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대표님-104화 (104/136)
  • 104화 삼송에서도 노리고 있다니···.

    로그 미 인(Log me in)은 고 투 미팅과 같은 B2B 화상 회의 시스템을 공급하는 회사다. 화상회의 시스템은 회사 간 물리적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는 미국에서 발달했다.

    대지가 워낙 넓기도 했거니와 세계 곳곳에 떨어져 있는 직원들과 회의를 하기 위해서는 화상회의 시스템이 꼭 필요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는 2020년쯤에는 화상회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정전식 터치스크린 기술에 대한 자문을 얻기 위해 제이콥과 만나려 한 것이었지만, 미래 화상회의 수요를 생각하니 그가 더욱 탐났다.

    메르헨 덕분에 제이콥과 면담을 잡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선약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삼송에서 만나러 왔다고요?”

    메르헨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되묻는 질문에 박주혁도 덩달아 눈썹을 올렸다.

    ‘삼송에서? 왜?’

    제이콥 함이 본격적으로 터치스크린을 연구를 시작하는 것은 앞으로 몇년 뒤의 일이었다. 지금도 관심은 있었겠지만···. 박주혁이 미간을 좁히며 고민해봤지만, 연관성을 유추해 내는 것은 어려웠다.

    ‘일단 부딪혀 봐야겠구나.’

    박주혁이 심각하게 고민하자, 메르헨이 운전대를 잡은 수행비서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해다.

    “서두르죠.”

    “예, 부회장님.”

    메르헨의 배려 덕분에 박주혁은 로그 미 인이 위치한 사무실에 약속 시간보다 먼저 도착할 수 있었다. 막 삼송과 면담을 끝났는지 회의실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제이콥과 악수를 하며 웃는 삼송 직원은 제이콥과 상당히 가까운 것 같았다. 그는 제이콥과 인사를 나누고 몸을 돌렸고 박주혁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박주혁의 눈이 살짝 커졌다. 분명 박주혁도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삼송 스마트폰인 스페이스 시리즈 언팩 행사를 직접 진행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인물이었다.

    ‘이종인 전무···!’

    아직 삼송의 전면에 나서지 못하는 젊은 시절의 이종인 전무였지만, 스페이스 스마트폰의 보안을 책임지는 넉스와 삼송 페이 개발까지 진두지휘한 핵심 인력이었다.

    이종인이 박주혁을 스치며 힐끔 쳐다볼 때, 제이콥이 박주혁과 메르헨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혹시, 파인테크의 박주혁씨와 벤타의 메르헨씨입니까?”

    박주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제이콥 함과 악수를 할 무렵, 이종인이 박주혁을 돌아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파인테크가 왜?”

    낮게 깔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이종인의 목소리에서 박주혁에 대한 경계심이 느껴졌다.

    - 땡.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제이콥이 이종인을 향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들어가!”

    “그래. 생각해보고 연락해줘.”

    이종인도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지만, 시선은 박주혁에게 꽂혀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의문을 풀지 못한 채, 이종인은 동료들과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

    “안녕하십니까? 파인테크의 박주혁 대표라고 합니다.”

    “벤타의 메르헨입니다. 파인테크와는 전략적 제휴 관계죠.”

    “아아. 저는 로그 미 인 기술개발부 이사 제이콥 함이라고 합니다. 한국 이름으로는 함재식이죠.”

    제이콥이 박주혁과 메르헨의 명함을 받아 살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그런데, 벤타에서 왜 IT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제이콥의 질문에 메르헨이 살며시 미소 지으며 답했다.

    “DD 자동차의 모델 D라고 들어보셨겠죠?”

    “모델 D면···. 그 전기차 말씀이시죠?”

    제이콥도 잘 알고 있다는 듯 되묻자, 메르헨이 박주혁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바로, 이분이 DD 자동차의 대표시기도 하거든요.”

    “예?”

    제이콥이 무척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박주혁을 쳐다봤고 메르헨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벤타는 DD 자동차의 대주주고요.”

    “아아.”

    전기차를 만들어낸 DD 자동차의 대주주라면, 분명 IT 기술도 필요할 것으로 판단한 제이콥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명함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은 파인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 듣네요.”

    제이콥의 말에 박주혁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제이콥을 바라봤다. 그러자, 제이콥이 어색하게 웃으며 황급히 말을 돌렸다.

    “벤타는 이미 우리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 같은데···. 오늘은 무슨 일로?”

    “오늘은 화상회의 시스템 때문에 방문한 것이 아닙니다.”

    “예? 그럼 무엇 때문에···?”

    제이콥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터치스크린 관련하여 자문을 듣고 싶습니다.”

    박주혁의 말에 제이콥의 눈이 다시 한번 커졌고 입이 살짝 벌어졌다.

