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대표님-93화 (93/136)
  • 093화 박수 칠 때 떠나지 못한다.

    [DD 자동차의 자율주행 전기차 모델 D 출시!]

    [제로백 2.8초! 전기차 모델 D를 파헤쳐 본다.]

    [한번 충전으로 350km 주행이 가능한 전기차가 한국에서 출시됐다.]

    언론에서 모델 D에 대한 찬사를 쏟아낼 때, 아직 내연 기관에 머물러 있던 국내 자동차 3사가 전기차는 시기상조라는 기사를 쏟아냈다.

    [충전 인프라 없는 전기차는 고철 덩어리다.]

    [모델 D는 골프 카트에서 유래했다?]

    [터무니없는 거짓 스팩. DD 자동차의 거짓말이 들통났다.]

    어그로성 제목이었지만, 실상 읽어보면 별 내용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델 D를 아직 정식 판매를 하지 않고 있으니, 기자들이라고 해도 정보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모델 D가 여론을 장악하는 것을 염려한 경쟁사들의 전형적인 물타기일 뿐이었다.

    박주혁은 신문을 내려놓고 웃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똥줄이 탔나 보네.’

    언론에서 모델 D를 마구 헐뜯는 것은 경쟁사들이 얼마나 자극받았는지에 대한 척도라고 할 수 있었다. 박주혁은 흡족한 얼굴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잠시 승리감에 취해있는데 스피커 폰에서 고윤희 비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장님. 메르헨 부회장님과 럴커펠트님께서 오셨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고윤희가 사장실 문을 열자, 메르헨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들어왔고, 럴커펠트는 양팔을 벌리며 박주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마이 러브. 미스터 박.”

    박주혁은 럴커펠트와 포옹하고 난 후 메르헨에게 눈인사를 했다. 메르헨은 미소 지으며 눈인사로 화답을 했고 말이다.

    “미스터 박. 어제는 인사도 제대로 못 나눠서 섭섭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워낙 많은 사람이 있다 보니···.”

    박주혁의 변명이 재미있다는 듯 럴커펠트가 웃으며 말했다.

    “알고 있죠. 사실 나도 어제 미스터 박을 만날 생각도 못 했어요. 모델 D가 워낙 충격적이어서 말이죠.”

    “그러셨어요? 챠넬 콜라보로 진행되는 것이 있어서 종종 보고가 갔을 텐데요.”

    “글로 접하는 것과 실물을 보는 것은 차이가 크죠. 거기다 미스터 박이 모델 D 공개 행사를 패션쇼처럼 기획해버리니까 어찌나 모델 D에 몰입하게 되는지···.”

    럴커펠트가 어제 일이 떠올랐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정말, 어메이징 했어요.”

    “감사합니다.”

    “아마, 벤타도 아직 전기차를 개발하지 못했을 겁니다. 벤타 회장님이 속 좀 쓰리시겠는데?”

    럴커펠트가 이빨을 드러내며 메르헨을 쳐다보자, 그녀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아버지는 지금쯤 침대에서 이불을 냅다 걷어차고 계실 겁니다.”

    “와하하!”

    메르헨의 재치 있는 말에 럴커펠트가 박장대소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 정말 이렇게 즐거운 사람들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은데···. 일정이 있어서 공항으로 가야 한다니 아쉽군요.”

    “벌써 가시는군요.”

    박주혁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자, 럴커펠트가 손뼉을 치고 일어나더니 씩씩하게 말했다.

    “언젠가 또 기회가 있겠지요? 다음번에는 쏘우맥이랑 생선 소스에 찍어 먹는 고기 먹으러 갑시다.”

    “좋습니다. 다음번에 오시면 제가 꼭 대접해드리겠습니다.”

    “약속한 겁니다?”

    럴커펠트가 박주혁과 메르헨을 차례로 포옹하더니 웃으며 사장실에서 나가자, 메르헨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약속 지키셔야죠?”

    “약속이요?”

    박주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메르헨을 쳐다보자, 메르헨이 살짝 실망했다는 투로 투덜거렸다.

    “바닷가에서 회 사준다고 했었잖아요. 저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었는데요.”

    “아아! 맞아요. 그랬었죠. 좋아요. 가시죠. 저도 메르헨 덕분에 바람도 쐬고 좋겠네요.”

