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13화 (13/186)

-------------- 13/186 --------------

*

대마법사는 각국의 마법 수준을 평가함에 있어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존재로 문명의 발전을 선도하는 기술자이자, 학자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군사력 측면에서도 전략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성벽을 무너뜨리는 대마법과 수백 수천 명을 몰살시키는 광역마법은 감히 소드 마스터라도 따라 할 수 없는 파괴력을 담고 있다.

덕분에 7클래스의 대마법사와 소드마스터가 있다면, 국가 입장에선 대마법사에 더욱 나은 대우를 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내가 7서클을 찍은 순간 이미 최상위 권력자 무리에 발을 들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나이가 어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7클래스 대마법사란 존재 자체가 권력이란 단어와 동의어였으니 말이다.

설사 내가 유희 중인 드래곤이라 해도 모른 척 받아들이는 것이 나라를 위한 일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제국에 가서도 대귀족으로 살 수 있고, 마드세인 같은 작은 왕국이라면 후작위 이상의 제후가 되는 것도 꿈이 아니다.

트레이닝 캡슐의 훈련을 통해 7서클을 찍은 덕분에 내 선택지는 매우 풍족해졌다.

6서클만 되어도 감지덕지라 생각했는데 7서클을 찍다니, 6서클과 7서클은 한 단계 차이긴 해도 급이 완전히 다르다.

이를테면 군대의 대령과 준장의 차이라 해야 할까?

마드세인 왕국에 7클래스 대마법사는 단 한 명인 반면 6클래스의 고위마법사는 30명이 훌쩍 넘었다.

괜히 7클래스의 대마법사를 소드마스터와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이 아니었다.

“오빠야? 언니야?”

순진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은 나를 올려 보는 4살짜리 여자아이의 모습에 나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다, 당연히 오빠지.”

내 말에 완전히 건강을 찾은 에리스란 이름의 여동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오빤데 왜 언니처럼 반지하고 팔찌하고 있어?”

식은땀을 삐질 흘린 나는 호기심 가득한 동생의 눈빛에 미소를 지으면서도 어머니에게 도와달라는 표정을 지었다.

여동생이란 존재에 대해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지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머니는 미소를 지을 뿐, 내게서 에리스 떼놓지 않으셨다.

“오빠가 마법사거든. 이건 마법 아이템이야.”

“마법사!?”

마법사란 말에 가뜩이나 큰 눈을 더욱 크게 치켜뜬 에리스의 모습에 나는 저러다 눈알이 쏟아지는 것 아닐지 걱정해야 했다.

“막 불 쏘고, 빛 뿜고 하는 거?”

“응, 맞아.”

“보여줘!”

“어?”

떼쓰길 좋아하는 호기심 가득한 4살짜리 아이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이해하겠는데, 어머니와 아버지도 은근히 궁금하단 표정으로 다가오자 나는 뺨을 긁적여야 했다.

아무래도 내가 자세한 설명을 안 했기에 아들이 마법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지신 모양이다.

두 분은 에리스에게 사용한 리커버리란 마법이 7서클인지도 모르셨으니.

“워터.”

나는 손 위로 물방울을 생성했다.

그리고 그것을 토끼 형태로 만들어 허공을 뛰어다니게 하였는데, 에리스는 연신 ‘우와! 우와!’ 거리며 물 토끼를 잡기 위해 고양이처럼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뭐야, 이거? 귀여워!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무뚝뚝하던 아버지의 입이 헤 벌어지는 믿기 힘든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마법을 해제했고, 덕분에 에리스는 물에 쫄딱 젖고 말았다.

“미안. 아빠가 이상한 얼굴을 해서.”

“내가?”

아버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우스운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어야 했다.

“드라이.”

내가 마법을 사용하자 젖어있던 에리스의 몸이 뽀송뽀송하게 말랐다.

“어머, 그거 편리해 보이네, 마법사면 더울 때 시원한 바람도 만들고 음식도 얼려서 오래 보관할 수 있겠네?”

마법사를 뭐로 생각하는 건지···.

헛웃음을 흘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시원한 바람을 만들어 보냈다.

“좋네.”

졸지에 대마법사에서 선풍기가 되어버렸다.

“마법! 마법!”

그리고 계속 마법을 보여 달라며 조르는 에리스에게 라이트를 이용한 빛의 공을 만들어 준 나는 뒤늦게 표정을 수습하며 헛기침을 하는 아버지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무 많이 변해서 길 가다 마주치면 못 알아보겠구나.”

