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대표님-73화 (73/136)
  • 073화 직원들의 감사편지.

    박주혁은 고윤희를 쳐다보며 소리쳤다.

    “사상자는 몇 명입니까!”

    자동차 제조업에서 큰일이 났다면 무엇이겠나? 박주혁은 직원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골프 카트에서 불이 나서 배터리들이 연쇄 폭발할 것 같다고 합니다.”

    “뭐!?”

    박주혁은 사장실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샘플 차량을 제작하는 곳은 바로 옆 연구동이었다. 직원들이 소화기를 들고 화재를 진압하고 있었고 소방차와 구급차가 정문으로 막 들이닥쳤다.

    화재 긴급 매뉴얼에 따라 직원들이 잘 대응은 하고 있었지만, 박주혁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차동진 전무!”

    참을수 없었는지 박주혁은 근처에 있던 소화기를 낚아채듯 들고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고윤희 비서가 말릴 틈도 없었다.

    “사장니이임!”

    고윤희 비서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박주혁을 불렀지만, 그는 이미 불길 사이로 뛰어든 뒤였다.

    #

    - 화륵!

    저기 골프 카트 배터리 팩에서부터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번졌다. 처음 화재를 발견한 TF팀 연구원이 차동진 전무에게 보고를 했고 그들은 소화기를 들고 화재 진압에 나셨다.

    - 취이익! 취익!

    소화기를 암만 뿌려대도 불길은 사로잡힐 기미가 없었다. 불은 건물 내벽을 타고 급격히 번졌으며 배터리 보관함까지 태울 기세였다. 화재 최일선에서 차동진 전무와 TF팀원들이 소화기로 배터리 보관함을 사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서둘러! 배터리에 옮겨붙으면 큰일이다! 콜록, 콜록!”

    차동진 전무가 매캐한 연기 속에서 연신 기침을 해대며 소화기를 분사했다. 어떻게든 배터리보관함에 불이 옮겨붙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지만, 인화성 물질이 많은 탓에 불길은 빠르게 번졌다.

    “저, 전무님! 피해야 합니다!”

    “컬럭. 전무님 나가셔야 합니다.”

    “안돼! 이게 폭발하면···!”

    차동진 전무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배터리로 인해 화재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폭발한다면 전기차 개발 전선에 큰 악재가 아닐 수 없었다. 박주혁 사장의 비전에도 큰 먹구름이 질 터. 차동진 전무는 소화기로 불을 끄며 소리쳤다.

    “이대로 가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야. 어서 불을 꺼!”

    “전무님!!”

    TF팀 직원들이 차동진 전무의 팔을 잡아끌었다. 이미 불길을 제압하기에는 늦어 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안돼!”

    직원들에게 질질 끌려가며 차동진 전무가 절규하는데, 누군가 큰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차동진 전무!!”

    - 취이익! 취익!

    소화기를 연신 뿌려가며 다가온 박주혁은 차동진 전무와 TF팀을 발견하고 황급히 달려왔다.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어서 피하세요.”

    “사장님! 죄송합니다.”

    차동진 전무가 눈물을 글썽이자, 박주혁이 버럭 소리쳤다.

    “목숨보다 중요한 게 뭡니까! 지금 당장 저와 함께 나갑시다.”

    박주혁은 차동진 전무와 TF팀을 끌고 불길을 뚫고 건물 밖으로 가까스로 나왔다. 그들이 나온 후 소방대원들이 본격적인 진화 작업이 시작됐다. 다행히 불길은 금방 잡혔고, 우려한 배터리 폭발도 막을 수 있었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화재가 진압된 연구소를 바라보는 차동진 전무의 얼굴은 마치 숯 칠한 듯 거무튀튀했다. 박주혁이 허망해하는 차동진 전무를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차 전무.”

    차동진 전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박주혁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오열하며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조금 더 꼼꼼하게 챙겼어야 했는데 저의 불찰입니다!”

    “차 전무. 일어나세요.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흐윽!”

    차동진 전무가 바닥에 엎드려 눈물지을 때 TF팀원들이 그에게 다가와 일으켜 세웠다. 박주혁은 그들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든 도전하다 보면 실수도 있고, 사고도 일어나는 법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박주혁의 말에 차동진 전무와 TF팀원들이 박주혁을 쳐다봤다. 그들의 눈에 죄책감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박주혁은 그들과 일일이 마주치며 천천히 입술을 뗐다.

