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12화 (12/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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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전쟁

    발티스 남작령의 노라 마을은 영지 외곽에 위치한 아주 작은 농가이다.

    그런 농가가 한 달에 한 번 활기를 띠는 날이 있는데, 바로 마을에 생필품을 팔러오는 상인이 들릴 때다.

    이땐 인근 화전민 마을의 주민까지 몰리면서 작은 장터가 만들어지는데, 상인과 주민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흥정하는 모습은 평소엔 볼 수 없는 구경거리였다.

    “이야기 들었는가? 요즘 칼바도스 제국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구먼.”

    “녀석들이 언제는 조용했나?”

    “아니야, 이번에는 정말 심상치 않아. 황제가 제국 안에 다른 왕은 필요 없다며, 스스로를 왕으로 칭하는 대공가를 해체하고 있다는군. 실리스 대공국은 이미 황제직할령으로 편입되었고, 네이아 대공국도 풍전등화 상태라네.”

    “뭐? 그럼 대공가는? 실리스 대공은 황제의 외할아버지로 알고 있는데?”

    “황족이나 왕족들의 싸움이라면 뻔하지, 숙청밖에 더 있나? 자기 어머니만 빼고 가문의 구성원을 싸그리 처형한다는군.”

    “무섭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지?”

    “대국 황제의 뜻을 어찌 알겠나, 다만 제국이 내부를 정리하는 이유가 힘을 외부로 표출하기 위함이라는 말들이 많아. 칼바도스 제국이 정복 전쟁을 한다면 제1 목표가 어디겠는가?”

    “허··· 설마?”

    “그래 맞아, 바로 이 마드세인이지.”

    “그것 때문에 상회에서 본부를 위스워드 제국이나 케일론 왕국으로 옮기겠다고 난리야.”

    그것은 임시로 만들어진 노라 마을 야외 식당에서 앉아 있던 상인들이 나누는 대화였다.

    대화를 들은 주민들은 겁에 질릴 수밖에 없는 내용이지만, 모두 제 살기 바쁜 사람들인지라 구름 위의 이야기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이번에 마드세인 왕실에서 칼바도스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대대적인 전력증강에 나선다는군.”

    두 상인은 무식한 농가 주민들 사이에서 마치 뭐라도 된 것 마냥, 나라의 정세를 들먹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토론을 가장한 잘난 척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응?”

    그들은 유유히 장터를 가로질러 자신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소년으로 인해 목소리를 낮춰야 했다.

    짙은 금발의 푸른 눈동자.

    여자 깨나 울릴법한 곱상한 외모와 새하얀 피부.

    전신을 덮고 있는 흰색 로브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은실로 수 놓인 마법진 같은 문양은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상인으로서 평가하건대, 저 로브는 금화 한두 닢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신발은 물론, 로브 자락이 펄럭일 때마다 살짝 보이는 안쪽의 검은색 옷도 절대로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귀족가 자제 아닌가?”

    “수행원도 없는데?”

    나이는 이제 겨우 11~12살 정도 되었을까?

    모두가 햇볕에 탄 피부에 빛바랜 회색과 갈색의 옷을 입고 있다 보니, 새하얀 소년의 모습은 더욱 눈에 띄었다.

    힐끔.

    잠시 후, 그 소년은 상인을 살짝 바라보고는 그대로 지나쳤다.

    그런데 잠깐 마주한 눈빛이 어찌나 매서운지, 두 사람은 잘 못 걸린 거 아닌가란 생각에 걱정이 밀려왔다.

    “귀족 맞는 거 같아. 눈빛이 보통이 아니었어.”

    “피부가 어떻게 저렇게 하얄 수 있지, 햇빛을 안 보고 살았나?”

    “지금 그게 중요한가? 우리가 실수한 게 있으면 얼른 가서 사과해야지!”

    “그, 그렇지.”

    두 사람은 얼른 소년의 뒤를 쫓았다.

    “어디 갔지?”

    하지만 그것도 잠깐, 분명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던 소년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덕분에 소년의 뒤를 쫓던 두 상인은 귀신에 홀린 듯 벙찐 표정을 지어야 했다.

    *

    “세라드의 얼굴이 도통 펴지지가 않는군.”

