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대표님-129화 (129/136)
  • 129화 결국, 둘 다 쓰레기.

    서진용과 전화를 끊은 박주혁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중얼거렸다.

    “진짜냐?”

    헨리 럼즈펠드.

    당장 2년 뒤 조지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될 인물이다. 국방부 장관으로 입각하며 길버트 사이언스의 회장직은 내려놓을 테지만, 대주주인 그의 지분은 국방부 장관의 임기가 끝나도 유지한다.

    신종플루를 일부러 퍼트렸다는 음모론과 헨리 럼즈펠드 그리고 길버트 사이언스가 퍼즐처럼 모여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음모론이 사실이었다고?”

    박주혁은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낮게 읊조렸다.

    이미 정권 교체는 기정사실이었다. 골수 공화당인 헨리 럼즈펠드도 분명 자신의 정치권 재진출을 예견하고 있었을 것이다.

    헨리 럼즈펠드, 매우 위험한 자임이 틀림없었다.

    그의 검은 속내에 찬물을 끼얹으려면···. 신종플루의 확산을 막아야 하지만, 박주혁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차선책은 하미플루의 대량생산하고 약품의 공급가를 떨어트려, 길버트 사이언스로 흘러들어가는 돈을 옥죄는 방법이 유일할 터.

    박주혁은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더러운 새끼. 네 뜻대로 되진 않을 거다.”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돈을 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악마도 혀를 내두를 새끼다. 속으로 헨리 럼즈펠드의 계획을 보기 좋게 어그러트릴 각오를 다지는데 불현듯 SARS와 코로나 펜데믹의 기원이 중국이었다는 사실이 떠오른 박주혁의 미간이 와락 좁혀졌다.

    “가만, 감염병의 발생 순서가 어떻게 되지?”

    박주혁은 시스템을 뒤져 감염병 발생 순서를 수첩에 써 내려갔다.

    [2002년 SARS] - 코로나바이러스 / 중국 (광둥)

    [2009년 신종플루] -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 미국 (샌디에고)

    [2012년 MERS] - 코로나바이러스 / 중동 (사우디)

    [2020년 코로나 펜데믹] - 코로나바이러스 / 중국 (우한)

    펜으로 수첩을 두드리던 박주혁이 낮게 읊조렸다.

    “SARS와 MERS는 자연 발화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신종플루와 코로나팬데믹은···. 의심스럽네.”

    박주혁은 나열된 리스트에 추가 글귀를 적어넣었다.

    [2002년 SARS] - 코로나바이러스 / 중국 (광둥)

    [2009년 신종플루] -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 미국 (샌디에고) / 길버트 사이언스 본사 부근

    [2012년 MERS] - 코로나바이러스 / 중동 (사우디)

    [2020년 코로나 펜데믹] - 코로나바이러스 / 중국 (우한) /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부근

    “참나. 그러니까 SARS로 팬데믹이 도래하니까, 미국이 이를 악용을 했다는 가설도 설립이 가능한 거야. 심지어 길버트 사이언스 본사와 겨우 600km 떨어진 샌디에고. 과연 우연이었을까?”

    박주혁은 신종플루라고 쓰여있는 곳에 동그라미 치더니 코로나 펜데믹으로 시선을 옮겨 낮게 읊조렸다.

    “미국은 그래도 하미플루를 만들어놓기라도 했지!”

    지나친 억측일 수도 있지만, 박주혁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었다. SARS가 발생한 후 7년 뒤 신종플루를 퍼트렸고, 2012년 MERS 사태가 발생 돼 8년 뒤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했으니 말이다.

    미국을 벤치마킹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신을 완성하기 전에 바이러스가 먼저 새어 나갔고, 예상보다 강한 전파력에 그들도 당황했겠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백신이 곧 완성될 테니 말이다.

    백신의 완성과 동시에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겠지. 종식 시킬 수 있다고 믿으니 그렇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통제에만 열을 올렸을 수도···.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 펜데믹 백신을 발표한 것도 그들이었다.

    그러나, 백신 ‘시노벡’은 친중 국가를 제외하곤 철저히 외면당한다. 의심의 눈을 거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보공개를 철저히 감추는 행태로 인해 시노벡의 임상실험 결과도 색안경을 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백신중에서도 가장 효과도 적은 것으로 판명 나기도 했고 말이다.

    박주혁의 가설이었지만, 어쩜 이리도 딱딱 들어맞을 수 있단 말인가? 미래를 알고 있기에 가설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미간을 와락 구기며 팔짱을 꼈다. 지그시 눈을 감은 박주혁이 한숨 섞인 탄식을 뱉었다.

    “결국, 둘 다 쓰레기네.”

    #

    서진용은 협상테이블에 앉아 능글맞게 웃고 있는 헨리 럼즈펠드를 쳐다보며 입술을 열었다.

    “헨리, 2,700억은 무리입니다. 조류인플루엔자 치료제에 그 돈을 투자할 이유가 없습니다.”

    서진용의 말에 헨리 럼즈펠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른 제약회사에 넘길 수밖에요. 로쇼가 저희 기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로쇼요?”

