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대표님-130화 (130/136)
  • 130화 우리 가족이 살 곳.

    도지사의 탐욕스러운 눈을 바라보며 윤철영 부사장이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파인이 제주도에 터를 잡게 되면 관광, 농어업 중심의 제주도 산업구조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주하게 되면 함께 넘어올 직원만 100여 명입니다. 거기에 추가로 200명 이상의 직원을 채용해야 하죠. 물론 제주도민을 우선 채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향후 1,000여 명까지 직원을 늘릴 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1,000명이라.”

    도지사가 눈을 지그시 감으며 팔짱을 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도지사가 눈을 뜨더니 말했다.

    “인터넷 기업이 정말 그리도 많은 인력이 필요합니까?”

    결국, 도지사가 걱정하는 것은 인터넷 기업에 대한 불신이었다. 95년부터 시작된 닷컴버블이 이제 끝물이었기에 그의 걱정은 합리적이었지만, 파인과는 관계없는 얘기였다. 이건 윤철영 부사장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도지사님. 걱정하시는 바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파인은 파인그룹 산하 계열사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아직은 파인그룹이 중견기업 그룹에 속해있지만, 대기업에 반열에 오르는 것도 것도 머지않았습니다.”

    “으음.”

    도지사가 팔짱을 끼고 고심하자, 윤철영 부사장이 말을 이었다.

    “혹시 박주혁 대표를 아십니까?”

    “박주혁이면, 전기차와 Mp3를 만든 기업가 아닙니까?”

    파인그룹이 박주혁의 회사였건만, 아직도 박주혁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전기차와 Mp3였다. 그럴 수 있다. 포털 사이트 파인의 뒤에 박주혁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으니까 말이다.

    윤철영은 웃으며 도지사에게 말했다.

    “박주혁 대표가 파인그룹의 회장님이십니다.”

    “···!”

    도지사가 드디어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어휴, 누가 정치 꼰대 아니랄까 봐···. 강한 자에 약하고 약한 자에 강한 정치인의 면모를 여과 없이 보여주니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어쨌든 칼자루를 쥔 건 도지사였다.

    사실 조금만 생각이 깨어있다면, 두팔을 벌려 파인을 끌어안아야 맞는 일이건만···. 쯧.

    “서귀포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죠? 제주국제공항과 가까운 제주시가 더 좋은 것 아닙니까?”

    도지사의 말에 윤철영 부사장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주시가 지역구인가 보지···? 하지만, 박 대표님은 서귀포로 하라고 하셨다.’

    도지사의 생각을 읽은 윤철영 부사장이 정색했다.

    “서귀포 아니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박 대표가 그리 말했단 겁니까?”

    “그렇습니다. 서귀포 쪽에 해저 데이터 센터를 짓고 있는 것은 아실 겁니다. 데이터 센터와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는 지시였습니다.”

    “거참. 제주시가 더 좋을 텐데···.”

    도지사가 아직도 미련을 못 버렸는지 말끝을 흐리며 입맛을 다시더니 말했다.

    “서귀포시 시장과 한번 부지를 찾아보지요. 그럼 바닷가와 좀 가까운 곳이어야 하겠군요?”

    “항구와 가깝게 이어진 곳이면 더할 나위 없지요.”

    윤철영 부사장의 말에 도지사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윤철영 부사장에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부지만 정하면 빠르게 확정될 수 있습니까? 제 치적에 좀 넣어야 해서 말이죠.”

    “아, 부지만 정해지면, 바로 움직일 겁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윤철영 부사장의 말에 도지사가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윤철영 부사장은 도지사와 손을 맞잡으며 묘한 웃음을 흘렸다.

    ‘정치인이란···.’

    제주도지사는 고건우 서울시장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속물 오브 속물이었다.

    #

    서진용은 어깨를 펴고 귀국했다.

    스벤젝에서 에이즈 치료제 기술 이전에 합의했고, 길버트 사이언스의 하미플루의 기술 이전까지 해결하고 왔으니 어깨가 펴질 만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구로공단 파인랭스의 사옥으로 향했다. 바이오셀의 대주주인 박주혁에게 결과를 보고하기 위함이었다.

    “대표님!”

    “서 사장님. 고생하셨습니다.”

    “박 대표님 덕분입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모든 것은 서 사장님이 만들어오신 결과 아닙니까?”

    박주혁의 말에 서진용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진지한 어투로 말했다.

    “박 대표님의 충고가 없었다면 에이즈 치료제 기술 이전뿐 아니라, 하미플루도 손에 쥘 수 없었을 겁니다. 심지어 하미플루 기술 이전에 필요한 1,000억 또한 파인에서 투자한 것 아닙니까?”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것뿐입니다. 오늘은 서 사장이 만들어낸 결과를 즐깁시다.”

