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대표님-71화 (71/136)

071화 노조가 있다는 것은 경영 실패다.

흔들리는 임원들의 눈을 마주하며 박주혁은 차분하게 말했다.

“디자인에 있어 연륜과 경험을 왜 언급하시는 겁니까? 감각과 센스 그리고 미래를 그릴 줄 아는 그런 인재가 센터장이 되어야, 다른 회사보다 앞서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비전을 제시한 것도 디자인 센터장을 경질하고 장기억 디자이너를 센터장으로 임명하는 이유도 모두 DD 자동차의 혁신을 위한 포석이었음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주혁의 협박과도 같은 말에 임원들의 입을 꾹 다물었다.

“우리의 목표는 전기차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 초석을 다지기 위해 전기 골프 카트를 개발할 TF팀을 구성하겠습니다. 각 부서의 임원분들은 최고의 인원을 추천하기를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선포와 같은 말과 함께 박주혁이 회의실을 빠져나갔고 차동진 전무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뭣들 합니까? 각 부서에서 최고의 인재들을 모아 전기차의 초석이 될 전기 골프 카트 TF를 구성해야죠.”

“아, 차 전무. 그전에 앞서 DD 자동차의 명운이 걸린 일이야. 정말 전기차가 시장에서 먹힐 것이라 보는가?”

“맞아. 아직 박 사장이 젊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없는 것 같아.”

“DD 자동차는 한국의 지프가 되어야 하는 법이거늘···!”

임원들의 불만 섞인 말에 차동진 전무가 쏘아붙였다.

“그런 꼰대 같은 말 하고 있을 시간에 저 같으면 전기차 개발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겠습니다.”

“뭐? 꼬, 꼰대라니!”

“박 사장님께서 젊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없다고요? 그래서 여태까지 고급차 개발한다고 3조나 쏟아부었던 겁니까?”

차동진 전무가 목소리를 키우자, 임원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들도 3조를 쏟아붓고도 아직 개발되지 못한 승용차는 취약점이었다.

“물쏘와 코린도가 벌어들인 돈을 모두 쏟아붓고 있습니다. 지금이 정상이라 보십니까?”

“크흠!”

“사장님께서는 지금 당장 고급 승용차 개발을 드랍시키겠다고 하셨습니다.”

“뭐, 뭐라고요?”

임원들의 황망한 표정으로 소리쳤지만, 차동진 전무는 흔들림 없이 말했다.

“회사의 구멍인 고급 승용차 대신 당장 수익 창출이 가능한 전기 골프 카트를 만들라고 지시한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과연 정말 미래를 못 보는 것이 누구입니까? 박 사장님이십니까? 아니면 불평만 늘어놓고 있는 여러분입니까!”

차동진 전무의 말에 임원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본 골프 카트가 유명하다던데 수배해서 사 오겠습니다.”

“창원 엔진 공장 쪽에 모터 개발을 위한 인력을 뽑아보겠네.”

“설계팀에서도 베테랑을 추천하겠습니다.”

박주혁과 차동진 전무의 협공에 임원들은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

차동진 전무가 회의실에서 분위기를 잡아갈 때, 박주혁은 사장실에서 지상억과 미팅을 했다.

“지상억 씨. 공모전 우승 축하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제 디자인이 우승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박주혁은 인자하게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불탈리의 디자인 총괄까지 올라갈 실력인데 당연한 겁니다.’

지상억의 디자인을 다시 한번 살펴본 박주혁은 지상억을 쳐다보며 말했다.

“조금 전 임원 회의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계시죠?”

“예. 전해 들었습니다.”

“지상억 씨를 DD 자동차의 디자인 센터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예!?”

지상억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 사장님. 아무리 공모전에서 제가 우승했다지만, 전 아직 인턴입니다. 재고해주십시오.”

지상억의 말에 박주혁은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으며 말했다.

“설마, 지상억씨도 디자인에 연륜과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요?”

“그,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됐습니다. DD 자동차에서 지상억 씨의 디자인을 맘껏 뽐내보세요.”

“헐.”

지상억이 입이 떡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았다.

“직선과 곡선의 조화가 좋습니다. 직선의 우아함이랄까? 지 소장이 생각하는 방향인가요?”

“어어···.”

박주혁이 지 소장이라고 호명하자, 지상억의 동공이 풀렸고 쇼파에 주저앉았다.

“지 소장님?”

“예? 아아. 네 직선을 베이스에 곡선을 살짝 추가하여 강렬함과 유려함을 한데 모아보려 했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이대로 패밀리 룩을 진행하면 될 것 같군요. 혹시, DD 자동차의 칼스타라는 차를 본 적 있으신가요?”

