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대표님-103화 (103/136)

103화 미국으로 가야겠다.

미국에서 불어닥친 닷컴 버블은 한국에도 영향을 끼쳤다. 심지어 DJ가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코스닥을 활용한 벤처기업 육성책을 내놓자, IT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요동쳤다.

벤처기업이자, IT 기업이었던 파인테크도 영향을 받아, 시뻘건 불기둥을 만들었다.

380억 원을 투자했던 파인테크가 이제는 1,000억 원이 넘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 와중에 Fp-100이 출시되며 불기둥에 기름을 부었다.

[세계 최초! Mp3 플레이어 Fp-100 출시]

[Mp3 플레이어 Fp-100을 출시한 파인테크. 상한가 행진!]

[소비자의 선택은 Fp-100과 사운드바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며 등장한 Fp-100도 센세이션했지만, 박주혁이란 이름도 함께 언론에 오르내렸다.

[챠넬 모델 출신, 박주혁, 사실은 파인테크의 CEO?]

[세계 최초 타이틀만 벌써 2개! 박주혁 그는 누구인가?]

언론사에서 서로 경쟁하듯 박주혁에 관한 기사를 쏟아냈다. 그리고 한현태 기자가 박주혁을 찾아왔다. 인터뷰란 명목으로 말이다.

“오랜만입니다. 박 대표님.”

“어서 오세요.”

박주혁이 웃으며 한현태 기자와 악수를 했고, 그는 곧바로 녹음기와 수첩을 꺼내 펼쳤다.

“바쁘시니까, 빠르게 진행하겠습니다.”

“다 알고 있으면서 무슨 인터뷰입니까?”

박주혁의 말에 한현태 기자가 피식 웃더니 녹음기를 정지시키고 물었다.

“대체 어디까지 가시는 겁니까?”

“흠. 글쎄요. 우선은 포털사이트 파인에 주력할 생각입니다.”

“아니, 세계 최초 Mp3 플레이어를 출시하고, 포털사이트에 집중한다고요?”

한현태 기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고, 박주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덤덤하게 답했다.

“결국 Mp3 플레이어도 결국 포털사이트인 파인과 연결되는 겁니다.”

“예? 그게 무슨···.”

“한 기자님, 아직 Fp-100을 사용해보지 않으셨군요?”

박주혁의 물음에 한현태 기자가 얼굴을 붉히며 항변했다.

“아니,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있어야죠. 어디를 가도 품절인데, 어떻게 사요.”

“고가에 초도 물량을 상당히 풀었는데 벌써 품절이라고요?”

한현태 기자의 말에 박주혁도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실제로 Fp-100은 출시 첫날부터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파인과 연동된 사운드바다 플랫폼에 대한 호평이 엄청났다. 파인에 실린 한현태 기자의 기사 댓글에서 현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 음악 찾아다니기 귀찮았는데 한 곡에 500원! 거기다 Fp-100 사운드 끝내줌.

└ 맞음. 돌디 사운드던데 생각보다 튜닝이 잘되어 있음.

└ 저음에 심장이 울림 ㅋㅋㅋ

└ 위에 세 사람은 Fp-100 소유자 맞음? 난 구경도 못 했는데 ㅠㅠ

- 와! 나도 드디어 Fp-100 겟! 이제 사운드바다가서 음악 마구 넣어야지!

└ 좌표 좀!

└ 어디서 삼? 제발 알려줘!

- Fp-100 대당 추가금 3만 원에 ㅍㅍㅍ

└ 너냐? 박스로 사 들고 가던 녀석이?

└ 되팔이 새끼 진짜. 샤발라마!

└ 소포거래 가능?

한현태 기자와 함께 댓글을 확인한 박주혁이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 Fp-100 사용기를 한번 기사로 써보시겠어요?”

“제품 리뷰요? 나쁘지 않죠. Fp-100만 구할 수 있다면요.”

한현태 기자가 박주혁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박주혁은 피식 웃더니 수화기를 들고 말했다.

“사장실로 Fp-100 3개 올려보내세요.”

대당 30만원을 호가하는 Fp-100을 한현태 기자의 품에 안기며 박주혁이 힘주어 말했다.

“주변에 주고 싶은 사람 있으면 선물로 나눠주시고, 되팔이는···.”

“아, 박 대표님. 저 그런 짓 안 합니다.”

한현태 기자가 황급히 답하자, 박주혁은 웃으며 말했다.

“Fp-100 자세한 사용 후기를 인터넷 기사 형태로 써서 ‘파인’에 올려주세요.”

한현태 기자는 Fp-100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와, 이 작은 것에 20곡 이상 들어간다는 거죠?”