    “그건 바로 여러분과 같은 인재입니다. 전기 카트는 다시 설계하고 보완하면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을 잃는다면, 복구가 불가능 한 것입니다. 제발 그대들의 목숨을 귀히 여기십시오. 모두 무사하니 정말 다행입니다.”

    “사장님!!”

    차동진 전무를 비롯한 TF팀원들이 모두 박주혁의 말에 감동하여, 울부짖었다.

    “고 비서!”

    “예, 사장님.”

    “차 전무님을 비롯한 오늘 사고를 겪은 직원들에게 특별 휴가 및 위로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조치하세요.”

    “알겠습니다.”

    박주혁은 그들의 어깨를 일일이 두드리며 다시 한번 말했다.

    “무사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DD 자동차 서울 연구소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고, SB 전지에서도 김현옥 부장을 필두로 현장 조사팀이 파견되었다. 김현옥은 DD 자동차 연구소에 도착하자마자, 박주혁을 찾아가 고개를 조아렸다.

    “박 사장님. 무사하시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천운이었습니다. 저보다는 직원들이 위험했어요.”

    “직원들을 직접 구출하기 위해 불타는 건물로 뛰어드셨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원인은 모르겠지만, 송구하다는 말씀 우선 전합니다.”

    SB 전지의 니켈카드뮴을 이용한 골프 카트였기에 김현옥 부장이 우선은 저자세를 취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자신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할 공산이 컸지만 말이다. 박주혁은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나갈 채비를 했다.

    “어디 가십니까?”

    “병원에 입원한 직원들을 만나봐야죠.”

    “지, 직접 챙기시는 겁니까?”

    “그럼요. 저희 식구들 아니겠습니까?”

    박주혁의 말에 김현옥은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박주혁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고, 김현옥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직할까?’

    #

    DD 자동차와 SB 전지의 합동조사반은 화재의 시작점인 골프 카트를 분석하여 원인을 밝혀냈지만, 누구의 잘못이라고는 공표하지 못했다. 배터리 결함이라고 발표하는 순간 SB전지의 입장이 난처해질 것이며, 리튬이온전지 개발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물론, DD 자동차에서도 골프 카트의 결함이라고 공표할 수 없음은 당연했다. 심지어 DD 자동차와 SB 전지는 자본제휴를 통해 같은 배를 타고 있지 않던가?

    고민 끝에 박주혁은 한현태 기자를 사무실로 불러드렸다.

    “한 기자님. 오랜만입니다.”

    “소식 들었습니다. 괜찮으신 겁니까?”

    한현태 기자는 사장실로 들어오자마자, 박주혁의 안부를 물었다.

    “예, 보시다시피.”

    “위험했네요. 큰 폭발이 있을 뻔했다던데요.”

    기자로서의 직감이 이번 화재는 평범한 화재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한현태 기자의 날카로운 눈매를 보며 박주혁은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참 소식 빠르군요.”

    한현태 기자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직 채 수습도 안되신 것 같은데, 왜 절 보자고 하신 겁니까?”

    “이번 화재에 대한 보도문을 내야겠습니다.”

    박주혁의 말에 한현태 기자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수첩을 열었다. 박주혁은 그가 필사할 수 있도록 잠시 짬을 주고 말했다.

    “DD 자동차 화재는 연구시설의 노후화로 인한 누전으로···.”

    “잠깐만요. 누전이란 말입니까?”

    한현태 기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커다랗게 뜨며 박주혁의 말을 잘랐다. 박주혁은 태연한 표정으로 답했다.

    “SB 전지와 합동 조사 결과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박주혁의 말에 한현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따지듯 말했다.

    “제가 들은 사실과는 좀 다른데요?”

    박주혁은 싱긋 웃어 보이더니 답했다.

    “그런가요?”

    “화재 원인이 누전이 아니라 개발 중인 차량에서 시작됐다고 하던데···.”

    “개발 중인 차량 근처의 누전이었습니다.”

    박주혁이 한현태 기자의 말을 바로 정정했다. 그러자 한현태 기자는 피식 웃어버렸다.

    “그렇게 기사를 내고 싶으시다면 해드려야죠. 인명피해도 없었고요.”

    “제 뜻을 알아주신다니 감사합니다.”

    “박 사장님. 럴커펠트 씨 단독 인터뷰에 대한 빚은 갚은 겁니다?”

    “종종 특종 물어다 드릴 테니 앞으로도 신세 좀 집시다.”

