냈다.

    ***

    “반갑습니다. 위대한 대마법사이시여. 저는 마드세인 국왕 폐하의 보좌관인 체르닐 자작이라 합니다.”

    나는 오른손을 심장 위치에 가져가며 품위 있게 고개를 숙이는 자작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반갑습니다. 루이스라고 합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그를 응접실로 안내한 나는 차를 내온 시녀의 평소와 다름없는 반응을 보며 긴장하지 말라고 등을 토닥였다.

    하지만 시녀는 내 위로에 ‘히익’소리를 내며 놀랐다.

    내가 무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녀는 죽을죄를 지었다며 계속 고개를 조아렸다.

    “됐으니, 물러나세요.”

    “죄, 죄송합니다.”

    손님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해서 창피했지만, 체르닐 자작은 어째서인지 표정이 굳어졌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닙니다. 그저 대마법사님께서 너무 동안이신지라.”

    애써 말을 돌리는 그를 보며 나는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제가 아직 12살이라서요.”

    “12살이요?”

    미미하게 일그러지는 그의 표정에 나는 개의치 않고 되물었다.

    “그럼 몇 살로 보이는데요?”

    “아뇨, 그렇게는 보입니다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했다.

    겉모습이 어린애 같다는 이유로 누가 대마법사를 12살짜리 꼬맹이라 생각하겠는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거짓과 진실을 적절히 섞어서 말했다.

    “제 신체 연령은 12살이 맞아요. 하지만 스승님께 특수한 방법으로 마법을 배워 정신연령은 당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간을 보듯 슬쩍 던진 떡밥.

    그에 역시 뭔가 있다고 생각한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하지만 중대한 비밀을 털어놓을 것처럼 보이던 내가 아무 말 않고 얌전히 지켜보고만 있자, 그는 무안한 듯 헛기침을 했다.

    “시, 실례했습니다. 마법사분들의 비밀을 파고들면 안 되는 건데.”

    “알면 됐습니다.”

    테이블에 놓인 차를 들어 한 모금 크게 들이킨 나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생각보다 늦게 오셨군요. 제 뒷조사라도 하셨어요?”

    “하, 하하···. 면목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대마법사님의 편의를 잘 봐 드릴 수 있을까 회의를 거듭하다 보니.”

    보아하니 뒷조사를 한 모양이네.

    아무래도 누군가가 내가 위로 올라오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모양이다.

    “그래서 결론은 났고요?”

    “네, 물론입니다. 국왕폐하께서 귀족 작위를 비롯해 큰 선물을 준비하셨으니, 부디 왕성에 방문해 주시어 자리를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은근히 물었다.

    “그래서 뭐 준대요?”

    “자, 자세한 내용은 왕성에 방문해 주시여···.”

    “그냥 언질이라도 줄 것이지. 언제까지 가면 되는데요?”

    “이틀 뒤가 어떠신지요?”

    “좋아요.”

    “감사합니다.”

    그가 환한 미소를 짓자, 나도 같이 영업용 미소로 답했다.

    작위를 받고 나면 이제 슬슬 움직여야지.

    미래의 기억을 이용해 취할 이득이 상당히 많은데, 귀족이 된다면 더욱 수월해질 것이다.

    기대되는걸?

    *

    봉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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