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화 천재 프로그래머 영입.
박주혁은 모닝커피를 음미하며, 신문을 펼쳤다.
[벤처 신화! 컴택, 美 모터놀라가 투자한다!]
[年 3만 불 수출계약. 컴택 상한가 행진!]
[컴택에 1,500만 달러를 투자한 모터놀라의 노림수는?]
주식시장이 바닥을 기고 있음에도 모터놀라의 투자 소식에 컴택의 주가는 연속 상한가 행진이었다. 박주혁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수화기를 들었다.
“고 비서. 컴택 주식 모두 처분하세요.”
“모두 말입니까?”
“투자 철회 뜻을 전달했으니 문제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차익을 노린 투자는 아니었지만, 유병엽 회장의 경영전략은 박주혁의 생각과 달랐기에 투자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박주혁은 모터놀라의 투자 사실 전에 지분을 사두었기에 본의 아니게 큰 이익을 얻게 되었다. 300%가 넘는 수익률로 DD 자동차와 파인랭스의 투자금은 300억이상으로 불어났다. 허인아 과장에게도 컴택 지분을 처분하라고 지시한 박주혁이 눈을 번뜩이며 중얼거렸다.
“실탄은 마련됐고···.”
이제 곧 SJ 텔레콤과 일본 교세라가 합작하여 SJ 텔레텍을 설립할 것이다. 그들의 투자 규모는 378억 원 규모였다. 충분히 박주혁이 노릴 수 있는 먹잇감이다.
매수할 타이밍은 2년 뒤 SJ 텔레콤이 신세계 통신을 합병하는 시점이다. 공정위는 두 기업 간 합병을 조건부 승인하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SJ 텔레콤의 시장 점유율을 50% 이내로 낮출 것, 그리고 SJ 텔레콤에 독점납품하는 SJ텔레텍의 생산을 연 120만대로 제한한다는 것이었다.
SJ 그룹은 환호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이동통신에서 SJ 텔레콤의 시장 점유율 50%는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SJ 텔레텍은 연간 120만대만 생산할 수밖에 없는 틀에 갇히게 된다. 성장폭이 제한된 SJ 텔레텍은 절치부심 끝에 내놓은 SKY가 시장에 파란을 일으키지만, 연간 120만대의 그늘에 가려 점차 고사한다.
박주혁이 턱을 괸 채 눈을 번뜩이며 다짐하듯 말했다.
“우선, SJ 텔레텍 출자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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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혁은 연희동에 있는 한정식집에 들어섰고 박주혁을 알아본 점원이 웃으며 박주혁을 한 방으로 안내했다. 방에는 서주경 교수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음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문이 열리고 박주혁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녀는 황급히 시선을 옮겨 박주혁을 맞이했다.
“박 대표님! 어서 오세요.”
“서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홍어는 시키셨어요?”
“시켰죠!”
서주경 교수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고, 곧 별도로 시킨 홍어 한 접시가 상위에 올려졌다. 그녀는 홍어를 보자마자, 침을 삼키며 얼굴을 붉혔다.
“저도 홍어 싫어하진 않지만, 그렇게 맛있습니까?”
“그럼요. 이런 맛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쿰쿰한 냄새가 물씬 났지만, 서주경 교수는 눈을 지그시 감고 향을 음미하며 말했다.
“으으음. 향기 좋아.”
서주경 교수의 표정과 행동에 박주혁은 자신도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아무리 홍어가 좋다지만, 서 교수. 선 넘네.’
서주경 교수는 홍어 한 접시를 거의 다 비우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박주혁을 쳐다봤다. 그녀의 입에서 향기로운? 홍어 향이 났다.
“박 대표님. 모바일 OS 개발한다고 하셨잖아요. 멘사 클럽에 가입된 정말 괜찮은 프로그래머가 있긴 한데···.”
“멘사면, IQ 150 이상만 가입할 수 있다는···?”
“네! 맞아요.”
서주경 교수의 눈빛에 남다른 점이 있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멘사였구나.
“박 대표님도 한번 테스트를 받아보지 그러세요? 충분히···.”
관심 없다.
박주혁은 서주경 교수의 말을 자르며 되물었다.
“정말 괜찮은 프로그래머가 있긴 한데···. 무슨 문제가 있나요?”
“흠···. 혹시 파인랭스 병역특례 업체로 지정되어 있나요?”
“미필자군요.”
