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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6화 (6/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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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나를 끌고 들어온 곳은 공교롭게도 어제 내가 마법으로 목욕을 했던 그 골목이었다.

    봇짐이 그대로 있는 걸 보면 너무 더러워서 아무도 가져갈 엄두가 나지 않은 모양이다.

    “자, 가진 거 다 내놔봐.”

    참고 이 말은 건달들이 아닌, 내가 호기롭게 뱉은 대사였다.

    녀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자기들끼리 좋다고 껄껄 웃기 시작했다.

    “애새끼가 사람 웃길 줄 아네?”

    “이 형 대거 차고 있는 거 안 보여? 혓바닥 잘못 놀리다간 다신 말 못할 수가 있어.”

    이런 곳에서 뜸을 들일 생각이 전혀 없는 나는 웃으며 ‘바인드’를 사용했다.

    촤촤촥!

    “뭐, 뭐야?”

    자신의 동료들이 땅에서 솟아난 덩굴에 포박되자, 내 어깨를 짚고 있던 녀석이 헛바람을 삼키며 떨어졌다.

    차라리 그 상태로 대거를 휘두르는 편이 훨씬 위협적일 텐데.

    마법사에게서 거리를 벌리는 행동은 그냥 싸움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리스.”

    “컥!”

    쾅!

    바닥의 마찰계수를 0에 가깝게 만드는 그리스에 녀석은 앞으로 고꾸라지며 거하게 지면에 턱을 강하게 찍었다.

    개구리처럼 꿈틀대는 걸 보면 기절한 모양이다.

    역시 마법의 위력은 아이, 어른을 가리지 않아서 참 좋다.

    “놔! 놔!”

    “닥쳐. 그 이상 떠들면 머리에 구멍 뚫린다.”

    내 말에 바인드에 포박된 두 녀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기절한 녀석에게서 대거와 가죽주머니를 빼앗았다.

    “뭐야? 가짜 대거네?”

    “저, 저희 영지에선 흉기가 없으면 특수절도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모양만 그럴싸하게 해서···.”

    법이 무서워 흉기조차 갖고 다니지 않은 것을 보니, 이 녀석들이 단순한 양아치인 모양이다.

    나를 죽이겠다며 위협한 것도 돈을 뺏기 위해 겁을 준거지 누군가를 해할 배짱은 없어 보였다.

    나는 황당하단 표정으로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산적 때처럼 깔끔하게 죽이고 끝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힘이 빠진다.

    그리고 짧게 혀를 찬 나는 녀석들에게서 돈주머니를 마저 수거하고, 숨은 쉴 수 있게 목 아래까지만 땅속에 묻어 버렸다.

    “다음부터 착하게 사세요. 형들.”

    어제 버렸던 봇짐을 이용해 녀석들의 입을 틀어막은 나는 유유히 골목을 빠져나와 돈주머니를 살폈다.

    전부 합쳐 4실버 정도의 금액.

    “누구에게 뜯은 건가? 동네 양아치치곤 상당하네?”

    아직 깨지 않은 금화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이것만 있으면 충분히 나머지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황금 고블린 2호 덕에 아무 문제 없이 식량과 지도를 사고 부모님께 편지도 보낼 수 있었다.

    [빌름 운수조합]

    “트리우스까지 너 혼자? 에이, 안 돼!”

    그 후 나는 완벽하게 떠날 채비를 하고 혹시 마차를 이용할 수 있을까 싶어 조합을 찾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역시나 부정적이었다.

    “저 꼭 가야 돼요. 저희 할아버지가 트리우스 백작령 소속 마법사거든요. 아마 제가 도착하면 크게 사례하실 거에요.”

    어째 이 몸이 되고 거짓말만 느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연기를 아무리 잘한다고 해서 거짓말이 항상 통하는 건 아니었다.

    “무슨 이유가 됐건 안 된다. 10살도 안 돼 보이는 아이의 말만 듣고 다른 도시로 이동시킬 수 없어. 정 트리우스로 가고 싶으면 부모님을 모셔오거나, 그 할아버지한테 텔레포트 게이트 이용을 신청해달라고 하렴.”

