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대표님-132화 (132/136)
  • 132화 난 승률 100%야.

    파인테크는 스마트폰 출시에 앞서 터치스크린을 활용한 피처폰을 시장에 선보였다. 파인에서 터치스크린 휴대폰을 내놓자, 삼송에서도 일주일 만에 터치스크린 휴대폰을 발표했다.

    하지만, 부드러운 터치감과 색감 구현에 강점이 있는 정전식 터치스크린인 파인테크의 스카이와 감압식 터치스크린인 삼송의 애브리콜은 태생부터 달랐다.

    [스카이 VS 애브리콜 승자는?]

    [정전식과 감압식···. 게임은 끝났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승자는 이미 정해져 있다.]

    언론의 반응과 소비자의 반응은 비슷했다. 물론, 박주혁은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회장님. 저 이인우 센터장입니다.”

    “이 센터장님. 이번 스카이 제품 반응이 좋군요.”

    박주혁의 말에 이인우가 만족스럽다는 듯 껄껄 웃었다.

    “이 정도일 줄 몰랐습니다. 메가 히트할 것 같아요. 역시 대표님 말씀처럼 휴대폰과 Mp3를 합쳤더니 반응이 더 좋습니다.”

    “다, 파인테크에서 열심히 노력해준 덕분이죠.”

    파인테크에서 만든 터치스크린 휴대폰의 모델명은 ‘터치’였다. 스카이 터치로 검색하면 관련 글이 쏟아졌다.

    [드디어 스카이 터치 샀다!]

    └ 와씨, 어디서 샀음?

    └ 신촌. SJ 텔레콤 매장! 3시간 줄 섰음.

    └ 아직 남아있음?

    └ 빨리 ㄱㄱ!

    [크트는 왜! 스카이 터치 없음?]

    └ 진짜 왜 없어!

    └ 크트 한 달 뒤 출시래요.

    └ 한 달 현기증 난다! ㄷㄷㄷ

    [르그도 없어···ㅠㅠ]

    └ 애도.

    스카이 터치는 SJ 텔레텍 인수 당시 계약에 따라 SJ를 통해 먼저 풀렸다. 스카이 터치의 인기몰이와 박영희 디렉터와 SJ텔레콤의 장한수 마케팅 과장이 기획한 TTS 서비스까지 더해져 SJ텔레콤의 가입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SJ텔레콤의 투자가 드디어 빛을 발했다.

    본격적인 스마트폰이 아니었음에도 새로운 기기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3G 서비스와 함께 등장할 스마트폰이라면? 세상은 뒤집힐 것이다.

    이미 파인랭스에서 3G 중계기에 대한 번역을 시작했고,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세계에 한국 이동통신 기술력을 선보이기 위해 드라이브를 걸고 있었다. 앞으로 1~2년 뒤면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다.

    “이 센터장님.”

    “예. 회장님.”

    “이번 제품에 안주하지 마시고, 스마트폰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주십시오. 시장을 선점해야 합니다.”

    “오늘까지 총 1,000번은 넘게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하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시제품을 만들어 테스트 중입니다.”

    선순환이다.

    파인테크는 시장보다 약 2년을 앞서 제품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선순환 구조에 돌입했다. 반면, 삼송은 파인테크를 쫓는 데 급급한 상황이다. 삼송도 겨우 따라가고 있을 진데 아직 시장에 선보이지도 못한 마이애플은 어떻겠나?

    #

    미국 마이애플 본사.

    마이애플의 CEO 스티브 스랄은 파인테크의 스카이 ‘터치’ 제품을 만지작거렸다. 그의 눈에는 허망함이 깃들어 있었다.

    “하. 이거 참.”

    마이폰은 이제 겨우 시제품을 만들었다. 그런데 시제품과 비슷한 양산품이 이미 시장에 나와버렸다. 물론 본격적인 스마트폰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했지만, 마이폰이 마케팅 포인트로 잡았던 물리 버튼이 없는 풀터치스크린이었다.

    “미치겠군.”

    스티브 스랄이 미간을 좁히며 스카이 터치를 책상에 던지듯 내려놨다. 그의 손가락이 스카이 터치의 기능을 작동시켰는지 휴대폰에 내장된 음악이 흘러나왔다.

    [잇츠 디프런트. 스카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스카이 BGM과 나레이션에 스티브 스랄이 눈을 치켜뜨며 몇 올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하! 젠장. 우리는 이제야 Mp3플레이어를 시장에 출시했는데 한국은 벌써···.”

    스티브 스랄은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의자에 몸을 묻었다. 심호흡을 몇 차례 한 스티브 스랄이 다시 상체를 꼿꼿이 세우며 눈을 빛냈다.

