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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마법사-5화 (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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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에엑!

    ‘쉴드’와 ‘바인드’, ‘파이어 애로우’를 번갈아가며 사용해 고블린 6마리를 처치한 나는 무릎을 짚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씨발 무슨 안전가도에···. 고블린이 이렇게 많아···.”

    플래시와 바인드 조합이 가장 쉽게 녀석들을 상대하는 방법이지만, 그것도 수가 4마리가 넘어가면 효율성이 떨어진다.

    때문에 이렇게 개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금 잡은 녀석까지 더하면 오늘 상대한 고블린의 수만 30마리는 되는 것 같다.

    유사인종 몬스터 중에 가장 약한 녀석이 고블린이긴 하지만, 내가 어린애라고 방심하지 않고 반쯤 짐승이나 다름없기에 오히려 산적보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것 같다.

    “마나스톤 원석.”

    더구나 전리품은 쥐뿔도 없다.

    가끔 광물을 손에 넣긴 하지만 그중에 돈 되는 것은 거의 없고, 이렇게 마나스톤이나 보석이 나오면 당첨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첨인 마나스톤도 워낙 품질이 낮아 가격으로 치면 2~3실버 정도의 값어치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정돈 귀족들의 탁상시계 배터리도 안되는 수준이다.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오늘따라 유독 짐이 무겁게 느껴진다.

    당장 자리에 쓰러져 쉬고 싶지만, 피 냄새 때문에 몬스터가 몰려올 수 있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이 저질 체력 같으니···.”

    7살짜리의 몸으로 하는 모험이 쉽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건 예상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다.

    가출 10일째.

    마치 땅이 나를 부르는 것처럼 체력이 한계에 다다랐다.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걷고, 중간중간 몬스터와 짐승이 달려들면 움직임이 느려 싸워야 한다.

    이게 10일째 계속되니, 지치는 것이 당연했다.

    마나샤워라도 하면 그 피로가 조금은 풀릴 텐데, 마나샤워를 하면 고급 몬스터를 끌어들일 가능성이 있기에 그냥 휴식으로만 체력을 회복해야 했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소도시 ‘빌름’이 나올 때가 됐는데?

    나는 정신력으로 피로를 물리치며 독한 눈빛을 흘렸다.

    이게 다 미래를 위해서다. 미래를 위해서.

    힘들 거란 사실은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애초에 어중간한 각오로 가출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니니까.

    전생에 부모님의 임종도 못 지켜드리고 나 또한 개처럼 끌려다니다가 전장에서 죽은 것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했다.

    “조금이라도 밝을 때 더 이동해야 돼.”

    밤이 되면 몬스터와 짐승들의 활동이 지금보다 훨씬 활발해진다.

    그래서 낮에 이동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이동하는 것이 중요했다.

    “어?”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굳건한 성벽의 눈에 들어왔다.

    “빌름이다!”

    나는 환희에 찬 표정을 지어야 했다.

    목표가 눈에 들어오니 마약이라도 한 듯 피로가 사라졌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 나는 머지않아 빌름 성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불쾌하단 표정에도 괘의치 않고 검문소 앞에 줄을 섰다.

    “뭐야 이 거지새낀?”

    그리고 다가온 내 차례.

    흉갑에 창을 든 병사가 나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대뜸 욕설을 내뱉었다.

    10살도 안 돼 보이는 녀석이 부모도 없이 거지꼴로 다가오니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했다.

    속으론 짜증이 났지만, 겉으론 헤픈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헤헤, 옆 도시인 베르트에서 왔습니다. 거긴 동업자가 너무 많아서.”

    나는 은화 세 개를 그에게 쥐여주었고, 힐끔 자신의 손을 바라본 그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린 거지 주제에 제법인데?”

    “생각보다 어리지 않습죠. 조상 중에 하플링의 피가 섞여 있어서요.”

    대답에 사실 여부는 상관없다.

    결국은 그의 마음에 드는 것이 중요했으니.

    만약 그가 정직한 사람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이 세상에 정직이란 단어와 친한 검문소 병사는 별로 없었다.

    “그럼 돈벌이가 아주 좋겠어.”

    “하하.”

    비굴하게 웃음을 흘리는 내 모습에 그는 코웃음을 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 대신 소란 피우다 잡히면, 돼지사료가 될 줄 알아.”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연신 숙여 보인 나는 그가 마음을 바꿀까 얼른 도시 안으로 들어섰고, 병사를 등지자마자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역시 이 세계는 썩었다.

    뭐 덕분에 오늘은 제대로 된 밥과 잠자리에 잘 수 있어서 좋지만.

    도시에 들린 김에 옷이랑 제대로 된 여행용품을 마련해야겠다.

    그리고 부모님께 살아있다고 안부 편지도 보내야지.

    일방적인 통보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부모님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 터.

    아마 겨우 7살인 내가 가출한 사건으로 집안은 완전히 뒤집혔을 것이다.

    괜히 위험한 짓은 안 하시면 좋으련만···.

