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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대표님-134화 (134/136)
  • 134화 완벽한 타이밍.

    유명한 국장이 정부에 하미플루의 보유를 주창했지만, 정부는 추측으로 혈세를 낭비할 수 없다며 그의 주장을 일축했다.

    “샌디에고의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미국으로부터 현재 조사하고 있다는 소식만 받았지, 변종 인플루엔자라는 근거가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하미플루 2,000만 명분을 주문했습니다. 저희도 최소한의 치료제는 갖춰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과를 지켜본 후 진행해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유 국장님은 파인그룹과 친분이 깊다고 들었습니다. 국장님께서 그러시진 않겠지만, 조심하십시오. 원나라당 의원들이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

    비서관의 말에 유명한 국장은 입술을 닫았다.

    영원히 여당으로 군림할 것 같던 원나라당은 사소한 불티라도 찾아내 불을 일으키려 혈안이었다. 당적도 없는 유명한 국장에게 비서관이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은 현재 분위기를 전해주는 것일 터. 가뜩이나 북한과 관계가 좋아지며 여론이 여당으로 쏠리고 있었다. 원나라당은 자신들의 지지율을 위해서라도 작은 불티를 찾아내야만 했다.

    필요한 조치이건만···. 유명한 국장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박 회장에게 하미플루를 우리나라를 위해 비축해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답답하네.’

    유명한 국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박 회장. 날쌔.”

    “유 국장님. 목소리가 안 좋으십니다. 무슨 문제 있으십니까?”

    “그게 말이야. 정부가 야당 눈치를 보는 것 같아.”

    유명한 국장의 탄식과도 같은 말에 박주혁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바입니다.”

    “미국 상황을 보고 결정하자더군.”

    “예. 정부에 경고는 했으니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아니, 하미플루를 비축해놔야 추후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유명한 국장이 걱정스럽다는 듯 되물었고, 박주혁은 목소리에 힘을 주어 답했다.

    “저도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비상분은 비축해놓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박주혁의 말에 유명한 국장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며 가슴 한편이 뜨거워졌다.

    “박 회장. 내가 미안하네. 자네의 이런 마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내가 막을 방법이 없군.”

    유명한 국장의 말에 박주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국장님께서 미안할 일은 아닙니다. 정부에 경고한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전화를 끊은 박주혁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는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치료제가 국내에서 생산된다는 것을 알렸으니 됐습니다. 제일 먼저 약 달라고 호소할 사람들은 그들이니까요.’

    #

    미국 워싱턴 DC.

    헨리 럼즈펠드가 뉴스 채널을 돌려보며 비실비실 웃었다.

    [탄저병인 줄 알았던 샌디에고 유행병은 인플루엔자로 밝혀져···.]

    [샌디에고 인플루엔자 전염력 강하지만, 치료에 문제없다.]

    [샌디에고 인플루엔자는 인플루엔자 A다.]

    탄저균에 의한 유행병이 아니라는 소리에 관심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일반 독감도 인플루엔자가 원인인 경우가 많으니, 독감이 유행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게 시작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몰랐다.

    ‘인플루엔자 A’ 통칭 ‘신종플루’는 15,000명 가까운 사망자를 내는 무서운 바이러스였다. 치료제도 하미플루 외에는 없었고 말이다.

    헨리 럼즈펠드는 티비를 끄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 이제 곧 빠르게 퍼질 것이다. 그럼···. 돈방석이지.”

    아직은 신종플루의 확산세가 미미한 편이었지만, 잠복기까지 고려하면 곧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헨리는 달력을 힐끔 쳐다보더니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시간은 내 편이야.”

    그의 예상대로 신종플루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특히 샌디에고와 근거리에 있는 멕시코가 타격이 컸다.

    [한 달 만에 사망자 150명. 멕시코 패닉상태]

    [신종플루 치사율 10% 치료제는 하미플루 밖에 없다.]

    [미국은 자체 보유 하미플루 1만 명분을 멕시코에 긴급 지원하기로 결정.]

    미국이 지원한 1만 명분으로는 하미플루로는 퍼져나가는 신종플루를 막을 수 없었다. 2천만 명분을 비축한 미국이 고작 1만 명분을 멕시코에 지원한 것은 확산세를 유지한 채 하미플루의 효과를 세계에 알릴 헨리의 노림수일 테지.

