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대표님-102화 (102/136)
  • 102화 이제, 제발 좀 돌아가!

    백희나 덕분에 별다른 홍보 없이도 파인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리고 파인은 야이후와 넥스트에 이은 업계 3위로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파인의 서버가 안정화된 후 박주혁은 개발팀과 파인에 추가해야 할 서비스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해 회의를 개최했다.

    “현재 우리가 앞으로 개발해야 할 것들이 이런 거군요.”

    1. 채팅 서비스

    2. 사운드바다

    3. 일기(블로그) 서비스

    4. 소모임 서비스

    5. AI 서비스.

    6. 번역 서비스

    ...

    ..

    .

    칠판에 나열한 리스트를 쭉 훑어본 박주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돌렸다.

    “무엇이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까?”

    박주혁의 질문에 심영찬 과장이 고심하더니 말했다.

    “사운드바다는 Fp-100을 시장에 출시와 묶어서 서비스해야 할 것 같고, 우선은 채팅 서비스를 먼저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채팅 서비스라···. 그 이유가 뭐죠?”

    PC 통신 서비스를 이용해야지만 이메일을 쓸 수 있었던 환경에서 등장한 넥스트는 무료 이메일을 표방하며 시장을 선점해 갔다. 하지만, 사람들은 넥스트 이메일을 사용하면서도 커뮤니티 활동은 여전히 PC 통신을 활용했다.

    PC 통신에 쌓여있는 인맥과 데이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과도기였다. 아직 넥스트가 본격적인 포털이 아니었기에 PC 통신의 대안이 되지 못했다.

    PC 통신의 가장 큰 강점은 각종 소모임 게시판과 채팅이었다. 사람들은 채팅을 통해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모임을 만들었으며 심지어 장르 소설도 읽었다. 심영찬 과장은 PC 통신의 부흥기를 이끈 채팅이라는 개념을 파인에 도입하자는 것이었다.

    “채팅을 통해 사람들이 파인에서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추가로 소모임 서비스를 추가하면 PC 통신의 기능 대부분을 흡수하는 것입니다.”

    심영찬 과장이 상당히 날카롭게 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은 의견입니다. 또 다른 의견은 없습니까?”

    그때, 홍자가 손을 들어 말했다.

    “사운드바다도 채팅 서비스에 이어 바로 서비스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채팅하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게 해주거나, 음악에 대한 토론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파인의 채팅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운드바다를 경험할 수도 있고, Fp-100 출시 전 사용자를 미리 확보할 수 있는 장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홍자의 말에 박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은 의견이군요.”

    회의를 진행하면서 우선순위가 점점 좁혀지기 시작했다.

    1. 채팅 서비스

    2. 사운드바다

    3. 소모임 서비스

    4. AI 검색 서비스

    5. 블로그 서비스

    6. 번역 서비스

    ...

    ..

    .

    화이트보드에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하던 박주혁이 미간을 좁히더니 직원들을 돌아봤다.

    “아무래도 1~3번은 동시에 서비스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기술적인 문제가 있습니까?”

    박주혁의 말에 홍자와 심영찬 과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운드바다의 플레이어는 문제가 없는데, 결제 그리고 파인과 연계가 아직 미완성입니다.”

    “그 부분도 문제인데, 채팅도 단순한 텍스트 위주가 아니라, 디자인이 추가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심영찬 과장과 홍자의 말에 박주혁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사운드바다는 베타 서비스로 붙입시다. 우선 서비스를 공개하는 방향으로 하죠. 완벽하게 개발하려다가는 경쟁사에 선두를 뺏길 수도 있고,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파인’이 이런 것을 개발 중이라고 어필할 필요도 있으니까요.”

    박주혁의 말에 개발팀원들이 모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심 과장이 말한 시각적인 효과 말인데···. 상형 문자들을 조합해 사람의 얼굴 형상을 만드는 것을 이모티콘이라고 하던가요?”

    “예, 맞습니다.”

    주군가가 대답하자, 박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서 말했다.

    “이모티콘을 디자인팀에서도 만들고, 외부 디자이너들이 자신이 디자인한 이모티콘을 직접 판매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이모티콘을 판다고요?”

    개발팀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뜰 때, 박주혁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우리가 디자인한 이모티콘은 기본 제공을 하고, 독창적인 이모티콘들은 고객이 직접 제작 및 판매할 수 있도록 하면 새로운 시장이 창출될 것입니다.”

    박주혁의 말에 심영찬 과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박주혁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디자인팀에서 제작한 것도 판매가 가능할까요?”

    “개인적으로 디자인해서 올린다면 상관없겠죠?”

    “오! 좋네요.”