지상억은 박주혁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혹시, 칼스타에서 영감을 받았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칼스타가 DD 자동차의 고유 디자인은 아니었지만, 영국의 정통 디자인을 잘 살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월을 관통하는 세련미가 있다고 생각했죠.”

박주혁은 지상억 소장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웃었다.

“잘 부탁합니다. 지 소장님.”

“저, 정말 감사합니다!”

지상억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사장실을 나간 후, 차동진 전무가 들어왔다.

“사장님.”

“임원들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말씀하신 것처럼 거부반응이 있었지만, 순조롭게 처리되었습니다. 전기 골프 카트 개발을 위한 TF도 곧 꾸려질 겁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아닙니다.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곧 노조에서 들고 일어날 것이 분명합니다.”

차동진 전무의 말에 박주혁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큰 걸림돌은 사측이 아니라 강성 노조였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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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났다.

파인랭스의 랭귀지패스트는 수도권에 있는 번역 회사의 80%에게 소개가 되었고, 실제로 구매로 이어지는 성과도 이뤄냈다. 전화로 보고받던 박주혁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예상보다 구매로 이어지는 비율이 높군요.”

“네, 사장님 시연 때부터 구매하겠다는 회사도 있었지만, 보통 일주일 정도 사용해보면 구매 안 할 수가 없지요.”

“수고 많았습니다. 구매 비율이 95%라니···. 믿을 수 없는 성과군요.”

박주혁이 최지훈 대리와 전화를 끊고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데 책상 위의 전화기가 울렸다.

“네 박주혁 입니다.”

“사장님. 노조 위원장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네!”

고윤희가 명랑하게 전화를 끊고 얼마 뒤 사장실 문이 열리며 작업복을 입은 두 사람이 뚜벅뚜벅 걸어들어왔다.

노조 위원장은 대머리에 살이 뒤룩뒤룩 찐 중년 남자였다. 뱃살 때문에 작업복이 잠기지도 않는 것 같았다.

‘자기 스스로도 관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위원장이라···.’

첫인상부터 험난한 면담 자리가 예상됐다.

“안녕하십니까? 노조 위원장 고채수라고 합니다.”

“부위원장 최태익 입니다.”

“반갑습니다. 박주혁 사장입니다.”

웃으며 그들을 맞이한 박주혁과 달리 고채수와 최태익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박주혁이 자리를 안내하자, 고채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기존 사장님들은 노조와 직접 만나는 것을 상당히 꺼리셨는데,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산직을 대표하시는 데 당연히 만나봐야죠.”

박주혁은 여전히 미소 짓는 얼굴이었지만, 치밀하게 그들의 말투와 행동을 관찰하고 있었다. 미세한 그들의 얼굴 근육까지 말이다. 지리한 탐색전이 끝나고, 노조는 숨겨둔 그들의 요구사항을 꺼냈다.

“물쏘와 코린도의 수출로 회사가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생산직의 기여가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성과지요.”

고채수의 말에 박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준 후 말했다.

“맞습니다. 물쏘와 코린도의 시장 반응이 좋아 분명 회사가 이득이 나야 맞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군요.”

박주혁의 말에 고채수의 두툼한 볼살이 살짝 경련하듯 떨렸고 눈썹이 한차례 꿈틀거렸다.

“사장님. 말장난하기 위해 평택에서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말장난이라뇨. 제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닙니다.”

팽팽한 긴장감에 최태익 부위원장이 마른침을 삼켰다.

“회사의 대표인 제 말을 못 믿으신다니 안타깝군요. 확실한 자료를 보면서 얘기할까요? 고 비서!”

박주혁의 외침에 고윤희가 사장실을 열고 들어왔다.

“네, 사장님.”

“작년 재무제표 가져오세요. 아, 그리고 오실 때 커피 좀 더 부탁하죠. 벌써 다 마셨네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고윤희가 나가고 고채수와 최태익이 불신 섞인 눈초리로 박주혁을 쳐다봤다.

“그나저나, 요즘 현장에서 불량률이 치솟고 있다는 보고가 있던데, 위원장님께서는 하실 말씀 없으신가요? 권리를 말하기에 앞서 의무가 먼저일 텐데요.”

“누가 그런 엉터리 보고를 한단 말입니까!”

“공장장의 보고가 엉터리라는 말이시군요. 공장장을 불러 자초지종을 들어봐야겠습니다.”

흥분한 고채수와는 달리 박주혁의 목소리는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자 최태익이 고태수의 팔을 붙잡으며 뭐라 속삭였다. 아마도 흥분하지 말라는 조언이리라.

그사이 고윤희가 재무제표를 가지고 왔다. 박주혁은 재무제표를 고채수와 최태익이 잘 볼 수 있도록 펼친 후 말했다.

