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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14화 (14/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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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작은 고개를 홱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고, 서재 한켠에서 유유히 책을 구경하고 있는 흰색 로브차림의 소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잘못들은 게 아니었다.

    기겁한 카이도 남작은 손질하던 마력총 중 분해되지 않은 것을 집어 소년에게 겨눴다.

    “누, 누구냐!”

    남작의 물음에 미소를 지으며 돌아선 소년이 가볍게 말했다.

    “지나가던 대마법사라 할까요?”

    그 상큼한 대답에 카이도 남작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개소릴.”

    다른 건 몰라도 기분 나쁜 녀석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남작은 소년을 경계하며 소리쳤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고 서재엔 침묵만이 감돌았다.

    어깨를 으쓱인 흰색 로브의 소년은 서재 중앙에 놓인 응접용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이 안에서 폭발이 일어난다고 해도 밖에선 알아채지 못할 겁니다. 제가 아이솔레이션이라는 공간 격리 마법을 사용했거든요. 그러지 말고 앉으시죠.”

    “무슨···.”

    “혹시 분위기가 너무 삭막한가요?”

    소년이 손가락을 튕기자 주변의 풍경이 한가로운 숲속으로 바뀌었다.

    “으아악!”

    조금만 유심히 관찰하면 진짜 숲속이 아닌 만들어진 풍경이란 것을 알아챌 수 있겠지만, 흥분한 남작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반사적으로 소년에게 마력총을 쐈다.

    팅!

    “너무 하시네, 이거 환상 마법이에요. 녹색이 마음에 안정을 가져온다고 해서 배경을 바꾼 건데.”

    그러나 마력 총의 탄환은 소년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하고 쉴드에서 튕겨 나와 남작의 뺨을 스쳤다.

    덕분에 그 자리에서 굳은 남작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역시 존귀하신 귀족님이라 그런가? 엄청 겁이 많으시네.”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남작에게 다가가더니, 그의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마주쳤다.

    진한 금발에 사파이어를 연상시키는 푸른빛의 눈동자.

    피부는 귀신처럼 새하얗고 가까이에서 보니, 얼굴은 더욱 앳돼 보였다.

    “다리우스 백작이 보낸 것이냐?”

    한평생 튀지 않고 무난한 귀족의 삶을 이어온 카이도 남작인지라, 자신을 해할 인물은 영지전을 건 다리우스 백작밖에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그에 피식 웃음을 흘린 소년은 남작을 허공에 띄워 억지로 테이블에 앉혔다.

    그 과정에서 남작은 다시 꿱꿱거렸지만, 소년은 소리를 없애고는 그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렇게 몇 분이나 흘렀을까?

    남작이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나서야 사일런트 마법을 해제했다.

    “이 상황에 다리우스 백작을 떠올리는 거 보면 그다지 적은 안 만들고 살았나 보군요.”

    “다, 당신 대체 뭐야.”

    남작은 더 이상 소년을 겉모습만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아마 그가 자신을 죽이기로 마음먹으면 10번은 더 죽일 수 있었을 테니.

    “루이스입니다. 평민이라 성은 없네요. 이해해 주시길.”

    “내게 왜 이러는 거지?”

    다행히 이성을 찾은 남작은 루이스란 이름의 소년을 경계하면서 그를 자극할만한 행동을 자제했다.

    “지나가던 대마법사가 인심 써서, 망해가는 영주를 살려주려는 거죠.”

    “······.”

    망해가는 영주 부분에서 남작의 미간이 꿈틀거렸지만,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닌지라 반박할 수 없었다.

    “영지전을 피해 도망가려고 해도 소용없어요. 설마 다리우스 백작이 그것도 모를까 봐요? 어차피 행정부도 돌아선 마당에 텔레포트 게이트는 사용할 수도 없을 테고, 결국은 직접 이동해야 한다는 소린데 절대로 쉽게 안 되죠. 다리우스 백작은 남작님이 재산을 갖고 튀는 걸 놓치려 하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이미 영지 주변에 추격대가 편성되어 있을 수도 있고요.”

    “그, 그래서 자네가 날 도망치게 도와주겠다는 건가?”

    “아뇨, 그렇게 되면 제 목적이 틀어져서 안 되죠. 전 남작님께서 영지전을 진행해 주셨으면 하거든요.”

    어떻게 사정을 알고 찾아온 건지는 몰라도,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루이스의 모습에 남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 하고 싶은 건가?”

    “무슨 소리예요? 영지전은 남작님이 이깁니다. 제가 있으니까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계약서 하나만 써주시면 됩니다. 그럼 영지전이 진행되는 날 제가 다리우스 백작을 해치우고 영지를 차지하도록 하죠. 그때 남작님은 어딘가에 숨어계셔도 무방합니다.”

