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대표님-122화 (122/136)
  • 122화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박영희 디렉터와 심영찬 과장은 박주혁이 말한 미니홈피 개발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어떤 서비스인지 개념은 있었지만, 구체화 시키기 위해서는 브레인스토밍 과정이 필요했다. 단순히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면 끝이 아니었기에.

    브레인스토밍하다 말고, 심영찬 과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박영희에게 물었다.

    “그런데 개인 홈페이지를 만드는 가장 큰 이유가 뭘까요?”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사안이긴 했지만, 한창 얘기가 진행 중인데 뜬금없이···. 심영찬의 질문에 박영희가 고개를 갸웃하며 답했다.

    “음··· 글쎄, 자랑질?”

    박영희의 말에 심영찬이 눈을 살짝 크게 뜨며 되물었다.

    “자기과시용이라는 건가요?”

    “자신의 인맥을 찾는다는 것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과시 아닐까? 난 이런 친구도 있다. 이런 곳도 다녀왔다. 내 남친 멋지지? 등등. 난 그런 것 같더라고···.”

    “디렉터님의 홈페이지에도 그런 내용이 있나요···?”

    심영찬의 말에 박영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그런 욕구가 있다는 거지. 그럼, 심 과장은 홈페이지에 뭐 올려?”

    “···음. 전 소스 코드나 프로젝트 마일스톤이라던지···. 그리고 무엇보다 제 홈피는 비공개에요.”

    이런 놈과 무슨 미니 홈페이지 서비스를 논할 수 있겠나? 개인 홈페이지를 꾸미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박영희가 이마로 손을 짚으며 고갤 가로저었다.

    “인맥 찾기, 개인 일기 쓰기 등으로 치장할 수 있겠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욕망 표출의 도구가 아닐까 싶어.”

    “욕망 표출의 도구라···.”

    “인정받고 싶은 욕구, 남들과 차별화하고 싶은 욕구들을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바로 개인 홈페이지겠지.”

    박영희는 이미 인간의 심리까지 대입하며 서비스의 방향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심영찬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음. 그럼 개인의 사진이나 영상도 올릴 수 있어야 하고, 미니홈피를 꾸밀 다양한 디자인적 요소도 필요하겠군요.”

    “그렇지. 물론,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배경음악도 넣어야 할 것이고.”

    “아, 결국 사운드바다도 연계시켜야겠군요.”

    “당연하지. 이미 파인의 고객들은 사운드바다에서 음원을 구매했어. 그걸 미니홈피에 연동시킨다면 이중결제도 할 필요도 없고, 소비자들의 접근성이 매우 높아지겠지.”

    “과연···.”

    심영찬이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의미심장한 그의 제스쳐와 표정에 박영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박영희는 눈을 치켜올리며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뭐가, 과연인데?”

    “오해 마십시오. 전 그저 대표님의 인선이 아주 적절한 것 같아 감탄한 것뿐입니다.”

    심영찬이 손사래 치며 항변했지만, 박영희의 주먹이 이미 그의 정수리를 내려친 후였다.

    “아야.”

    “뭐야, 지금껏 날 무시하고 있었냐?”

    그녀의 주먹이 심영찬의 정수리를 내리꽂은 후부터 계급장은 없었다.

    “아니, 난 누나가 정말 디렉터로서 대단한 것 같아서 감탄한 것뿐이라고.”

    “됐어! 이놈아.”

    “아, 진짠데. 그나저나 어째, 누나의 주먹은 나이가 들수록 더 매워지는 것 같아?”

    “이게?”

    심영찬의 말에 박영희가 다시 주먹을 들어 올렸고, 심영찬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투덕거림 속에서도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심영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영희의 손목을 낚아채듯 잡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근데 누나, 주말에 원장 선생님께 혜영 씨 소개하러 갈 건데···.”

    심영찬의 진지한 말에 박영희가 쥐었던 주먹을 풀며 차분하게 말했다.

    “드디어 결심했구나?”

    박영희의 물음에 심영찬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줄까?”

    “그럼, 고맙지···.”

    심영찬이 고마움을 표했지만, 박영희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혜영 씨가 날 시누이처럼 느끼면 어쩌지?”