    심영찬 과장의 속내가 뻔했기에 박주혁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개발팀에게 또 다른 숙제를 냈다.

    “파인 웹사이트에서 채팅하는 것도 좋은데, 별도로 메신져 프로그램을 별도로 개발해서 추후 개발될 모바일 OS에 탑재해야 합니다. 물론, 파인의 채팅 시스템과도 연동이 되어야겠죠.”

    생각해보지 못한 전개였는지 개발팀원들이 모두 입을 벌리며 박주혁을 쳐다봤다. 직원들을 천천히 둘러본 박주혁이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결국 우리의 최종 목표는 모바일 OS 구축 및 스마트폰을 만드는 것이니까요.”

    박주혁의 말에 직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그들도 알고 있었다.

    끊임없는 채찍질과 고통이 더해져야 세상에 없던 것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

    최효정 여사와 한번 만난 이후로 메르헨은 최효정 여사와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다. 어찌 보면 아들인 박주혁보다 메르헨이 더 자주 최효정 여사를 만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메르헨, 오늘은 뭐 먹을까?”

    “음···. 어머니가 해주시는 에그마리?”

    “···에그? 아! 계란말이?”

    “네네!”

    그들이 소통이 된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최효정 여사는 웃으며 메르헨을 집으로 초대했다. 한두 번 왕래한 것이 아닌지 메르헨은 자연스럽게 최효정 여사를 도와 식탁을 차렸다. 최효정 여사는 계란말이 재료를 준비하며 중얼거렸다.

    “우리 주혁이도 계란말이 참 좋아하는데···.”

    최효정 여사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메르헨이 바짝 다가와 물었다.

    “주혁씨도···. 좋아해요?”

    “엄청나게 좋아하지! 계란말이가 맛있으려면 이걸 넣어야 해.”

    최효정 여사는 조리대에 올려진 우유을 가리키며 말했다. 메르헨이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우유?”

    “그럼, 우유를 적당히 포실포실해지고 고소해지지. 너무 넣으면 묽어져서 별로야.”

    “오오. 얼마나 써요?”

    “으응. 적당히.”

    “아, 족당히···.”

    메르헨이 최효정 여사의 말을 따라 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적당히’라는 뜻을 메르헨은 이해하는 것일까? 알송달송한 메르헨의 표정이 그녀가 만들어갈 계란말이의 비극을 알리는 듯했다.

    메르헨은 최효정 여사가 계란말이 만드는 것을 열심히 지켜봤고 곧 최효정 여사는 완성된 두툼한 계란말이를 접시에 올렸다. 계란말이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와 식욕을 자극했다.

    “와우!”

    “맛있겠지? 어서 먹자.”

    마치 모녀처럼 최효정 여사는 메르헨의 밥그릇에 계란말이를 한 점 올려줬다. 그러면 메르헨은 활짝 웃으며 계란말이를 한입 베어물었다.

    “어때?”

    “음. 쏘 소프트. 어머니. 쵝오!”

    “그래? 그럼 어디, 나도 한번···.”

    누가 보면 부녀 사이인 줄 알겠다.

    #

    개발팀과 회의를 끝낸 박주혁은 Fp-100을 개발하는 파인테크로 향했다. 모든 과정을 챙겨야 했기에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고, 박주혁은 잠시 모델 D의 자율주행에 차를 맡겼다.

    “네, 박주혁입니다.”

    “나예요. 메르헨.”

    “메르헨. 꼭 한국말로 해야 하는 거죠?”

    “예스! 오브코스.”

    ‘방금은 영어였는데···.’

    다급하면 영어가 불쑥 불쑥 튀어나왔지만, 메르헨은 최대한 한국말을 하려고 애썼다. 그런 노력이 가상해 받아주고는 있었지만, 머릿속이 이렇게 복잡할 때는 좀···.

    “무슨 일이세요?”

    “점심, 아직?”

    메르헨의 말에 박주혁이 대시보드에 있는 시계를 힐끔 보며 말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아직이에요. 근데 지금 파인테크로 가는 중인데요.”

    “댓츠 노 프라브럼. 어, 음. 그···토쉬락? 만드러써요.”

    “도시락이요?”

    반문하는 박주혁의 미간에 주름이 순간 깊게 팼다. 왠지 먹어서는 안 될 음식이 들어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괜찮은데요.”

    “주혁씨 좋아하는 계롼마리에요. 셀프로 만들었어요.”

    “아, 괜찮은데···.”

    “···.”

    메르헨의 숨소리가 살짝 거칠어지는 것 같자, 박주혁이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답했다.

    “메르헨이 고생스러울까 봐 그렇죠.”