    남작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헛웃음을 흘렸으나, 루이스가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어 입을 닫아야 했다.

    “손해 볼 건 없죠. 만약 제 말이 사실이라면 남작님은 전쟁에 승리하고 영지는 보전할 수 있게 되잖아요.”

    남작은 미간을 좁혔다.

    “설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네, 전 대마법사니까요.”

    스스로를 대마법사라 칭하는 소년 루이스.

    만약 대마법사가 도와준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지만, 눈앞의 소년이 아무리 범상치 않은 수준의 마법을 보여주고 있더라도 대마법사라는 말을 믿긴 힘들었다.

    무엇보다 대마법사라면 제국에 가서도 백작위를 받을 수 있을 만한 존재인데, 뭐하러 이런 귀찮은 짓을 하겠는가.

    “영지전이 시작하기도 전에 도망치다가 괜히 죽지만은 마세요.”

    철저하게 자신을 무시하는 루이스의 행동에 남작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으나, 분을 삼키며 물었다.

    “그럼, 자네가 대마법사란 증거를 보여주게.”

    선택사항이 없음에도 자꾸 의심만 하는 남작이 귀찮았지만, 루이스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공간 격리 마법을 해제하고는 다른 마법을 사용했다.

    “텔레포트.”

    “뭣?”

    서재 전체를 뒤덮는 마법진과 함께 푸른 빛이 온몸을 감싼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남작의 눈앞에 마드세인 왕국의 수도가 펼쳐졌다.

    “이, 이건...”

    “수도엔 공간이동 방해진이 펼쳐져 있어서 밖으로 이동했지만, 납득이 되시나요?”

    허공에 떠 있던 둘은 서서히 땅으로 내려오고, 진한 흙내음과 피부를 간질이는 바람에 남작은 마른 침을 삼키며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이건 절대 환상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의심이 많은 남작을 생각해서인지, 루이스는 눈앞의 거대도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귀족은 참 편하네요. 까다로운 수도 입성이 프리패스라니.”

    얼떨결에 수도에 입성해 고급 음식점에 들어선 남작은 소년과 마주 앉아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그만 정신 차리시죠?”

    “귀, 귀공 같은 분이 어찌 저를 도와주시는 겁니까?”

    자신의 영지로부터 왕국의 수도는 족히 500km는 떨어진 거리다.

    텔레포트는 의심할 여지 없는 7클래스의 대마법.

    더구나 텔레포트를 사용할 때 보았던 마법진은 아티팩트나 스크롤의 이펙트가 아닌, 시전 마법이 분명했다.

    자연히 남작의 의심은 사라졌고 소년에게 존댓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얻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어쩌면 저 모습마저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남작은 마른 침을 삼키며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고, 소년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리우스 백작령이요.”

    “네?”

    “남작님을 대신해 영지전에서 승리해 드리죠. 대신 다리우스 백작이 갖고 있던 모든 것은 제게 양도한다는 계약서를 써주십시오.”

    ***

    카이도 남작은 어차피 내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문제없이 계약서를 손에 넣은 나는 카이도 남작령의 요새 앞으로 집결한 다리우스 백작의 군대를 보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굳이 이런 귀찮은 일을 하시는 이유가 뭔지 여쭤도 될까요?”

    금이 장식된 갑옷 차림에 마력총을 손에 쥐고 있는 카이도 남작이 내게 물었다.

    “최대한 등장은 화려하게,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강렬한 존재감을 각인시켜야 가볍게 보지 않겠죠.”

    나는 요새에서 떨어진 언덕에 마치 피크닉이라도 온 듯 자리를 잡은 사람들을 보며 답했다.

    그들은 이 영지전을 감독하기 위해 찾아온 행정부 소속 마르티스 자작을 비롯해, 증인으로 참석한 마드세인 왕국의 귀족들이었다.

    근 20년 만에 벌어지는 영지전이라 그런지, 상당히 많은 귀족들이 참관자격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야 증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지라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누가 감히 대마법사를 가볍게 본단 말입니까? 저야 감사하지만, 그래도 루이스님의 행동은 이해하기 힘든··· 죄, 죄송합니다.”

    내가 남작을 바라보자, 그는 얼른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해왔다.

    이미 나를 자신보다 높은 줄의 귀족으로 취급하는 남작이었다.

    그래, 이해하기 힘들겠지.

    하지만 알고 보면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영지전의 원인이 된 은광산.

    그게 실은 단순한 은광산이 아닌 왕국 최대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미스릴 광산의 입구였으니.

    원래 미스릴은 은과 성분이 비슷해 함께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데, 카이도 남작이 고용한 채광 전문가가 남작이 아닌 다리우스 백작에게 이 정보를 팔았기에 벌어진 사단이었다.

    다리우스 백작도 정확한 매장량은 아직 모르는 상태지만, 미스릴 광맥은 하나가 발견되면 주변에 줄지어 발견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카이도 남작령에 수작을 부리는 것이다.

