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대표님-133화 (133/136)
  • 133화 헨리, 너의 뜻대로 되지 않을 거다.

    3일 뒤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펼쳐진 한국과 크로아티아의 2차전은 박주혁이 배팅한 대로 1:1 무승부였다.

    목동 더 파이니스트 펜트하우스 테라스에 모인 박주혁의 지인들이 경기 결과에 따라 탄식과 환호를 쏟아냈다.

    “아. 무승부라니! 이천수가 넣었어야 했는데.”

    “앗싸! 역시 박 회장님을 따라가야 한다니까?”

    “크로아티아가 1골 밖에 못 넣다니···.”

    순간의 탄식과 기쁨도 잠시 사람들은 맥주를 들며 호탕하게 웃었다.

    “자, 건배!”

    박주혁은 삼겹살을 구워 접시에 덜었고, 메르헨은 사람들에게 고기를 배달했다. 그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걸려있었다. 최효정 여사도 텃밭에서 상추를 바로 공수해 테라스의 수전에 행궈 손님들에게 대접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와. 상추 싱싱한 것 좀 봐. 박 회장님이 구운 고기보다 더 좋은 것 같은데요?”

    조광연의 너스레에 사람들이 웃었지만, 구경숙은 날카롭게 한번 째려본 후 최효정 여사에게 말했다.

    “사모님. 같이 해요. 혼자 하시지 말고.”

    “아유. 괜찮아. 희연이 토마토 좋아해? 토마토가 잘 익었는데.”

    “정말요?”

    구경숙이 아장아장 걷는 희연이를 데리고 최효정 여사를 따라나섰다.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바비큐장을 지나자, 최효정 여사가 공들여 만들어놓은 비닐하우스가 나타났다.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소소한 재미를 느끼기에는 딱 적당한 크기였다.

    최효정 여사는 비닐하우스의 문을 열며 꼬마 손님인 희연이와 눈을 맞췄다.

    “희연아, 할미랑 토마토 좀 따볼까?”

    “헤헤!”

    희연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고, 최효정 여사도 희연이를 따라 활짝 웃었다.

    “도마또!”

    “그래그래. 토마토. 빨간 것만 따는 거다?”

    “응!”

    최효정 여사는 희연이의 손을 꼭 잡고 비닐하우스로 들어가며 구경숙에게 말했다.

    “어서 가봐요. 내가 희연이 봐줄 테니까.”

    “아니에요. 사모님. 괜찮아요.”

    “아유. 우리 며느리 같아서 그래. 가서 사람들과 어울려요. 희연이 보느라 매번 빠졌을 텐데. 어서 가요.”

    최효정 여사가 구경숙의 등을 떠밀었다. 구경숙은 얼결에 다시 바비큐장으로 돌아와 조관영 옆에 앉았다.

    “희연이는?”

    “사모님이 봐주신다고···. 저기 넘어가면 비닐하우스가 있는데 거기서 토마토 따고 있어.”

    “그래?”

    조광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더니 맥주를 들어 올렸다. 구경숙은 잠시 조광연을 못마땅한 듯 바라보다가 이내 잔을 들었다. 최효정 여사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자, 박 회장님. 고기 그만 구우시고 어서 오세요. 오늘 토토도 따신 것 같은데 한 말씀 하시죠?”

    “무슨 할 말이 있다고···.”

    박주혁이 한 발 빼자, 유명한 국장과 이원희 지사장이 박주혁에게 소리쳤다.

    “아. 박 회장 팔 떨어지겠어?”

    “그래. 이제 늙어서 맥주가 무겁다고.”

    유명한 국장과 이원희 지사장이 엄살을 피자, 박주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외쳤다.

    “자, 그럼. 월드컵이 코앞이니까. 코리아. 파이팅!”

    “파이팅!”

    #

    헨리 럼즈펠드에게 익명의 봉투가 배달되었다. 그가 아무 의심 없이 봉투를 뜯으려는데 경호원들이 들이닥쳐 봉투를 낚아챘다.

    “장관님. 이 봉투에 탄저균이 있다는 제보가 있습니다.”

    경호원의 말에 헨리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소리쳤다.

    “뭐라고? 탄저균이라니. 어떻게 그런 것이 백악관까지 들어올 수 있단 말인가!”

    테러와의 대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탄저균 테러가 시작된 것이었다.