    박주혁이 서진용의 기운을 북돋기 위해 말했지만, 서진용은 심각한 얼굴로 정색했다.

    “박 대표님. 바이오셀을 파인그룹에 편입하시죠.”

    “···?”

    예상하지 못한 말에 박주혁이 잠시 말을 잊지 못했다.

    “이미 바이오셀의 대주주는 파인그룹입니다.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습니다. 사실 이사회에서 표결해도 파인그룹의 뜻대로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도 찬성이고요.”

    서진용의 말에 박주혁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서 사장님. 전 바이오셀을 탐내서 투자한 것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미 박 대표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바이오셀은 저 혼자만의 힘으로 일으킨 회사가 아니란 뜻이죠. 파인그룹에 속해서 당당히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이게 솔직한 저의 심정입니다.”

    “으음.”

    결국은 파인그룹에 속해서 확실한 지원을 받겠다는 뜻이었다. 지금도 충분히 그러고 있음에도 서진용 사장은 파인에 속하는 것이 더 나으리라는 판단이 들었던 것 같다. 박주혁은 턱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파인그룹에 속해도 변하는 것은 없을 겁니다. 굳이 그렇게 해야 합니까?”

    “예. 그러고 싶습니다. 그게 최소한 대표님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이오셀은 박 대표님이 살리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서진용의 말에 박주혁은 별다른 답을 할 수 없었다. 스벤젝의 에이즈 치료제가 임상 3차에서 실패하며 모든 투자가 물거품이 되었던 당시, 에이즈 치료제에 이어 하미플루까지 손에 쥔 것은 모두 박주혁의 입김이 닿았음은 자명했으니 말이다.

    “음. 서 사장의 뜻은 알겠습니다. 더 고민해 보시죠.”

    “고민할 이유가 없습니다. 전 전문 경영인으로 바이오셀을 이끄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렇게 하시죠.”

    서진용은 단단히 마음먹고 왔는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박주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서진용의 손을 잡았다.

    “정 그렇다면, 앞으로도 바이오셀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서진용 사장님.”

    “네. 초심을 잃지 않고 지금처럼 달려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원치 않았던 결과였지만, 헨리 럼즈펠드에게 빅엿을 먹이려면 어쩌면 바이오셀이 파인그룹에 속해있는 것이 더 효율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코로나19를 대비하기 위한 투자도 박주혁의 입김이 확실히 적용될 테니 맞는 방향이었다. 다만, 바이오셀로 승승장구하여 대한민국의 부호가 될 서진용의 인생이 바뀌는 것 같아 그것이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섭섭지 않게 챙겨드리겠습니다.’

    박주혁은 사장실을 나가는 서진용의 뒷모습을 보며 굳게 다짐했다.

    #

    [층간소음이 없다는 파인아파트, 후분양으로 자신감 표출!]

    [생소한 분양방식, 후분양은 무엇인가?]

    [파인아파트 전무후무 후분양 방식 과연 성공할까?]

    층간소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의 관심이 파인아파트로 쏠렸고, 그에 따라 언론도 파인아파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좋은 현상이었다. 후분양을 공표하고 나서부터는 그 관심이 더욱 치솟았다.

    언론이 ‘후분양 = 품질 자신감’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것처럼 기사를 작성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한현태 기자가 양념을 흘렸기에 더욱 탄력을 받기도 했다.

    언론의 반응을 떠나 파인건설은 품질에 자부심이 있었다.

    박주혁은 높이 솟은 아파트를 바라보며 윤철영 부사장에게 말했다.

    “품질 이상 없습니까?”

    “이상 없습니다. 외단열을 채용했기 때문에 결로도 없을 거라 확신합니다.”

    “층간소음도 중요하지만, 곰팡이 피는 집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많이 신경썼습니다. 설계팀에서도 정말 꼼꼼하게 신경썼습니다. 사실 직원들이 파인아파트로 이사하고 싶다고 성화일 정도입니다.”

    윤철영 부사장의 말에 박주혁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고객 만족은 내부고객 만족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내부고객 즉, 직원들이 탐내는 아파트라면 분명 제대로 짓고 있다는 뜻이다.

    “직원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니 좋은 반응이군요.”

    “사실 저도···.”

    윤철영 부사장이 멋쩍게 웃으며 말하자, 박주혁이 껄껄 웃더니 말했다.

    “이거 직원들에게는 할인이라도 적용해야겠는걸요?”

