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점 마법사-4화 (4/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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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비

이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대륙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륙의 이름은 로이아스.

바다를 제외하면 세상의 98%가 이 로이아스 대륙이라 할 수 있는데, 창세기 이후 수십만 년 동안 오염되지 않은 환경과 충만한 마나 덕분에 다양한 생명이 넘쳐나는 축복받은 땅이다.

지구와 달리 로이아스에는 인간 외에 수많은 유사인종이 존재했다.

엘프와 드워프, 하플링처럼 지성과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인종과 고블린, 오크, 트롤 등 원시적인 문명에 낮은 지능, 광폭한 성향 탓에 몬스터로 분류되는 종까지 굉장히 다양하다.

엘프와 드워프, 하플링은 로이아스 대륙의 동쪽 끝에 있는 하이랜드라 불리는 곳에 영역을 구축하고 있지만, 가장 큰 영역인 미드랜드에는 인간과 몬스터가 혼재되어 있다.

미드랜드의 지배자는 인간이라 할 수 있지만,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엔 항상 유사인종 몬스터와 마수형 몬스터, 언데드형 몬스터가 넘쳐났으며, 가끔씩 몬스터의 준동으로 발생하는 웨이브는 인간의 문명을 위협하는 가장 큰 재앙과도 같았다.

그런데 인간들이 하나로 뭉쳐도 모자랄 판에 자기들끼리 패권싸움을 한다고 치고받는 걸 보면, 인간의 성향은 어쩌면 몬스터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이유?

그냥 그만큼 이 세상엔 어린 나를 위협하는 존재가 넘쳐난다는 뜻이다.

당연히 그 적이란 대부분 몬스터와 맹수를 의미하지만, 의외로 인간도 적지 않았다.

키에에엑!

마을을 나선 지 이틀째 되는 날.

사람이 만들어놓은 숲길을 따라 걷던 나는 예고 없이 튀어나오는 초록색 난쟁이 셋을 보며 혀를 찼다.

“왜 안 나오나 했다.”

로이아스 대륙에서 가장 흔한 몬스터이자, 유사인종 몬스터 중 가장 번식력이 좋은 바퀴벌레 같은 녀석들.

바로 고블린의 등장이었다.

고블린의 기습은 전생에도 몇 번이나 겪은 상황이기에 나는 익숙하게 마법을 사용했다.

“플래시.”

파앗!

시야를 빼앗는 섬광 마법에 녀석들은 하나같이 고통스레 바닥을 뒹굴렀다.

한 번에 세 마리가 모두 걸리다니 운이 좋다.

“바인드.”

덕분에 나는 여유롭게 녀석들을 포박했고, 녀석들에게 매직 미사일을 선물해 주었다.

안구를 관통한 매직 미사일은 그대로 뇌를 곤죽으로 만든다.

“기습하려면 조용히 기어 나오던가.”

덕분에 쉽게 고블린을 처리할 수 있었지만, 정말 무식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나는 녀석들에게서 뭔가 수습할 건 없는지 뒤져봤지만, 딱히 건질만 한 게 없어 보였다.

짧게 혀를 찬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2서클 마법사지만 나는 실전 경험이 풍부한 전투 마법사 출신이다.

겨우 고블린의 기습에 허둥댈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마나는 아낄 필요가 있겠어.”

생각해보면 녀석들을 바인드로 묶고 나서 추가로 매직 미사일 세 번을 사용하는 것보다 나이프로 목젖을 찌르는 게 나았을 것 같다.

전생과 달리 지금은 홀로 하는 여행인 만큼 마나 소비는 극도로 줄일 필요가 있으니까.

[왼쪽: 소도시 베르트, 데프, 가밀, 타밀]

[직진: 소도시 빌름]

잠시 후 갈림길이 나왔다.

정면엔 마차와 자동차가 다닐 수 있게 잘 닦인 안전가도가 있고, 왼쪽은 지금까지 걸어온 것처럼 한적한 숲길이다.

겉보기엔 안전 가도가 안전해 보이지만, 실상 안전한 것은 왼쪽 숲길이다.

왜냐면 직진과 달리 그 방향엔 중간중간 요새와 마을이 있어서 몬스터의 출몰이 적기 때문이다.

다만 왼쪽 길로 가게 되면 트리우스 백작령까지 4~5일은 더 걸릴 터.