    경호원은 헨리 럼즈펠드의 고함에 별다른 대꾸 없이, 봉투를 밀폐용기에 넣어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장관실에서 나가자 헨리는 곧바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잇츠 디퍼런트 스카이!]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휴대폰 화면이 켜졌다. 나이답지 않게 헨리는 얼리어답터였다. 헨리는 화면을 조작해 곧바로 제임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임스. 날쌔. 계획을 실행할 때가 된 것 같군.”

    “때가 왔군요. 알겠습니다.”

    조금 더 기다릴 속셈이었지만, 탄저균 배달되는 흉흉한 정세라면, 신종플루를 뿌리기 적합한 시기라고 판단한듯 싶었다.

    제임스에게 신종플루 바이러스 살포를 지시한 헨리는 곧바로 조지 부시에게 달리듯 걸어갔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조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관련 보고서를 훑어보다 말고 고개를 들어 헨리를 쳐다봤다.

    “오. 조지. 무슨일인데 그렇게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까?”

    “조금 전 제 앞으로 탄저균으로 의심되는 흰 가루가 배달되었습니다.”

    “뭐, 뭐라고요?”

    조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문이 열리며 경호원들이 들이닥쳤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혹시 발신자 미상인 우편 받으신 것 없으십니까?”

    조지는 자신의 책상 옆에 쌓여있는 우편물들을 힐끔 쳐다보더니 손을 뻗었다. 그러자, 경호원들이 달려들어 조지의 팔을 붙잡더니 우편물들을 통째로 낚아챘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위험합니다. 절대 손대시면 안됩니다. 저희가 확인하고 드리겠습니다.”

    조지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은 밀폐용기에 우편함을 넣고 황급히 빠져나갔다.

    조지가 헨리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아마도 테러단체에서 행한 짓 같습니다.”

    “탄저균이라니. 비열한 새끼들!”

    조지가 이를 갈며 소리칠때 헨리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아무래도 바이러스에 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조류인플루엔자가 사람에도 교차감염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에 대한 치료제가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테러단체가 그 바이러스로 공격을 하지 않을지 염려됩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예. 다행히도 길버트 사이언스에서 조류인플루엔자 치료제를 몇 해 전 개발했다고 하니, 비상약으로 갖춰놓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당장 조치하십시오. 전 군인들에게 지급할 양으로 넉넉히 사두세요! 비열한 새끼들. 감히 위대한 미국에!”

    조지가 이를 갈며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칠 때, 헨리 럼즈펠드의 한쪽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제자리로 돌아갔다. 안타깝게도 분노에 찬 조지는 헨리의 그런 표정을 전혀 읽지 못했다.

    #

    “회, 회장님!”

    박주혁은 서진용의 다급한 전화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사고가 터졌나?’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질 찰나, 서진용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미, 미국에서 구매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무려 2,000만 명분입니다.”

    기쁜 소식이었건만, 박주혁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벌써? 왜?’

    박주혁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잘되었군요. 그런데 예상보다 너무 일찍 구매하는 것 같은데 혹시 별다른 이유는 말하지 않던가요?”

    “길버트 사이언스 말로는 미국 백악관에 탄저균 테러가 있어서 미리 바이러스에 대응하려는 조치의 일환이라고 합니다.”

    서진용의 말에 박주혁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탄저균을 빌미로 구매를 서둘렀군. 그렇다면 신종플루도 퍼트리겠단 속셈인가 본데···. 노인네가 돈에 눈이 멀었군. 아직 전쟁 중인 와중에···.’

    박주혁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며 서진용에게 물었다.

    “미국에 납품하고 남는 수량은 어느 정도입니까?”

    “1,000만 명분 정도 남을 것 같습니다.”

    “더 만드세요.”

    “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전 세계인구의 10% 정도가 복용할 수 있는 양을 만들어야 합니다.”

    박주혁의 말에 서진용은 한동안 답을 하지 못했다. 전 세계인구의 10%면 최소···. 바이오셀의 생산량으론 커버할 수 없는 양이다.

    “회, 회장님. 최소 7억 명분을 생산해야 한다는 말인데요.”

    “시간이 없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세요. 미국이 괜히 선구매하는 것이 아닙니다. 헨리가 움직였다고 보는 것이 맞아요.”

    “아, 헨리···.”