    지극히 타당한 반응에 나는 속으로 혀를 차야 했다.

    혹시 금화를 내밀면 받아 줄까?

    그러나 끝내 금화는 꺼내지 못한 나는 별수 없이 운수조합을 벗어나야 했다.

    텔레포트 게이트 외에 빠르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마차뿐인데, 그 방법을 이용 못 하게 되었으니,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도보로 이동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물건을 이만큼 샀으니 써먹긴 해야겠지만, 솔직히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공원에서 한가로이 놀고 있는 커플을 50브론즈에 섭외해 도시를 나갈 때까지만 보호자인 척을 해달라고 했다.

    도시에 들어올 때와 달리 나갈 때는 따로 검문을 받지 않기 때문에,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무난하게 빌름을 나선 나는 커플에게 잔금을 치루고 바쁘게 걸음을 놀렸다.

    ***

    3. 엘프

    로이아스 대륙은 크게 세 개의 구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

    엘프와 드워프, 하플링처럼 창세기부터 이어져 온 신화 속 종족들의 땅 ‘하이랜드’.

    인간과 몬스터, 마수 등 호전적인 존재들이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혼돈의 땅 ‘미드랜드’.

    로이아스 대륙의 제일 문명이던 마도시대의 막을 강제로 내리고 수만 년 동안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드래곤들의 땅 ‘리모트랜드’까지.

    사실 몬스터나 마수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미드랜드’에 사는 드워프와 엘프도 있기에 절대적인 분류는 아니지만, 가이아 교단 신학서에 소개되는 로이아스 대륙의 설명을 보면 그렇게 서술되어 있다.

    세계에 존재하는 땅덩어리 중, 98%가 로이아스 대륙으로 이뤄져 있으며, 각 구역별 비율은 하이랜드가 15%, 미드랜드가 65%, 리모트랜드가 20% 정도이다.

    신의 영역에 도전했던 마도제국을 멸망시킨 드래곤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현재 로이아스 대륙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종족은 인간이 되었다.

    마도시대 자체가 하이엘프, 하이드워프, 거인족 등, 선천적으로 뛰어난 이종족을 중심으로 시작된 문명이기에 그들 후손의 땅인 하이랜드의 기술력은 굉장히 높았지만, 요 수천 년간 인간 문명이 급격히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면서 그 기술의 격차가 많이 좁혀진 상황이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같은 종족끼리 견제하고 물어뜯기에 여념이 없어 위협이 되지 않고 있지만, 만약 인간이란 종족이 하나로 뭉쳐 대륙 전체에 힘을 투사한다면 하이랜드는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문에 엘프와 드워프는 인간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한 눈과 귀를 미드랜드 곳곳에 심어 놓았다.

    그리고 인간의 문명이 마도시대의 유적을 해석할 정도까지 발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경계심은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이대로는 안 돼. 이대로 두었다간 인간들이 마도시대의 힘을 손에 넣을 것이다.’

    ‘인간에 의해 새로운 마도시대가 막을 연다면 멸종 직전까지 갔던 드래곤들이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엘프와 드워프는 소극적인 방식을 고쳐먹고, 정보원 외에 많은 수의 조사관을 은밀히 파견한다.

    그들의 역할은 미드 랜드 곳곳에 흩어진 마도시대의 유적을 인간보다 먼저 손에 넣는 것.

    마도시대의 기술을 최대한 수집해 축적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미드랜드의 인간 문명과 하이랜드의 기술력 차이는 다시 벌어질 테고, 만약에 대비한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동안 하이랜드는 드래곤의 눈치를 살피느라 스스로 발전을 제한해왔지만, 더는 그럴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직진: 트리우스 백작령 35km]

    검은색의 로브로 전신을 가린, 키 175 정도 가느다란 인형.

    로브 때문에 몸매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존재는 누가 봐도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선이 가늘었다.

    여성이 홀로 산책하듯 한적한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보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걷고 있는 안전가도가 트리우스 백작령에서도 악명높은 오크 상습 출몰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안전 가도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멀지 않은 곳에 우회로가 위치 해있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걸이.

