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대표님-131화 (131/136)
  • 131화 우리 더 행복하게 살아요.

    옥상 테라스는 두 집을 합쳐놓은 크기였기 때문에 생각보다 넓었다. 흙을 올려 정원으로 꾸며도 충분한 크기였다. 박주혁이 테라스를 둘러보며 감탄하는데 윤철영 부사장의 끝없는 설명이 다시 시작됐다.

    “대표님 저기 보이는 천이 안양천입니다.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죠. 안양천 주변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어 산책하기에도 좋습니다. 정부에서 자전거 도로도 설치한다고 합니다. 자전거 출퇴근도 가능할 겁니다. 그리고 저기 보이는 건물이 목동 미래 백화점으로 자차로 10분 내외입니다. 그리고 저 건물은 EH대학 병원입니다. 그리고 뒤편을 보시면 용왕산이 자리하고 있어 숲의 맑은 공기도···.”

    말이 참 많다. 하지만, 박주혁은 웃으며 윤철영 부사장의 설명을 경청했다. 설명할 장점이 많다는 것은 아파트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물론, 가끔 리액션도 해주고 말이다.

    “좋군요.”

    “그렇군요.”

    “오!”

    박주혁의 반응에 윤철영 부사장의 눈이 빛났고 더욱 목소리가 커졌다. 일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이 느껴져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설명을 들으면서 박주혁은 옥상 테라스 살펴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머니가 좋아하실 텃밭, 그리고 야외 비비큐, 아이가 생기면 수영장까지 가능하겠어.’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떠올리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목동 현장을 순회한 박주혁은 서울 월드컵 경기장 공사 현장을 찾았다.

    “박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유수엽 설계사가 박주혁을 반갑게 맞이했다. 박주혁은 유수엽과 악수 후에 현장을 둘러봤다. 토목 공사가 끝나고 골조가 올라가는 중이었는데 골조만으로도 엄청난 규모임을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축구 전용 구장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쥘 테니 웅장함이 남다를 수밖에 없을 터.

    “공사는 원하시는 대로 진행 중입니까?”

    “가장 까다로운 토목이 끝나고 골조가 올라가니까요.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렇군요. 막상 현장을 오니 규모가 굉장하네요.”

    “6만 7천석 규모니까 아마, 아시아 최대 규모일 겁니다.”

    박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기장 근처에 높이 올라가는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곳이군요?”

    “맞습니다. 88년 올림픽 체조경기장의 실패를 보완했달까요?”

    “월드컵이 끝난 후의 사용성도 생각해야 하니,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관, 대형마트, 그리고 경기장 대관 등 추후 사업성까지 고려한 점을 서울시에서도 높이 샀다고 얼핏 들었습니다.”

    유수엽이 미소 지으며 말했고, 박주혁은 다시 한번 유수엽의 업적을 치하했다. 그는 유수엽과 현장 소장 및 직원들과 일일이 안부를 나누고 현장 사무소로 돌아왔다.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박주혁은 유수엽 설계사에게 말했다.

    “설계사님. 월드컵 경기장 프로젝트가 완료되고 다음 프로젝트가 있으십니까?”

    “예? 아니요. 우선은 월드컵 경기장을 확실히 마감하고 다음 프로젝트를 고민해봐야죠.”

    유수엽의 말에 박주혁이 살짝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럼 저희와 프로젝트 하나 더 하시죠.”

    “예? 어떤···?”

    “제주도에 파인의 본사를 지을 생각입니다.”

    “아, 윤 부사장에게 얼핏 들었던 것 같습니다.”

    “월드컵 경기장에 이어 설계사님의 이름을 또 남겨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박주혁이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속삭이듯 물었고, 유수엽은 너털웃음을 짓더니 답했다.

    “박 대표님과 함께 일할 수 있다면 환영이죠.”

    #

    2000년 4월.

    드디어 목동 아파트 현장에 조경수들이 식재되며 아파트 단지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후분양제로 드디어 분양에 나서기 위한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쳤는데, 마침 시기가 좋았다.

    기나긴 암흑 터널일 것만 같던 외환위기가 그 끝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 지은 집. 그렇다면 선택은 더 파이니스트!]

    [층간소음, 결로? 여긴 없어! 어디라고? 더 파이니스트.]

    [참, 잘 지었다. 더 파이니스트.]