    “비록 우리가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누난 친누나와 다름없어. 시누이 맞다고.”

    “···.”

    박영희는 말없이 손을 뻗어 심영찬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피식 웃었다. 박영희의 눈가가 살짝 붉어져 있었다. 둘은 햇빛보육원을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회의를 끝낸 그들은 회의실을 나섰고, 박영희는 심영찬에게 지시했다.

    “심 과장. 디자인팀에 미니홈피 샘플 디자인 시안 제출하라고 하고, 개발할 기능들 정리해서 보내요. 대표님께 보고자료 만들어야 합니다.”

    “네. 디렉터님. 오늘 증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어느새 계급장이 달린 그들은 미소 지으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

    박영희 디렉터의 미니홈피 개발제안서를 받아든 박주혁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그는 보고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참, 신기하네. 개발해야 한다는 말에 사이버월드와 이리도 비슷한 구상을 한다니···.”

    박주혁은 보고서를 덮고 휴대폰을 열었다.

    “박 디렉터.”

    “네, 대표님. 보고서 보셨습니까?”

    “잘 봤습니다. 아주 잘 만들었더군요.”

    “감사합니다.”

    박주혁의 칭찬에 박영희의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서비스 이름은 뭐라 할 생각입니까?”

    “파인월드요.”

    “나쁘지 않군요.”

    “그렇죠? 좋아하실 줄 알았습니다.”

    “제안서대로 진행하시죠.”

    지시를 끝낸 박주혁이 전화를 끊으려는데 박영희가 다급히 박주혁을 불렀다.

    “저, 대표님!”

    “네.”

    박주혁이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답했고, 박영희는 속삭이듯 말했다.

    “대표님. 심영찬 과장이 주말에 햇빛보육원 원장 선생님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원장 선생님을요? 무슨 일로요?”

    “혜영 씨를 원장 선생님께 소개하고 싶다고···.”

    “아, 정말입니까?”

    박주혁이 깜짝 놀라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며 목소리를 높였다.

    “예. 저도 같이 갈 생각인데···. 혹시 대표님, 바쁘시지 않다면···.”

    “그러고 보니 햇빛보육원을 방문한 지 좀 된 것 같군요. 시간을 내야겠습니다. 간 김에 봉사도 하고요.”

    전화를 끊고 박주혁이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햇빛보육원을 방문하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곧 겨울인데···. 얘들 파카를 하나씩 선물해야겠다.”

    방향이 정해지니, 행동은 빨랐다. 박주혁은 휴대폰을 열어 전화를 했고 곧 수화기너머로 요란하게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가 들렸다.

    - 드르르륵!

    “여보세요!”

    기계 소리에 조덕기 사장은 큰 소리로 전화를 받았고, 박주혁은 익숙한 듯 큰소리로 답했다.

    “조 사장님! 저 박주혁입니다.”

    “오! 박 대표! 잠깐만요.”

    배경음처럼 들리던 기계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아마도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간 듯 했다.

    “오랜만이네? 무슨 일이야?”

    “요즘도 챠넬이랑 DD 자동차 때문에 바쁘시죠?”

    “아. 나야 일이 안 끊기고 있으니 행복할 따름이지! 다 박 대표 덕분이야.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제가 뭐한 게 있나요. 다 조 사장님의 실력으로 일궈내신 거죠.”

    “껄껄.”

    박주혁의 말에 조덕기가 기분 좋게 웃었다. 우선 조덕기 사장의 기분을 올린 박주혁의 자신의 본심을 꺼냈다.

    “보육원 아이들에게 오리털 파카를 선물하고 싶다고?”

    “예. 곧 겨울인데 매번 물려받는 솜털 잠바 보다는 좀 따뜻한 것을 선물하고 싶어서요.”

    “그래서 나보고 좀 알아봐 달라는 소리구먼?”

    “동대문은 조 사장님 손바닥이잖습니까?”

    “좋은 일 하겠다는데 당연히 도와야지! 잠시 기다려 보시게.”

    조덕기 사장이 흔쾌히 답하자, 박주혁은 미소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

    조덕기 사장은 박주혁과 전화를 끊고, 곧바로 주배정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 사장. 웬일이야?”