    비록 카이도 남작령에서 추가로 미스릴 광산이 발견되진 않지만, 그 한 곳에서만 채굴되는 미스릴의 양만 해도 왕국 전체 채굴량의 4할을 차지하니,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라 할 수 있다.

    덕분에 다리우스 백작은 엄청난 부를 쌓으며 왕국의 4번째 후작이 되고, 북부의 제후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남부의 패자가 된다.

    더구나 다리우스 백작령 주변엔 연약한 영지들뿐이니 얼마나 안전하고 좋은가.

    현재 그 미스릴 광산은 행정부에서 다리우스 백작의 것이라 결론을 내린 상태니, 내가 백작령을 먹으면 자연히 왕국 최대의 미스릴 광산도 나의 것이 된다.

    또한 다리우스 백작과 달리 수작을 부리는데 합세한 다른 사람들과 나눠 먹을 필요도 없으니, 아주 바람직한 상황이 아닌가.

    내가 만약 7클래스가 아닌 6클래스의 마법사라면 이런 짓은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시작되려나 봅니다.”

    영지전의 감독인 마르티스 자작이 허공으로 무언가를 날렸는데, 둥근 수정구 같은 물건이 요새 앞까지 날아와 멈춰섰다.

    [본인은 대 마드세인 왕국 행정부 차관 마르티스 자작이라 하오! 국왕 폐하를 대신하여 이 전쟁의 관리 감독을 맡게 되었으며, 전쟁의 승패를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소! 다리우스 백작과 카이도 남작은 대 마드세인 왕국의 귀족으로서의 긍지를 잃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전쟁에 임해주시기 바라오!]

    아무래도 그건 목소리를 전달, 증폭시키는 아이템인 모양이다.

    이런 것을 보면 이 세계의 문명 수준은 낮지 않은데, 왜 아직도 검이 전장에 주류인지 모르겠다.

    물론 마력총 사수가 있긴 하지만 마력총이 비싸서인지, 아니면 마법사와 기사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수가 많지 않았다.

    “빌어먹을 마르티스 자작.”

    감독관의 이야기에 남작은 쌓인 게 많은지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부들부들 떨었다.

    “백작의 모습이 보입니까?”

    내 물음에 남작은 얼른 망원경을 꺼내 적진의 후방을 살폈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보입니다. 후방에 마법병단과 함께 있군요.”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안력을 높였다.

    “백마에 탄 뚱땡이 맞습니까?”

    7서클에 오르며 재구성된 신체는 망원경 없이도 백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네, 그 돼지가 다리우스 백작입니다.”

    남작의 반응에 피식 웃음을 흘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괜히 저 도와주려 하지 말고 얌전히 요새나 지키세요.”

    “알겠습니다.”

    내 정체를 모르는 남작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내 태도가 건방지다고 여기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이어진 남작의 살벌한 눈빛에 애써 시선을 피했다.

    나는 주변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든지 신경 쓰지 않고, 요새 망루의 난간을 딛고 서서 이어질 감독의 신호를 기다렸다.

    [그럼, 지금부터 다리우스 백작령과 카이도 남작령의 영지전을 허가하오!]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

    동시에 다리우스 백작군이 북을 울리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우렁찬 북소리와 함께 전진하는 백작군의 모습은 너무도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덕분에 요새를 지키고 있는 남작군의 동요는 눈에 띄게 커졌고 기사들은 병사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탈영병이 생기지 않게 감시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고생하십시오.”

    어디 마실 나가듯 가벼운 인사와 함께 나는 10미터가 넘는 높이의 망루에서 밖으로 뛰어내렸다.

    영문모를 상황에 남작측 진영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나는 여유롭게 손을 흔들며 가볍게 착지했다.

    요새에서 홀로 걸어 나오는 내 모습에 백작군은 물론 마르티스 자작과 참관자들이 의문을 표하는 모습이 보인다.

    “증인들이 많아서 좋네.”

    이어서 나는 질서정연하게 다가오는 백작군의 선봉대 2,000명을 눈에 담으며 차갑게 말했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전장에 나섰으면, 당연히 죽을 각오도 되어 있겠지?”

    지이잉.

    맹렬히 회전하는 7개의 서클.

    동시에 내 발아래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푸른빛의 마법진이 펼쳐지고, 영문모를 상황에 당황하는 다리우스 백작의 선봉대를 향해 선물을 보냈다.

    “썬더 스톰.”

    내 명령어에 발아래의 마법진이 사라지더니, 더욱 거대해진 모습으로 선봉대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그리고 수백, 수천 다발의 벼락이 적의 비명을 노래 삼아 연주를 시작했다.

    콰릉! 쾅! 쾅! 쾅!

    전쟁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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