    파인건설의 아파트 브랜드는 더 파이니스트였다.

    가치를 짓는 파인건설의 기치와 잘 부합된다는 내부 투표 결과에 따라 극상품, 특상, 최고라는 뜻을 가진 더 파이니스트가 선정되었다. 박주혁도 더 파이니스트라는 브랜드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후분양이었던 만큼 더 파이니스트를 방문한 사람들이 더 파이니스트에 대한 입소문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물론 시작은 파인 카페 중 유명한 부동산 카페에서 시작되었다.

    [목동 더 파이니스트 방문 후기]

    『오늘 동생네 식구와 목동 더 파이니스트 방문했습니다. 층간소음이 없다고 하도 광고하길래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갔죠. 여러분도 이 후기가 기대되시겠죠? ㅎㅎ 우리 식구는 2층, 동생네가 3층으로 따로 올라갔어요. 당연히 모르는 사람인 척했고요.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위에서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예요. 분명 동생네 얘들도 함께 갔기에 마음껏 뛰게 하겠다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전화를 했는데 웬걸···. 이미 조카들이 소리치며 난리 피우는 것 아니겠어요? 저희 부부 그거 확인하고 바로 청약 넣었습니다. 목동 더 파이니스트 최고! 제발 당첨되길···!』

    └ 오! 저도 오늘 다녀왔는데 혹시 몇 시 팀이셨어요? 친구네랑 가서 테스트했는데 대박! 소음 하나도 안 들림. 저도 바로 청약 넣음 ㅋㅋㅋ

    └ 아니 다들 층간소음만 얘기하시는데, 인테리어 자재 보셨어요? 오빠가 건설회사 다녀서 꼼꼼히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라고요.

    └ 자재 별로예요? 아, 층간소음만 신경을 쓰느라···ㅠ

    └ 아, 아뇨. 자재를 너무 좋은 것 썼다고···. 죄송해요. 제가 글주변이 없어서.

    └ 아! 그런 거였군요! 다행이에요. ㅎㅎ

    └ 아 나도 청약했는데 이거 경쟁율 너무 센 거 아닌가?

    └ 나도 했는데. 다 경쟁자네ㅋㅋㅋ

    └ 펜트하우스 본 사람? 거기도 대박이던데···!

    └ 벽난로와 테라스! 완전 로망인데 너무 비쌈···ㅠ

    목동 더 파이니스트는 820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로 청약이 마감됐다. 근처 시세 대비 50% 이상 비싼 가격이었지만, 후분양으로 품질을 확인한 소비자들은 망설임 없이 더 파이니스트를 선택했다.

    #

    그로부터 2개월 뒤 더 파이니스트로 입주가 시작됐다.

    원체 짐이 없었기에 박주혁의 식구들은 빠르게 입주할 수 있었다. 최효정 여사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져서 연신 감탄사를 뱉었다.

    “어머나! 세상에···.”

    30평대 집을 두 채 합쳤으니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락과 테라스까지 포함하면 총 네 채가 합쳐진 것과 다름없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박주혁을 고려한 세세한 설계가 곳곳에 묻어 있었다. 광활한 거실을 기준으로 생활권이 분리되어 있었다. 거실과 붙어 있는 메인 주방이었고, 최효정 여사의 방 쪽으로 가니 또 다른 작은 거실과 주방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최효정 여사가 독립적으로 생활이 가능한 구조였다.

    “어머나! 주방이 2개야!”

    최효정 여사 곁에서 함께 구경하던 메르헨도 상당히 마음에 드는지 연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심지어 풀옵션이라, 시스템 에어컨과 빌트인 냉장고, 김치냉장고뿐 아니라 식기세척기와 전기 오븐까지 갖춰져 있었다. 최효정 여사는 접해보지 못한 최신 가전제품이었다.

    “이게 다 뭐니?”

    최효정 여사의 질문에 메르헨이 웃으며 답했다.

    “이건 식기세척기고요. 이건 오븐이네요.”

    “식기 뭐?”

    “그릇 닦아주는 기계에요 세탁기 같은 거죠.”

    “아아.”

    최혀정 여사와 메르헨이 주방을 탐구할 때 박주혁이 그들을 다락방으로 불렀다.

    “어머니! 메르헨, 이리로 올라와 봐요.”