“그렇죠. 조만간 128Mb 플래시 메모리 Fp-100도 출시하면, 40곡 정도 넣을 수 있을 겁니다.”

“오오.”

손가락 2개 정도 사이즈인 Fp-100을 쳐다보던 한현태 기자가 감탄사를 뱉으며,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흘러나오는 샘플 곡을 들으며 한현태 기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헐.”

“들을만하죠?”

“그 정도가 아닌데요? 이어폰을 좋은 것 사용하면 걸어 다니는 콘서트홀이겠는데요?”

“하하하. 기자라 그런지 표현력이 남다르시군요?”

박주혁의 말에 한현태 기자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아주 멋진 사용기를 남기도록 하죠. Fp-100 감사하게 쓰겠습니다.”

“홍보 기사만 잘 써주신다면, 앞으로도 한 기자님께는 파인테크의 최신 기기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오! 약속하신 겁니다?”

박주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현태 기자는 뛸 듯이 기뻐하며 시작도 하지 않은 인터뷰를 종료했다.

#

한현태 기자를 보낸 후 박주혁은 의자에 몸을 기대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제 겨우 첫 단추를 끼웠구나.”

Mp3 플레이어와 플랫폼을 연계하여, 마이팟과 마이튠즈라는 쓰나미를 막아낼 방파제는 마련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었다. 가장 큰 문제는 모바일 OS 개발과 그를 뒷받침할 터치스크린이었다.

터치스크린은 70년대부터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지만, 아직 정전식 터치스크린은 단점이 많았다.

전기 자극을 인식해 반응하는 정전식 터치스크린은 손가락 끝으로 쉽게 조작할 수 있고 멀티터치 구현이 쉬운 대신, 센서가 매우 민감하여 오작동이 날 확률이 높았다. 심지어 전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에 놓이면 오인식률이 급속도로 올라, 제품화가 쉽지 않았다. 이런 단점은 추후 소프트웨어로 보완 가능했는데, 대표적인 것들이 바로 마이애플의 마이OS와 고글의 드로이드였다.

당장 스마트폰을 출시하고 싶은 욕심이 앞섰지만, 현재로서 사용 가능한 터치스크린은 감압식뿐이었다. 하지만, 감압식은 멀티터치 구현이 어렵고, 딱딱 한 것으로 꾹 눌러서 사용하기에 드래그 기능도 사용이 어려웠다. 그뿐만 아니라 스크린에 스크래치가 날 확율이 높아, 스크래치를 보호하기 위한 전용 필름이 붙음으로써 화질의 선명도가 떨어지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박주혁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감압식으로는 안 돼···.”

이미 미래를 경험했기에 알고 있었다. 감압식이 결국 정전식에 밀려 도태되는 기술이라는 것을 말이다. 박주혁이 눈을 감은 채 중얼거리는 데 문뜩 2005년도에 번역했었던 터치스크린 관련 논문이 떠올랐다.

“제이콥 함이었나? 재미 교포였는데···.”

박주혁이 눈을 번쩍 뜨더니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시스템 온. 검색, 제이콥 함.”

- 검색 완료.

- 8건이 검색되었습니다.

내셔널 디자인 어워드 / 영한 / 2009년 / 디자인 박물관.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 영한 / 2008년 / 코리아타임즈.

퍼셉티브 픽셀 회사소개서 / 영한 / 2006년/ 제이콥 함.

멀티터치 스크린 기술 논문 / 영한 / 2005년 / 제이콥 함.

차세대 디스플레이 논문 / 영한 / 2002년 / 제이콥 함.

...

..

.

“역시. 맞았네.”

박주혁은 멀티터치 스크린 기술 논문을 클릭하여 쭉 훑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미국으로 가야겠다.”

정전식 터치스크린으로 손가락 10개를 전부 사용하여 조작한다는 제이콥 한의 기술은 마이폰이 나오기 훨씬 전에 미래의 기술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었다. 그리고 박주혁에게 필요한 기술이 바로 이것이었고 말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타임즈 2008년 버전을 읽으며 제이콥 함에 대한 정보를 뒤졌다.

“96년 코넬대학교 중퇴 후 6년간 LA 인터넷 서비스 관련 업체에서 근무하며 자신의 비디오 화상 기술로 20명이던 회사를 2,000명으로 성장시켰다. 음? 잠깐만··· 비디오 화상 기술?”

제이콥 함에게 터치스크린 외에도 비디오 화상 기술이 있었다니···. 박주혁이 미간을 좁히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꼭 만나봐야겠네.’

고민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박주혁은 수화기를 들어 비서에게 지시했다.

“LA행, 가장 빠른 비행기 편 예약하세요.”