“그런가···?”

착 가라앉은 눈동자.

그 눈빛은 방금 전에 딸의 애교에 무장이 해장 되었던 아버지의 것이 아니다.

내가 익히 봐온 엄한 아버지의 모습.

“우리가 너를 찾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알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애초에 나의 행동은 모두를 위함이라곤 하지만, 그 과정에 부모님의 심정을 완전히 배제했었으니.

그저 내가 잘되는 것이 효도라는 생각으로 합리화했다.

“미안.”

변명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는 내 모습에 아버지는 한결 풀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됐다, 고생한 게 자랑거리도 아니니. 다만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으면 한다.”

“응, 앞으론 절대 이런 일이 없을 거야.”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 아버지는 슬쩍 내 복장을 살피며 말했다.

“마법은 어디서 배운 게냐?”

“어, 그게···.”

나는 부모님께 사실을 어디까지 밝혀야 할지 계속 고민했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유적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 좋지만, 적어도 그것을 포장하기 위해 부모님에게만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권력자로서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거짓말을 많이 하게 될 테니까.

“꼭 답해야 하는 거야?”

뻔뻔한 물음이지만, 이건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가족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혹시라도 유적의 존재가 새어나가 누군가의 귀에 들어간다면 가족들이 위험해질 수 있으니, 이 사실은 오로지 나만 알고 있는 것이 나았다.

이런 내 반응에 아버지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지만 이내 무언가를 느끼셨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위험한 게 있구나.”

날카로운 지적에 나는 면목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나이에 이 능력은 말도 안 되는 거거든. 분명 이유를 파고들려는 사람들이 생기겠지. 그래서 아예 모르는 게 나을 거야.”

말을 잃은 아버지는 조용히 나를 응시했다.

“우리가 네 약점이 된 셈이군.”

날카로운 지적에 나는 말을 잃었고, 어머니 또한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입을 꾹 닫고 우리를 바라봤다.

나는 조심히 입을 열었다.

“아니, 오히려 내가 가족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인 거지.”

어머니는 그렇지 않다며 내 손을 잡으셨지만, 나는 딱히 지금까지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고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걱정 마. 앞으로 누구도 우리 가족을 건드릴 수 없게 될 테니까.”

그리고 의문을 표하는 부모님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귀족이 될 생각이거든. 국왕조차 어려워할 거대귀족이.”

“뭐?”

***

“다리우스 백작이 드디어 미친 건가!”

쾅!

동맹국인 알카즈 왕국과 국경을 맞댄 마드세인의 남부는 칼바도스 제국과 국경을 맞댄 북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지들의 규모가 작고, 영주들의 군사력도 그리 강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왕실에서 오랜 세월 북부에 많은 자금을 투입하고, 국군을 집중 배치시키다 보니 생겨난 격차인데, 지금에 와선 그 격차가 너무 커져 자신이 바친 세금이 북부에 쓰임에도 남부의 귀족들은 불평불만을 내뱉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현실적인 판단도 그렇지만 대귀족이 많은 북부와 마찰이 생길 경우, 마드세인에선 몰락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마드세인 남부의 귀족들은 점차 중앙의 권력에서 밀려났고, 자신의 영지를 가꾸며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지금 자신의 서재에서 책상을 내리치며 성을 내리고 있는 카이도 남작 역시 전형적인 남부의 귀족 중 한 명이었다.

오늘도 평소처럼 유유자적 축음기로 음악을 들으며, 취미로 수집하는 고가의 마력 총을 다듬던 카이도 남작은 뜬금없이 왕실에서 날아온 서한에 비명을 지르듯 성을 냈다.

[영지전 공문]

다리우스 백작령과 카이도 남작령의 영지전을 허가한다.

개전일시: 신력 2210년 5월 20일

감독: 행정부 차관 마르티스 자작

허가자: 재상 아인트 공작

짧지만 그 어느 것보다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부들부들.

“영지전, 영지전이라니!”

영지전은 근 20년 동안 마드세인에서 단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

북쪽에 침략자가 호시탐탐 나라를 노리는데, 어찌 내부의 같은 편끼리 전력을 갉아먹는단 말인가.

때문에 어중간한 이유로는 영지전을 신청하지도 않았고, 신청을 받는다고 해도 왕실에서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런 트러블이 없는 다리우스 백작령에서 대뜸 영지전을 신청하고, 자신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허가가 내려오다니, 비상식적인 상황이다.