나는 그냥 직진을 선택했다.

어차피 마을이나 요새가 있어도 이 꼴로는 쉽게 들어서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 1시간 후.

“어이, 꼬마. 너 뭐냐? 뭔데 혼자 다니는 거야?”

안전가도 인근에 숨어 있다가 기어 나온 산적들을 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고블린을 물리친 지 얼마나 됐다고 이젠 산적이라니.

그냥 왼쪽 길로 갈 걸 그랬나?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싼 산적들을 살폈다.

“대장, 어떻게 하죠?”

산적은 총 5명이었는데, 그 중 어리바리하게 생긴 대머리가 작은 체구의 사내에게 물었다.

그에 대장이라고 불린 인물은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애라고 봐주게?”

“그, 그럼 애를 털게요?”

딴에는 정이 있는지 대머리 산적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에 돌아온 것은 대장의 조인트 공격이었다.

“털긴 뭘 털어, 딱 봐도 거지고만. 곱상하게 생겼으니, 노예상인에게 팔아야지.”

“네?”

산적이 새삼스레 놀란 표정을 짓자 대장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병신아, 그게 우리 본업이잖아. 강간 살인마 주제에 갑자기 착한 척이야?”

“끙.”

그나마 인간적으로 보이던 대머리 산적도 어차피 똑같은 녀석인 모양이다.

대장 말대로 강간 살인마가 착한 척하는 게 웃기긴 하겠네.

하긴 그러니까 산적 질을 하는 거겠지.

나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스톱. 뭐하는 애새끼인진 몰라도 넌 굉장히 기분 나쁜 녀석이야. 그 이상 다가오면 벤다.”

7살짜리 어린아이에게 방심하지 않는 모습이 훌륭하다.

하지만 그래 봤자 인간의 상상력에도 한계가 있는 법.

“네? 왜, 왜 그러세요.”

내가 겁먹은 척 움찔거리자 그는 미간을 좁히며 나를 노려보았다.

“왜 그러긴, 당연히 기분 나빠서 그렇지! 이런 곳에 어린아이 혼자 어슬렁···.”

퍽.

“어?”

설마 이렇게 어린아이가 마법을 사용할 것이라곤 생각 못 하는 게 당연했다.

나는 녀석의 가슴에 ‘파이어 애로우(2클래스)’를 선물해 주었고, 근거리에서 발현된 마법에 얇은 철제 방어구가 맥없이 관통되었다.

전쟁의 경험 덕분에 때깔만 봐도 아 방어구가 마법에 ‘뚫리겠다’, ‘아니다’를 구분할 수 있다.

참고로 이렇게 근거리에선 목이나 머리를 공격하기보단 가슴을 노리는 편이 안전하다.

목이나 머리가 꿰뚫리면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지만, 가슴이나 배에 공격이 적중하면 몸이 앞으로 구부러지기 때문이다.

갑자기 자신들의 대장이 몸을 구부리자 나를 포위하고 있던 산적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입꼬리를 말아 올린 나는 다시금 마법을 사용했다.

“바인드.”

바닥을 뚫고 나온 굵직한 덩쿨이 순식간에 4명의 산적을 포박한다.

“뭐, 뭐야?”

인간이란 존재는 고블린보다 지능이 월등하면서 이런 건 참 잘 걸린다.

녀석들은 당황하며 발버둥 쳤지만, 조금이라도 마나를 몸에 축적한 인물은 대장뿐이었다.

나머지는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상대.

그런 녀석들이 무장했다고 마법을 뿌리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세상에서 철이 워낙 귀하기 때문에 검만 쥐고 있어도 위협적인 존재인 것은 맞지만, 그것도 결국 일반인끼리의 이야기다.

나는 2서클 마법사였고, 이는 마나를 익숙하게 다루는 수습 기사와 동등한 위치였다.

털썩.

기분 나쁘게 내게 기대고 있는 산적 대장을 밀치자 가슴에 뚫린 구멍이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으아아악!”

녀석들이 기겁하며 난리를 피웠으나, 나는 무시하고 여유롭게 죽은 대장의 몸을 뒤적거렸다.

“그래도 인간인데, 돈 안 되는 고블린보단 낫겠지.”

전생에 전쟁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인 만큼 살인에 대해서도 크게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물론 죄 없는 민간인을 죽인다면 문제가 되지만, 이들은 산적 아닌가?

