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돌파구는 역시 품질 뿐이다.
유명한 국장의 너스레에 다들 한바탕 웃었지만, 박주혁의 표정은 살짝 굳어 있었다. 웃음이 잦아들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정색하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십시오. 파인에서 층간소음에서 자유로운 아파트를 지을 테니까.”
모두 눈썹을 꿈틀거리며 박주혁을 쳐다봤고, 유명한 국장이 먼저 목소리에 힘을 주며 답했다.
“박 대표가 한다면 하겠지. 그럼, 난 무조건 파인건설의 아파트로 이사할 거야!”
“나도. 층간소음은 진짜 미칠 것 같거든.”
이연호 사무관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하자, 안태희 주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하소연하듯 말했다.
“저도요. 저희 아파트는 옆집 안방 소리도 들려요. 밤마다 대체 뭘 하길래 그렇게 비명을 질러대는 것인지···. 진짜. 어휴!”
안 주사의 말에 유명한 국장과 이연호 사무관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눈을 빛내며 안태희 주사를 빤히 바라봤다.
“안 주사. 더 자세히 얘기해 봐.”
안태희 주사가 난처하다는 듯 손사래 쳤고 박주혁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며 속으로 다짐했다.
‘날림으로 지은 아파트가 많다는 소리다. 역시 돌파구는 품질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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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우건설이 자산을 매각하여 재무 안정성을 위해 노력할 때, 심영찬 과장과 개발부서는 AI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파인랭스 회의실 스크린에 윤태현 군이 온라인으로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제이콥의 도움으로 파인랭스는 온라인 화상 회의 시스템을 구축했고 적극 활용 중이었다. 박주혁도 파인건설 사장실에서 회의에 참석하여 난상토론을 지켜봤다. 물론, 제이콥도 커피를 들이켜며 퀭한 눈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AI 개발과 관련된 회의라고 슬쩍 흘렸더니, 알아서 발을 담그셨다. 제이미를 개발했던 일가견이 있으니 관심이 생겼겠지.
“그러니까 시방, 연산을 그렇게 처리하면 안된당께요?”
“태현아. 딥러닝을 통해서 AI가 학습을 시키려면 이 방법이 맞아.”
둘은 서로의 의견이 맞다며 아웅다웅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제이콥이 마이크를 끌어당겨 한마디 했다.
“저, 한마디 해도 됩니까?”
모두 고개를 돌려 스크린에 비친 제이콥을 바라봤다. 코넬대 컴공과 출신인 제이콥의 의견도 충분히 참고될 것이기에 심영찬 과장은 제이콥에게 발언권을 줬다.
“말씀하세요.”
“제가 AI 제이미를 개발했던 경험이 있어서 어쩌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AI 제이미라는 얘기에 심영찬 과장과 윤태현 군을 포함해 모두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제이미를 개발했다고요? 이종인 씨가 개발한 것 아니었습니까?”
AI 개발을 위해 사전 조사를 많이 했는지 심영찬 과장이 의문을 표했고, 제이콥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설계와 개발은 제가 했고, 전면에 나선것은 종인이었죠.”
“정말입니까? 학계에는 이종인 씨가 직접 설계했다고 학계에 나와 있던데···.”
“거기엔 사정이 좀 있어요. 어쨌든, 심 과장님과 윤태현 씨의 말은 모두 맞지만, 또 틀렸습니다. 제 씨어리가 100%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 제이미는 작동했으니까요. 실패작이긴 하지만···.”
제이콥의 말을 듣고 있던 박주혁은 턱을 괴고 흘러나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제이콥이 AI도 개발했었다고? 삼송에 뺏겼다면 정말 큰일 날뻔했군.’
속을 쓸어내리며 박주혁은 가만히 화상회의에 집중했다.
“그러니까 학습만으로는 안 되고, 논리적 추론도 더해져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말이 쉬워 논리적 추론이지 사실 AI의 논리적 추론은 빅데이터에 달려있습니다. 표본이 많을수록 정답에 가까워지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사람들이 1+1=A라고 결론을 내렸다면 AI도 1+1=A라는 결론에 가깝게 다가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빅데이터라···.”
개발부서 사람들이 낮게 신음하며 고민에 빠지자, 제이콥이 웃으며 말했다.
“제이미를 개발할 당시에는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제가 학습을 시켰어요. 수동 AI에 가까웠죠. 하지만, 지금 같이 인터넷이 발달한 상황이라면 얘기가 다르죠.”
제이콥의 말에 윤태현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랑께 파인의 검색엔진이랑 AI를 연동시켜야 한당께요?”
