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대표님-91화 (91/136)
  • 091화 경영권을 가질 생각입니다.

    윤태현은 파인랭스가 개발하려는 OS 및 검색엔진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

    “백신엔진과 검색엔진은 언뜻 비슷한 구석이 있당게요. 그라고 특히 그 OS 개발은···.”

    윤태현은 마른침을 삼키더니 박주혁과 심영찬을 번갈아 보더니 소리쳤다.

    “어따, 고것은 내가 꼭 해불고 싶써라.”

    고마운 얘기였지만, 아직 학생 신분인 윤태현에게 회사로 출근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였다. 박주혁은 눈웃음을 지으며 윤태현에게 나긋나긋 말했다.

    “태현 군이 함께해준다면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곁에 있던 심영찬 과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박주혁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이어진 박주혁의 말에 상기되었던 윤태현의 얼굴이 빠르게 식었다.

    “그래도 고등학교는 졸업하는 것이 태현 군에게 좋을 겁니다.”

    “하지만···.”

    “무슨 생각인지 알지만, 2년 만 기다리면 되는 것 아닐까요?”

    “···.”

    박주혁의 말에 서주경 교수가 고개를 주억거렸고, 윤태현은 고개를 떨궜다. 그 모습을 보며 서주경 교수는 빙긋 웃으며 윤태현에게 속삭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개발에 몰두하고 싶은 너의 마음은 알겠지만, 박 대표님의 말씀이 틀리지 않아.”

    “후우.”

    윤태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박주혁은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학교를 졸업하라고 했지.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예?”

    윤태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박주혁을 올려봤다.

    “파인랭스는 원격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 있으니, 태현 군은 지금과 같은 생활을 하면서 모바일 OS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됩니다. 휴대폰, 컴퓨터 등 필요한 자원은 저희가 지원하겠습니다. 물론 저희 프로젝트에 참여한 급여도 책정하여 지급하겠습니다. 단, 졸업 후에는 파인랭스에 윤태현 군과 우선협상 할 수 있는 지위를 보장받고 싶군요.”

    “우선협상? 고거시 뭔말이란가요?”

    윤태현이 눈을 끔벅이며 박주혁을 쳐다보자, 서주경 교수가 윤태현에게 속삭였다.

    “졸업 후에 다른 곳에 취직해도 되지만, 최소한 먼저 박 대표와 협의를 하자는 얘기야.”

    “아아. 전 제 능력이 사회에 도움이 되면 그것으로 족하지라. 해커가 안 된 것이 다행이랑께요?”

    생각해보니 V3보다 강력한 백신을 만든 윤태현이 반대로 해커가 되었다면···? 정말 무서운 말이었다. 박주혁은 피식 웃으며 윤태현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같이 한번 만들어 봅시다.”

    “예!”

    서주경 교수는 박주혁과 심영찬 그리고 윤태현의 눈에서 같은 빛깔의 빛이 반짝이는 것을 본 듯했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게 남자들이 매번 말하는 도원결의라는 건가? 멋지네.’

    #

    98년 3월 중순.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봄이다. 따뜻해진 햇볕은 얼어있는 땅을 녹이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경제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비록 그럴지언정, 삶은 이어져야 한다.

    달력을 바라보던 박주혁이 신음하며 고민에 빠졌다.

    “으음···. SJ텔레텍이 이제 곧 교세라와 협의를 시작할 텐데···?”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수화기를 들었다.

    “네, 정통부 이연호 사무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주혁입니다.”

    “어, 박 대표님. 어쩐 일이십니까?”

    “골프 연습은 잘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서 말이죠.”

    박주혁의 말에 이연호가 갑자기 투덜댔다.

    “아, 지금 또 놀리려고 전화한 겁니까? 너무하시네.”

    “안부를 여쭤보는 겁니다. 정 안되시면 어떻게, 레슨 좀 해드려요?”

    “아놔. 이 사람이 정말! ···박 프로님, 전 시간이 남는 사람입니다.”

    투덜대던 이연호 사무관이 갑자기 굽신거리는 말투로 말하자, 박주혁의 웃음보가 터졌고, 이연호 사무관도 같이 웃어버렸다.

    “정말 원하시면 좀 봐 드릴까요? 이래 봬도 백희나 선수에게 배웠습니다.”

    “프로님 편한 시간에 제가 맞출 수 있습니다! 제발 한 수 부탁드립니다. 요즘 자꾸 슬라이스가···. 죽겠어.”

    마침 물어볼 얘기도 있었는데 잘되었다. 그날 저녁 박주혁은 이연호 사무관과 약속한 연습장으로 향했다.

    - 딱! 딱!

    딱딱한 골프공을 쳐내는 소리가 여기저기 쉼 없이 들렸다. 박주혁이 이연호 사무관을 찾아 두리번거릴 때 좀 떨어진 타석에서 이연호 사무관이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박 대표!”

