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대표님-111화 (111/136)
  • 111화 층간소음은 하자지?

    층간소음은 아파트가 지어지면서 함께 등장한 새로운 개념이다.

    특히 같은 층 모든 세대가 하나의 복도를 공유하는 복도식 아파트가 층간소음에 취약하다.

    - 우다다다!

    오랜만에 집에 일찍 귀가한 유명한 국장은 위에서 머릿속이 울리는 것 같은 소리에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여보, 우리 윗집 아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없어요. 노부부가 무슨 아이가 있겠어요.”

    “그렇지? 손주들이 놀러 왔나···?”

    “윗집이 아닌 것 같던데···.”

    유명한 국장의 부인도 미간을 좁히며 한숨을 쉬듯 말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지진이 난 듯 천장이 떨렸고, 식탁 위에 조명이 흔들리며 먼지가 흩날렸다.

    - 우다다! 쿵!

    유명한 국장이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천장을 바라보더니 껄껄 웃었다.

    “허허. 이젠 점프까지 하나 보네? 녀석, 아주 건강한데?”

    유명한 국장의 너스레에 부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푹 쉬었다.

    “당신은 어쩌다 한 번이지만, 난 매일 이 소음을 듣고 있어요. 아무리 아이라지만, 너무 스트레스예요.”

    “으음.”

    내조의 여왕이라 불리던 부인이 이 정도로 싫은 소리를 한다면, 심각한 것이다. 유명한 국장은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윗집에 뭐 가져다줄 것 없나?”

    “아, 글쎄 윗집 아니라니까···”

    부인은 아니라면서도 혹시라도 남편이 층간소음을 해결하길 바라는지 냉장고에서 과일을 주섬주섬 꺼냈다. 부인이 건넨 과일들을 들고 유명한 국장은 당당하게 윗집으로 올라갔다.

    - 띵동.

    “누구세요?”

    “아랫집입니다.”

    문이 빼꼼 열리는 순간 유명한 국장은 날카로운 눈으로 현관에 놓인 신발들을 빠르게 살폈다. 하지만, 아이들의 신발은 보이지 않았다.

    ‘윗집이 아니었어?’

    유명한 국장의 눈이 살짝 커질 때, 머리가 희끗희끗한 점잖은 아주머니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슨 일로?”

    “아, 손주들이 놀러 오신 것 같아 과일이라도 좀 드시라고···.”

    미리 준비한 작업용 멘트였지만, 이 집에 손주들이 와있지 않다는 것은 이미 확인한 상황이었다. 애꿎은 과일만 축나게 생겼다. 그때 아주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시끄러워서 오셨나 본데. 우리 집이 아닙니다.”

    - 쿠쿠쿵!

    때마침 아주머니의 집의 천장도 흔들리며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유명한 국장은 미간을 좁히며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그럼 윗집일까요?”

    아주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몰라요. 윗집은 아니었어요. 저도 답답해요.”

    “이런···. 그럼 혹시 아이들이 있는 집이 어딘지는 아세요?”

    “우리 층에는 없고, 위층에 몇 있는 것 같던데, 중학생이라 뛸 나이는 아니죠.”

    아주머니도 진원지를 찾기 위해 애쓴 티가 났지만, 원인 불명이었나 보다. 유명한 국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려다가 들고 있던 과일을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하지만, 그녀는 손사래 치며 말했다.

    “아이고, 됐어요. 시끄럽게 하는 집 찾으면 얘기나 잘해주세요.”

    유명한 국장은 잠시 시선을 돌려 복도에 쭉 나열된 대문들을 셌다.

    ‘한 층에 10가구··· 사막에서 바늘 찾기겠네.’

    얼추 계산이 끝난 유명한 국장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집들이 많아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과일은··· 드세요.”

    유명한 국장은 과일을 아주머니에게 떠넘기고는 주머니 속에 있는 담배를 만지작거렸다. 속이 탔다. 진원지를 알 수 없으면 이 소음공해는 지속될 터. 유명한 국장은 한숨을 내쉬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1층으로 다이렉트로 내려갈 것 같던 엘리베이터는 9층에 멈춰 섰다. 유명한 국장의 아래층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둘과 애 엄마가 엘리베이터에 탔다. 애 엄마는 날뛰는 아이들을 붙잡으며 말했다.

    “약속대로 과자 하나만 사는 거다?”

    “응! 오늘은 꼭 치로스! 언젠간 먹고 말 거야!”

    “나눈 깐쵸!”

    꼬맹이들은 과자 이름을 연호하며 잠시도 몸을 가만두지 못했다. 얘들의 움직임에 따라 엘리베이터가 움찔거렸다. 얘들을 통제하기 위해 애 엄마가 애썼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는 얌전히 있는 거랬지? 이러면 과자 안 사줘?”

    “···!”

    엄마의 말에 아이들이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눈망울이 커졌다. 얘들이 진정되자, 애 엄마가 짧게 한숨을 쉬며 유명한 국장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얘들이 어려서 죄송해요. 엘리베이터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교육을 했는데도···.”

