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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대표님-100화 (100/136)
  • 100화 www.fine.com

    파인테크 대회의실.

    임원들에게 스마트폰이 목표라고 말한 박주혁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임원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목표로 가기 위해서는 단계를 밟아가야겠죠.”

    차갑던 임원들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첫 번째 단계로는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든다는 이미지가 필요합니다. 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우린 Mp3 플레이어를 만들어야 합니다.”

    박주혁의 말에 임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는 듯 눈만 끔벅이던 임원들이 웅성거렸다.

    “Mp3 플레이어요?”

    “그게 대체 뭐지?”

    “CD 플레이어 비슷한 것 아닌가?”

    다양한 추측이 난무할 때 박주혁은 이인우 센터장에게 눈짓을 보냈고 이인우 센터장이 자신의 프리즘 Mp3 플레이어 디자인을 스크린에 띄웠다.

    “으음?”

    의문의 시선으로 임원들이 신음할 때 박주혁이 입을 열었다.

    “이게 우리가 개발할 Mp3 플레이어의 디자인입니다.”

    이인우 센터장이 디자인을 이리저리 돌리며 보여주자, 임원들이 수군거렸다.

    “저게 Mp3 플레이어라고?”

    “저장 매체는 무엇을 쓰는 거지? 요새 CD나 MD를 쓴다던데 MD가 들어갈 사이즈도 아니고···.”

    “설마 플래시 메모리를 쓰나?”

    누군가의 말에 박주혁이 손가락을 튕기며 목소리를 높였다.

    “맞습니다. 모델명 Fp-100은 플래시 메모리를 탑재하여 초소형 플레이어입니다. 이 센터장님 목업을 보여드리세요.”

    “네. 대표님”

    이인우 센터장이 가방에서 Fp-100의 목업을 꺼내 임원들에게 선보였다. 디자인만 보다가 실물에 가까운 목업을 보자 임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세상에 저렇게 작다고?”

    “헐! 저런 크기가 가능···해?”

    슬림화에 목숨을 걸고 있던 CD 플레이어와 카세트 플레이어를 대체하겠다며 야심에 차게 등장한 초소형 MD 플레이어가 혈전을 버리는 와중에 Fp-100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임원들의 놀람과 기대 속에서도 날이 선 비판은 있었다.

    “플래시 메모리의 단가가 높아 제품가격이 시장이 수용할 수준이 아닐 겁니다.”

    박주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Fp-100은 세상에 없던 제품입니다. 전 이 제품을 보급형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파인테크의 브랜드가치를 만들어가는 척후병으로서 가치를 부여해야 합니다.”

    박주혁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한 임원이 손을 들고 말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대표님이 말씀하신 스마트폰과 Mp3 플레이어는 관계가 없는 것 아닙니까?”

    그의 말에 임원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를 표했고 박주혁은 살짝 웃어 보이며 답했다.

    “첫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죠. Mp3 플레이어가 왜 휴대폰과 연결되는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검색엔진 ‘파인’, 음악 재생기이자, 플랫폼인 ‘사운드바다’ 그리고 모마일 OS ‘파인월드’까지 박주혁이 천천히 설명해 나가자, 임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러니까 지금···.”

    “음악 컨텐츠를 시작으로 스마트폰의 OS까지 개발하고 있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생각보다 스케일이 너무 커서 놀랐다. 심지어 검색엔진 ‘파인’과 사운드바다는 런칭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에 임원들의 입이 다시 한번 벌어졌다.

    “결국, Mp3 플레이어는 휴대폰, 즉 스마트폰과 합쳐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Mp3 플레이어로서의 명성도 필요한 것이죠.”

    어중이떠중이 Mp3 플레이어 제조업체와 비교할 수 없는 네임벨류, 박주혁은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마이애플사가 제품을 기획하고 있는 지금, 파인테크가 먼저 치고 나가 시장을 차지할 것이다. 무려 1년을 앞서서 말이다.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했는데, 박주혁은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반신반의하던 임원들도 구체적인 박주혁의 전략에 눈빛이 달라지고 있었다. 박주혁은 임원들을 천천히 바라보며 힘주어 소리쳤다.

    “저와 함께 삶을 바꿀 제품을 만들어 봅시다!”

    박주혁의 힘 있는 외침에 임원들이 박수로 그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파인테크라는 새끼공룡은 이제 사냥감을 향해 달려 나갈 채비를 끝냈다.

    #

    US Open.

    백희나가 티박스에 올라 어드레스를 했다. 긴장되는 순간 백희나의 드라이버가 움직였다.

    - 깡!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공은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카메라가 잠시 공을 쫓더니 그녀의 우아한 피니시를 화면에 송출했다. 그녀의 왼쪽 어깨 쪽에 선명한 ‘파인’의 로고가 눈에 확 띄었다.