    멕시코의 상황을 보고 받은 조지가 헨리를 다급하게 호출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부르셨습니까?”

    “오. 헨리 장관. 멕시코에 신종플루가 대유행이라던데. 하미플루가 효과가 확실하다더군요.”

    “예. 저도 보고 받았습니다.”

    “헨리 아니었으면 미국이 위태로울 뻔했습니다.”

    조지의 말에 헨리가 씩 웃으며 말했다.

    “결정권자인 조지 덕분이죠. 저는 그저 정보만 드렸을 뿐입니다.”

    오늘따라 헨리의 미소가 유독 간사하게 보였지만, 사람 좋은 조지는 덩달아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많이 도와주십시오. 위대한 미국을 위해서!”

    “예스. 마이 프레지던트!”

    #

    멕시코 사태가 터지고 나니 국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도 하미플루를 구비해놔야 합니다!”

    “미국에서 괜히 2천만 명분을 사두었겠습니까?”

    “월드컵이 다가옵니다. 하루라도 빨리 하미플루를 구매해야 합니다. 자칫하다가는 월드컵 특수가 물거품이 됩니다.”

    월드컵이 고작 5개월 남아있는 시점이었다. IMF 차입금을 상환하고 월드컵으로 외화를 벌어들이겠다는 계산이 깔려있었을 터. 고작 인플루엔자에 외화벌이 수단을 잃을 수는 없었다.

    정치권이 움직이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박 회장님. 정부에서 하미플루 구매를 요청했습니다.”

    서진용의 말에 박주혁은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리더니 말했다.

    “한미플루 1정당 미국에 판매한 금액이 얼마죠?”

    “1정당 3,000원에 판매했었습니다.”

    “앞으로 1정당 500원에 팝시다.”

    18,000원에 판매한 하미플루를 한국에는 3,000원에 판매하자는 소리였다.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지만···. 서진용이 난감해하며 말했다.

    “하, 하지만, 회장님. 그러면 길버트 사이언스에 로열티를 주고나면 채 7%도 남지 않습니다.”

    “7%면 딱 적당한 수치네요.”

    “예?”

    서진용에게는 황금 같은 기회를 박주혁은 스스로 걷어차자고 말하고 있었다. 전세계에서 주문이 들어오고 있으니, 제값만 받는다면 돈방석이 아니라 돈 바닥을 만들 수 있는데!

    서진용이 망설이며 대답하지 않자, 박주혁이 타이르듯 말했다.

    “서 사장. 눈앞에 이익을 좇다 보면 더 큰 것을 놓치게 됩니다. 멕시코에서만 한 달 새 사망자가 150명이 나왔습니다. 특히 빈민가 쪽에서 사망자가 많습니다. 그 사람들이 하미플루를 사 먹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

    “하미플루 가격이 비쌀수록 각 나라 정부는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선택지에 빈민들이 과연 들어있을까요?”

    박주혁의 말에 서진용은 답할 수 없었다. 그도 답을 알고 있었기에···. 서진용이 답하지 않자, 박주혁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신종플루를 막으려면, 모든 사람에게 치료제가 보급되어야 하는 겁니다. 신종플루의 확산세를 못 막는다면 IMF 체제를 이제 막 벗어난 우리나라에도 이로운 것이 없어요. 특히나 월드컵 특수도 못 누리겠죠.”

    “크으.”

    서진용이 신음하듯 한숨을 내뱉었다. 잠시 고민하던 서진용이 목소리를 키웠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래도 미국 덕분에 기술이전비는 먼저 뽑아서 다행이네요.”

    “그렇죠.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번일로 파인바이오셀은 세계에 이름을 남기게 될 겁니다.”

    “잘 알겠습니다.”

    하미플루 6정에 3,000원으로 판매가 시작되자, 가장 먼저 기함한 것은 역시 헨리였다.

    “뭐, 뭐라고? 다, 다시 말해봐.”

    헨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수화기 너머 제임스는 또렷한 목소리로 다시 현 상황을 보고했다.

    “파인바이오셀에서 하미플루를 3달러에 판매한다고 합니다.”

    “마, 말이 안 되잖아! 미국엔 20달러에 팔아놓고!”

    헨리가 흥분하여 소리치자, 제임스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대유행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합니다.”

    “하! 하하하.”

