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대표님-30화 (30/136)
  • 030화 문서 반출과 CAT Tool.

    - 두근두근.

    심장이 귀에서 뛰는 것처럼 선명하게 들렸고, 박주혁은 상기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마른침을 삼켰다.

    ‘제발!’

    - 대리 권한이 과장 권한으로 변경됩니다.

    - 과장 고유 권한으로 문서 반출 기능이 추가됩니다.

    ‘문서 반출?’

    박주혁은 새로운 기능에 고개를 갸웃하며 팝업창을 닫았다. 추가된 기능이 무엇인지 몰라 고민하던 박주혁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문서 반출···. 혹시?”

    박주혁 열려있는 문서를 끄고 다시 목록으로 되돌아갔다. 혹시 달라진 점이 있는지 이를 잡듯이 살펴봤다.

    요키아 / 한설텔레콤 CDMA 무선설비 제안요청서 

    요키아 / 극성텔레콤 CDMA 무선설비 제안요청서 

    요키아 / 크트프리텔 CDMA 무선설비 제안서 

    ...

    ..

    .

    그리고 박주혁은 여태 보지 못하던 편지 봉투 모양 아이콘이 각 항목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 설마 이건?’

    박주혁은 망설이지 않고 편지 모양 아이콘을 클릭했다. 그러자 박주혁이 그토록 원하던 안내 문구가 나타났다.

    - 띵!

    - 문서 반출을 하시려면 이메일을 입력해주십시오.

    박주혁은 안내 문구에 따라 자신의 이메일을 입력했다. 그러자 곧 안내 문구가 바뀌었다.

    - 반출 완료.

    그와 동시에 박주혁의 컴퓨터에서 알림 소리가 났다.

    - 띠딩.

    긴장된 표정으로 이메일을 확인하자, 익숙한 제목의 이메일이 수신되었다.

    [요키아 / 한설텔레콤 CDMA 무선설비 제안요청서]

    “대박.”

    박주혁은 입가에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이메일을 클릭하자, 눈앞에만 펼쳐지던 파일이 이메일로 첨부되어 있었다. 박주혁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문서 전송기능이 추가된 것이다. 타이핑으로 밤새울 각오였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될 줄이야. 박주혁은 CDMA 제안서 목록을 차례차례 반출하고서는 웃는 얼굴로 ANT가 보낸 문서를 꺼내 봤다.

    [한설텔레콤 CDMA 무선설비 제안요청서]

    [극성텔레콤 CDMA 무선설비 제안요청서]

    그럴 것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동일한 문서를 손에 쥐니 기분이 묘했다. 원래대로라면 시간 텀을 두고 의뢰되어야 맞는 것이었겠지만, 요키아에서 제안요청서를 먼저 수령한 것을 눈치챈 ANT에서 통신사에 난리를 친 것이 분명했다. 박주혁은 상기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ANT가 우리와 거래를 텄으니 시스템이 성장 가능성이 커진 것이군.”

    과거에는 거래를 트지 못했던 ANT와의 물꼬를 박주혁이 틀었다. 그리고 잠시 뒤 또다시 퀵 서비스가 도착했다.

    “박주혁 님! 퀵 서비스입니다.”

    박주혁은 슬쩍 사장실 밖으로 눈길을 돌리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설마. 알파텔이냐?”

    - 벌컥.

    흥분한 얼굴로 조광연이 사장실로 뛰어 들어왔다.

    “사장님! 알파텔입니다.”

    박주혁은 조광연이 건네는 대봉투에서 문서를 꺼냈다.

    [한국통신 CDMA 무선설비 제안요청서]

    박주혁은 눈을 빛내며 조광연에게 손바닥을 내밀어 하이파이브를 했다.

    - 쫙!

    “샘플 번역이 아니라 그냥 수주군요. 그것도 가장 영양가 있는 한국통신! 아무래도 염 과장이 저희와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진짜입니까? 하하하. 처음부터 그럴 것이지. 괜히 사장님한테 찍혀서.”

    조광연이 염세훈을 떠올리며 짐짓 불쌍하다는 듯한 혀를 찼다. 박주혁은 그런 조광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파텔과 거래를 텄다는 것이 중요하죠. 이제 우리가 늘 하던 데로 품질은 좋게 납기는 빠르게 가져가면 되는 겁니다. 평소처럼 말이죠.”