    “신기하네요. 조금 전 종인이도 터치스크린 얘기를 하고 갔는데···. 그나저나 제가 터치스크린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이콥의 말에 박주혁의 얼굴에 살짝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지만, 제이콥에게 티를 내서는 안 된다. 박주혁은 덤덤하게 제이콥을 방문한 이유를 설명했다.

    “터치스크린의 최신 기술을 찾다가 우연히 제이콥님이 쓰신 글을 발견했습니다.”

    “아, 하이테크 사이트를 보셨나 보네요.”

    하이테크.

    기술자들의 커뮤니티로 개인 개발자들이 모여 의견을 주고받는 글로벌 소통창구였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서로 조언도 해주고, 여차 싶으면 함께 벤처기업을 창립하는 시드베드 역할을 하는 사이트였다. 최신 기술과 관련된 의견을 주고받는 곳인 만큼, 일반인들이 알 수 있는 사이트는 아니었다. 하지만, 파인테크 대표라면 하이테크 사이트를 알 수도 있다고 생각한 듯싶었다.

    하이테크라는 사이트가 있다는 것은 사실 박주혁도 몰랐다. 2008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된 제이콥이 기술자들의 커뮤니티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글귀로 추론한 것 뿐이었다.

    박주혁은 태연하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멀티 터치스크린 개발에 제이콥님의 도움을 받고 싶어 왔습니다.”

    “···? 설마, 제가 게시한 글들을 전부 보신 겁니까?”

    “구구절절 맞는 얘기라서 말이죠.”

    “워. 정말입니까?”

    보지 않았다. 그저 미래에 제이콥이 한 인터뷰를 본 기억에 의존해 퍼즐 맞추듯 끼워 맞췄을 뿐이었다. 하지만, 제이콥은 무척 놀랍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곧 멀티 터치스크린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줄줄 뱉어내기 시작했다.

    “정전용량 멀티 터치를 가능케 하려면 노이즈를 줄여서 미세한 손놀림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야 속도와 정확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죠.”

    “아, 역시 그렇군요.”

    박주혁의 추임새에 메르헨이 깜짝 놀라 눈을 끔벅이며 박주혁을 쳐다봤다. 어떻게 그런 사실들을 알고 있느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제이콥은 그 뒤로도 계속 같은 주제로 얘기했고, 한참 동안 멈출 줄 몰랐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제이콥이 살짝 민망했는지 헛기침하며 말했다.

    “아, 제가 너무 흥분한 것 같군요. 박 대표님께서 터치스크린에 대해 이리도 깊게 아시는 줄 몰랐습니다.”

    잘 모르는 분야였지만, 제이콥이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하니 그것으로 되었다. 박주혁은 웃으며 본론을 꺼냈다.

    “아닙니다. 저도 역시 잘 찾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터치스크린에 깊은 관심을 보인 이유는 사실, 멀티 터치스크린 기술을 휴대폰에 적용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추후 개발될 전기차의 계기판에도 적용할 생각이고요.”

    “오오?”

    박주혁은 멀티 터치스크린의 적용 방향을 개괄적으로 설명하며 멀티 터치스크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존하는 PDA는 물리적 버튼 때문에 확장성이 제한받고 있습니다.”

    “으음. 맞습니다. 물리 버튼이 존재함으로써 로스가 많죠.”

    “맞습니다. 그래서 감압식 터치스크린도 고민해봤지만···.”

    박주혁의 말에 제이콥이 이미 감압식 터치스크린의 단점을 꿰고 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한계가 명확하죠. 저도 그래서 정전식 터치스크린을···.”

    또다시 기술 얘기를 하기 위해 제이콥이 입술을 달싹거리려는데 메르헨이 나서서 말을 잘랐다.

    “이러다 밤새우겠는데요?”

    그녀는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웃었고, 제이콥이 화들짝 놀라 자신의 시계를 내려봤다.

    “오,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심취해서 그만, 일어나시죠. 저녁은 제가 사겠습니다. 맥주도 한잔하면서 더 얘기 나누고 싶군요.”

    “좋죠.”

    마침 잘됐다. 이종인의 목적도 궁금했고 말이다.

    #

    박주혁과 메르헨은 제이콥의 안내에 따라 미국 하면 떠오르는 고급 프랜차이즈 식당인 하드 록 카페로 향했다. 로큰롤을 컨셉으로 한 하드록 카페는 각종 기타와 드럼 그리고 할리데이비슨과 같은 미국 냄새가 물씬 나는 소품들로 가득했다. 메뉴판을 들고 살피던 제이콥이 박주혁을 보며 물었다.

    “박 대표님은 미국에 처음 오신 건 아니시죠?”

    “처음입니다.”