    “그래, 아들 녀석이 사라진 후 계속 저 상태지.”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노년의 부부는 마당에서 묵묵히 땔감을 패는 옆집의 세라드를 보며 안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루이스 녀석이 가출하고 벌써 5년째던가? 또래에 비해 똘똘했다고 생각했지만, 조막만 한 어린애가 가출이라니.”

    “분명 상인 녀석들이 헛바람을 넣은 걸게야. 루이스 녀석이 외부인과 이야기하는 걸 워낙 좋아했으니.”

    짧게 혀를 찬 노년의 부부는 짐을 내려놓고 집 앞 의자에 앉아 계속 세라드를 바라보았다.

    “차라리 자식을 눈앞에서 잃으면 마음이라도 정리하지, 이건 너무한 방식이야. 세라드 녀석은 빌름에서 날아온 편지 때문에 아직도 루이스가 살아있다고 믿는 것 같아.”

    “에잉, 어느 녀석이 장난을 친 건지. 그 아이가 어떻게 빌름까지 가겠나?”

    “글씨가 가출할 때 남긴 것과 똑같다고 하던데···.”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지. 비싼 송달료와 종잇값을 그 아이가 어떻게 내?”

    부정적인 할아버지의 반응에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호통치고 싶지만 솔직히 할머니의 생각도 남편과 비슷했다.

    “그나마 에리스가 태어나 다행이지. 만약 에리스가 없었으면 세라드는 그대로 무너졌을지도 몰라.”

    “그건 그래, 에리스라도 있어서 다행이야.”

    땔감을 정리한 세라드가 자신의 집으로 사라지자 노부부도 씁쓸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리스가 누구에요?”

    “엄마나!”

    그런데, 그때였다.

    언제부터 거깄었는지 새하얀 로브를 걸친 소년이 놀란 표정으로 뒤에서 노부부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 공자는 뉘슈?”

    누군진 몰라도 두르고 있는 복장을 봐선 귀한 댁 자제일 것이 분명했다.

    더구나 고생이란 것을 모르고 자란 듯 새하얀 피부는 입고 있는 새하얀 로브와 함께 빛이 나는 듯했다.

    “크리스 할아버지 저에요. 세라드 아들 루이스.”

    “······.”

    하지만 소년의 말에 두 사람은 뭐에 홀린 듯 말을 잃었다.

    “뭐, 들어가 보면 알려나? 역시 혼나겠죠?”

    뒤통수를 긁적인 소년은 도둑질하듯 조심히 옆집으로 다가가더니, 창문을 통해 내부의 동향을 살피곤 살며시 문을 열었다.

    “엄마, 아빠 저 왔어요.”

    그 소년이 그대로 옆집으로 들어가자, 노부부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세상에.”

    ***

    몸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볍고, 정신은 이 세계를 넘어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것이 트레이닝 캡슐을 먹고 긴 잠에 빠져들었을 때 느낀 감상이었다.

    사고는 끊임없이 확장에 확장을 거듭해 온전한 정신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엄청난 정보들을 머릿속에 쑤셔 넣고, 오랫동안 잊고 산 지구의 수학 공식이라던가, 살아오면서 접한 사소한 기억까지 모두 되살아났다.

    더불어 세상이란 존재는 내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왔다.

    나는 누구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세계는 왜 존재하는가 같은 철학적인 내용부터.

    분리, 분해, 공간, 시간, 균형 등, 답하기 난해한 공학적인 질문까지 말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질문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몇 개의 문제를 풀었을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철학적인 물음에 내가 나 자신의 존재를 잊어 갈 때쯤, V1의 기상 알람이 울렸고 5년의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 현실로 되돌아 왔다.

    정신을 수습하지 못해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던 나를 깨운 것은 심장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힘의 파장이었다.

    달랑 두 개뿐이던 마나 서클이 심장에 가득했다.

    “대박···. 대박!”

    이내 웃음을 터뜨린 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방안을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감정이 복받쳐 무릎을 꿇은 나는 한바탕 눈물을 쏟아냈다.

    그건 통탄의 눈물이 아닌, 순수한 기쁨의 눈물이었다.

    트레이닝 캡슐을 통해 5년을 훈련하여 이룩한 성과는 그야말로 대성공.