    “얘들이 그렇죠. 신경 쓰지 마세요.”

    - 땡!

    그 사이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고 문이 열리자마자, 얘들이 뛰쳐나갔다.

    “야! 거기 안 서?”

    공손하던 엄마가 돌변하여 얘들을 뒤쫓아 정신없이 뛰었다. 애 엄마의 다급함과는 달리 유명한 국장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금은 장성해서 대학교에 다니는 아들 녀석들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맘때는 다 저렇지.”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인 유명한 국장이 뛰어가는 아이들과 뒤쫓는 엄마를 쳐다보다 갑자기 눈을 빛냈다.

    “가만, 층간소음이 위에서 온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유명한 국장은 아직 장초인 담배를 비벼끄고 서둘러 집으로 올라갔다.

    “여보!”

    “어휴. 시끄럽게 하는 집 용케 찾았나 봐요? 어디였어요?”

    “조용해졌어?”

    유명한 국장의 말에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씩 웃었다. 공교롭게도 아래층 아이들이 슈퍼를 간 이후 층간소음이 사라졌다. 유명한 국장이 미간을 좁히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층간소음이 아래에서 온다고? 대체 집을 어떻게 지은 거야?’

    #

    파인건설의 재무 건전성 확보를 위해 박주혁은 자산목록을 살폈다.

    [토지 목록]

    목동 13,210평. - 1,500 세대 가능 (30평 기준)

    광명 20,152평. - 2,300 세대 가능 (30평 기준)

    하계 15,782평. - 1,800 세대 가능 (30평 기준)

    부산 주례동 5,700평. - 900 세대 가능 (30평 기준)

    ..

    .

    [건물 목록]

    분당 블루힐 백화점.

    [건설 중]

    왕십리 민자역사 (지하 3층, 지상 17층 규모)

    건설사라 그런지 보유한 토지와 건물, 그리고 건설 중인 프로젝트들의 규모가 상당했다. 박주혁은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하나 같이 알짜들이네···.”

    확실히 정경유착으로 성장했던 기업이라 그런지, 요지들의 땅을 잘 받아낸 듯싶었다. 포기하기 아까운 것들이 부지기수였지만, 재무 건전성이 우선이었다. 손에 쥐고 있어 봐야 지출만 늘어날 뿐이다.

    “백화점은 처분하자. 민자역사는··· 보류. 토지도 수도권을 제외하곤 모두 처분한다.”

    가닥이 잡히자, 박주혁인 윤철영 부사장과 고경수 이사를 불러들였다.

    “파인건설의 재무 건전성 개선을 위해 이것들을 처분할까 싶습니다.”

    박주혁이 서류를 내밀었다. 가만히 서류를 살펴보던 윤철영 부사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토지는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전무 매각하실 생각이시군요.”

    “현재 파인 건설은 가치가 높은 곳 위주로 사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아쉽지만 지방은 추후 고려해보도록 하죠.”

    윤철영 부사장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일 때, 고경수 이사가 말했다.

    “분당에 있는 블루힐 백화점은 상당한 비용을 들여 고급스럽게 지은 건물입니다. 매각하실 때 그 점을 참고하셔야 합니다.”

    “좋은 지적이시군요. 고 이사께서 블루힐 백화점 매각을 책임지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박주혁이 판단을 보류하기로 한 왕십리 민자역사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홍윤철 부사장은 준공 후 판매하는 것을 권했고, 고경수 이사는 지금 상태에서 매각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음. 역시나 의견이 분분하군요. 홍 부사장님은 왜 준공 후 팔아야 한다고 보시는 거죠?”

    “준공 후 매각했을 때가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 상태로 매각한다면 투입된 자금의 70% 정도만 회수할 수 있습니다.”

    윤철영 부사장의 말에 고경수 이사가 반대 의견을 말했다.

    “왕십리 민자역사 프로젝트는 95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현재까지 800억 원이 투입됐고, 대출이자만 매달 3억 정도가 나가고 있습니다. 준공되려면 앞으로 2년이 남았고요. 그럼 72억 원이 추가로 필요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매각한다면 560억 원을 당장 손에 쥘 수 있습니다.”

    고경수 이사는 재무팀답게 계산에 능했다.

    박주혁도 파악하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윤철영 부사장에게도 말했듯이 건설은 가치를 짓는 일이다. 즉 지금의 현금흐름과는 다른 패턴을 보인다는 뜻이다.

    “음. 고 이사님 말씀도 일리가 있군요. 하지만, 제가 보류라고 한 것은 매각 여부가 아니었습니다.”

    “···?”

    박주혁의 말에 윤철영 부사장과 고경수 이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화점은 우리가 직접 운영해야 하니, 매각이 맞는 조치입니다. 당장 파인건설이 유통업에 신경을 쓸 여력도 없고요. 하지만, 임대업이라면···.”

    박주혁의 말에 고경수 이사가 눈을 빛내며 눈을 굴렸다.

