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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11화 (1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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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 앞에서 폭발하는 4클래스 급의 익스플로전.

    아무런 기척 없이 작렬하는 공격에 루시엘라는 맥없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윽···.”

    그녀는 온갖 수단을 썼음에도 흔적도 없는 출입문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젠장.”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수만 년이 지난 유적이기에 ‘혹시나’란 생각으로 달려들었으나 결론은 ‘역시나’였다.

    다만 생각보다 유적의 반격이 강하지 않아 꽤 오랜 시간 두들기게 되었지만, 이대로라면 몇 날 며칠 동안 마법을 쏟아부어도 흠집 하나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 그녀는 유적을 등지고 토굴을 벗어나야 했다.

    “공격을 안 하네?”

    후퇴를 결정하자마자 멈춘 공격.

    아까부터 계속 이런 식이었다.

    에너지를 아끼는 건지, 공격시스템에 이상이 있는 건지, 거창했던 경고와 달리 유적은 루시엘라를 직접 노리지 않고 마치 쫓아내듯이 주변만 공격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인데···. 이제 어떻게 한다?”

    먼지 투성이가 된 그녀는 토굴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이미 인간의 손에 넘어갔다고 봐야겠지만, 경비가 허술한 걸 봐선 국가가 아닌 개인이 차지한 걸 수도 있겠어.”

    그녀는 결국 하이랜드 엘븐킹덤에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만약 인간이 이 유적을 차지하고 있다면 뺏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나날이 강성해지는 미드랜드의 인간세력.

    실제 그녀의 눈으로 관찰한 인간의 기술력은 큰 진보를 이룬 상태였고, 군사기술 부분에선 상당 부분 하이랜드를 따라왔다고 판단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기술을 문명 전체에 분배할 생각을 안 하고 권력자들이 자신의 세력을 보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같은 종족끼리 나라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물고 뜯기 바쁘기에 이종족을 신경 쓰지 못하고 있지만, 만약 인간 사회가 하나로 뭉쳐지면 하이랜드의 위협이 될 게 분명했다.

    하이랜드의 엘프와 드워프는 마도제국을 이끈 하이엘프와 하이드워프의 후손들이다.

    그래서 수만 년 동안 드래곤의 눈치를 살피며 스스로의 발전을 제한해왔는데, 인간들이 더이상 이 방식을 고수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이랜드에선 마도 기술의 진보를 미드랜드에 대한 대응 카드로 꺼냈고, 마도시대의 유적을 손에 넣기 위해 미드랜드 곳곳에 루시엘라와 같은 유적 조사관을 파견했다.

    누구는 이런 생각을 지나친 발상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최악의 상황은 항상 염두에 둬야 하는 법.

    루시엘라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네, 루시엘라님. 본청 상황실입니다.]

    “보고드립니다. 온전한 형태의 마도시대 병기고 V1-12 발견. 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먼저 관리자 등록을 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관리자를 비롯한 경비 인력이 배치돼있지 않은 것을 보아 개인이 차지했을 가능성이 높아 강탈을 제안합니다. 강탈을 위해 8클래스 마법사의 파견 또는 헬파이어 스크롤의 복수지급을 요청합니다.”

    모든 정황을 닮은 짧은 보고에 상대 통신원이 작게 앓는 소리를 내고는 잠시만 기다리라며 통신을 끊었다.

    그리고 다시 연결된 통신에 그녀의 표정이 몹시 밝아졌다.

    [좌표와 함께 텔레포트 유도 장비를 설치해 주시기 바랍니다. 청장님께서 직접 가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마법성 청장이라면 루시엘라의 최고 상관이자, 엘프왕국의 중추인 10장로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존재가 직접 움직이는 모습이 인간의 권력자들과 상당히 다른 부분이었다.

    지시대로 좌표를 보내고 텔레포트 유도 장비를 설치한 그녀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잠시 후.

    하늘에서부터 수직으로 떨어지는 푸른 빛과 함께 잘 생긴 청년 한 명이 나타났다.

    “아빠!”

    “성인이 된 녀석이 아빠가 뭐야?”

    루시엘라의 모습에 새롭게 등장한 청년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유적은 어딨는 게냐?”

    8클래스 마스터인 자신의 아버지조차 유적의 위치를 잡지 못하자 루시엘라는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지어야 했다.

    “저기, 굴로 들러가면 나와.”

    “이 정도까지 완벽하게 은폐기능을 가진 유적은 처음이군.”