    박주혁의 말에 조광연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조광연이 기쁨을 숨기지 않고 사장실 뛰어나가 크게 외쳤다.

    “구 과장님. ANT와 알파텔 모두 수주했습니다!”

    조광연이 구경숙을 부르며 환호하는 소리에 박주혁은 고개를 갸웃했고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왜 구경숙에게 먼저 말하는 것이지? 수상해.’

    구경숙은 조광연이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끔벅이며 고개를 들었다.

    “진짜예요?”

    “네! ANT와 알파텔 모두 수주했습니다!”

    “분명 좋은 일이긴 한데···. OECD도 있는데 어떡하죠. 팀장님?”

    구경숙은 박영희를 바라보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물었고 박영희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답했다.

    “우선 사장님께서 소프트카피를 만들라고 했으니, 지시대로 합시다. 그리고 프리랜서들을 확보한 상태니 너무 염려 마시고요.”

    “그렇긴 하지만, 팀장님. 번역이 문제가 아니라 감수가···.”

    구경숙은 현재 사실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박영희의 얼굴이 잠시 굳었지만, 이내 굳은 결심이 선 듯 눈을 빛내며 말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어요.”

    “네···.”

    구경숙은 박영희와 감수팀을 돌아보며 걱정스럽다는 듯 힘없이 대답하더니, 말했다.

    “팀장님. 우린 번역연구팀이잖아요. 같이 하면 할 수 있을 겁니다.”

    구경숙의 말에 다른 팀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박영희를 초롱초롱하게 바라봤다.

    “맞아요. 팀장님. 우린 한팀이잖아요! 우리도 감수 볼 수 있어요.”

    “팀장님! 프리랜서가 번역해 온 것을 이미 우리가 감수 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 같이 하면 할 수 있어요.”

    “우리 모두 함께 해봐요!”

    몇 주 전까지만 해도 팀이 와해할 것만 같았는데, 지금은 어느새 이렇게 결속력이 다져져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의기투합하니 박영희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가슴에 뜨거운 것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박영희는 애써 참으며 힘주어 말했다.

    “그래요. 우리 모두 힘내봐요.”

    “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조광연이 자신도 뭔가 뜨거운 기운을 받았는지 우렁차게 말했다.

    “저도 열심히 영어 공부하겠습니다!”

    구경숙을 비롯한 번역연구팀은 조광연의 난데없는 말에 황당해하며 그를 쳐다봤다. 조광연은 결연한 모습으로 번역연구팀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 모습에 번역연구팀 여기저기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풉.”

    “하하하.”

    구경숙도 조광연의 모습을 보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벌게졌다. 조광연은 민망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자신의 부서로 돌아가 버렸다.

    사무실의 분위기를 지켜보던 박주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 같이 의기투합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어찌 싫을 수 있겠나?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했다. 직원들에게 칼퇴근을 약속했건만, 밀려드는 일에는 방법이 없다. 박주혁은 야근해야 하는 직원들을 어떤 식으로도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수화기를 들었다.

    “번호가 뭐였더라. 아! 1234-3082.”

    수화기 너머로 상냥한 목소리의 여직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도레미 피자입니다.”

    “30분 넘으면 무료죠?”

    “예? 30분 넘으면 2,000원 할인이시고요. 45분 넘으면 무료세요.”

    박주혁은 민망한 듯 웃으며 말했다.

    “콤비네이션 피자 라지 사이즈로 10판 가져다주세요.”

    #

    피자는 정확히 28분 뒤 사무실로 도착했다.

    키보드 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가 가득한 사무실에 낯선 배달부의 목소리로 쩌렁쩌렁 울렸다.

    “도레미 피자입니다!”

    “저희 안 시켰는데요?”

    출입구 쪽에 있는 조광연이 당황하여 대답했고 배달부는 눈을 크게 뜨며 황급히 영수증을 꺼내 확인했다.

    “박주혁님이 시키셨는데요? 여기 직원 아니신가요?”

    조광연이 사장실로 고개를 돌리려는데 어느새 박주혁이 다가와 피자값을 계산했다.

    “조 과장. 먹고 일합시다.”

    “알겠습니다!”

    직원들이 피자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박주혁 자신도 피자 몇 조각을 먹으며 직원들과 어울렸고 다 먹어갈 때쯤 직원들에게 물었다.

    “스터디 그룹은 잘되고 있습니까?”