    박주혁의 말에 한현태 기자는 너털웃음을 짓더니 불현듯 정색하며 말했다.

    “화재 원인은 그렇다 치고 박 사장님께서 정말 불길로 직접 들어가셨습니까?”

    “아, 저도 모르게 그만···.”

    박주혁의 말에 한현태 기자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혹시, 박 사장님 자서전 쓰실 생각 없으십니까?”

    “자서전이라···. 전 그런 위인이 아닙니다. 누구나 그런 상황이었다면 저처럼 했을 겁니다.”

    “아닐 텐데요? 모두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지, 소화기 하나 들고 뛰어드는 사람 많지 않습니다. 제 손에 장을 지지겠습니다.”

    “하하하. 비행기 그만 태우시고, 보도문은 잘 좀 부탁합시다.”

    “그건 제가 책임지고 언론에 말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한현태 기자와 면담이 끝나고, 박주혁은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한현태 기자가 말했던 ‘자서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긴 했다. 두 번 사는 덕분에 모든 일이 퍼즐 맞추듯 딱딱 들어맞는 인생사지 않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멋있는 한편의 성공 신화다. 박주혁은 눈을 지그시 감고 피식 웃더니 중얼거렸다.

    “자서전은 무슨···.”

    자조 섞인 말을 중얼거리는데 책상 위의 전화가 울렸다.

    “사장님. 유명한 국장님이십니다.”

    “전화 바꿔주세요.”

    고윤희 비서가 전화를 돌리자, 유명한 국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 사장! 괜찮은 건가?”

    “아, 유 국장님. 괜찮습니다. 괜한 걱정 끼쳐드렸군요.”

    유명한 국장의 안부 전화 뒤로 계속 전화가 걸려왔다. 대부분 박주혁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사장님. 배정산업의 주배정 사장님이십니다.”

    “정통부의 이연호 서기관님이십니다.”

    “ETRI 기철우 소장님이십니다.”

    “덕기봉제공장 조덕기 사장님이십니다.”

    “디자인 센터장 지상억 소장님이십니다.”

    ...

    ..

    .

    온종일 안부 전화가 걸려오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안부전화 중에는 독일 메르헨 부사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스터 박! 아유 오케이?”

    “걱정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정말 큰일 날뻔했군요. 미스터 박을 잃었다면···.”

    메르헨이 말끝에 살짝 울먹이는 듯하자, 박주혁이 당황하여 말했다.

    “메르헨. 무슨 일 있습니까?”

    “···. 무사하니 됐습니다. 현장 실사도 할 겸 한국에 가야겠습니다.”

    “아, 아니 굳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아니요. 가야겠어요. 미스터 박 말대로 직원은 저의 식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제 사람은 제가 챙겨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

    메르헨이 막무가내로 나오자 말릴수 없었다. 하지만, 칼스타가 완성되는 대로 파리로 향해야 했기에 박주혁은 타이르듯 말했다.

    “메르헨, 제가 곧 파리를 갈 예정이라, 혹시 저 때문에 오시는 거라면 조금만 참으세요.”

    “파리? 아! 오뜨 꾸뛰르 쇼?”

    메르헨이 목소리를 높이며 반겼다.

    “그렇다면, 파리에서 만나요.”

    “그게 좋을 것 같네요.”

    #

    다음날.

    한현태 기자의 도움으로 결국 언론에는 누전으로 인한 화재로 발표됐다.

    [DD 자동차 누전으로 연구소에 화재 발생]

    [DD 자동차 재해 매뉴얼에 따라 인명피해는 없었다!]

    [직원을 구하기 위해 불길을 헤치고 달려든 CEO.]

    보도문 제목을 보던 박주혁이 미간을 좁히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한기자 결국은 저 얘기를 썼네···.”

    박주혁은 이마에 손을 짚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 모니터에 이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울렸다.

    - 띠링.

    [박주혁 대표님께 올리는 글.]

    “음?”

    고개를 갸웃하며 박주혁은 이메일을 클릭했다.

    [박주혁 대표님께···.]

    언행일치(言行一致)의 모습으로 우리를 이끄는 DD 자동차의 대표님께 전 임직원을 대신해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구구절절한 말로 시작된 이메일은 박주혁에 대한 감사의 편지였다. 박주혁은 이메일을 꼼꼼히 읽어내려가다 마지막 편지 작성자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DD 자동차 노동조합과 임직원 일동]

    “직원들이···. 감사 편지를 보내다니.”

    뭔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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