    “예? 아니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원어민처럼 말씀하시죠?”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박주혁의 대답에 제이콥과 메르헨이 동시에 박주혁을 빤히 쳐다봤다. 사실이었지만, 그들은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럼, 메뉴는 제가 시켜도 될까요? 기왕이면 아메리카의 풍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말이에요.”

    박주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제이콥이 몇 가지 메뉴를 시켰다. 에피타이저와 함께 시원한 버들와이져가 배달되었다. 셋은 맥주병 뚜껑을 돌려 딴 후 건배를 했다.

    “반갑습니다!”

    “치얼스!”

    시원한 버들와이져의 청량감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박주혁은 음식이 나오기 전 이종인에 대해 은근슬쩍 물었다.

    “아까 삼송에서도 터치스크린에 관해 물었다고요?”

    “삼송···? 아아! 종인이요. 코넬대 컴공과 동기에요.”

    어쩐지 친분이 두터워 보인다 싶었다. 제이콥의 눈가에 짙은 그림자가 언뜻 비쳤지만, 그를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아, 대학 동기셨구나···.”

    박주혁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할 때 제이콥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종인이도 멀티 터치스크린에 관해 물었었는데···.”

    “···.”

    그의 말에 박주혁과 메르헨의 얼굴이 일순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정말 삼송에서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일까?

    아직 제대로 된 스마트폰이라고 불릴 마이폰이 출시되려면 9년이나 남았을 터. 삼송의 옥시아도 마이폰 이후로 나왔으니 최소 10년이란 기간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옥시아는 감압식 터치스크린이 아니었던가? 마이폰을 제외한 스마트폰은 당시 모두 감압식이었다. 그런데 이종인이 멀티 터치스크린에 대해 문의를 해왔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제이콥은 맥주를 한 모금 하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감압식에 관한 얘기였죠. 한계점이 명확하다고 얘기했지만 듣지 않더군요.”

    냉탕 온탕을 왔다 갔다 한 기분이었다. 박주혁은 틈을 놓치지 않고 제이콥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어떻게든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한 노력이었다.

    “노이즈만 잡을 수 있다면 감압식이 정전식을 따라올 수 없죠.”

    “바로 그겁니다! 노이즈만 잡을 수 있다면···!”

    제이콥이 뭔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맥주병을 다시 입에 가져갔다. 미간을 좁힌 제이콥에게서 터치스크린에 대한 열의가 느껴졌다. 제이콥의 심리변화를 눈치챈 박주혁이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메르헨이 먼저 상체를 내밀어 속삭이듯 말했다.

    “제이콥, 혹시 말이에요. 멀티 터치스크린 개발에 참여할 생각 없습니까? 벤타에서 지원해드리겠습니다.”

    “풉!”

    제이콥이 맥주를 바닥에 뿜으며 몸을 들썩였고, 박주혁은 메르헨을 빤히 쳐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메르헨. CEO로서의 감은 여전하군.’

    박주혁이 메르헨에게 감탄하는 사이 제이콥은 입가에 묻은 맥주를 티슈로 훔치며 물었다.

    “뭐, 뭐라고요?”

    “혹시 파인테크에서 멀티 터치스크린 개발을 해볼 생각 없냐는 말이었습니다. 가만 보니 박 대표와 제이콥씨가 합치면 엄청난 시너지를 낼 것 같아서 말이죠.”

    “하. 하하하.”

    뜻밖의 제안이었는지 제이콥이 어색하게 웃었지만, 요동치는 그의 눈동자를 보건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박주혁이 제이콥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다.

    “이거, 참 난감하군요. 두 곳에서 동시에 스카웃 제의를 받다니···.”

    제이콥의 말에 박주혁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중얼거렸다.

    ‘···두 곳이라고? 설마!’

    박주혁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제이콥을 바라봤고,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하이테크에 글을 남기지 말아야지 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왜 그렇지 않겠나?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니 말이다. 제이콥은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삼송이 검색엔진도 뺏겼고, Mp3 플레이어도 선수를 뺏겨서 몹시 화가 난 상태더라고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삼송 산하 벤처기업이었던 네버의 검색엔진은 서비스도 시작하지 못하고 파인에게 시장을 뺏겼고, 한창 개발 중이던 Mp3 플레이어 얍 시리즈는 파인테크에 선두를 내주었다. 기술의 삼송이라는 이름에 먹칠이 되었으니···.

    “삼송이 이를 갈고 있는 회사가 혹시 박 대표님의 회사일까요?”

    제이콥이 호기심이 어린 눈으로 박주혁에게 물었고 박주혁은 천천히 입술을 뗐다.

    “파인이라는 검색엔진도 우리 작품이죠.”

    “홀리 쉣!”

    제이콥이 무척이나 놀랍다는 듯 크게 소리쳤지만, 박주혁의 표정은 심각했다.

    ‘삼송이 제이콥을 영입하려 한다 이거지···.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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