다리우스 백작의 세력이 대귀족 중엔 가장 약한 축에 속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백작이란 작위를 가진 이 나라에서 15명밖에 되지 않는 대귀족이다.

남부의 남작이 싸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20년 만에 벌어지는 영지 전을 이렇게 졸속으로 처리하다니.”

뭔가 음모가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카이도 남작은 바로 왕실 행정부에 통신을 넣어 영지전의 취소를 요청했지만, 요구는 받아지지 않았다.

그에 카이도 남작은 수정구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중년의 사내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어째서입니까!”

이번 영지전을 감독하게 된 행정부 차관 마르티스 자작은 카이도 남작의 서슬퍼런 모습에도 눈 깜짝하지 않고 여유롭게 답했다.

[자네가 다리우스 백작령에 침범해 은을 채굴하고 있지 않나? 이게 훌륭한 전쟁 사유가 아니면 뭔가.]

“제가 다리우스 백작령을 침범했다고요?”

카이도 남작은 이게 뭔 개소린가 싶어 기억을 되짚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자신의 영지 외곽인 아주 작은 규모의 은광산을 발견한 것을 떠올리고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무슨, 그곳은 백작령이 아닌 저의 영지입니다! 그런데 영지 침범이라뇨?”

그곳이 다리우스 백작령과 근접한 곳이긴 하지만, 엄연히 자신의 영지였다.

카이도 남작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지만, 마르티스 남작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자네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그곳은 다리우스 백작령이 맞네. 이미 조사까지 완료한 상황이야.]

“아니 누가 내 땅과 남의 땅을 착각한단 겁니까? 제가 확인 안 하고 채굴을 시작했을 것 같아요? 그곳은 제가 영지를 물려받을 때 왕실의 확인을 받은 분명한 제 땅입니다! 서류에도 확실하게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서류는 행정부에서 발부한 거고요!”

[서류를 작성하는 것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하기 나름이지, 흔히 있는 일이네.]

“실수? 흔히 있는 일? 이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끝낼 일입니까? 애초에 그 광산은 매장량이 적어서 적자라고요!”

[사정이 안타깝게 됐군.]

남작은 당장이라도 통신구를 부숴버리고 싶었지만, 애써 분노를 삼키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그 토지를 백작께 반환하고 그동안 채굴한 은도 모두 돌려드리겠습니다. 또 백작님이 기분이 상하셨다면 그에 따른 보상도 하죠. 차관님의 말씀대로 이번 일이 행정부의 실수에 의한 거라면 중재를 해주시겠죠?”

논리적인 남작의 말에도 어째서인지 수정구 너머의 자작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지만 도움을 줄 수 없겠구만. 이건 결정 사안이네.]

그에 남작은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어떤 증거를 들이밀어도 소용없을 거라고.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영지전을 진행할 셈이다.

“폐하께서도 알고 계십니까?”

[물론.]

입술을 깨문 남작의 입가로 핏물이 흘러내렸다.

“씨발!”

그리고 분을 감추지 못한 그는 결국 통신구를 깨고 말았다.

백작씩이나 돼서 뭐 먹을 게 있다고 이런 작은 영지를 노린단 말인가.

“분명 방금까지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는데.”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영지전을 시작한다면 길게 생각할 것 없는 필패다.

병력의 숫자만 해도 10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데다가 다리우스 백작은 꼴에 대귀족이라고 제대로 된 기사단과 마법 병단까지 갖고 있는지라, 군사력의 격차는 월등했다.

“마드세인을 떠야 하냐.”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끝까지 영지를 지키다가 패하면 가문의 남자들은 모조리 죽고 부인과 딸들은 모두 백작의 노리개가 되고 말 것이다.

“다리우스 그 변태새끼에게 부인과 딸을 건네느니 도망치고 말지.”

사실은 부인이나 딸보다 자신의 안위가 중요한 그였지만, 적어도 남작은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했다.

“그래 씨발 뜨자. 내 재산이면 다른 나라에서도 준남작의 작위는 살 수 있을 테니.”

그는 영지전을 치르기보단 망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라가 자신을 버렸는데, 자신이 충성을 바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깝지 않나요? 작위와 영지를 버리다니.”

“!!!!!!”

하지만 그때였다.

자신 이외에 아무도 없는 서재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

전쟁 (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