    “잇츠 오케이. 나 괜차나. 이따 2시에 봐요.”

    전화를 끊고 박주혁은 휴대폰을 내려보며 중얼거렸다.

    “아, 근데 메르헨은 대체 언제까지 한국에 있을 생각이지?”

    신경 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번 이렇게 연락 오고 밥을 먹자고 하니 곤란했다.

    파인테크에 도착하자마자, 박주혁은 이인우 센터장과 회의실로 향했다. 먼저 도착해 있던 구매부와 기술부 임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주혁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박주혁은 자연스럽게 손을 올려 인사를 받고 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현재 Fp-100 진행 상황 보고해주세요.”

    박주혁의 말에 기술부 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스크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현재 Fp-100의 금형을 제작 중이며, 반도체 3사로부터 플래시 메모리 샘플을 받아 테스트해봤습니다. 3사의 플래시 메모리가 비슷한 성능을 보이고는 있지만, 안정성 면에서 삼송의 플래시 메모리가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삼송 플래시 메모리를 채용할까 합니다.”

    누가 부정할 수 있겠나? 반도체 세계 리더인 삼송의 실력을 말이다. 하지만, 삼송은 마이애플사에 플래시 메모리 공급가를 낮춰 한리버를 고사시켰던 전례가 있었다. 대량구매에 따른 할인이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자사가 개발하는 얍 시리즈를 위해 고의적으로 고가 정책을 펼쳤다는 말도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전철을 밟으면 안 될 터.

    “삼송의 품질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우린 미래전자 제품으로 최적화해야 합니다.”

    “예? 하지만, 벤치마크 결과가···.”

    “그 벤치마크 결과가 소비자들도 느낄 정도로 확연한 차이였습니까?”

    “아,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그럼 문제 될 것이 없겠군요. 벤치마크 결과는 구매부에 전달하시고, 구매부는 벤치마크 결과를 토대로 미래전자와 딜을 하십시오.”

    “허.”

    기술부와 구매부에서 동시에 탄식이 쏟아져나왔다. 옆구리를 훅 찌르는 박주혁의 전략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구매부 임원이 고개를 살짝 가로저으며 박주혁의 의중을 떠봤다.

    “가격을 후려치실 생각이시군요.”

    “벤치마크 결과가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없다면 굳이 비싼 제품을 사용해야 할까요? 그리고 플래시 메모리의 가격을 인하한 만큼 가격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일전에 누군가 비싸서 누가 사겠냐고 했던 것 같은데···.”

    박주혁이 구매부를 힐끔 쳐다보며 노려보자, 구매부 임원이 어깨를 움츠리며 긴장했다.

    “자, 어서 움직이시죠. Fp-100를 세상에 선보일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네! 대표님.”

    이인우 센터장과 임원들이 회의실을 나가고, 얼마 뒤 메르헨에게 연락이 왔다.

    “저 도촥했어요.”

    “아, 메르헨. 사장실로 올라오세요.”

    사장실에서 잠시 기다리니 메르헨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사장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뒤따라 들어온 수행비서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메르헨이 손수 만들었다는 도시락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밥솥째 가져왔나···?’

    어마어마한 양의 도시락에 주눅이 들려는데, 메르헨이 밝은 표정으로 수행비서가 들고온 쇼핑백에서 전기밥솥을 꺼내 소리쳤다.

    “밥, 계롼말이!”

    쇼핑백에서 꺼낸 전기밥솥에는 탄내가 물씬 나는 밥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3단 반찬통에는 온통 계란말이가 가득 담겨있었다.

    “이걸 다 먹으라고요?”

    “저랑요. 어때요? 어머니 계롼말이랑 비슷해?”

    메르헨이 말과 함께 두툼한 계란말이를 박주혁의 입에 들이밀었다.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박주혁은 계란말이를 입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윽! 짜!’

    좁혀지려는 미간의 근육을 피며 박주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맛있네요.”

    “예스! 서엉공.”

    메르헨이 뛸 듯이 기뻐하며 수행비서에게도 밥과 계란말이를 건넸다. 그가 독일어로 뭐라 말하는 것 같았는데, 무슨 말인지 감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수행비서의 손에는 어느새 밥과 계란말이가 있었다. 고개를 떨구는 그의 모습에 동질감을 느끼며 박주혁은 탄 맛 나는 밥과 계란말이를 씹어 삼켰다. 입안을 가득 채운 짠맛에 박주혁은 입맛을 다시며 메르헨에게 물었다.

    “소금은 얼마나 넣은 거예요?”

    “소금? 족당히.”

    “아아. 적당히···.”

    박주혁이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았는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이제, 제발 좀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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