산적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몬스터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짤그랑.

“와, 금화잖아?”

나는 금화 1개와 은화 3개, 동화 20개가 든 주머니를 짤랑거리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동화 1개는 지구의 1천원과 같고, 은화는 10만원, 금화는 1000만원 정도의 가치를 지녔다.

이 조막만 한 은이 10만원, 금이 1000만원이나 한다는 것이 지구의 상식으론 말이 안 되지만, 이 세상에선 그만큼 금과 은의 가치가 높았다.

우리 집안과 같은 농부가족은 금화 한 개로 충분히 2~3년은 살고도 남았다.

어이없이 죽은 산적 대장이 금화를 토해낸 것을 보며 나는 눈을 반짝여야 했다.

“원래 산적은 전 재산을 갖고 다니는 거야?”

갑자기 그들이 보물단지로 보인다.

그래서 지구에서 봤던 만화의 주인공인 ‘리나 임버스’가 산적들을 그렇게 털고 다녔나 보다.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는지, 사색이 된 산적들은 눈알 굴리기에 여념이 없다.

과연 이들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생긴 것은 영락없는 아이의 모습이지만, 자기들이 당한 게 있으니 바보가 아닌 이상 평범한 아이가 아니란 것을 모를 수가 없다.

더구나 이상한 힘을 쓰는데 아마 이들은 그것을 기괴한 힘이라고 여길 가능성이 컸다.

왜냐면 이렇게 어린 마법사는 본적이 없고 들어본 적도 없을 테니까.

“그, 그럴 리가요. 대장은 가족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맞습니다. 저희는 모두 가족이 있어서 가진 돈이 많지 않습니다!”

비굴한 녀석들의 표정에 오히려 내가 산적이 된 느낌이다.

방금까지 날 노예상인에게 팔려고 했던 놈들이.

어깨를 으쓱인 나는 산적 대장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그럴싸한 단검을 빼 들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저는 분명 말렸습니다! 기억나시죠?”

그에 산적들은 고래고래 비명을 질렀지만, 이내 바인드의 줄기가 입을 틀어막자 조용해졌다.

“읍! 읍!”

“어차피 너흰 살려줘 봤자 다른 사람들을 죽일 거잖아? 나는 산적에게까지 아량을 베풀 만큼 여유 있지 않거든.”

괜히 대장의 복수를 한다고 추격이 붙는 것은 사양이다.

더구나 이런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은 적은 편이 좋겠지.

나는 고블린 사냥 때의 교훈으로 마나를 아끼기 위해 단검을 녀석들의 목에 찔러 넣었다.

단검을 찔러 넣을 때마다 손끝으로 기분 나쁜 감각이 전해져 왔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참혹하고 더러운 일이라면 전생에도 많이 겪었으니까.

“별로 없네.”

나머지 네 명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다 합쳐 5실버 남짓 금액뿐이다.

그것도 50만원 수준의 작지 않은 돈이지만, 금화를 봐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약해 보였다.

“하긴, 산적 털어서 부자가 될 것도 아닌데.”

녀석들이 가진 무기도 돈이 될 것 같지만, 이 작은 몸으로 무거운 무기들을 주렁주렁 달고 가는 것 자체가 무식한 짓이다.

두목이 목에 걸친 제법 좋아 보이는 스카프를 로브처럼 두르고 그나마 비싸 보이는 단검 두 자루와 건빵, 물주머니를 챙긴 나는 미련 없이 걸음을 옮겼다.

곧 피 냄새를 맡은 맹수나 몬스터들이 접근할 것이다.

고블린이나 코볼트 정도라면 무리 없이 사냥이 가능하지만, 가장 현명한 것은 녀석들과 아예 싸우지 않는 방법이다.

나는 빠른 걸음걸이로 자리를 벗어났다.

약 1시간 동안 빡세게 이동한 나는 휴식을 위해 ‘디그(2클래스)’ 마법으로 땅굴을 만들어 들어가 쉬었다.

그리 유쾌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은 얻은 소득이 적지 않다.

원랜 돈이 하나도 없었는데, 산적들 덕분에 거금이 생긴 것 아닌가.

다른 마을이나 도시에 들어설 때 내 모습이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지만, 만약 돈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곳 로이아스는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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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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