    박주혁이 웃으며 말하자, 메르헨도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철썩! 철썩.

    바닷물이 바위를 만나 잘게 부서진다. 방울방울 찢어진 바닷물은 품고 있던 바닷냄새를 흩뿌렸다.

    공기 중 가득한 짠 내와 함께 메르헨이 꿈틀대는 산낙지를 입에 넣었다.

    -오독오독.

    눈을 지그시 감고 산낙지의 쫄깃한 식감과 참기름의 고소함 그리고 초고추장의 새콤달콤하면서도 매콤한 맛에 푹 빠진 메르헨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으음. 이 맛이 그리웠어요.”

    박주혁은 메르헨의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한국 사람이 다 됐네요?”

    “아직이에요. 뭔가 빠졌어요. 매우 허전하네요.”

    “으음? 뭐가 빠졌죠?”

    “황금비율의 소맥.”

    메르헨은 정색하며 비어있는 잔을 박주혁에게 내밀었다. 세상 진지한 메르헨의 표정에 박주혁은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하하하.”

    “뭐가 웃겨요? 전 진지합니다.”

    “네, 그래 보입니다.”

    박주혁은 소맥을 말아 메르헨에게 건넸고 그녀는 바로 한 모금 시원하게 들이켰다. 식도를 자극하는 탄산미에 메르헨이 잠시 미간을 좁히더니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캬. 사라졌어. 입안이 이리도 깔끔하게 정리되다니!”

    영롱한 황금빛 소맥을 지그시 바라보며 메르헨이 말했다.

    “소맥은 제품화해도 성공할 거예요.”

    “아닙니다.”

    박주혁의 부정에 메르헨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목소리를 높였다.

    “와이?”

    “소맥은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고, 무엇보다도 바로 주조해서 먹어야 제맛입니다.”

    박주혁이 소맥에 진심인 듯 정색하며 말하자, 메르헨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상황이 웃겼는지 둘은 마주 보고 쿡쿡 웃어버렸다. 소맥을 한 모금한 메르헨이 살짝 우울한 눈초리로 입을 열었다.

    “럴커펠트씨도 함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러게요. 워낙에 바쁘신 분이잖아요. 이번 모델 D 행사에 참석하신 것만도 영광이죠.”

    “그건 그래요.”

    싱싱한 해물과 멋진 바다 풍경 덕분이었을까? 메르헨은 소맥을 음료수처럼 마셨고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정말로 바다를 앞에 두고 먹으니 맛있네요.”

    “저와 함께 있어서 더 맛있는 것 아닙니까?”

    박주혁은 웃으며 농담을 한 것이었지만, 메르헨은 얼굴은 순간 확 달아올랐다.

    “흠흠!”

    자신의 감정을 들킬세라, 메르헨은 헛기침을 하더니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휴대폰 제조회사에 투자했다고 들었어요.”

    “예. 자율주행 때문에 정보통신 기술을 접목하고 싶었는데 아직은 좀 이른 것 같더라고요.”

    자동차에 정보통신 기술을 접목하고 싶다는 박주혁의 말에 메르헨이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미 자율주행이라는 신기술을 접목해 세계를 들썩이게 했으면서도 아직, 부족했나 보다.

    “현재의 자율주행기술은 GPS와 연동되지 않아, 서비스에 제약이 있습니다. 배터리 충전이 필요할때 가장 가까운 충전소를 알려준다든지, 위급상황에 자동으로 위치 정보를 전송하는 등. 고객의 안전과 편의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죠.”

    박주혁의 말을 경청하며 메르헨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서 휴대폰 제조사에 투자를 했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언젠가 자동차에 정보통신기술을 적용하기 위해서 말이죠.”

    “놀랍군요. 이동통신이 이제 막 태동한 상태인데 벌써 자동차와 연계시킬 생각을 한다니···. 전 미스터 박이 DD 자동차를 떠나 다음 스텝을 준비하는 줄 알았습니다.”

    “···.”

    메르헨의 말에 박주혁의 표정이 살짝 굳으며 입술이 얄팍해졌다. 메르헨도 분위기 변화를 감지했는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역시, 다음 스텝인가요?”

    “한국에는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도 있죠.”

    “···.”