    - 백희나 선수 멋진 티샷으로 경기를 시작합니다. 아니카 쇠렌스람 선수와 같은 조로 출발하는데 압박감이 상당하겠죠?

    - 글쎄요. 백희나 선수의 표정을 볼 때 전혀 흔들림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마음을 독하게 먹은 것 같습니다. 지난 빅맥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후로 부담감을 덜었는지 더욱 날카로운 샷을 날리네요.

    해설자의 말이 끝나고 아니카 쇠렌스람이 티박스에 섰다. 하지만, 아나운서와 해설자에게는 오로지 백희나 선수만이 관심의 대상이었다. 쇠렌스람이 스윙을 시작하는 순간 아나운서가 해설자에게 물었다.

    - 그런데 백희나 선수에 있던 파인랭스라는 마크가 파인으로 바뀌었습니다. 혹시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 파인랭스는 백희나 선수가 아마추어일 때부터 후원하던 회사였습니다. 백희나 선수가 운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언어스폰을 했었죠. 그 회사가 이번에 사명을 바꾼 모양입니다.

    - 그렇군요. 파인이라 뭐 하는 기업일지 궁금하군요.

    아나운서의 한마디에 이제 막 오픈한 ‘파인’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어어! 시, 심 과장님!”

    다급한 직원의 외침에 심영찬 과장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돌렸다.

    “왜? 또 무슨 일인데?”

    “가, 갑자기 트래픽이 올라갑니다!”

    “뭐? 이제 막 가오픈했는데 트래픽이 올라가다니?”

    심영찬 과장이 직원의 모니터로 시선을 옮기더니 눈을 크게 뜨더니 자리를 박차고 사장실로 뛰었다.

    “사장님!”

    심영찬 과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박주혁을 불렀지만, 그는 수화기를 들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지 손바닥을 들어 심영찬 과장을 제지했다.

    “아, 그러시군요. 투자의향서를 보내주시면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심영찬 과장은 박주혁이 통화가 끝날때까지 발을 동동 굴리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박주혁이 수화기를 내려놓는 순간 심영찬 과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파인에 트래픽이 몰려서 서버가 다운될 것 같습니다.”

    “음. 그렇군요.”

    심영찬 과장은 한시가 급했지만, 박주혁은 태연했다.

    “사, 사장님! 아무리 가오픈이라지만, 첫날부터 서버가 다운된다는 것은 기술적 미숙함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런가요? 전 생각이 좀 다른데···.”

    “예에?”

    심영찬이 눈을 동그랗게 뜰때, 그의 부하직원이 사장실로 뛰어와 소리쳤다.

    “곧 다운됩니다!”

    심영찬 과장과 그의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박주혁을 쳐다봤다. 박주혁은 씩 미소지으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럼. 다운시키세요.”

    “···!”

    너무도 태연한 그의 말에 심영찬 과장과 직원이 서로를 마주 보며 눈을 끔벅였다.

    “다운시키고, 빠르게 서버를 증설합니다.”

    “···.”

    한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박주혁을 바라보던 심영찬 과장과 직원이 답답했는지 박주혁이 손뼉을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해요? 서두르세요!”

    “아, 네!”

    직원들을 물리고, 박주혁은 수화기를 들었다.

    “한 기자. 오랜만이네요?”

    “박 대표님! 그렇지 않아도 전화하려고 했습니다. 백희나 선수 관련해서 인터뷰 좀 부탁드립니다.”

    “그 전에 기사 하나만 내주세요.”

    “기사요?”

    “네, 기사요.”

    담담하게 한현태 기자에게 말하던 박주혁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잠시 후, 한현태 기자가 작성한 보도문이 인터넷 검색 상위권을 차지하며, ‘파인’에 대한 인지도 확산에 불을 지폈다.

    [백희나 선수를 후원하는 ‘파인’의 서버가 다운됐다.]

    이미 사람들이 ‘파인’이라는 검색을 하고 있단 와중이라, 한현태 기자의 보도문의 조회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백희나 선수를 오래도록 후원한 기업인 ‘파인’은 금일 백희나 선수의 US Open 티샷을 기점으로 서버가 다운되었다. 파인이라는 기업에 대한 궁금증이 만들어 낸 이번 헤프닝으로 ‘파인’은···.]

    박주혁은 기사 말미에 적혀있는 URL 주소를 보며 다시 한번 미소 지었다.

    [현재 서버가 다운된 주식회사 ‘파인’의 주소는 다음과 같다. www.fine.com]

    #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지만, 파인은 시간이 흐르면서 안정을 찾았다. 백희나의 유명세를 치뤘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이 회원가입까지 하며 이메일 계정을 생성했다. 덕분에 개발팀은 종일 서버를 증설하느라 손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고생스러웠음에도 개발팀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만연했다.