    되묻는 서진용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글로벌 제약회사로 시가 총액 순위로 J&J에 이어 부동의 세계 2위인 스위스 기업이다.

    서진용의 눈가가 떨린 것은 세계 2위 기업이 조류인플루엔자 치료제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왜 하필이면 스위스 기업이냐는 것이었다. 미국의 J&J도 있고 머크, 애봇, 파이쥐 등 미국의 유수한 바이오 회사들이 많은데 말이다. 자국 회사가 아닌 스위스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려는 이유는 하나, 스위스 은행과의 연계일 터.

    ‘박 대표님 말대로 다른 속내가 있구나.’

    확신이 선 서진용은 눈을 빛내며 천천히 입술을 뗐다.

    “그럼 마지막 제안을 하겠습니다.”

    서진용의 말에 헨리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어서 말해보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2,700억은 현재로선 불가능한 얘기지만, 하미플루 총 매출액의 5%를 길버트 사이언스에 로열티로 지급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박주혁이 10%라고 말했지만, 처음부터 패를 꺼내 보이면, 안되는 법이다. 10%가 12, 15%로 올라갈 수 있으니 말이다. 역시 영업맨 출신 서진용의 센스는 남달랐다.

    “으음. 새로운 접근 방식이군요.”

    헨리는 뜻밖의 제안에 턱을 쓸며 고민에 빠졌다. 아마도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터.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던 헨리가 재무 담당 제임스와 은밀히 얘기를 주고받더니 눈웃음을 흘리며 서진용에게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1,000억은 기술이전비용으로 주시고, 매출액의 8%를 로열티로 지급하는 방식은 어떻습니까?”

    서진용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헨리도 웃음으로 화답하며 서진용의 손을 맞잡으며 활짝 웃었다. 그들의 악수로 하미플루는 이제 바이오셀이 생산 및 판매에 있어 독점권을 갖게 되었다.

    헨리는 알지 못했다. 바이오셀이 하미플루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리라는 것을 말이다. 하기야, 1,000억을 들여 기술을 이전받았는데 제품을 헐값에 판매하리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나.

    #

    파인랭스 사옥 10층.

    최연복 쉐프의 목란이 드디어 긴 인테리어 공사를 끝내고 오픈했다. 목란 앞에는 파인랭스, 파인, 파인테크, 파인건설을 비롯한 DD 자동차와 벤타의 화환까지 더해져 화려한 꽃길을 이뤘다.

    박주혁은 우선 파인랭스 직원 전부를 끌고 목란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점원이 박주혁과 파인랭스 직원들을 우렁찬 목소리로 맞이하고 자리를 안내했다. 주방에 있던 최연복 쉐프가 박주혁이 온 것을 확인하고 헐레벌떡 뛰어나와 인사했다.

    “박 대표님. 오셨습니까?”

    “예. 쉐프님. 영업 개시 축하드립니다. 여긴 제 와이프입니다.”

    박주혁이 곁에 있는 메르헨을 최연복 쉐프에게 소개시키자, 그가 살짝 당황하며 꾸벅 인사했다. 아마도 외국인이 와이프라는 것에 놀란듯싶었다.

    “메르헨이에요. 오픈 축하드립니다.”

    메르헨의 유창한 한국말에 최연복 쉐프는 다시 한번 놀란 듯 눈을 끔벅였다.

    “아, 아. 감사합니다. 한국말 너무 잘하시네요.”

    최연복 쉐프의 말에 메르헨은 한번 빙긋 웃었다. 박주혁은 최연복 쉐프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우리 직원들에게 맛있는 점심 부탁드립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특별히 신경쓰겠습니다.”

    박주혁은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돌려 직원들에게 말했다.

    “자, 메뉴를 주문해야죠? 어떤 음식, 요리도 괜찮습니다.”

    박주혁의 말에 조광연이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대표님. 구경숙 부장님의 배 속에 아이가 코스요리가 먹고 싶답니다!”

    차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한 구경숙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조광연을 노려볼 때, 박주혁이 웃으며 답했다.

    “아이가 뱃속에서부터 말을 하나 봅니다?”

    “제 아이가 천재라서 말이죠.”

    “와하하!”

    조광연의 넉살에 직원들이 박장대소했고, 구경숙 부장은 주책이라며 등짝 스매싱을 날렸다. 박주혁은 웃는 얼굴로 메뉴판을 슬쩍 보더니 소리쳤다.

    “S 코스로 주십시오.”

    “S 코스···. 바,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박주혁이 막힘없이 주문하는 것과 달리 점원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살짝 말을 더듬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목란의 S 코스는 1인당 60,000원인 최상급 코스요리였기 때문이다.

    샐러드, 스프에 이어 최연복 쉐프의 트레이드 마크인 육즙이 터지는 만두가 애피타이저로 제공된다. 주요리로는 사천식 마라 소고기 볶음, 오렌지 깐풍기, 칠리 새우, 탕수육이 제공된다. 그리고 S 코스에는 쉐프 스페셜 메뉴 한가지 포함되어 있었다.

    최연복 쉐프가 직접 요리하는 스페셜 메뉴만으로도 6만원의 가치가 있을 터. 박주혁이 망설이지 않고 S 코스 요리를 주문한 이유였다.