    “오! 정말이십니까?”

    윤철영 부사장이 반색하며 목소리를 높이자, 박주혁이 정색했다.

    “그건 아니죠.”

    “하하하. 저도 그냥 해본 말이었습니다.”

    “할인해버리면 회사 이익이 너무 없습니다. 단, 직원들에게 후분양시 우선권을 줄 수 있도록 한번 고민해 보시죠.”

    선분양제와 달리 후분양제는 정부의 규제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선분양제는 분양받는 사람들의 돈으로 아파트를 지으면서 정부가 관여할 수밖에 없었다. 분양대금만 받고 잠적해버리는 사기 분양을 막으려는 조치였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건설회사의 자본으로 아파트를 완공하는 후분양의 경우는 별달리 규제할 필요성이 없었다. 따라서, 분양방식에도 규제가 없었다.

    윤철영 부사장은 상기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혜택일 겁니다. 다른 사람보다 당첨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니까요.”

    박주혁은 피식 웃으며 윤철영 부사장의 팔을 두드리며 파인아파트 단지를 순회했다.

    “건설은 거의 끝나가는군요.”

    “예, 내부 인테리어가 진행 중이고, 조경수를 곧 심을 예정입니다.”

    “조경수도 신경 쓰라고 했는데 잘 진행중입니까?”

    윤철영 부사장이 조경 설계도를 펼치며 말을 이었다.

    “메인 산책로는 왕벚나무로 길로 조성됩니다. 어린이 놀이터 인근과 노인정 부근은 제주산 팽나무로 스카이라인을 맞춰 여름철 풍성한 그늘이 제공될 겁니다. 단지 주 출입구 부근에 가이즈까 향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선주목으로 웅장함을 강조했습니다.”

    윤철영 부사장의 설명을 들으며 박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문가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했을까? 조경 설계도를 힐끔 쳐다본 박주혁이 발걸음을 옮기자, 윤철영 부사장이 그를 뒤 쫓으며 말했다.

    “대표님. 혹시 3동 내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내부를 볼 수 있습니까? 아직 인테리어 중이라고 하셨잖습니까?”

    “3동 펜트하우스를 가장 먼저 시작해서 90% 정도 완성된 상태입니다.”

    윤철영 부사장이 씩 웃으며 말했고 박주혁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3동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이 입주할 집인데 관심이 없을 수 없지 않나.

    “어디 봅시다.”

    “예! 기대하십시오.”

    공사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으로 올라간 박주혁은 아직 현관문이 달리지 않은 집 내부로 들어섰다.

    거실로 들어서자 높은 다락방 높이까지 뚫려있는 높은 천정고 덕분에 공간감이 더욱 커졌다. 상당히 만족스러웠지만, 창가 근처 뻥뚫려있는 공간이 상당히 거슬렸다.

    “윤 부사장 저 곳은 무슨 용도죠?”

    “아! 아직 자재 수급이 안되어서 그런데, 벽난로가 위치할 곳입니다.”

    “···!”

    박주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윤철영 부사장을 바라봤다.

    ‘벽난로?’

    아파트에 벽난로라니 상상도 못 해본 것이었다. 남자라면 로망이라는 벽난로가 있는 아파트라니. 박주혁은 살짝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상당히 신경을 썼군요.”

    “예. 바닥도 포세린 타일로 일반 마루 바닥재와는 달리 고급스럽게···.”

    윤철영 부사장의 말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벽난로라니! 요동치는 심장을 억누르며 박주혁은 이곳저곳 둘러봤다.

    ‘멋지다. 이게 진짜 우리 가족이 살 곳이란 거지?’

    윤철영 부사장은 박주혁을 뒤쫓으며 설명하다 말고 갑자기 주방 근처에 있는 계단으로 박주혁을 안내하며 말했다.

    “대표님. 다락방도 보셔야죠.”

    “아, 그러죠.”

    말이 다락방이지 성인 한 명이 똑바로 설 수 있는 높이였다. 1개의 방과 거실 크기의 공간이 아이들의 비밀공간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박주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표정을 짓자, 윤철영 부사장이 외부로 이어진 샤시를 열며 힘주어 말했다.

    “대표님 이곳이 야외 테라스입니다.”

    “아, 테라스도 있다고 했죠?”

    윤철영 부사장의 안내로 테라스로 나간 박주혁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와.”

    시원한 바람이 박주혁의 머리칼을 흔들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목동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고, 시가지를 넘어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안양천이 심신을 차분하게 만들어 줬다. 박주혁은 잠시 눈을 감고 양팔을 살짝 벌려 바람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좋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