    내가 도시에 들어서자 지평선 너머에 걸려 있던 태양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하늘은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도시여서 인지, 길 곳곳엔 어둠을 쫓은 가로등이 설치돼 있었다.

    내가 살던 촌구석과 다른 문명의 혜택.

    이건 영주가 영지민들에게 베푸는 아량과 같았다.

    “쉬고 싶지만··· 이 꼴로는 여관에 못 들어가겠지?”

    지금 내 꼴은 거지 그 자체.

    옷은 먼지와 진흙이 뒤섞여 엉망이고, 얼굴도 옷이나 다름없는 상황일 것이다.

    마나 소비를 최소화하려고 나 자신을 위해선 체온 유지와 식수 생성 외엔 마법을 쓰지 않았다.

    덕분에 이 꼴이 되었는데, 이젠 굳이 마나를 아낄 필요가 없었다.

    나는 인적이 드문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가 짐을 내려놓고 신나게 마법을 사용했다.

    워터, 워터, 버블, 워터, 워터, 드라이, 클린.

    아끼지 않고 마나를 사용한 덕분에 말끔해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체적으로 말끔해지긴 했지만, 옷이 해진 것만큼은 어떻게 고칠 수가 없었다.

    그나마 3일 전 산적 대장에게 얻은 머플러의 상태가 좋아서 그걸로 추레한 복장을 감췄다.

    나는 단검과 집에서 들고 온 나이프를 제외한 모든 짐을 그 자리에 버렸는데, 이김에 제대로 된 여행용품을 갖추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정말 산적을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덕분에 돈 걱정이 없어지지 않았는가.

    그들은 내게 황금 고블린과 같은 존재였다.

    “이 정도면 됐겠지.”

    나는 골목을 나와 메인도로를 따라 걸었다.

    이런 도시는 어딜 가나 구조가 비슷하다.

    굳이 사람들에게 묻지 않고도 어렵지 않게 여관을 찾아낸 나는 태연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여종업원이 힐끔 나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손님의 아이 정도로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종업원에게 1실버를 건네며 말했다.

    “하루 묵으려고 하는데요.”

    “응? 너 혼자니?”

    그때 서야 내가 손님이란 걸 알게 된 여종업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내 뒤를 바라보았다.

    “일단 지금은요. 아버지가 용병이신데 급히 일 보러 가셨거든요. 빠르면 오늘 올 수도 있고 늦으면 내일이나 모레 올 수도 있대요.”

    어린아이답게 배시시 웃으며 천연덕스럽게 답하자 그녀는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고 어른스러워라. 내 동생도 너처럼 똑 부러지면 좋을 텐데.”

    “헤헤.”

    억지웃음에 경련이 날 것 같지만 나는 최대한 어린아이다운 순진한 모습을 보였다.

    감사하게도 부모님이 준수한 외모를 물려주신 덕분에 이런 내 미소는 어른들에게 굉장히 잘 먹혔다.

    “그럼 2인실로 줄까?”

    나는 길게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지라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2인실 1박에 30브론즈고, 식사 포함하면 35브론즈야.”

    “식사는 따로 할게요.”

    “그래, 여기 거스름돈. 따라와 안내해 줄게.”

    “네.”

    그녀를 따라간 곳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2층의 구석방이었다.

    “목욕할 거면 아까 카운터로 와서 말하고.”

    “감사합니다.”

    예의 바른 게 좋다며 또 내 뺨을 꼬집은 그녀는 엉덩이를 씰룩이며 방을 나섰다.

    아마 그녀는 내가 자신의 엉덩이를 바라보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이제 쉬자.”

    비로소 제대로 된 잠자리를 손에 넣은 나는 방문을 잠근 뒤 너저분한 옷을 홀딱 벗고 침대에 뛰어들었다.

    지푸라기가 아닌 솜으로 만들어진 매트.

    매일 침대 시트와 이불 커버를 가는지 잠자리에서 잘 건조된 빨래 냄새가 났다.

    덕분에 눈이 자동으로 스르르 감겼다.

    “알람.”

    그래도 자기 전에 강도대비 안전장치를 잊지 않는 나였다.

    *

    다음날 아침.

    모처럼 제대로 된 침대에서 잠을 푹 자고 마나샤워까지 한 덕분에 완전히 컨디션을 회복한 나는 여관 식당으로 향했다.

    “205호 아이구나? 아버지가 결국 안 오셨나 보네.”

    식당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내게 다가온 중년의 여성이 메뉴판을 건네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자주 있는 일이라 신경 안 써요.”

    “정말 레나 말대로 어른스러운 아이네?”

    나는 미소에 미소로 답을 하고 눈을 반짝이며 메뉴판을 살폈다.

    “글자 읽을 줄 아니? 설명해 줄까?”

    메뉴판엔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그림이 첨부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겐 불필요한 배려다.

    “괜찮아요. 글자 알거든요. 이거 돼지 목살 바비큐 주세요.”

    음식값은 선불로 10브론즈를 지불했다.