    헨리가 허공을 바라보며 미친 듯 웃어 재꼈다. 무려 15년을 공들인 일이었건만···. 하지만, 헨리는 파인바이오셀에 항의할 근거가 없었다. 생산과 판매 등 모든 전권은 파인바이오셀에 있었기 때문이다.

    자글자글하던 헨리의 주름이 곱절은 많아진 것 같았다. 돈 앞에 장사가 없다고 했다. 의심의 여지 없이 파인바이오셀이 비싼 값에 공급하리라 생각했었는데···.

    제임스와 전화를 끊은 헨리는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왓 더 뻐어억!”

    몽크의 ‘절규’의 모델이 헨리 럼즈펠드였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

    박주혁의 빠른 조치로 하미플루는 전 세계로 판매되었고, 점차 그 확산세가 줄어들었다. 집계된 신종플루 사망자는 3,648명으로 마감되었다. 15,000여 명을 기록했던 과거는 현저히 다른 통계였다.

    “휴.”

    박주혁은 신종플루가 종식되었다는 소식에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6월이 다가왔다.

    “대한민국!”

    - 짝 짝짜 짝짝!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월드컵이 시작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은 신종플루가 종식되었다는 기쁨에 더 많은 관광객이 찾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국 쪽에만 관광객이 몰렸다. 외국인들은 자국 경기가 일본에 열리는 경우가 아니고선, 대부분은 한국에 머물고 싶어 했다.

    한현태 기자는 외국 관광객들이 일본이 아닌 한국에 쏠리는 기현상을 취재했다.

    “안녕하세요? 아르헨티나 국기를 들고 계시는데요. 경기는 일본에서 펼쳐지는 것으로 아는데 한국에 오신 이유가 뭡니까?”

    “한국이 더 안전해서요!”

    “안전하다고요?”

    “그럼요. 하미플루를 만들어낸 곳이 한국이잖아요?”

    하미플루의 역할이 이토록 무서웠다. 반면, 일본은 하미플루의 효능을 믿을 수 없다며 끝까지 도입을 미뤘었다. 명목상은 효능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사실 한국에서 생산한 약제를 수입한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쪼잔한 새끼들.

    결국 전 세계 사망자 중 40%가 일본에서 나온 후에야 뒤늦게 하미플루를 사 가셨다. 물론, 박주혁은 일본에 3,000원이 아닌 60,000원의 가격을 매겼다.

    괘씸죄였다.

    괜한 자존심만 세우다 스크레치만 더 난 꼴이다. 헨리에게 넘어갈 돈이 찝찝했지만, 그보다 일본의 행태가 더 밉상이었다. 가뜩이나 남의 땅을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녀석들이라 눈꼴시셨는데 마침 잘됐다.

    “아니. 다른 나라에는 300엔이면서 왜 니뽄에만 6,000엔인 것이 무니까?”

    모든 권한은 파인바이오셀에 있었다. 나라 간 거래가 아니었기에 외교적 부담 없이 큰소리를 칠 수 있었다.

    “물량이 없습니다.”

    “칙쇼!”

    별수 있나? 하미플루 외에는 치료제가 없는걸. 일본이 알량한 자존심을 세운 덕분에 한국은 일본보다 안전한 나라로 인식되었다. 하미플루로 이런 것 까진 기대하지 않았지만, 나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폴란드, 미국, 포르투칼과 한 조에 속했다. 유명 스포츠 해설가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16강에 진출하려면, 상대적으로 약체인 폴란드를 잡고, 미국과는 무승부, 포르투칼과의 경기에서는 최소 실점을 해야합니다.”

    “포르투칼을 못 이긴다는 뜻인가요?”

    “세계 랭킹 5위에 세계적인 스타 피구가 있는 팀인데···. 솔직히 무리라고 봐야겠죠.”

    언론에서 이렇게 예측해주니 박주혁으로서는 기뻤다. 토토로 높은 배당을 챙길 수 있으니 말이다.

    개막식이 중계되는 시간에 맞춰 박주혁은 지인들과 테라스에서 스크린을 틀었다. 때마침 파인테크의 첫 번째 스마트폰, 스카이폰의 광고가 흘러나왔다.

    [잇츠 디프런트! 스카이. 당신의 스마트한 초이스.]

    익숙한 음악과 나래이션과 함께 자태를 뽐내는 스카이폰을 보며 박주혁은 미소 띤 얼굴로 중얼거렸다.

    ‘완벽한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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