    “주 가야. IMF에 잘 버티고 있냐?”

    “겨우 버티고 있지. 박 대표가 파인테크와 파인건설의 의자를 더블백으로 교체하는 바람에 입에 풀칠은 하고 있어.”

    “따지고 보면 나도 박 대표 덕에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지. 안 그랬으면 어디 숨어서 이미테이션 만들고 있었을 거야.”

    조덕기의 말에 주배정이 고개를 주억거렸고,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조덕기를 소개한 것이 주배정이었기에 뭔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으리라.

    “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아. 그게 박 대표와 조금 전에 통화했는데, 보육원에 오리털 파카를 기부하고 싶다잖아.”

    “오리털 파카? 하긴, 곧 겨울이지.”

    “IMF라 도움의 손길이 부족할 것 같다고, 알아봐 달라는데···. 그건 그거고, 우리도 뭔가 베풀어야 하지 않겠어?”

    “으으음.”

    주배정이 낮게 신음하며 방금 검토를 끝낸 재고장부를 힐끔 쳐다봤다.

    “그렇지 않아도 창고에 있는 단종된 제품 처리를 고민 중이었는데 보육원 아이들에게 선물하면 좋겠네. 자네도 뭔가 좀 알아봐. 박 대표가 좋은 일 하겠다는데 힘을 보태야지.”

    “당연하지. 난 파카를 직접 제작해서 주려고.”

    챠넬 제품을 생산하는 장인이 만든 오리털 파카라면 과연 값으로 따질 수 있을까? 박주혁이 가볍게 시작한 일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박주혁이 퇴근하여 집에 도착하여 문을 열었다. 눈에 익은 여성의 신발과 남성 구두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곧 최효정 여사와 메르헨이 박주혁을 웃으며 맞았다.

    “메르헨?”

    박주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최효정 여사를 쳐다보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뭘 그렇게 놀라, 내가 저녁에 초대했다. 어서 씻고 오렴.”

    남성 구두의 정체를 눈치챈 박주혁이 황급히 들어가 해리스에게 넙죽 인사를 했다. 해리스는 웃으며 박주혁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식탁에 다 같이 모여 앉아, 최효정 여사가 정성껏 차린 음식을 마주했다. 해리스의 입맛을 고려해 맵지 않은 음식들이 주를 이뤘고, 유독 눈에 띄는 계란말이가 있었다. 분명 최효정 여사의 솜씨는 아닌 것 같았다.

    박주혁이 불안한 마음에 계란말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혹시?”

    “맞아요. 제가 했어요.”

    메르헨이 활짝 웃으며 말하자, 박주혁의 젓가락이 목적지를 변경했다. 아마도 위험을 감지한 듯싶었다. 식사가 끝나고, 해리스가 박주혁에게 넌지시 물었다.

    “주혁. 주말에 일정이 있나? 메르헨에게 듣기론 골프를 그렇게 잘친다면서? 나와 라운드 한번 가지 않겠나?”

    “저도 그러고 싶지만, 주말에는 선약이 있습니다.”

    “그래? 중요한 약속인가 보군.”

    박주혁이 제안을 거절하자, 해리스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최효정 여사도 박주혁이 단칼에 거절하자, 살짝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박주혁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인식하고 재빨리 말을 이었다.

    “햇빛보육원이라고 아버지께서 후원하시던 보육원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

    박주혁의 말에 최효정 여사가 눈을 크게 떴다.

    “이제 곧 겨울인데 한국이 외환위기 상태라 보육원에 도움의 손길이 줄어들어서 말이죠. 이번에 겨울을 대비해 아이들에게 오리털 파카를 직접 전달하려고 합니다.”

    박주혁의 말에 해리스가 눈을 빛내며 박주혁의 손을 잡았다.

    “정말 중요한 선약이었군. 나도 돕겠네.”

    “주혁 씨 저도 함께할게요. 미리 얘기라도 해주시지···.”

    메르헨이 서운한 표정으로 박주혁을 바라봤다. 메르헨이 파독 근로자를 돕고 있었기에 그녀가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인 해리스도 이런 일에 관심이 많을 줄은 몰랐다. 아니, 어쩌면 메르헨은 해리스에게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행동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래 주시면 감사한 일이죠.”