    소맥 잔을 들고 있는 메르헨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만년 적자 상태였던 DD 자동차를 흑자기업으로 되돌렸고, 세계가 주목하는 칼스타와 모델 D를 개발한 박주혁이다. 이대로 DD 자동차를 떠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메르헨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었다. 박주혁은 시선을 살짝 떨구며 차분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떠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막 모델 D가 태어났으니 시장에 안착하기까지 제 손이 더 필요하겠죠.”

    - 꿀꺽.

    메르헨이 소맥을 벌컥 들이키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미스터 박은 호랑이였어요.”

    “예?”

    “첫 만남부터 느끼고는 있었습니다. 제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요. 이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떠나려 하시는군요.”

    메르헨의 말에 박주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동안 자신을 믿어 줬던 메르헨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애써 미소 짓고 있었지만, 취기 때문인지 메르헨의 눈가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메르헨···.”

    박주혁이 뭐라 말하려 할 때, 메르헨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DD 자동차의 CEO 자리는 비워두겠어요. 그 자리는 미스터 박의 것이니까요.”

    “그건···.”

    “다시 돌아오고 싶다면 언제든지···.”

    메르헨이 힘주어 말하다 말고 말끝을 흐렸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여태 수많은 남자가 메르헨에게 대시했었다. 아름다운 외모도 외모였지만, 대부분 메르헨의 배경을 노린 사람이 절대다수였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어떤 남성이 접근해도 흔들림 없던 메르헨이었다. 그런데 박주혁은 처음부터 조금 달랐다.

    그가 럴커펠트를 말 한마디로 사로잡는 그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언어의 마술사 같던 박주혁에게 처음으로 메르헨의 심장이 고동쳤었다. 그리고 그 후로도 박주혁은 매번 메르헨을 놀라게 했다. 심지어 챠넬 패션쇼에 올라 매력을 한껏 뽐내지 않았던가? 박주혁과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자신의 배경에 관심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살짝 경계하고 있던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지금도 메르헨의 심장박동은 평소와 달리 빠르게 뛰고 있었다.

    ‘우리에 겨우 가뒀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뛰쳐나가려 하다니···.’

    메르헨의 입술이 달싹이려 할 때, 박주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차동진 전무가 잘 이끄실 겁니다.”

    -털썩.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가 귓가에 들린 것 같았다. 메르헨은 말없이 소맥 잔을 빙글빙글 돌리더니 말했다.

    “차 전무가 잠시 대행은 할 수 있겠지만, 역시나 DD 자동차는 미스터 박을 빼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그 정도는 양보하실 수 있잖아요?”

    “파인랭스도 신사업을 진행 중이라, DD 자동차에 예전만큼 열정을 쏟을 수 없을 겁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아요. 처음부터 겸직을 허용한다고 했었고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어색한 미소 사이에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정보통신과 자동차를 결합하려면, DD 자동차에 적을 두는 것이 미스터 박에게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박주혁이 뒷말을 이으려 할 때, 메르헨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미스터 박의 말대로라면 정보통신과 자동차의 콜라보는 벤타와 DD 자동차, 모두에 필요한 기술일 겁니다. 미스터 박이 추진하는 일에 저도 함께하겠어요.”

    “···!”

    메르헨이 이렇게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는지, 박주혁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반면 메르헨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아, 대체 내가 무슨 말을···.’

    메르헨이 스스로를 핀잔할 때 박주혁이 메르헨의 말에 답했다.

    “그렇다면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만···.”

    박주혁이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숨기지 못한 채 메르헨을 바라봤고,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럼 됐네요! 건배!”

    자신의 마음이 박주혁에게 들키기라도 했을까 봐, 메르헨이 황급하게 잔을 들며 외쳤다. 하지만, 그녀의 양 볼은 이미 붉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박주혁이 붉어진 메르헨의 양 볼이 술기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인 것일까?

    메르헨과 잔을 부딪치는 박주혁의 속내도 나름 복잡했다.

    ‘왜 날 이렇게까지 챙기는 거지? 벤타가 우군이 된다면 든든하긴 하지만···.’

    박주혁의 눈빛에 의아함이 스며 메르헨을 쳐다봤다. 물론, 메르헨은 그것을 우수에 찬 눈빛이라고 생각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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