    서진용이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끝을 흐렸다. 헨리의 검은 속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예상하던 서진용이다. 그는 전화를 끊자마자, 하미플루 생산을 늘리기 위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하미플루 생산을 늘려야 합니다. 미국에서 2천만 명분을 발주했습니다.”

    “2, 2천만이요?”

    임원들이 놀라 소리쳤지만, 서진용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조류인플루엔자가 사람과 교차감염이 시작되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하미플루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는 회장님의 지시입니다.”

    “허···!”

    임원들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뜰 때, 서진용이 목소리에 힘을 주며 물었다.

    “하미플루 생산에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면 하루 생산량이 얼마나 됩니까?”

    생산관리 임원이 잠시 수첩을 끄적이더니 답했다.

    “하루 10만~20만 명분 생산 가능할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지금부터 전 직원 주말 반납하고 긴급 생산체제로 돌립니다. 일주일에 최소 100만 명분 생산해야 합니다.”

    “그,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몇몇 임원이 깜짝 놀라 되묻자, 서진용이 그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고, 지시대로 움직이세요. 조류인플루엔자가 사람과 교차 감염되면서 전염력도 강하고 치사율도 높아집니다. 헌데, 유일한 치료제는 하미플루 밖에 없습니다. 전 세계가 팬데믹에 빠지는 것을 구경만 할 셈인가요?”

    “사, 상황이 그렇게 심각한가요?”

    “아직은 잠잠하지만, 곧 그렇게 될 것입니다. 미국이 발주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서진용의 말에 임원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황급히 뛰어나갔다. 서진용은 그들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해야 한다!”

    #

    [미국 탄저균 테러로 샌디에고가 아비규환이 됐다.]

    [탄저균의 치사율은 무려 90% 미국이 위험하다.]

    [알카에다, 탄저균 테러는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발표!]

    연일 언론에서 탄저균에 대한 속보를 쏟아냈다. 신문을 가만히 책상에 내려논 박주혁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드디어 시작됐군.’

    탄저병도 초기 증상은 감기와 유사한 증상을 나타내기 때문에 오해하기 쉬웠다. 때마침 백악관에 탄저균 테러가 있었다는 뉴스도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박주혁은 알고 있었다. 신종플루의 진원지가 샌디에고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곧바로 서진용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 사장. 비축 분 얼마나 됩니까?”

    “3천만 명분입니다! 설마, 지금 미국 탄저병 테러라고 하는 것이 조류인플루엔자입니까?”

    “가능성이 큽니다. 탄저병도 초기에는 감기 증상과 비슷하니까요.”

    “큰일이군요.”

    “센디에고가 이미 바이러스에 노출되었으니 더욱 많이 퍼질 겁니다.”

    서진용과 통화를 끝낸 박주혁은 유명한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장님. 저 박 회장입니다.”

    “박 회장! 이번엔 무슨 일을 도와줘야 하나?”

    유명한 국장이 웃으며 말했지만, 박주혁은 세상 심각한 어투로 말했다.

    “국장님. 아무래도 샌디에고는 탄저병이 아닌 것 같습니다.”

    “으음?”

    “알카에다는 봉투에 탄저균을 넣어 협박 용도로 사용한 것이지 전쟁 중인 와중에 대량살포 할 수 있는 여력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샌디에고에 퍼지는 것은 독감일 겁니다.”

    “독감?”

    11월 샌디에고의 날씨는 25~27도를 웃도는 따뜻한 날씨로 바이러스가 퍼지기 딱 좋은 기후를 갖췄다. 아마도 헨리도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샌디에고를 선택했을 것이다.

    “박 회장. 독감이 이리도 빨리 퍼진단 말입니까?”

    “국장님. 파인바이오셀이 기술을 이전받은 하미플루라는 조류인플루엔자 치료제가 있습니다. 처음엔 조류인플루엔자 치료제인 줄 알았는데, 연구 결과 이 바이러스가 사람과 교차감염이 되면 전파력과 치사율이 급격히 올라가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아무래도 그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미국에서 이미 하미플루 2천만 명분을 구매해갔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박주혁의 말에 유명한 국장이 말을 잇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박 회장. 우선, 상부에 보고부터 해야겠습니다. 나중에 통화합시다!”

    - 뚝.

    유명한 국장이 다급히 전화를 끊었고, 박주혁은 낮게 읊조렸다.

    “헨리 럼즈펠드. 너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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