    박주혁의 질문에 조광연이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진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구 선생님의 강의가 정말 좋습니다!”

    “오호! 구 선생님?”

    짐짓 알고 있었지만, 박주혁은 눈을 살짝 크게 뜨며 구경숙을 불렀다.

    구경숙은 구멍이 있다면 어디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불타오르는 데 반해 조광연은 헤벌쭉 웃으며 구경숙보다 더 뿌듯해하는 것 같았다.

    ‘역시. 수상해.’

    박주혁은 잠시 조광연과 구경숙을 번갈아 보고는 말했다.

    “모두 열심히 해서 이번 달에 결과를 가져와 보세요. 지난번에 약속한 대로 성적에 따라 월급 인상은 물론 최고 고득점자에게는 황금 돼지 1냥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오!”

    박주혁은 직원들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보이며 화이팅을 외친 후 심영찬을 사장실로 불러드렸다.

    “부르셨어요?”

    “영찬씨 잠깐, 앉아봐요.”

    박주혁은 화이트보드에 자신이 알고 있던 CAT Tool(컴퓨터 번역지원 도구)의 기능을 그려나갔다. 심영찬은 박주혁이 그려나가는 개념도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사, 사장님. 어떻게 그런 생각을!”

    “음. 어때요? 이런 걸 개발 할 수 있을까요?”

    “사장님. 이 세상에 개발하지 못하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돈과 시간이 들 뿐이죠.”

    “할 수 있다는 얘기군요.”

    박주혁은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아 박영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팀장. 바쁜 것 알지만, 잠깐 들어와 보세요. 아, 그리고 제안요청서 혹시 소프트카피 완료된 것 있나요?”

    “잠시만요.”

    박영희가 수화기를 손으로 가리고 팀원들에게 물어보는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했다.

    잠시 뒤 박영희가 박주혁에게 보고했다.

    “아직 완성은 아닌데요. 80% 정도 완료된 파일이 있다고 합니다.”

    “좋아요. 그럼 그 파일 제 이메일로 보내시고 들어오세요.”

    박영희가 보내온 파일과 그에 대응하는 번역본을 화면에 띄우자, 박영희가 사장실로 들어왔다. 박주혁은 그들에게 가까이 오라며 손짓했다. 박영희는 화이트보드를 힐끔 바라보며 박주혁에게 다가왔다.

    “자. 이게 원본이고 이건 이 문서에 대응하는 참고자료입니다.”

    참고자료라고는 했지만, 박영희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이건? 버···번역본이 어떻게?”

    박영희가 놀라 입을 벌릴 때 박주혁이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정통부에서 소스를 좀 줬습니다. 완전한 번역본은 아니고 참고자료죠.”

    박영희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소프트카피부터 만들라고 하셨던 거군요? 참고자료를 활용할 수 있으니.”

    “그렇습니다.”

    박영희는 천만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OECD만으로도 벅찼는데 그나마 다행이네요.”

    박영희의 고충을 알기에 박주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영찬씨와는 얘기를 했습니다. 저기 화이트보드에 그려진 시스템을 개발할까 하는데···.”

    박영희는 화이트보드를 다시 살피더니 놀라 물었다.

    “설마, DB화해서 자동으로 번역하실 생각이십니까?”

    박주혁과 심영찬은 단번에 상황을 이해한 박영희가 신기했는지 서로를 마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기발한 생각이시긴 한데 심 선수 혼자는 못 합니다. 파인랭스 시스템도 개발해야 하니까요.”

    박영희의 말에 박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주변에 선수 있으면 추가로 채용해서 개발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박주혁의 말에 심영찬과 박영희가 놀라 되물었다.

    “바, 바로 추진하시게요?”

    “그럼요. 이게 개발된다면 번역에 드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그렇긴 하겠지만···.”

    심영찬이 고심에 찬 표정으로 말끝을 흐릴 때 박영희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DB화시키는 기능까지 추가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금 당장 필요한 문서 비교 그러니까 문장 단위로 분석하여 번역본을 매칭시키는 정도는 가능하잖아?”

    박영희의 말에 박주혁이 눈을 크게 뜨며 심영찬을 쳐다봤다.

    “음. 문장 단위로 분석해서 번역본을 대입한다? 조금 손보면 확실히 될 수도···.”

    두 개발자가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박주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좋아. 임기응변이긴 하지만, 트레이도스 흉내는 낼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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