“빅데이터를 확보하려면, 윤태현 씨의 의견도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영찬 과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그럼 그 이론이 맞는지 확인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 있습니다.”
심영찬 과장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사운드바다에 AI를 투입하여, 나이별, 성별에 따라 어떤 노래를 많이 듣고 구매하는지에 대한 통계자료를 AI와 비교해 보는 겁니다.”
“AI가 제대로 동작하는지 확인하기엔 아주 좋을 것 같군요.”
방향이 결정되자 윤태현 군이 갑자기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따, 시방 인간과 AI가 대결한다는 소리구만요?”
“어떻게 보면 그렇지.”
“신나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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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회의가 끝나고 박주혁의 휴대폰이 울렸다.
“네, 박주혁입니다.”
“대표님. 저 제이콥입니다.”
“아, 제이콥! 아까 회의에서 조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원들이 뭔가 길을 찾은 것 같더군요.”
“제 경험을 얘기한 수준이었습니다.”
박주혁은 제이콥에게 감사를 전하며, 앞으로 AI 개발에 자문위원으로 참가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제이콥은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AI까지 개발했었다니 좀 놀랐습니다.”
“학교 프로젝트로 개발한 불완전한 AI였는데 관심이 쏠리다 보니···. 뭐 아무튼 파인의 AI 개발에 일조할 수 있다니 살짝 흥분되는군요.”
“많은 자문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혹시 멀티 터치스크린은 진전이 있나요?”
“진전이 있습니다. 사실 그래서 전화한 거였습니다.”
하드웨어적으로 정전식 터치스크린의 노이즈를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제이콥은 소프트웨어적으로 노이즈를 캔슬하는 시도를 했고 그 결과 노이즈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
“그 말은 정전식 터치스크린의 실용화가 다가왔다는 것 아닙니까?”
“하하. 그럼 좋겠지만, 아직 오류는 많습니다. 화면이 커질수록 에러율이 올라가더군요.”
“화면이 커질수록···? 그렇다면 현재 에러율 없이 쓸 수 있는 크기가 어느 정도 입니까?”
“음···. 2~3인치 정도인 것 같습니다.”
제이콥의 말에 박주혁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박주혁은 눈을 빛내며 목소리에 힘을 줬다.
“아주 적절한 시기에 기술이 개발된 것 같습니다.”
“예? 그게 무슨. 2~3인치 화면이면, 딱히 뭘 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닌데요?”
제이콥이 의아함을 가득 담아 물었고, 박주혁은 자신이 있게 답했다.
“화면이 꼭 커야 하는 건 아니죠. 우선 상용화시켜 매출을 일으킵시다. 제이콥의 회사도 수익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아, 물론 그러면 좋겠지만, 작은 화면으로 대체 뭘 하시려고요?”
“제이콥, 과학자와 사업가는 그 영역이 다른 법입니다. 다 방법이 있습니다.”
제이콥과 전화를 끊은 박주혁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 작지만, 정전식 터치스크린을 확보했어. 이걸로 세계 최초 타이틀 추가다.”
박주혁의 미소에 자신감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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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메르헨은 굳은 얼굴로 회장실로 향했다. 그녀의 곁에는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프랭크가 함께였다.
“부회장님. 꼭 이러셔야 합니까?”
“언젠가 부딪힐 일이었어.”
“이러시면 여태까지 노력한 것이 물거품이 됩니다. 아시아인 때문에 이러시는 걸 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박주혁이야. 아시아인이라니. 말조심해.”
“...”
프랭크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살짝 숙였고 메르헨은 회장실 앞에 도착했다. 그녀가 문을 열려고 하자, 프랭크가 바짝 다가와 다시 한번 속삭였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우선 마임러가와 혼인 후 박주혁을 만나도 되는 것 아닙니까?”
“....”
프랭크의 말에 메르헨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봤다. 메르헨의 푸른 눈동자가 시리도록 차가웠다.
“프랭크. 충성 어린 조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하지만, 다시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선택한 사람이야.”
메르헨의 말에 프랭크가 크게 한 발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여기서 기다려.”
“예. 부회장님.”
메르헨은 프랭크를 남겨두고 해리스 엘리넥의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메르헨, 메르헨. 나의 사랑스러운 딸.”
해리스 엘리넥이 메르헨을 반기는 인사말과 함께 두꺼운 문이 닫혔다. 그리고 잠시 뒤 해리스 엘리넥의 큰 고함이 문 점으로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메르헨을 기다리며 서 있던 프랭크는 예상했다는 듯 미간을 잔뜩 좁히며 한숨을 쉬었다.
“후. 대체 어쩌시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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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송의 이종인 과장은 감압식 터치스크린이 적용된 Mp3 플레이어 시제품을 임원들 앞에 선보였다.