“여길 잘 보십시오. 현재 우리는 3조 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미 기업이 공개되어 있어 알고 계시겠지만, DD 자동차의 부채비율은 매우 높아 유동성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벤타가 인수하지 않았다면, 벌써 타 자동차 회사로 넘어갔겠죠.”

고채수와 최태익도 이 사실은 알고 있었는지 낮게 신음하며 재무제표를 바라봤다. 그리고 인사할 때를 제외하고 말이 없던 최태익이 박주혁에게 물었다.

“분명 물쏘와 코린도가 잘 팔려 이득이 나야 정상인데, 왜 적자가 나는 겁니까?”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박주혁은 최태익을 쳐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고태수가 행동파라면, 최태익은 브레인인가? 어쩌면 최태익을 이해시키는 게 더 빠르겠군.’

“이제 부임한지 겨우 한 달 된 제가 판단하기에는 무리한 투자와 방만한 경영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박주혁의 말에 최태익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방만한 경영은 노조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경영진이 사익을 추구한다는 증거도 몇 찾아놨었죠.”

“그러셨군요. 그런 정보가 있으면 제게 알려주십시오. 이미 많은 임원이 해임됐지만, 필요하다면 추가로 도려내겠습니다.”

시원시원한 박주혁의 말에 최태익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무리한 투자는 무엇 때문입니까?”

“DD 자동차는 주력인 SUV와 상용차 외 고급 승용차 개발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고채수와 최태익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대내외적으로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자인은 80년대 벤츠 디자인을 리터치한 수준이었으며, 벤타의 섀시와 엔진을 이용한··· 한마디로 구형 E클래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벤타의 라이선스를 획득하려고 많은 비용을 지불한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크으으.”

고채수가 이빨을 악물려 신음할 때, 최태익이 말했다.

“사장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알겠으나, 고급 승용차를 출시하여 회수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맞는 말씀입니다만, 고급 승용차 프로젝트는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허.”

고채수와 최태익의 입에서 탄식과도 같은 한숨이 튀어나왔다.

“DD 자동차에 가솔린 엔진 기술이 없음에도 벤타에서 라이선스를 샀습니다. 그리고 아직 엔진조차 만들어 내지 못했죠. 앞으로도 얼마의 개발비가 들어가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물쏘와 코린도에서 벌어드린 돈이 이런 식으로 세고 있어 적자가 나는 것입니다.”

고채수와 최태익이 입술을 잘근 깨물며 박주혁을 쳐다봤고 고채수가 볼살을 덜덜 떨며 소리쳤다.

“이대로라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생산직의 고용을 보장하십시오!”

“···.”

성과급을 올려달라는 속내를 비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용 보장으로 고채수의 입장이 선회하였다. 박주혁으로서는 고마울 지경이었다.

“당연히 회사는 정직원들의 고용을 보장해야 합니다. 고급 승용차를 포기하고 생기는 인력은 전기 골프 카트 개발에 투입할 생각입니다.”

“전기···. 카트요?”

최태익이 눈을 크게 뜨며 박주혁에게 되물었고,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DD 자동차의 비전에 대해 설명했다.

“전기자동차라···.”

최태익이 단어를 되씹는 사이, 고채수가 눈썹을 치켜뜨며 소리쳤다.

“고용을 보장하십시오! 전기차 생산으로 필요 없는 인력을 구조조정을 할 생각인 것 아닙니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고용은 보장합니다. 당분간 물쏘와 코린도 생산도 계속 이어질 테고요.”

“크흠!”

고채수가 민망한지 헛기침을 했다. 반면 최태익은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있는 듯했다. 박주혁이 그의 얼굴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과연 이득인지 아닌지 고민되나 보군요.’

“제가 여러분께 하나 약속하겠습니다. 회사의 모든 사항을 공유하기로 말이죠.”

“예?”

보통 사측은 정보 공개를 극도로 꺼렸다. 같은 회사 직원임에도 알 수 있는 정보의 질과 양에서 생산직은 차별받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로 인한 소외감으로 생산직군은 노조를 설립하게 되고 강대강으로 대치해오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박주혁이 지금 그 고리를 끊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생산직군의 의견도 반영할 수 있도록 소통 채널을 만들겠습니다.”

“허···.”

최태익이 놀라 탄식하자, 고채수가 그를 쳐다보며 눈을 끔벅였다.

“DD 자동차가 모두 합심하여 차를 만들어야 제대로 된 명품 차가 만들어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생산직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박주혁이 맑은 눈으로 고채수와 최태익을 번갈아 쳐다봤고, 그들은 무엇에 홀린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박주혁은 부드럽게 웃으며 속으로 소리쳤다.

‘내가 경영하는 동안 노조는 없을 겁니다. 노조가 있다는 것 자체가 경영의 실패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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