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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차피 인생은 권력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는 말, 많이 들어 봤을 거다.
삶의 고증이 배어 있는 이 말은 인생의 선배들이 후배에게 후회 없는 삶을 살라는 조언과도 같지만, 아무래도 내겐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인 모양이다.
“······.”
달그락.
밀가루와 감자를 섞어 만든 스튜에 절인 채소를 곁들인 궁핍한 식단. 나는 랜턴과 벽난로의 불빛으로 그림자가 일렁이는 거실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왜 그래, 몸이 안 좋아?”
푸짐한 풍채를 지닌 금발의 여성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에 움찔 놀란 나는 크게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괜찮아. 잠깐 졸았는데 안 좋은 꿈을 꿔서.”
내 이야기에 어머니는 피식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맞은편에 앉은 갈색 머리의 남성이 힐끔 나를 바라보다가 무심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는 나는 복잡한 표정으로 허벅지를 꼬집었는데, 곧 아릿한 통증이 밀려옴을 느끼며 헛웃음을 흘렸다.
아마 눈앞에 거울이 있다면 지금의 내 표정은 아주 볼만할 것 같다.
참고로 나는 환생자다.
전자산업이 발달 된 대한민국에 살다가 사고를 당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마법이 존재하는 이곳 ‘로이아스 대륙’으로 환생했다.
그리고 ‘트리아’와 ‘세라드’란 이름의 이 두 사람이 이 세계에서 나를 낳아준 부모님이다.
환생까지 한 내가 이렇게 멍청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있는데, 그건 바로 부모님이 이웃 국가인 칼바도스 제국의 대대적인 침공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방금까지 나도 전장에서 죽어가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니 지금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 아니겠는가.
당황하는 것이 당연하다.
“오늘 스튜엔 소기름이 들어가서 맛있을 거야.”
“어, 좋네.”
“얘는 반응이 애 같지가 않다니까?”
이건 꿈일까? 아니면 상황 그대로 회귀를 하게 된 걸까?
나는 앙증맞은 자신의 손과 젊은 부모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늘이 몇 년도야?”
뜬금없는 내 물음에 고개를 갸웃거린 아버지는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신력 2205년.”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게 신력 2219년 5월경이니, 그렇다면 지금은 14년 전이란 소리다.
내 나이는 겨우 7살이고.
내 물음에 갑자기 연도는 왜 묻냐고 의문을 표할 법도 하지만, 무뚝뚝한 아버지는 그저 ‘밥 먹자’라는 말로 이야기를 끝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 가이아 님의 은혜에 감사를.”
“가이아 님의 은혜에 감사를.”
전에는 이 풍경에 대한 감사함을 몰랐는데, 지금은 너무도 크게 와 닿는다.
잠시 잊고 있던 부모님의 모습에 당장에라도 눈물이 날 것 같지만, 나는 이를 꾹 참고 일단은 지금의 순간을 즐기자는 생각으로 그리운 집밥을 입에 넣었다.
어머니의 호언과 달리 스튜의 맛은 굉장히 심심했다.
환생 초기에는 재앙이나 다름없는 환경과 음식 수준에 속으로 수도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이 세계에도 산해진미가 가득하겠지만, 로이아스 대륙의 국가들은 지구와 비교가 되지 않는 초격차 사회로 문명의 혜택은 상류층이 독점하고 있어 우리와 같은 하층민은 중세시대 평민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21세기 대한민국 출신인 내가 이런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풍미 따윈 없는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한 식사. 솔직히 어머니에겐 미안하지만 마법병단 소속으로 전쟁통에 먹었던 음식들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그런데 왜일까. 그렇게 불만이 많던 맛없는 음식이 지금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잘 먹었습니다.”
깔끔하게 음식을 먹어 치운 나는 기분 좋게 미소 짓는 어머니의 모습에 부끄러워져 뒤통수를 긁적였다. 나는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하고 계속 그 자리에 앉아 부모님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오늘 낮에 약초 캐고 오느라 힘들었지? 이만 들어가서 쉬렴.”