    “아니. 아직 기회는 있다. 우리에겐 MyOS가 있으니까!”

    주먹을 불끈 쥐며 결의를 다지는데 사장실을 열고 기술부 임원이 황급히 들어왔다.

    “스티브! 이것 봐봐.”

    “뭔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어서!”

    그는 노트북을 스티브에게 펼쳐 보이며 소리쳤다.

    “스카이 터치에 내장된 SW를 살펴봤는데 fOS라는 것이 나왔어. 그래서 좀 살펴봤더니···.”

    스티브 스랄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fOS를 천천히 살펴봤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스티브 스랄은 노트북 모니터를 힘껏 닫더니 버럭 소리쳤다.

    “이런, 마더! 파더!”

    MyOS와는 분명 달랐지만, 분명 fOS는 모바일에 특화된 OS였다. 변방의 한국에서 양산형 터치스크린 휴대폰에 이어 OS까지 만들었다니···! 스티브 스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는 씩씩거리더니 버럭 소리쳤다.

    “출시를 앞당겨야 해!”

    “하지만, MyOS는 아직 완벽하지 않아.”

    기술 임원의 말에 스티브 스랄은 스카이 터치 제품을 들어 올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이건 뭔데! 우리보다 앞서가는 녀석이 있어. 출시가 늦어질수록 우리가 차지할 시장은 없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알았어.”

    매사 차분하던 스티브 스랄이었는데 파인테크의 스카이 ‘터치’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하건만, 과연 미완의 마이폰이 과연 시장 점유율을 얼마나 가져갈 수 있을지···.

    #

    2001년 1월 조지 부시가 정권을 양도받고 곧바로 내각을 발표했다.

    “국방부 장관에 헨리 럼즈펠드가 임명됐습니다. 북한과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외교에 정통한 유명한 국장님을 모시고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서진용이 입을 떡 벌리더니 재빨리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회, 회장님!”

    “서 사장. 진정하세요. 무슨 일입니까?”

    “아, 아니. 헤, 헨리! 헨리 럼즈펠드가 진짜로 미국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서진용이 너무 놀라, 말을 더듬었지만, 박주혁은 이미 예상하던 일이었다.

    “진정하세요. 하미플루 생산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하미플루 생산에 차질은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헨리가 그런 짓을 할까요?”

    “지켜보면 알겠죠.”

    박주혁은 덤덤하게 말했지만, 서진용은 믿기 어려웠다.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멍하게 휴대폰을 들고 있던 서진용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말로 조류인플루엔자를 퍼트리겠어?”

    서진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피식 웃었다.

    한편, 미국 백악관에서 국방부 장관에 임명된 헨리 럼즈펠드는 마지막으로 출근하여 자신의 자리를 정리했다.

    그의 최측근이었던 재무 담당 제임스가 그를 돕기 위해 헨리 럼즈펠드의 집무실을 열고 들어왔다.

    “헨리, 정말 축하합니다. 정말 조지가 당신을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했군요.”

    “뭐 당연하지. 꼬마에겐 베테랑이 필요한 법이니까.”

    헨리가 조지 부시를 깔보듯 말하자, 제임스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긴, 애송이가 뭘 알겠어요. 경험 많은 헨리가 잘 도와주세요.”

    헨리도 피식 웃으며 짐을 정리하다 말고, 제임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잘 보관하고 있지?”

    “그럼요. 그게 어떤 건데요.”

    “그래. 바이오셀이 하미플루 생산에 들어갔다고 하니까. 계획을 앞당겨도 될 것 같아.”

    “벌써 생산에 들어갔답니까?”

    “한국인들이 좀 빠르잖아? 우리로서는 좋지. 약속된 장소에 퍼트리고 알려줘. 하미플루 주문을 해야 하니까.”

    헨리의 말에 지엠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헨리의 짐을 들었다. 헨리의 차에 짐을 트렁크에 넣고 돌아서는데 헨리가 다가와 속삭였다.

    “제임스.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대출을 받아서라도 길버트 사이언스의 주식을 사놔. 내가 줄 수 있는 선물은 이것뿐이야.”

    “헨리, 이미 사놨죠.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헨리는 제임스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흐뭇하게 웃으며 제임스와 악수했다. 제임스는 눈을 빛내며 맞잡은 손에 힘을 줬다. 마치 그의 각오를 보여주듯 말이다.

    #

    2001년 11월 초.

    드디어 서울 월드컵 경기장이 완공되었다. 방패연 모양의 지붕과 돛배를 연상시키는 지붕 지지대들이 한국의 미를 잘 드러내고 있었다.