    박주혁이 웃으며 다가가자, 기대하지 못했던 사람이 함께 있었다.

    “박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어? 안태희 주사님?”

    통상산업부의 안태희 주사가 이연호 사무관과 함께 연습하고 있었다. 안태희 주사를 소개한 사람이 이연호 사무관이었기에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다. 아니 되레 박주혁은 고마웠다.

    ‘그렇지 않아도 만나고 싶었는데 잘되었군.’

    골프백을 내려놓고 준비운동을 하는데, 안태희 주사가 타석에서 나와 박주혁에게 왔다.

    “오늘 이 사무관 한 수 가르쳐 주기로 했다면서요?”

    “예. 실력이 맞아야 같이 칠맛이 나니 별수 있나요?”

    박주혁이 이연호 사무관 보고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이연호 사무관의 샷이 흔들리며 뒤땅을 쳤다.

    - 퍽!

    “아이씨!”

    성질을 버럭내는 이연호 사무관을 보며 박주혁이 쿡쿡대며 말했다.

    “저리 멘탈이 약해서는···.”

    “골프는 신사 스포츠라더니 다 개뻥이야···!”

    이연호 사무관이 이마에 손을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래 골프는 이런 식을 상대방을 은근슬쩍 자극하여 심리전을 펼치는 것이 진정한 재미다. 박주혁이 쿡쿡 웃는데 옆에 서 있던 안태희 주사의 표정은 세상 진지했다.

    “안 주사님.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저도 한 수 좀 가르쳐 달라고요. 저번에 이 사무관한테 털렸거든요.”

    “예? 그럴리가···. 멘탈은 안 주사님이 한 수 위잖아요?”

    이연호 사무관이 공을 쳐 내고, 피니시 자세를 취하며 뾰루통하게 소리쳤다.

    “박 대표. 다 들리거든?”

    “들리라고 한 말입니다.”

    “아놔. 진짜!”

    누구보다도 이연호 사무관을 놀려먹는 재미가 가장 찰지고 좋았다. 장난인 것을 알기에 서로 뒤끝도 없었고 말이다.

    준비운동을 마친 박주혁은 이연호 사무관과 안태희 주사에게 문제점들을 하나씩 잡아줬다. 악성 슬라이스를 내던 이연호 사무관은 박주혁의 코치로 구질이 조금씩 변하자, 얼굴에 희열감이 피어났다. 마침내 악성 슬라이스가 잡히자, 박주혁이 정색하며 말했다.

    “욕심이 들어갔던 겁니다.”

    “프로님. 저 욕심 없습니다.”

    이연호 사무관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자, 박주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스윙하는 것 보시고 다시 쳐보죠.”

    “박 프로님의 스윙을 볼 수 있다면 영광이죠.”

    이연호 사무관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고, 박주혁이 타석에 올랐다.

    - 깡!

    호쾌한 드라이브 샷이었다.

    박주혁의 공은 처음에는 낮게 깔려 날아가는가 했더니 어느 순간 비행기가 이륙하듯 공중으로 떠올랐다. 정점에 다다르자 눈송이처럼 떨어지는 박주혁의 공이 참 멋들어졌다.

    “구우웃 샷!”

    이연호 사무관과 안태희 주사가 놀랍다는 듯 물개박수를 쳤다. 박주혁은 타석에서 물러나며 이연호 사무관에게 말했다.

    “보셨죠? 이렇게 치는 겁니다. 한 번 해보시죠.”

    박주혁의 말에 이연호 사무관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더니 타석에 올랐다. 어드레스 자세에서부터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이연호 주사의 이번 샷은 높은 확률로 슬라이스거나 최악의 경우 뒤땅을 칠 것이 자명했다. 그리고 역시나···.

    - 퍽!

    “아이씨!”

    “욕심이 없긴, 뭐가 없어요. 방금 제 샷 보고 온몸에 힘이 들어가서 뻣뻣해졌잖아요.”

    “나 욕심 없는데? 내가 어떻게 박 프로처럼 치겠어?”

    “그럼 지금 뒤땅은 뭐죠? 저와 비슷하게 쳐보고 싶다는 생각하셨죠?”

    “허허허.”

    박주혁의 핀잔에 이연호 사무관이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만의 스윙을 하셔야죠. 전 20대. 사무관님은···.”

    “하지 마. 입도 뻥긋하지 마!”

    역시, 이연호 사무관을 골리는 것은 재미있다.

    #

    유쾌한 골프 연습이 끝나고, 셋은 근처 소갈비 집으로 향했다.

    “프로님께 직접 배웠는데, 밥은 저희가 삽니다.”

    “염치 불고하고 잘 먹겠습니다.”

    “여기, 소갈비 3인분 주시고, 소주 맥주 아시죠?”