조금 더 부모님과 함께 있고 싶었지만, 걱정으로 가득한 어머니의 말에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알았어.”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졌다.
“······.”
건초를 깔고 그 위에 천을 덮어 만든 허접한 침대는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 소리를 낸다.
그렇게 얼마나 침대에서 뒹굴었을까. 어기적 몸을 일으킨 나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양 뺨을 강하게 꼬집었다.
“윽.”
너무도 리얼한 감각.
나는 얼얼한 뺨을 만지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했다.
내 몸이 어려졌다는 것을 증명하듯, 마나 서클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서클과 상관없이 눈을 감은 나는 버릇처럼 주변의 마나를 끌어들였다. 전신으로 빨아들인 마나는 물줄기처럼 보이지 않는 통로를 따라 순환하고 점점 그 양을 더해갔다.
로이아스 대륙에선 이것을 마나 샤워라 하는데, 기사의 오러 수련처럼 자주 하면 몸속에 마나를 쌓을 수 있다.
비록 그 양은 극히 미미하고 효율적이지 못한 에너지 축적 방식이지만, 마나 샤워를 하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는 효과가 있어서 정신이 산만하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는 항상 마나 샤워를 애용하는 버릇이 있었다.
“후우.”
마나 샤워의 끝을 알리는 긴 숨을 내쉬니, 마나가 안 좋은 기운을 전부 갖고 빠져나간 듯 머릿속이 개운해졌다.
그럼 이제 감성에 빠지는 것은 그만.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상황을 정리해보자.”
나는 분명히 죽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14년 전의 과거로 돌아온 상황이다.
부모님은 모두 건강한 데다가 젊으시고, 마나 샤워를 통해 관찰한 내 몸의 상태는 전생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깨끗하고 좋았다.
회귀 소설이라면 당장에라도 주인공이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겠지만, 괜히 성급한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었다.
이미 한 차례 인생의 쓴맛을 본 덕분에 세상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상황을 지켜보되 괜히 부정적인 생각은 할 필요가 없다.
일단은 회귀라는 판단하에 행동을 정하는 편이 마음도 가벼울 테니까.
어째서 자꾸 내게 이런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은 앞날을 계획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인 사고방식이었다.
“이게 현실이라면 아무짝에 쓸모없는 환생 옵션보다 훨씬 낫다.”
잠깐 머리를 굴렸을 뿐인데, 미래의 기억을 이용해 이득을 취할 수단이 수없이 떠오른다.
“아니, 그냥 나은 정도가 아닌가?”
회귀라 하면 한국에서 즐겨 보던 판타지 소설에선 무적과도 같은 설정.
스스로에게 냉정함을 요구하는 이성과 달리 회귀에 대한 계획을 짜면 짤수록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
‘루이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
‘돈이요.’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맞는 말이잖아요?’
‘뭐··· 틀린 말은 아니지. 근데 100% 정답이라곤 볼 수 없어.’
‘네?’
‘아무리 많은 돈을 갖고 있으면 뭐해? 그것을 지킬 힘이 있어야지.’
‘아······.’
‘누가 뭐래도 가장 중요한 건 권력이야. 그 권력이란 게 있으면 자동으로 재력과 무력도 따라오기 나름이거든, 우리를 벌레같이 여기는 귀족들처럼. 상인이 돈이 많아도 귀족이나 도시 행정관들에게 빌빌대는 이유가 바로 그 권력 때문이지.’
이 대화는 내 나이가 13살이 되던 해, 정기적으로 마을을 방문하는 안면 있는 행상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농부 자식에게 할 말은 아닌데, 아무래도 그는 내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더구나 그의 이야기는 틀린 것 하나 없는 사실이었기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이 세상의 문명 수준은 결코 낮지 않다.
로이아스 대륙에서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 ‘미드랜드’의 수준만 봐도 지구의 1900년대와 비슷했으며, 오히려 몇 개는 지구보다 월등한 오버 테크놀로지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독점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귀족과 같은 권력자들이다.