    박주혁이 답하자, 부녀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햇빛보육원.

    생각보다 많은 인파가 박주혁과 함께 햇빛보육원에 도착했다.

    “조 사장님 파카 구매처를 알려달라니까, 직접 만들어 오셨어요? 바쁘셨을 텐데.”

    “좋은 일 한다는데 어찌 가만있을 수 있겠어?”

    그리고 곧 주배정 사장이 트럭을 몰고 나타났다. 그의 트럭에는 더블백이 한가득이었다.

    “어! 주 사장님?”

    “박 대표. 실망이야. 이런 일 한다면 나에게도 연락을 줘야 하는 것 아냐? 어떻게 조 사장에게 이런 소식을 듣게 할 수 있나?”

    조덕기와 주배정 사장이 박주혁과 인사를 나눌 때 메르헨이 옆으로 다가와 상체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는 주혁 씨의 피앙세 메르헨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도움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메르헨의 등장도 놀라웠는데 피앙세라는 그녀의 말에 조덕기와 주배정 사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박주혁을 쳐다봤다. 빨리 해명하라는 그들의 눈빛에 박주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예. 메르헨과 약혼을 했어요.”

    “이 사람이! 그런 경사가 있으면 연락을 했어야지!”

    “박 대표. 실망이야!”

    화를 내는 것 같은 두 사람의 말투와는 달리 표정은 웃고 있었다. 그들은 메르헨과 악수를 하며 박주혁을 잘 부탁한다며 신신당부를 했다.

    해리스는 이미 먼저 들어가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정신이 없었고, 박영희와 심영찬 그리고 그의 애인인 오혜영은 박주혁이 들고 온 엄청난 물품에 놀라 서둘러 짐을 나르기 바빴다. 박주혁도 아이들에게 직접 파카를 나눠주며 뿌듯해했다.

    전달받지 못한 아이들이 보건실에 있다는 소리에 박주혁은 남은 파카를 들고 메르헨과 함께 보건실로 향했다.

    막 보건실로 들어가려는데 마스크를 쓴 보건 선생님이 박주혁과 메르헨을 막아섰다. 박주혁은 그런 보건 선생님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환절기에 감기에 자주 걸리긴 하는데 이번에는 좀 심하네요. 전염성도 강하고요. 좋은 일 하러 오셨는데 병을 얻어가시면 안 되죠. 파카는 제가 아이들에게 나눠 주도록 하겠습니다.”

    보건 선생님께 파카를 넘기며 박주혁은 보건 선생님의 어깨너머로 아이들을 살폈다. 고열에 시달리는지 머리에 얼음주머니를 대고 있었고, 콧물과 함께 연신 기침을 하고 있었다. 가벼운 감기라기엔 기침 소리가 너무 거칠고 투박했다.

    - 쿨럭 쿨럭.

    “아이들 상태가 좋지 않아 보입니다.”

    “예. 우선 다른 아이들까지 옮을 수 있으니 격리한 상태에요. 심한 아이들은 병원으로 가고 있고요.”

    피곤함에 찌든 보건 선생님의 말에 박주혁은 더이상 묻지 않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독감인가?’

    그러다 문득, 2000년 초반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SARS가 번뜩 떠올랐다.

    고열과 기침을 동반한 근육통···. 독감과 비슷하지만, 치사율은 무려 10%. 미래에 맹위를 떨칠 코로나19가 치사율 약 4%임을 생각하면 엄청 높은 수치다. 두 바이러스가 모두 중국발이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박주혁은 보건 선생님을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 최근에 중국에 다녀온 선생님 계세요?”

    “음. 예. 있어요. 오늘은 몸이 좀 안 좋으셔서 병가를 내셨어요.”

    “그렇군요···.”

    보건 선생님의 말에 박주혁의 미간이 와락 좁혀졌다. 아직 SARS라고 단정할 상황은 아니지만, 코로나19를 겪은 박주혁은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생각이 짧았다. 미래를 알고 있는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박주혁은 입술을 굳게 다물며, 미간을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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