    “지상 17층,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가 임대로 들어온다면 매출액의 3% 정도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백화점 평균 매출이 856억, 왕십리의 지리적 여건이나 규모를 봤을 때 최소 2,000억 웃돌 테니까 매달 5억 원···. 부속 건물까지 있으니 최소 6억에서 10억까지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경수 이사의 말이 끝나길 기다린 박주혁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그래서 보류라고 한 겁니다.”

    박주혁의 말에 윤철영 부사장과 고경수 이사가 눈을 마주치더니 동시에 말했다.

    “존버하시죠!”

    ‘존버란 말은 건설업에서 늘 하던 말이었나 보지?’

    #

    청우건설의 인수를 위해 힘써준 이연호 사무관과 안태희 주사에게 골프 스폰을 하면서 박주혁은 유명한 국장도 초대했다. 파인랭스 시절부터 늘 도와줬던 인연을 박주혁은 잊지 않았다.

    - 깡!

    이연호 사무관의 티샷이 쭉 뻗어나가 페어웨이에 안착하자, 유명한 국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쳤다.

    “나이스 샷!”

    이연호 사무관이 활짝 웃으며 티박스에서 내려오자 유명한 국장이 물었다.

    “아니, 자네 언제 이렇게 실력이 늘었어?”

    “이게 다, 원포인트 레슨 덕이지.”

    “원포인트 레슨?”

    유명한 국장이 되묻자, 이연호 사무관은 싱글싱글 웃으며 박주혁을 힐끔 쳐다봤다. 유명한 국장도 그의 시선을 따라 박주혁을 쳐다봤다.

    “설마, 박 대표에게 배웠단 말인가? 그럼 반칙인데?”

    박주혁의 실력을 익히 알고 있던 유명한 국장이 엄살을 피며 티박스에 올랐다. 오늘도 이연호 사무관을 벗겨 먹을 참이었는데, 실력이 너무 좋아진 탓에 자연스럽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 틱!

    유명한 국장의 드라이버 헤드는 공의 머리를 스쳤다.

    “아, 이런, 젠장!”

    버럭하는 유명한 국장을 보며 이연호 사무관이 쌤통이라는 듯 이죽거리며 소리쳤다.

    “멀리건!”

    “고, 고맙다.”

    유명한 국장이 이를 갈며 다시 쳤지만, 이미 경기는 기울었다.

    경기가 끝나고, 유명한 국장이 속이 타는지 맥주를 쭉 들이켰다. 이연호 사무관은 유명한 국장의 모습을 보며 바로 놀렸다.

    “속이 바짝 타지?”

    “아니. 무슨 몇 달 사이에 골프 실력이 이렇게 달라지나?”

    “원포인트 덕이지. 하하하.”

    “에잇!”

    주머니가 탈탈 털린 유명한 국장이 심통을 부렸지만, 그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함께 하면 즐거운 사람들과 있으니 좋지 아니한가?

    술이 돌고, 유명한 국장이 하소연하듯 말했다.

    “요 며칠 전에 집에 일찍 퇴근했는데, 이웃 아이들이 뛰어서 엄청 시끄러운 거야. 그 아이들이 어디서 사는지 알아?”

    “윗집이겠지 뭐.”

    이연호 사무관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고, 유명한 국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라고?”

    이연호 사무관이 살짝 놀라 눈썹을 치켜올릴 때 안태희 주사가 답을 살짝 비틀었다.

    “대각선 윗집?”

    “아니야. 틀렸어.”

    유명한 국장이 피식 웃으며 답할 때 박주혁이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층간소음이라는 게 꼭 위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죠. 특히나 복도식 구조가 대다수인 한국의 아파트라면··· 안 주사님이 말씀하신 대각선 윗집일 수도 있고, 옆집, 심지어는 아래층에서 뛰는 진동도 벽체를 타고 올라오죠.”

    박주혁의 말에 유명한 국장의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했다.

    “와. 박 대표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알았어? 정답은 우리 아랫집이었어. 유치원 남자애들 두 명이었는데 지진이 났나 했다니까? 대체 집을 어떻게 지었길래··· 쯧.”

    유명한 국장이 혀를 찰 때, 안태희 주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이제 건설사를 인수했으니 박 대표는 전문가가 다 된 거죠.”

    “건설사를 인수해? 난 처음 들었는데?”

    “아, 며칠 전에 파인이 청우건설을 인수했잖아요.”

    “어! 난 처음 들었는데? 가만, 청우건설? 내가 지금 사는 아파트가 청우아파트인데? 박 대표! 층간소음 이거 하자지?”

    유명한 국장이 박주혁을 다그치자, 그가 조곤조곤 답했다.

    “층간소음을 하자라고 인정하면 건설업체들 다 망합니다.”

    “와. 박 대표. 건설업에 진출했다고 동종업계 감싸는 거 보게?”

    “하하하!”

    유명한 국장의 너스레에 일행들이 모두 웃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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