    이연호 사무관의 주문에 점원이 고개를 숙이며 달려 나갔다.

    식사가 마무리되고 술잔이 돌기 시작하며, 대화는 점점 무거운 쪽으로 흘러갔다. 그 물꼬는 박주혁이 틀었다.

    “요즘 통신 시장은 활황인 것 같던데···. 무슨 좋은 소식 있습니까?”

    “정부에서 정보통신을 차세대 먹거리로 생각하고 열심히 밀어주고는 있지···.”

    “역시 관련한 번역이 상당히 많다, 싶었습니다.”

    박주혁의 말에 이연호 사무관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그래도 곤란한 것들은 있어.”

    “뭔데요?”

    “SJ 녀석들이 직접 휴대폰 사업까지 펼치겠다면 일본 자본을 끌어들일 기세야. 일본에 대한 국민감정이 좋지 않을 걸 알고 있는지 어떻게든 조용히 추진하려는 모양새더라고. 로비도 엄청하는 것 같던데?”

    이연호 사무관의 말에 안태희 주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로비라면 지긋지긋해···. 그러고 보니 요새 통상산업부 앞에 진을 치고 있던 사람들이 있던데 그게 그럼 SJ 텔레콤 사람들인가 보네.”

    “맞아. 그럴 거야. 휴대폰 사업도 사업이지만, 아마 신세계 통신 합병하려고 난리일걸?”

    이연호 사무관의 말에 안태희 주사가 뭔가 짚이는 게 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래서 요즘 공정위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구나?”

    “공정위에서 벌써 움직였어?”

    안태희 주사의 말에 이연호 사무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SJ가 신세계를 꿀꺽하면 통신 시장 54% 이상 장악하는 거잖아요? 통신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건데 당연하죠.”

    안태희 주사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가는지 이연호 사무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주혁은 짐짓 모르는 척하며 안태희 주사에게 물었다.

    “그럼, SJ와 신세계는 합병 안 되는 건가요?”

    “흠. 그건 또 다른 얘기죠.”

    안태희 주사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이연호 사무관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무조건 합병하지. 지금 정부는 외화에 목숨을 걸고 있으니 SJ가 외화를 내놓는다면 아마 허락할 거야. 찬밥 더운밥 가리게 생겼어?”

    “아아···. 그렇군요.”

    “이번 정부도 좀 안됐지···. 전 정부가 싸놓은 똥 치우려면 보통 일이겠어?”

    이연호 사무관의 말에 박주혁과 안태희 주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 사무관님. 아까, SJ가 휴대폰 만든다고 하셨잖습니까? 혹시 자금 문제면 일본 말고 한국 기업에서 투자하면 어떨까요?”

    “으음. 설마? 박 대표 휴대폰 사업에 관심 있었어?”

    “통신 쪽 번역이 많다 보니 자꾸 관심이 가네요···.”

    박주혁은 말끝을 흐리며 이연호 사무관을 쳐다봤다. 골프장에서의 짓궂던 표정은 사라지고 진지한 이연호 사무관이 앞에 앉아있었다. 그가 턱을 쓸며 고민하는 사이, 안태희 주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DD 자동차가 휴대폰 제조에 관심을 둔다는 건 그림이 좋지 않은데?”

    “나도 그게 좀 걸리네. 가뜩이나 기어 자동차 때문에 자동차 업계 구조조정 얘기가 돌고 있는데 DD 자동차가 신사업에 진출한다고 하면···.”

    심각한 표정의 안태희 주사와 이연호 사무관의 말을 자르며 박주혁이 물었다.

    “DD 자동차가 아니라, 파인랭스 명의로 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

    이연호 주무관과 안태희 주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박주혁을 쳐다보며 말했다.

    “파인랭스가···. 휴대폰 사업을?”

    “정확히는 파인랭스와 DD 컨소시엄이라고 하면 되겠네요. 파인랭스가 정면에 서고 DD는 자금 투자만 하는 식이면 되지 않을까요?”

    “오호.”

    이연호 사무관과 안태희 주사가 동시에 감탄사를 뱉어내더니 말했다.

    “뭐, 투자라면 문제없겠지.”

    “하기야, 투자 전문 회사들도 있는 마당에 못 할 건 아니죠.”

    두 사람이 서로의 의견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일 때 박주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전 경영권을 가질 생각입니다.”

    “···!”

    “바, 박 대표. 그건 무리 아닐까? SJ에서 직접 휴대폰을 만들겠다는 복안인데 그걸 어떻게 철회시키려고 그래?”

    정통부답게 사전 지식이 많은 이연호가 난색을 보이자, 박주혁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제, 그걸 사무관님과 주사님이 도와주셔야죠.”

    “우리가?”

    이연호 사무관과 안태희 주사가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눈을 동그랗게 떴고, 박주혁은 눈을 빛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제게 한가지 안이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