    “와, 진짜.”

    “엄청나다.”

    “미쳤다.”

    심영찬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서 트래픽과 회원가입 수 등 파인의 성장세를 지켜보며 하나같이 감탄사를 뱉어냈다. 노력의 결실이 눈앞에 보여지니 기쁠 수밖에. 그들의 곁으로 박주혁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모두 고생했습니다.”

    개발팀원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박주혁을 쳐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사장님. 정말 대박입니다. 벌써 가입자가 2만 명을 넘어섰어요. 하루 만에!”

    “어휴, 전 종일 서버만 만드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결과가 이러니 엄청 좋네요.”

    상기된 직원들을 바라보며 박주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두 다 여러분의 공입니다. 이제 다음 스텝을 밟아볼까요?”

    다음 스텝이라는 말에 직원들의 얼굴이 순간 차갑게 식었다. 대체 또 무슨 일을 하려고? 그들의 얼굴에 의문이 떠오를 때쯤, 박주혁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죠. 고객들이 파인에 머무는 시간을 늘릴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머무는 시간을 늘려요?”

    직원들의 질문에 박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객이 파인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파인의 가치는 올라가는 겁니다. 유저들이 만드는 컨텐츠를 한번 고민해보죠.”

    멍하게 박주혁을 바라보고 있던 심영찬 과장이 갑자기 손을 들더니 말했다.

    “혹시 온라인 동호회 같은 것을 만들어서 고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면 어떻겠습니까?”

    심영찬 과장의 말에 박주혁이 싱긋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자, 여기저기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파인에 자신의 일기를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채팅 기능을 추가합시다.”

    “기사를 메인에 올려서 별도로 찾지 않고 기사를 보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화두를 던졌을 뿐인데 좋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훌륭한 아이디어들이군요. 당장 처리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 기능을 추가합시다. 그 전에···.”

    박주혁은 어지러이 늘어진 전선들과 조립이 덜 되어 속이 훤히 보이는 서버들이 나뒹구는 공간으로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그의 시선에 따라 직원들의 눈동자도 천천히 따라갔고, 박주혁은 굳은 얼굴로 천천히 입술을 뗐다.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겠죠?”

    전쟁터를 떠올리는 서버들을 바라보며 직원들이 얼굴을 붉히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심영찬 과장도 민망했는지 부하직원들을 다그쳤다.

    “저게 뭐야! 제대로 정리 안 하지?”

    “합니다! 지금 당장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박주혁은 호통치는 심영찬 과장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야근?”

    심영찬 과장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박주혁이 품에서 카드를 꺼내 내밀었다.

    “오늘은 특별히 맛있는 것으로···.”

    심영찬 과장이 웃으며 카드를 받았다. 박주혁은 심영찬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

    건물 입구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마침 메르헨이 건물로 들어섰다.

    “···메르헨?”

    “미스터 박! 와우! 우리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요. 딱 만났네요.”

    “지금 막 퇴근하는 길인데···. 무슨 일 있으세요?”

    박주혁의 사무적인 말투에 메르헨이 짧은 한숨을 쉬며 박주혁에게 바짝 다가왔다.

    “같이 밥 먹게요.”

    “아, 오늘은 어머님과 선약이···.”

    가만히 박주혁의 말을 듣고 있던 메르헨이 갑자기 박주혁과 팔짱을 꼈다. 박주혁이 당황하여 메르헨을 빤히 바라볼 때 그녀가 태연하게 말했다.

    “더 잘됐네요. 미스터 박 어머니를 언젠가 만나보고 싶었거든요.”

    “예에?”

    박주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메르헨을 쳐다봤지만, 그녀는 눈웃음을 치며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박주혁의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졌다.

    ‘투자자를 가족에게 소개하는 경우가 있던가?’

    가족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박주혁의 사례와는 맞지 않았다.

    ‘괜히 오해받기 쉬울 텐데···?’

    그렇지 않아도 중매 자리를 권하던 최효정 여사였다. 여간 불편한 자리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지만, 찾아온 메르헨을 거절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난감해하는 박주혁을 보며 메르헨은 미소지으며 중얼거렸다.

    ‘한국에서는 여자를 부모님께 소개하면 남자가 책임질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했지?’

    어학당에서 이상한 것만 배워서는···. 난감해하는 박주혁과 달리 메르헨의 두 뺨은 붉게 상기됐다.

    “가요. 주혁씨 어머니 만나 뵙고 싶어요.”

    적극적으로 나서는 메르헨 덕분에 박주혁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파였다.

    ‘파인랭스에 100만 불을 투자한 투자자다. 어머니께 잘 설명해 드리면 이해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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