    그들이 마도시대를 이끌던 하이 엘프의 후손이라 해도 이미 수만 년이 지난 상황이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마도시대에 대해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은 게 당연했다.

    “쯧, 굴 좀 넓게 뚫어 놓을 것이지.”

    루시엘라와 그녀의 아버지가 함께 좁은 굴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크게 당황했다.

    “어?”

    “어?”

    동시에 터져 나온 의문성.

    엘프 부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유적 어디 갔어?”

    “그러게···. 방금까지 있었는데?”

    이들의 눈앞엔 거대한 빈 공동만이 있을 뿐, 유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설마, 마도시대 시설은 이동도 할 수 있어?”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 후 두 사람을 주변을 이 잡듯이 탐사했지만 결국 유적을 발견하지 못했고, 루시엘라는 헛걸음을 하게 된 아버지에게 일 처리를 똑바로 못한다며 꾸중을 들어야 했다.

    루시엘라의 가장 큰 실수는 루이스를 구해준 것이었다.

    ***

    [침입자가 퇴각 중입니다.]

    다행이다.

    이대로 루시엘라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제안, 시설의 이동. 본 시설은 보유 중인 마나의 50%를 활용하여 자체적인 텔레포트를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침입자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더욱 은밀한 장소로 이동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런데 이어진 V1의 제안에 나는 놀란 표정을 지어야 했다.

    “이 큰 시설이 텔레포트를 할 수 있다고?”

    [그렇습니다. 다만 이동 거리는 한정적이며, 100km가 넘는 지점은 마력 관리 프로그램에 의해 제한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동하는 것이 좋겠지.

    루시엘라가 혹시라도 다른 동료들을 끌고 올 수도 있고, 나중에 가선 트리우스 백작이 이곳을 발견할 테니.

    “좋아.”

    [위치를 설정해 주십시오.]

    나는 어디로 이동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바로 옆 영지의 호수 밑으로 장소를 정했다.

    텔레포트에 이동 거리 제한이 없었으면 내가 살던 마을로 가는 건데 아쉽게 됐다.

    [이동 완료. 시설의 출입로를 확보합니다.]

    “벌써?”

    뭔가 거대한 마나가 움직이는 것 같다 싶었는데, 이렇게 간단히 이동이 이뤄지다니.

    “이제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가 없어져서 좋긴 하네.”

    나는 헛웃음을 흘리고는 기밀창고에 챙긴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아쉽게도 기밀품 창고에는 남은 물건이 많지 않았는데, 그마저 대부분이 서류였고 내게 도움이 될만한 것은 딱 세 개뿐이었다.

    [트레이닝 캡슐]

    -브릴란테 제국의 기술력이 집결된 육성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의 보조를 받을 경우 빠르게 능력치를 끌어 올릴 수 있다. (흡수형, 재사용 불가)

    [제국 표준 마도서 1~5단계]

    -브릴란테 제국의 마법부에서 교부한 표준 마도서. 1단계부터 5단계까지의 마법이 담겨 있다.

    [황실 마탑 고급 마도서 6~8단계]

    -브릴란테 제국의 황실 마탑에서 정리한 고급 마도서. 6단계부터 8단계까지의 마법이 담겨 있다.

    그런데 그 세 개의 물건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다.

    은색의 금속 케이스 안에 낱개 포장된 알약 2개와 무려 8서클까지의 마도시대 마도서가 나왔다.

    트레이닝 캡슐도 대단한 물건이지만, 마도시대의 마도서가 이 유적의 진정한 보물이 아닐까?

    나는 바로 제국 표준 마도서를 펼쳐 1~2단계의 마법을 살폈고, 생전 처음 보는 마법들을 발견했다.

    [1단계 차징 마나]

    -소모된 마나를 충전한다. 움직일 경우 해제.

    [2단계 마나 펜]

    -허공에 마나로 그림을 그린다. 마법진에 적용 가능.

    [2단계 부스터]

    -발현마법에 해당 주문을 머리말에 결합하면 마나의 소모량만큼 마법의 위력이 증가한다. (접두사 마법)

    이외에도 여러 개가 있지만, 이것들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부스터라는 접두사 마법이었는데, 더블 캐스팅이 아닌 결합 마법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발상이었다.

    비록 2서클의 원리가 결합이긴 한데, 설마 이런 형태가 존재한다니, 마력만 받쳐주면 2서클 마법으로도 3서클 이상의 위력을 낼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아마 이것을 당장 학회에 발표하면 난리가 날 게 분명하다.