박주혁의 말에 서주경 교수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서주경 교수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박주혁이 함께 일하기 좋은 젊은 친구들을 찾다 보니 멘사 클럽에까지 손을 뻗은 것이 확실했다. 박주혁도 서주경 교수의 배려심을 느꼈는지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들어보셨을지 모르겠네요. 윤태현이라는 학생인데···. 안철수 이후 코딩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있어요. 지금은 백신에 꽂혀있다더군요. 안수철 교수의 V3보다 성능이 좋은···. 뭐랬더라?”
서주경 교수가 백신 프로그램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지 잠시 미간을 찡그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X-ray라고 했던가? 아무튼,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V3보다 성능이 좋다고요?”
박주혁이 놀라 눈썹을 치켜올리자, 서주경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보통의 백신은 알려진 바이러스를 분석해서 백신을 만드는데, 윤태현 군의 백신은 바이러스를 아직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를 찾아내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라네요. 프로토 엔진만으로도 백신 검거율이 벌써 85%에 달한다고 해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윤태현 군이 엄청난 실력자라는 사실이었다. 역시 서주경 교수와 친분을 쌓아두길 잘한 것 같다. 이런 얘기를 어디서 들을 수 있었겠나?
“문제는 이 친구가 이제 고등학교를 올라가는 학생이라는 건데···.”
여태까지는 참 좋았는데···. 고등학생이라니!
박주혁이 놀라 눈썹을 꿈틀거렸다. 하지만, 서주경 교수는 태연하게 젓가락을 쪽 빨며 웃었다. 남아 있는 홍어를 집에 쏙 넣는 그녀의 얼굴이 천진난만했다. 얄미울 정도로 말이다.
‘지금 웃음이 나옵니까?’
미필자라길래 대학교 재학생인 줄 알았더니···. 고등학생을 어떻게 회사에 취직시킨단 말인가? 박주혁이 난감한 표정을 짓자 서주경 교수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학교에서 배울 게 없어서 자퇴한다더라고요. 빨리 군대나 다녀와서 개발만 하고 싶다던데요?”
서주경 교수의 말에 박주혁의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병역특례 업체 지정하는 게 뭐, 어렵겠습니까?”
“그건 그렇죠. 문제는 윤태현군이 파인랭스의 개발 프로젝트를 마음에 들어 해야 한다는 것인데···.”
박주혁은 서주경 교수의 말을 자르며 힘차게 말했다.
“만나보면 알겠죠.”
“하긴···. 박 대표님 정도면 사람을 홀리고도 남죠.”
저건 또 무슨 말인가?
박주혁이 서주경 교수의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고, 서주경 교수는 뜻을 모를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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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현은 전라도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아따, 역시 대한민국의 수도 답구마잉. 사람도 겁나게 많아 부러.”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촌티를 내는 윤태현을 서주경 교수가 히쭉거리며 바라봤다.
“아차차. 서울은 시방, 눈 뜨고 거시기해분다고···. 조심혀야 쓰것다.”
많은 사람에 놀랐는지 윤태현이 갑자기 손으로 코를 가렸다. 서주경 교수가 윤태현의 어이없는 행동을 보며 피식 웃으며 윤태현에게 다가갔다.
“태현군?”
“···? 어, 그. 서주경 선생님?”
“응. 맞아. 반가워.”
서주경 교수가 손을 내밀며 웃자, 윤태현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서주경은 윤태현을 픽업해 파인랭스로 향했다. 차안에서 윤태현은 높은 건물들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매번 다른 감탄사를 뱉어냈다.
“오메!”
“시상에.”
“끝이 안 보여 부러.”
“워따메!”
창가에 바짝 붙어 연신 감탄사를 뱉는 윤태현 덕분에 서주경은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신기해?”
“그라지요. 나가 있는 화순에는 이런 빌딩들이 없당께요.”
구수한 사투리에 서주경 교수는 다시 한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쿡쿡거리는 서주경 교수를 빤히 쳐다보던 윤태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선생님.”
“응?”
“거, 거시기하는 회사가 왜 소프트웨어 개발은 하는지 아셔요? 일단은 호기심에 와보긴 했는데···.”
“그러게. 나도 그 사람 속이 궁금하긴 한데···. 도통 알 수가 없네.”
“그려요? 뭐, 만나보면 알것죠.”
아직 앳된 얼굴의 윤태현이었지만, 어른스러운 향이 났다.
윤태현과 서주경 교수가 파인랭스에 도착해 사장실로 들어갔다. 박주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윤태현과 서주경 교수를 맞이하며 말했다.