    주문과 동시에 주방에서는 불길이 치솟으며 중국음식 특유의 냄새가 홀을 채우기 시작했다.

    “오우 냄새만으로도 군침이!”

    조광연의 호들갑에 직원들이 미소 지을 무렵 샐러드가 차려졌다. 땅콩 소스에 버무려진 싱싱한 야채가 식욕을 돋웠다. 뒤이어 나온 게살 스프가 속을 따뜻하게 워밍업시켰고, 육즙의 향연이 펼쳐지는 만두에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와! 이게 뭐야.”

    “대박. 이게 만두라고?”

    “만두피가 이렇게 얇은데 육즙이 안에 가득 들어있어. 상상 이상인데?”

    메르헨도 만두를 음미하며 말했다.

    “으음. 와 대단하네요. 주혁 씨도 어서 드셔보세요.”

    “맛있어요?”

    박주혁의 물음에 메르헨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예뻐 보이는지 박주혁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만두를 입에 넣어 이빨로 만두피를 살짝 찢자, 뜨끈한 육즙이 흘러나오며 혀를 감쌌다. 고소하면서도 풍미 가득한 육즙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만두 속의 식감 또한 일반 만두처럼 부서지지 않았다. 마치 고기를 먹는 듯한 착각이었다.

    “와. 정말 이건···.”

    박주혁도 눈썹을 치켜올리며 만족감을 표했다. 최연복 쉐프에서 탄생한 요리와 음식들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쉐프 스페셜 요리가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노르스름한 식빵 사이에 살짝 붉은 기가 도는 속이 가득 차 있었다.

    “멘보샤?”

    박주혁이 요리를 바라보며 말할 때, 최연복 쉐프가 직접 다가와 메뉴를 설명했다.

    “맞습니다. 멘보샤인데, 조금 다를 겁니다. 한번 드셔보시고 맞춰보시죠.”

    최연복 쉐프의 표정에서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박주혁은 고개를 끄덕이곤 멘보샤를 한입 베어 물었다.

    - 바삭.

    크런키한 식감 뒤로 향긋한 것이 게살 향이 입과 코를 가득 채웠다.

    “오. 새우가 아닌 게살이군요?”

    박주혁이 감탄하며 최연복을 바라보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게살이 아닙니다.”

    “게살이 아니라고요? 근데 게살 맛이 강하게 나는데?”

    박주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멘보샤를 다시 한입 베어 물었다. 역시나 입안 가득 게살 향이 가득 채웠다. 그런데 식감이 살짝 달랐다. 탱글탱글한 게살과는 달리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

    “그러네요. 식감이 게살과는 차이가 있군요. 마치 생선 같은데?”

    “오. 박 대표님. 그걸 알아채시다니 놀랍습니다.”

    게살 맛이 나는 생선? 들어보지 못했다. 최연복 쉐프는 빙긋 웃으며 베일에 싸인 식자재를 공개했다.

    “옥돔입니다.”

    “옥돔?”

    “예. 제주도 생물 옥돔은 게살 맛이 나죠. 부드럽고요.”

    최연복 쉐프의 말에 모두 감탄하며 멘보샤를 게 눈 감추듯 먹어 버렸다.

    “너무 맛있다!”

    #

    박주혁과 파인랭스 직원들이 목란에서 즐거운 식사를 하고 있을 때, 파인건설 윤철영 부사장은 제주도지사에게 점심을 대접했다.

    “도지사님, 포털사이트 파인이 제주도에 본사를 옮겨오려고 하고 있습니다. 마침 제주도가 기업을 유치하려 한다는 소식에 만나 뵙기를 청했습니다.”

    “포털사이트 파인이면, 인터넷 업체죠?”

    “그렇습니다.”

    “요즘 우리 손주도 파인월드? 그걸 꾸미느라 정신이 없더군요.”

    도지사의 말에 윤철영 부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들 하길래 저도 한번 시도해봤는데, 쉽지 않더군요.”

    윤철영 부사장의 말에 도지사가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하하!”

    도지사와 윤철영 부사장이 공감대를 형성했다. 공감대를 갖고 얘기하는 것이 더 수월했으니 윤철영 부사장의 접근 방법은 유효했다.

    윤철영 부사장은 식사를 마치고 찻잔을 입에 가져가며 도지사를 응시했다. 이제 본론이 슬슬 나와야 했지만, 그는 뜸을 들였다.

    도지사는 차를 한 모금 하더니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파인이 본사를 세울 수 있는 토지를 구하고 싶다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의 부지가 필요하시죠?”

    “최소 3천 평이 필요합니다.”

    “으음.”

    도지사가 곤란한 듯 낮게 신음하자, 윤철영 부사장이 서둘러 말을 이어갔다. 박주혁이 제주 이전 프로젝트의 토지구매를 윤철영에게 지시하며 했던 말이었다.

    “도지사님. 파인이 제주도에 본사를 차리면 도내 생산유발효과가 1천억을 상회할 것입니다.”

    “1천억이요?”

    윤철영 부사장의 말에 도지사가 눈을 부릅뜨며 그를 쳐다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