“미국 로스엔젤레스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비서에게 LA행 비행기표 예매를 부탁한 박주혁은 제이콥 함과 관련된 문서들을 정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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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정 여사와 매일 같이 어울리더니 메르헨의 한국어 실력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이미 영어, 독일어, 불어까지 3개 국어를 구사하는 메르헨이었기에 언어 습득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 같았다.

“미국이요?”

“네, 꼭 만나볼 사람이 있습니다.”

메르헨의 흔들리는 눈빛을 알고 있었지만, 박주혁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런 그의 반응 때문이었을까? 메르헨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가 떨리는 입술을 천천히 뗐다.

“혹시···. 엑스 러버···?”

“···?”

박주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하자, 메르헨이 안도 된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메르헨은 금세 눈에 호선을 그리며 박주혁에게 물었다.

“비지니스 때문인 거죠?”

박주혁이 고개를 끄덕였고 메르헨은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그럼, 같이 가요···. 저도 파인랭스의 투자자이고, DD 자동차의 대주주니까요. 아, 물론 파인테크에도 지분이 있죠.”

그녀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백만 불을 파인랭스에 투자한 것도 사실이었고, DD 자동차의 투자금에는 벤타의 지분은 절대적이니 말이다.

“으음. 교포 과학자를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굳이 먼 길을 같이 가실 필요가···.”

박주혁이 완곡히 거절의 뜻을 밝혔지만, 메르헨은 완강했다. 마치 한시라도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같이 가요.”

메르헨의 정색에 박주혁이 눈을 끔벅이며 메르헨을 바라봤다. 그리고 최효정 여사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 혼자 가는 것보다 좋지 않겠니? 끼니도 챙겨줄 사람도 있고 말이야.”

최효정 여사의 말에 박주혁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메르헨은 한술 더 떴다.

“계란말이!”

엄청난 일을 해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소리치는 메르헨도 어이없었지만, 출장길을 부추기는 최효정 여사도 예상 밖이었다. 계속 메르헨과 함께 가라고 종용하다니···.

“메르헨이 통역도 해주고 하면 좀 좋아? 다 너에게 도움이 될 게다.”

박주혁에게 통역이 필요 없다는 것은 최효정 여사도 이미 알고 있을 터. 박주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최효정 여사를 바라보자, 그녀가 헛기침했다.

‘무슨 꿍꿍이가 있으신데···.’

최효정 여사에게 이유를 따져 묻기 위해 박주혁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그때 옆에 있던 메르헨이 수행비서와 통화하는 소리에 박주혁이 고개를 획 돌렸다.

“LA, 퍼스트 클래스 2자리 예약하세요. 가장 빠른 거로.”

“퍼스트 클래스?”

박주혁이 놀라 되묻자, 메르헨이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미소 지었다. 생각해보니 파리에서 한국으로 귀국할 때도 메르헨 덕분에 일등석을 타던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호텔 저리 가라였지···. 같이 가야 할 이유가 있었네.’

최소 11시간이 걸리는 비행, 일등석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파인테크의 대표직으로는 비즈니스석이 전부였는데···. 역시 세계적인 기업의 배포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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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석을 타면 피로도 자체가 다르다. 그냥 푹 쉬다 온 느낌이랄까? 유명 셰프의 음식에 샤워실도 갖춰져 있으니 피로도가 다를 수밖에···. 해외 출장 시 일등석은 포기할 수 없는 그 무언가다.

‘비싸서 문제지···.’

뭐, 메르헨과 함께라면 일등석은···. 잠시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메르헨과는 철저한 비지니스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는 박주혁이었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리 없는 메르헨은 박주혁의 곁에 착 붙어 웃으며 물었다.

“누굴 만나러 온 거예요?”

“아, 제이콥 함이라는 한국 교포 컴퓨터 공학 과학자에요.”

“제이콥 함?”

박주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항에 비치된 지도를 펼치며 미간을 좁혔다.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지도를 천천히 살폈다.

“지금 근무하는 곳이 로그 미 인이라고 하던데···.”

박주혁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던 메르헨이 갑자기 손뼉을 마주치며 말했다.

“어? 로그 미 인이면, 벤타에서도 거래하는 회사인 것 같아요.”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기분이었는데, 메르헨의 한마디에 오아시스가 눈 앞에 펼쳐진 것 같았다. 박주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메르헨을 바라보자, 그녀는 수행비서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고 투 미팅이 로그 미 인이라는 회사에서 제공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부회장님.”

수행비서에게 확인한 메르헨이 다시 환한 미소와 함께 박주혁을 바라봤다. 오늘따라 메르헨이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착각일까? 박주혁도 미소로 답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어머니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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