    “한순간에 마도서 걱정이 없어졌네.”

    마도서는 마법사의 보물.

    5서클 이상은 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현존하는 어떤 것보다 뛰어난 마도서를 8클래스까지 손에 넣었다.

    나는 작은 두 주먹을 불끈 말아쥐었다.

    기밀품 창고를 둘러본 나는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식료품 창고는 관심이 없고, 보급품 창고로 가니 그곳엔 일상용품부터 군복까지 다양한 물건이 쌓여 있었다.

    지금까지 발을 들인 공간 중 가장 물품의 양이 풍족했는데, 마법적 처리를 거쳤는지 모든 물건이 깨끗하고 새것 같아 사용에 무리가 없어 보였다.

    더구나 의복류는 하나같이 고급스러운 게 이대로 갖다 팔기만 해도 꽤 큰돈이 될 것 같았다.

    마도시대에 하이 드워프란 종족이 있다고 들었는데, 덕분에 내가 입을 수 있는 사이즈의 옷도 꽤 많았다.

    빌름에서 구입한 땀내나는 속옷을 벗은 나는 새것으로 갈아입고, 마지막 장소인 주거구로 이동했다.

    나는 주거구역에서 마도시대 사람들의 생활 양식을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호텔방처럼 아늑하게 꾸며진 간부의 방엔 TV와 냉장고 같은 물건도 있는 반면, 2층 침대가 줄지어 있는 병사 생활관은 지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다.

    다만 평범해 보이는 2층 침대 역시 아티팩트였는데, 라이트, 블라인드, 사일런트 등 병사들의 편의를 위한 기능이 달려있었다.

    확실히 마도시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실생활에까지 마법이 깊이 침투해 있는 모습이다.

    나는 주거시설에서 적지 않은 마도시대의 주화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특히 장교 방의 금고에는 금괴뿐만 아니라 미스릴 주괴까지 있었는데, 루시엘라에게 엘프는 금전에 욕심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의외였다.

    “나야 좋지.”

    탐사를 마친 나는 유적에서 가장 좋은 방을 차지하고 앉았다.

    그리고 어느새 익숙해진 아공간에서 작은 은색 케이스 꺼내 들었다.

    [트레이닝 캡슐]

    “관광객 기분을 내는 것도 여기까지.”

    당장 이 유적의 물건만 팔아도 평생을 다 못 쓸 재력을 얻을 수 있겠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재력가가 아니다.

    많은 재산을 얻게 되면 필연적으로 쥐새끼들이 붙기 마련.

    나는 그런 것들에 휘둘리지 않는 힘을 원했다.

    재력과 무력, 세력의 합성어라 할 수 있는 ‘권력’. 그게 내 목표다.

    하지만 나 같은 농부의 자식이 권력자 되기 위해선 누구에게도 꿇리지 않는 능력치가 필요한데, 이 알약이 그것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트레이닝 캡슐을 섭취하게 되면 신진대사가 느려져 음식물 섭취 없이도 이론상 5년을 살 수 있습니다. 트레이닝 캡슐은 중복 섭취가 불가능하며, 한번 깨어나게 되면 약효가 사라지오니, 만반의 준비를 하시고 섭취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뭐야 그 말은 약효 떨어질 때까지 일어날 생각 말라는 거야?”

    [타이머 설정은 최대 5년까지 가능합니다. 원하는 기상 시간을 알려주세요.]

    졸지에 잠자는 숲속의 공주 꼴이 나게 생겼다.

    “5년이나 수련하는 게 가능하다면 왜 트리우스 백작가 차남은 3년만 한 거지?”

    혹시 이런 설명을 해주는 V1이 없어서 그랬나?

    뒤통수를 긁적인 나는 짧게 혀를 차며 가방에서 건빵을 왕창 꺼내 먹고는 물도 한가득 마셨다.

    “대소변은 어떻게 해?”

    [클리닉 장비를 이용하면 처리 가능합니다.]

    치익.

    내 허락 없이 방안으로 바퀴 달린 상자가 들어왔다.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인 나는 이내 결심했다는 표정으로 알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기상 시간은 최대로.”

    예상했던 3년보다 2년이 늘어나긴 했지만, 그로 인해 내 능력치가 더 높아진다면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

    [타이머 설정 완료. 지금으로부터 5년 뒤로 기상 설정을······.]

    ***

    전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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