판타지 소설에서 별것 아닌 것처럼 표현되는 남작조차 나 같은 농부의 자식은 꿈도 못 꿀 별나라에 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귀족과 평민 사이엔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권력이란 것도 이 나라가 제국의 침공으로 멸망의 길에 접어들면서 색이 바래긴 하지만, 어차피 권력자는 망해도 부자다.
애국심도 없는 나 같은 녀석들에게 폭발 아티펙트를 목에 걸어 적들과 싸우게 만들고, 귀족이란 녀석들은 안전한 곳에 숨어서 병사들을 장기 말처럼 굴리지 않는가.
그리고 위험하다 싶으면 곧바로 나라를 버리고 대의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타국에 망명하는 것이 이 세계의 그들이었다.
언제나 죽는 것은 아랫것들이지 결코 윗대가리가 아니다.
그건 대한민국이나 이곳이나 마찬가지.
다만 이곳의 목숨값은 지구보다 훨씬 싸고 권력자는 더 썩었다는 것이 큰 차이였다.
과거로 되돌아오고 하루가 지났다.
다행히 ‘모든 것이 꿈이었습니다.’라는 상황이 벌어지진 않았고, 젊은 부모님과 어려진 내 모습도 그대로다.
단순 명료하게 지금의 상황이 회귀라는 것에 더욱 무게가 실린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미래의 기억을 이용해 권력자가 된다.’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하층민의 기억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후에 일어날 큰 사건을 안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힘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나는 마법 적성 덕분에 14세 이후 평범한 농부의 자식이 아닌, 군사학교를 통해 전투 부사관으로 약 3년간 군 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가 아주 많았다.
군인이 전장에선 싸우지 않으면 잡담밖에 할 수 없었으니.
지금은 그 사소한 기억 하나하나가 모두 나의 재산인 셈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역시 개인의 무력을 기르는 일.
전생엔 ‘강제 서클업’을 통해 반쪽짜리 2서클 마법사로 전장에 섰는데, 적어도 이번엔 월등히 나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강제 서클업을 통하면 빠르게 클래스를 올릴 수 있지만 2서클 이후의 경지에 오를 수 없다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하지만 반쪽짜리여도 2서클에 올랐던 경험과 마법에 대한 지식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력으로 온전한 2서클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며칠 쉬고 싶다고?”
“네.”
지금은 추수가 끝난 가을인지라 딱히 농부가 해야 할 일은 없다.
그러나 우리 같은 하층민이 놀아서 뭐하겠는가. 부모님은 농사를 짓지 않는 시기엔 항상 약초를 캐기 위해 마을을 나섰는데, 언제부턴가 당연하다는 듯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우리 집이 보잘것없는 가난한 농가지만 그래도 겨울에 배를 굶주리지 않을 수 있던 이유가 이런 부업 덕분이다.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본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알았다.”
아무래도 평소 성실한 내가 이런 말을 해서인지, 아버지는 크게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셨다.
“그럼 아빠랑 엄마 나갔다 올 테니까 집 잘 보고 있어.”
두 분을 배웅한 나는 슬며시 문고리를 걸어 잠갔다.
“아버지가 캐묻는 스타일이 아니라 다행이다.”
이 세상에서 마법사란 정말 귀한 존재다.
마법이란 것은 적성이 필요한 데다가, 단 1서클만 돼도 얼마든지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능력자나 다름없다.
더구나 정규 마법사(3서클)라 하면, 귀족들이 서로 모셔 가려 안달이 날 정도로 사회에서 굉장히 대접받는 존재였기에 마법사란 것만으로 준 귀족의 취급을 받았다.
물론 전생의 나처럼 특수한 경우는 빼고 말이다.
“시작할까?”
방으로 돌아온 나는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전생과 다른 미래를 위한 첫걸음.
지금부터 7살의 몸으로 마나 서클을 생성할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권력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