“오셨군요. 제가 픽업 간다니까요.”
박주혁의 말에 서주경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누군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픽업을 하신다는 거예요.”
“죄송해서 그렇죠.”
“괜찮아요. 오늘 전 교수가 아니라 윤태현 군의 보호자 역할이니까요.”
“알겠습니다.”
박주혁과 서주경 교수가 대화하는 사이 윤태현이 고개를 넙죽 숙이며 외쳤다.
“안녕하십니까아! 윤태현이라고오 합니다아.”
최대한 표준어를 쓴다고 했지만, 특유의 억양을 숨길 수 없었다. 박주혁은 억양에서 느껴지는 구수함에 피식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그리고 잠시 뒤 심영찬 과장이 사장실로 들어왔다.
“조금, 늦었습니다. 개발팀 심영찬 과장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시렵니까! 윤태현이라고오 합니다.”
개발팀이라는 얘기에 윤태현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심영찬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눈치도 빠른 것 같다. 박주혁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윤태현 군은 파인랭스에서 왜 개발자가 필요한지가 제일 궁금하죠?”
“그라지라.”
윤태현의 대답에 박주혁은 웃으며 심영찬에게 눈짓을 했다. 박주혁의 신호에 심영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태껏 개발한 프로그램과 개발 중인 것들을 설명했다. 파인랭스 ERP 시스템과 랭귀지패스트, 사운드바다와 검색엔진에 관한 얘기를 듣던 윤태현이 웃음기 빠진 얼굴로 말했다.
“솔찬히 놀랐당께요. 랭귀지패스트라는 개념도 재미있고, 사운드바다와 검색엔진도 신선합니다.”
관심은 끌었지만, 아직은 윤태현의 마음을 사로잡진 못했다고 여긴 박주혁이 윤태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현재 상황은 그렇고, 앞으로 파인랭스가 개발하고자 하는 것은 좀 다릅니다.”
박주혁의 말에 윤태현이 눈을 빛내며 박주혁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처음 서주경 교수를 만났을 때 느꼈던 번뜩임이 느껴졌다.
“설명에 앞서, 윤태현 군은 휴대폰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뭐, 시방 바이러스에 노출 되것죠.”
예상외의 답변에 박주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백신에 꽂혀있다더니 온통 그 생각뿐인 것 같았다. 뭐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 바이러스도 문제가 되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박주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바이러스, 분명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박주혁은 진지하게 답했고, 윤태현은 여전히 눈을 빛내며 박주혁을 쳐다봤다.
“지금 우린 휴대폰에 쓰일 OS를 개발하고자 합니다.”
“휴대폰에 쓰일 OS···?”
“그렇습니다. 조만간 휴대폰은 전화와 문자만 주고받는 단순한 기계를 넘어 개인용 컴퓨터와 같은 역할을 할 겁니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OS가 필요해질 겁니다.”
“···PC와는 확실히 다르겠죠. 죄까만 것에 이것저것 넣고···.”
윤태현이 뭔가 상상하는지 손을 쳐다보며 꼼지락거렸다. 그가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눈치챈 박주혁이 자신의 휴대폰을 윤태현의 손 위에 올렸다.
“이 정도 싸이즈···. 이거시 PC처럼 된다고 생각하면 시방 손꾸락들이 겁나 바뿌것네.”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는데 윤태현 군은 벌써 생각이 치고 나가는 듯했다. 피처폰인 박주혁의 휴대폰으로는 상상의 나래를 더 펼칠 수 없다고 판단한 박주혁이 요키아의 PDA폰 사진을 내밀며 말했다.
“현재도 PC처럼 사용하는 휴대폰이 있긴 하죠. 이런 모델들입니다.”
“아아. 그라제. 이 정도는 되야 쓸만하것제.”
윤태현은 별다른 질문 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박주혁의 휴대폰과 요키아 PDA 모델 사진을 보며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허벌나게 재밌것네요.”
그의 머릿속엔 벌써 어느 정도 구상이 떠올랐는지 확신에 찬 눈빛이었다. 내친김에 박주혁은 시스템에서 발췌한 미완의 고글 OS 소스 코드를 스크린에 띄우며 말했다.
“이것은 미국에서 개발 중인 모바일 OS의 일부라고 합니다.”
“오, 호오!”
윤태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치듯 말했다.
“이, 이거. 제가 좀 봐도 되겠지라?”
박주혁이 고개를 끄덕일 때 서주경 교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박주혁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윤태현이라는 대어를 잡았다는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