    광활한 테라스에서 박주혁이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곁으로 최효정 여사와 메르헨이 다가와 섰다. 탁 트인 시야와 용왕산 쪽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이 그들을 감쌌다.

    “어머나 세상에!”

    “와. 주혁 씨 정말 멋진 집을 지었군요?”

    최효정 여사와 메르헨의 말에 박주혁은 미소 지으며 물었다.

    “어때요? 마음에 드나요?”

    최효정 여사와 메르헨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들의 행복한 미소에 박주혁의 얼굴에도 미소가 걸렸다.

    “어머니 옥상 테라스에 정원도 꾸미고 텃밭도 만들어서 고기도 굽고 상추도 뜯어 먹고 할까요?”

    “어머나! 그게 가능하다니?”

    “그럼요.”

    최효정 여사가 행복감에 얼굴이 상기되자, 박주혁의 마음 한편이 울컥거렸다.

    ‘이렇게 좋아하실지 몰랐습니다. 앞으로 우리 더 행복하게 살아요.’

    박주혁이 최효정 여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속으로 다짐할 때 메르헨이 박주혁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주혁 씨랑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다니 너무 좋아요.”

    “저도요.”

    어색한 박주혁의 감정표현에 메르헨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어색한 말투에서도 메르헨은 사랑을 느낄 수 있나 보다.

    #

    목동 더 파이니스트가 인기리에 분양을 마감하고 입주를 시작할 때쯤 인천 송도에서는 파인바이오셀의 공장 준공식이 열렸다.

    “하나둘 셋! 하면 잘라주시면 됩니다?”

    사회자의 말에 박주혁과 서진용을 비롯한 파인그룹 관계자와 파인바이오셀 임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둘! 셋!”

    오색 테이프가 끊어지고, 미리 준비된 폭죽이 터졌다.

    - 펑! 펑!

    박주혁은 공장 시설들을 돌아보며 서진용에게 물었다.

    “서 사장. 스벤젝의 에이즈 치료제 기술을 확실히 체득하고 특허권 만료가 다가오는 바이오의약품을 복제할 수 있도록 미리 연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바이오시밀러 말씀이시군요. 어쩜 제 생각과 이리도 같으실 수가···.”

    서진용이 눈을 크게 뜨며 박주혁을 바라봤고, 박주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특허권 만료가 다가온다고 하니, 얘기한 겁니다. 찾아보니 바이오의약품들의 가격이 엄청나더군요.”

    “맞습니다. 바이오시밀러로 승인을 받게 되면 고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서진용 사장의 말에 박주혁이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길버트 사이언스에서 이전된 하미플루는 바로 생산에 들어갈 수 있죠?”

    “예. 이미 기술 이전은 끝났고 생산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미플루는 조류인플루엔자 치료제인데 생산에 의미가 있을까요?”

    “헨리 럼즈펠드와 협상하실 때 이상하다는 것을 못 느끼셨습니까?”

    서진용은 길버트 사이언스의 헨리 럼즈펠드 회장과 협상 당시를 떠올리더니 미간을 살짝 구겼다.

    “확실히 헨리 럼즈펠드가 뭔가를 숨기는 듯하긴 했습니다.”

    “헨리 럼즈펠드. 70년대 미국 수석보좌관과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던 사람입니다.”

    “예? 정말입니까?”

    서진용 사장이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는지 화들짝 놀라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리고 이번에 공화당이 다시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이 벌써 나오고 있죠.”

    “그, 그렇단 말은···?”

    “헨리가 정치권에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

    박주혁과 함께 걷고 있던 서진용이 갑자기 우뚝 멈춰서더니 입을 살짝 벌렸다.

    “박 회장님. 설마, 미국 정치권까지 염두에 두시고···?”

    “저도 처음에는 그런 줄 몰랐습니다. 헨리 럼즈펠드라는 이름을 듣고 나중에 알았죠.”

    “허.”

    “하미플루 생산하세요. 아마 무슨 일이 곧 터질 겁니다.”

    “알겠습니다. 사실 자재값은 얼마 들지 않으니, 회장님의 예측이 빗나가더라도 큰 타격은 없을 겁니다.”

    서진용의 말에 박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서 사장님. 이번에 하미플루가 효자 노릇을 할 겁니다. 미국 국방부의 첫 발주로 투자 비용을 회수하고, 그 후로는···.’

    헨리에게 빅엿을 선사할 시나리오에 박주혁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