“터치스크린이 적용된 Mp3 플레이어, 얍 입니다.”
“터치스크린?”
“그렇습니다. 현재 Mp3 플레이어 시장은 파인테크의 Fp-100이 독주하고 있습니다. 그 아성을 무너트리려면 혁신이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임원들은 시제품을 이리저리 확인하더니 말했다.
“Fp-100 보다 크기가 너무 큰 것 아닌가?”
“얍은 삼송 반도체의 128mb 메모리를 채택하고 터치스크린까지 적용하여, Fp-100과 차별화를 꾀했습니다.”
이종인의 말에 임원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암, 메모리는 우리가 최고지.”
삼송 부심을 부리는 임원들에게 이종인은 작동법에 대해 브리핑을 했고, 직접 작동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터치스크린이 부드럽지 않고 좀 딱딱한 느낌이군.”
“오작동도 상당한데?”
“화질도 선명하지 못한 것 같고···.”
임원들의 불평 어린 말에 이종인이 얍의 모서리에서 얇은 팬을 하나 꺼내 보였다.
“그런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얍에는 이러한 팬을 하나씩 준비했습니다. 이 팬은 조작을 쉽게 하는 것 외에 또 다른 기능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종인의 말에 임원들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그를 쳐다봤다. 이종인은 펜을 3.5m 헤드폰 잭 옆에 있는 또 다른 곳에 돌려 끼웠다.
“이렇게 연결하면 펜은 라디오 안테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종인이의 말에 임원들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팬으로 이것저것 눌러보고 안테나로 연결해보더니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팬으로 누르니 확실히 오작동이 줄어드는군.”
“Mp3 플레이어 라디오까지 품다니. 좋군.”
“그래 이렇게 앞서 나가야 삼송이지! 제품 출시는 언제인가?”
하드웨어는 삼송일지 모르겠지만,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는 데는 조금 부족했다. 디자인과 성능 때문에 Fp-100을 선택한 소비자도 있겠지만, 사실 사운드바다라는 음악 플랫폼이 선택의 큰 이유였다. 이종인과 삼송은 이 점을 간과했다. 하긴, 마이팟에 제대로 대응도 못 해보고 얍 시리즈가 사장된 것을 보면,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종인은 임원들의 극찬을 받으며 얍 시리즈 런칭시켰다.
[삼송 Mp3 플레이어 얍! 출시]
[세계 최초 터치스크린 Mp3 플레이어 얍!]
[Music is my Life! 삼송 얍 Fp-100의 아성을 무너트릴 수 있을까?]
대대적인 광고와 함께 얍이 화려하게 출시했지만··· 일주일 뒤, 파인테크의 신제품이 출시됐다.
[파인테크! 터치스크린과 조그 다이얼로 무장한 Fp-250을 출시!]
[조그 다이얼! 새로운 음악 검색 방식에 소비자들 환호!]
[Fp-250와 얍의 터치스크린 대결의 승자는···. Fp-250.]
[한 기자의 Fp-250 개봉기!]
박주혁은 언론에 도배된 Fp-250의 기사들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한현태 기자에게 Fp-250을 먼저 제공하고 사용기를 적게 한 것도 상당히 주요했다. 조그 다이얼과 터치스크린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 사용법을 친절하게 설명한 한현태 기자에게 상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반면 이종인은 신문과 언론에 도배된 파인테크의 Fp-250에 이를 갈았다.
“정전식 터치스크린이라고? 대체 그 노이즈들을 어떻게 잡은 거지?”
주먹을 쥔 이종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멈췄다.
“설마, 제이콥이···?”
이종인의 황급히 제이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이콥! 나 종인이야.”
“어, 종인. 잘 지내지?”
“너 설마, 파인테크로 이직한 것 아니지?”
이종인의 물음에 제이콥은 차분하게 답했다.
“이직? 무슨 소리야. 나 창업했어.”
“차, 창업이라니?”
“멀티터치스크린 개발 및 생산하는 회사를 차렸는데···. 내가 얘기하지 않았었나?”
이종인에게 한 방 먹인 것 같은 희열에 제이콥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반면, 이종인은 수화기를 든 채 눈을 끔벅이더니 말했다.
“터치스크린을 개발 및 생산한다고?”
“맞아.”
“그럼, 정전식 터치스크린이겠네?”
“그렇지!”
제이콥의 거침없는 대답에 이종인의 얼굴이 흙빛이 되어갔다. 전화를 끊은 이종인은 머리를 감싸 쥐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했어. 제이콥이 파인테크로 가지 않은 것에 안도했더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