    주변의 숲과 꽃들을 눈에 담으며 걷는 모습이 영락없이 관광 온 사람의 모습이다.

    “음?”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의문을 표하며 고개를 팩 돌렸고, 머리를 덮고 있던 로브의 후드를 뒤로 젖혔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하늘색의 머리카락.

    짙은 녹색의 눈동자가 보석처럼 박힌, 새하얀 피부의 아름다운 얼굴.

    누가 봐도 감탄사를 쏟을 수밖에 없는 절세의 미인이 뾰족하게 솟은 귀를 쫑긋거렸다.

    “오크군.”

    그녀는 무표정하게 한마디 내뱉고는 다시 후드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빠르게 안전 가도를 달리는데, 그 속도가 가히 네발짐승에 비견되었다.

    쾅! 크아아아!

    머지않아 오크의 괴성이 울려 퍼지는 전투 현장에 도착한 그녀는 재빠르게 나무 위로 뛰어올라 몸을 숨겼다.

    “어?”

    이어서 상황을 살피는데, 그녀의 눈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이 들어왔다.

    자신의 허리까지밖에 안 올 것 같은 키.

    짙은 금발에 굳은 표정으로 몸을 굴리는 오크의 표적은 어린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던 것이다.

    처음엔 자신처럼 하이랜드에서 파견 나온 하플링인가 싶었지만, 생김새와 풍기는 기운을 봐선 절대 하이랜드의 종족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인간의 어린아이란 소린데, 놀랍게도 그의 심장에서 두 개의 마법 서클이 느껴졌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는 아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2클래스의 마법사라면 오크를 사냥하는 것이 가능하긴 해도 많은 경험과 센스가 필요한 일이다.

    그만큼 오크는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몬스터란 소리였는데, 세 마리가 포위하듯 달려드니 아이는 금방이라도 돌도끼에 피떡이 될 것만 같았다.

    어린아이가 2서클을 달성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성과지만, 전투에 능숙한 마법사가 아니라면 이 상황을 이겨내기란 불가능했다.

    “인간은 싫지만···. 아이는 죄가 없지.”

    그녀는 로브 안에서 반으로 접힌 활을 꺼냈다.

    버튼을 누르자 그 활은 길게 펼쳐져 온전한 형태를 갖추었고, 애기살 같은 짧은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걸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화살을 쏘지 않았다.

    왜냐면 그 아이가 능숙하게 마법을 조합해 오크 3마리를 순식간에 처리했기 때문이다.

    가장 압권은 1클래스 마법인 그리스와 스파이크의 조합으로 가볍게 오크 한 마리를 꼬치로 만들어버린 부분이었다.

    걱정이 무색해질 만큼 최소한의 마나로 오크 3마리를 단시간에 처치하는 모습은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2서클이 이렇게 대단한 거였나?”

    그녀가 화살 하나만 날려도 아이는 목숨을 잃겠지만, 적어도 오크나 고블린에게 목숨을 잃는 일은 없어 보였다.

    아이는 오크의 사체에서 돈이 될만한 것을 챙긴 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털썩.

    하지만 그 아이는 얼마 못 가 바닥에 쓰러지고 마는데.

    당황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달려가 아이를 부축했다.

    “정신··· 차려. 움직여···.”

    그 말은 여성이 아닌 아이가 내뱉는 말이었다.

    “······.”

    오크를 손쉽게 처치하던 늠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듯 행동을 강요하는 모습.

    가까이에서 마주한 아이는 완전히 피로에 찌들어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디그.”

    누군가가 자신을 부축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지, 아이는 이를 악물며 마법으로 땅을 팠다.

    아무래도 피냄새를 맡고 곧 나타날지 모르는 맹수의 공격을 피하려고 땅굴을 판 것 같았다.

    덕분에 예기치 못하게 흙먼지를 뒤집어썼지만,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하이랜드의 엘프 ‘루시엘라’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안심하고 쉬렴.”

    ***

    엘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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