    어제 종업원이 무슨 말을 했는진 몰라도, 그녀의 미소 속에 안쓰러움이 배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내 연기에 속고 있는 거니까.

    “조금만 기다리렴. 아줌마가 빵이랑 스프 서비스로 가져다줄게.”

    “감사합니다!”

    잠시 후, 내 앞으로 빵과 스프, 돼지 목살 바비큐가 더해진 그럴싸한 한 상이 차려졌다.

    크···. 이게 얼마 만에 먹는 제대로 된 고기인가?

    소금과 허브를 사용하여 화덕에서 구운 돼지 목살 바비큐는 한국에서 즐겨 먹는 삼겹살 구이와 맛이 비슷했다.

    겉은 바삭, 속은 촉촉.

    이 여관은 잠자리만 좋은 게 아니라 음식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허겁지겁 음식을 입안에 구겨 넣은 나는 빵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전부 먹어 치웠다.

    “잘 먹었습니다.”

    배를 두드린 나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게?”

    “네, 어차피 방에 있어 봤자 할 게 없으니까요.”

    “그래, 다녀오렴.”

    잠깐이 아니라 이대로 떠날 거지만, 나는 그냥 말이 길게 이어지지 않을 만한 대답을 했다.

    여관을 나서니, 어제저녁에 보았던 것과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구름 하나 없이 맑은 하늘 아래, 연노랑의 벽면과 붉은 지붕으로 색상을 맞춘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마치 서양식 풍경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모습.

    내가 살던 마을이 중세시대 느낌이라면 이곳은 르네상스 시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론, 대도시나 수도의 화려함과는 상대가 되지 않지만, 같은 하늘 아래 이렇게 문명의 격차가 심하다는 것이 씁쓸하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시민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이곳의 영주가 통치를 잘하는 모양이다.

    다들 표정도 밝고 행동에 목적이 있었다.

    나는 상점가로 걸음을 옮겼다.

    여행을 위해 오늘 사야 할 물건이 많다.

    마음 같아선 당장 텔레포트 게이트로 트리우스 백작령으로 바로 날아가고 싶지만, 텔레포트 게이트는 신분 검사가 까다롭기 때문에 이용이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나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의류점에 들어갔다.

    운 좋게도 그 의류점은 가죽 용품도 함께 판매하는 곳이었다.

    “가죽 신발이랑 천 신발, 여행용 배낭, 로브, 의류 2세트에 속옷 3개 사려고 하는데요. 돈 여깄어요.”

    “응? 어, 어. 그래, 알았어. 내가 고르는 거 도와주마.”

    가게 안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나를 바라보지도 않던 점원이 은화들을 보여주며 말을 걸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속옷은 부드러운 것 중에 제일 싼 걸로 고르고, 옷과 로브는 흙이 묻어도 잘 티가 안 날 갈색계열로 구입했다.

    신발은 가격이 좀 나가더라도 가장 편한 것, 단검을 걸기 좋은 가죽 벨트에 가장 작은 사이즈의 가죽 배낭까지 마련하니 쇼핑이 끝났다.

    그렇게 해서 나온 금액이 은화 5개.

    우리 집 한 달 생활비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었다.

    “고맙습니다, 또 오세요.”

    역시 돈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너무도 친절해진 점원이 존댓말까지 써가며 나를 배웅했다.

    갖고 있던 대거들과 가죽벨트, 로브를 가방에 쑤셔 넣은 나는 의류점 옆에 있던 잡화점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식기 용품과 침낭을 구매하고 부모님께 편지를 쓰기 위한 봉투와 노트, 비싸기 그지없는 볼펜까지 하나 샀다.

    고블린에게서 얻은 마나석 원석과 광석 쪼가리 덕분에 잡화점에서 구입한 물건은 따로 돈을 쓰지 않고 퉁 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금화를 깨야 하나?”

    지출이 생각보다 많아서, 지도와 식료품, 부모님께 편지를 보내기 위한 송달료가 부족했다.

    아니, 금화를 깨면 모든 것이 해결되지만, 지금 이 몸으로 금화를 은화로 바꾸면 괜히 안 좋게 엮일 가능성도 있었다.

    턱.

    “응?”

    그렇게 메인도로에 가만히 서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걸쳤다.

    “너구나, 돈 펑펑 써댄다는 어린놈이.”

    “누구세요?”

    내 물음에 험악한 인상을 가진 사내는 씨익 웃어 보이며 말했다.

    “조용히 따라와. 죽고 싶지 않으면.”

    아무래도 이 동네 건달인 모양이다.

    “······.”

    하긴 10살도 안 되는 어린 녀석이 보호자도 없이 돈을 펑펑 써대는데, 이런 녀석이 붙는 것도 당연했다.

    뒤를 보니 그의 일행으로 보이는 사내가 두 명이 더 있었는데, 어린아이를 상대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나는 거의 끌려가다시피 걸으며 작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마침 돈 때문에 곤란했는데 잘됐네.

    황금 고블린 2호의 등장이었다.

    엘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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