    지금 내 심장엔 무려 7개의 서클이 존재했다.

    2서클에 불과하던 내가 대마법사의 반열에 든 것이다.

    그 후 공복도 잊고 바로 마도서를 펼쳐 든 나는 머릿속에 마법 주문과 공식을 때려 넣었다.

    이미 원리를 모두 이해한 데다가, 크게 확장한 사고력으로 하루도 걸리지 않아 20여 개의 주요 마법을 숙지할 수 있었다.

    나는 깨끗하게 씻고 제대로 복장을 갖춰 입은 뒤, 유적으로 고향의 좌표를 검색해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그리고 5년 만에 돌아오게 된 고향은 정말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마치 빛바랜 오랜 사진 속의 풍경 같았다.

    “엄마, 아빠 저 왔어요.”

    나는 익숙한 현관문을 조심히 열고는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다행인지 아쉬운 건지는 몰라도 거실엔 아무도 없었다.

    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혼날 걸 직감한 아이처럼 머쓱한 표정으로 집안에 들어선 나는 두 분의 존재감이 느껴지는 안방으로 이동했다.

    끼익.

    낡은 나무의 마찰음과 함께, 예고 없이 안방 문이 열렸다.

    “어떡해, 오한이 심해. 난로를 피운다고 해결될 것 같지 않아.”

    “알았어. 마침 장이 열렸으니, 에리스에게 들을만한 약초를···.”

    다급해 보이는 부모님의 모습.

    그러나 이내 나를 발견한 두 분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루이스?”

    불신 섞인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는 아버지와 눈을 비비는 어머니의 모습에 나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네, 그동안 사정이 있어서 연락을···.”

    막상 부모님을 눈앞에 두게 되니 변명거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어리바리하게 행동하는 나에게 두 분은 잔뜩 성이 난 표정으로 따귀를 날리셨다.

    아버지는 오른쪽 뺨, 어머니는 왼쪽 뺨, 이렇게 동시에 말이다.

    그리고 ‘아야’란 소리를 내뱉기 전에 두 분은 거칠게 나를 끌어안으셨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루이스 맞지? 엄마가 꿈꾸는 거 아니지?”

    표정 변화가 없는 아버지는 눈에 띄게 안도한 표정을 지으시고, 살이 많이 빠진 어머니는 펑펑 눈물을 흘리며 내 로브 자락을 적시셨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그렇게 한참 감격의 상봉을 만끽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뭔가가 떠올랐는지 다시금 표정을 굳히며 내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지금 네 동생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동생이요?”

    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온 동생이란 낯선 단어에 나는 두 눈을 껌뻑거리며 안방을 바라보았고, 그곳에 작은 아이가 누워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전생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가족의 등장에 나는 혼란스런 표정을 지어야 했다.

    나로 인해 다른 미래가 만들어진 걸까?

    내게 동생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다.

    “잠깐 기다리고 있으렴. 미안하다.”

    재차 미안하다며 내 어깨를 두드린 아버지는 동생의 약을 구하기 위함인지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자, 잠깐만요.”

    나는 그런 아버지를 말리며 말했다.

    “제가 치료할 수 있어요.”

    “뭐?

    내 말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셨고, 나는 동생이란 낯선 아이에게 다가갔다.

    작고 귀여운 여자아이, 이제 4살쯤 되었을까?

    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앓는 소리를 내는 녀석의 이마를 짚으며 마법을 사용했다.

    “리커버리.”

    파악!

    내 발밑으로 푸른색의 거대한 마법진이 생성되더니 방안 전체를 뒤덮은 순백의 빛이 폭사 되었다.

    어떤 질병인지는 몰라도 7서클의 리커버리로 치료 못 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7서클 마법이라 하면 인간의 수준을 초월한 힘.

    이 마드세인 왕국에도 단 한 명만이 7서클의 마법을 구사할 수 있었다.

    곧 빛이 사라지고 완전히 시력을 회복한 부모님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아 가는 동생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뒤늦게 상황을 이해하고는 놀란 표정을 지으셨다.

    “원래 철없는 아들이 떳떳하게 고향에 돌아올 땐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잖아요.”

    나는 그런 두 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

    전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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