    준공식이 끝나고 며칠 뒤 국가대표는 크로아티아와 친선경기를 진행했다. 월드컵 경기장의 상태를 점검하고 국가대표의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히딩크 감독 체제하에 국가대표는 5:0 이란 별명이 붙었었다.

    강호들에게 매번 0:5로 지기 때문이었다. 동아시아에서는 호랑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이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동아시아라는 우물에서 대표님을 끌어내기 위해 강호들과 맞붙는 충격요법을 택했다.

    그리고 5:0 팀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이 충격요법은 월드컵이 다가오며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이 동유럽 강호인 크로아티아와 맞붙는 오늘의 경기였다.

    “꼬오오올! 김남일 골입니다!”

    “한국이 2:0으로 앞서갑니다!”

    - 삑! 삐! 삑!

    최종스코어 2:0으로 대한민국은 강호 크로아티아와의 A매치에서 승리를 거뒀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 최초의 경기였고, 강호를 상대로 승리한 의미 있는 날이었다.

    박주혁은 유수엽 설계사의 배려로 직원들과 함께 경기를 지켜봤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현장의 열기는 달랐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와중에 조광연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박주혁은 고개를 갸웃하며 이제는 부장으로 승진한 조광연에게 물었다.

    “조 부장. 왜 그리 아쉬워해?”

    “아, 아니요. 이겨서 너무 좋은데, 1:0으로 이겼으면 더 좋았을 뻔했습니다.”

    “음?”

    박주혁이 눈썹을 치켜올리자, 조광연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축구 토토라고 승부와 점수 맞추는 배팅이 오픈했더라고요.”

    “배팅?”

    “뭐 승리 맞히는 도박이라고 할까요?”

    조광연의 말에 박주혁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흥미를 보이자, 조광연이 웃으며 말했다.

    “월드컵 때문에 시범사업 하는 것 같더라고요. 경기가 아주 짜릿해집니다. 하하하.”

    “그래요?”

    박주혁이 관심을 표하자, 곁에 있던 메르헨이 다가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주혁 씨. 도박 안 돼요.”

    메르헨의 말에 구경숙이 유모차를 끌다 말고 멈춰서 조광연의 등짝을 후려쳤다.

    - 쫙!

    “아아악!”

    “으이그. 회장님께 좋은 것도 알려드린다 진짜!”

    “아. 아니 뭐 그냥 재미 삼아 만 원 한 거야. 따면 맛있는 것도 먹고, 우리 희연이 장난감도 사주고 얼마나 좋아?”

    조광연은 너스레를 떨며 유모차에 잠들어있는 희연이를 바라보며 히쭉거렸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다들 흐뭇하게 웃고 있었지만, 박주혁의 표정은 살짝 굳어있었다.

    ‘토토라···. 재미있겠는데?’

    경기 결과를 다 알고 있는 박주혁에게 스포츠토토는 땅 짚고 헤엄치기 아닌가? 박주혁은 눈을 빛내며 조광연을 끌고 일행을 앞서나가며 속삭였다.

    “조 부장. 3일 뒤 크로아티아와 2차 평가전도 토토 가능한가?”

    “역시. 회장님도 구미가 당기시죠? 흐흐흐. 그럼요. 저만 따라오시죠. 경력자의 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조광연이 히쭉히쭉 웃었고, 메르헨과 구경숙이 그들을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복권방에 들어선 조광연은 박주혁에게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박주혁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지금 눈 앞에 펼쳐진 히딩크 감독의 인터뷰 번역본에만 집중했다.

    ‘보자. 11월 13일 크로아티아전···. 1:1 무승부. 좋았어.’

    조광연의 설명을 무시한 채 박주혁은 거침없이 마킹을 해나갔다.

    “에이. 회장님. 무승부라뇨. 이번엔 크로아티아가 이깁니다. 저랑 별도로 내기하실까요?”

    “그건 두고 봐야죠.”

    조광연의 이죽거림을 웃어넘긴 박주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조 부장. 미안해 난 승률 100%야.’

    박주혁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을 때 복권방으로 메르헨과 구경숙이 들어왔다. 구경숙은 매서운 눈초리로 조광연을 노려봤다.

    “힉!”

    조광연이 화들짝 놀라 딸꾹질을 하는 사이 메르헨은 박주혁에게 다가와 물었다.

    “뭐에 걸었어요?”

    “1:1 무승부.”

    “그럼, 난 한국 1:0 승리에 걸어야지.”

    결과를 알고 있는 박주혁이었지만, 메르헨의 재미를 뺏고 싶지 않았는지 그는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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