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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50화 (에필로그) (150/150)
  • 150화 에필로그

    신조는 오히려 더 강해졌고, 퀸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그녀가 검신이라는 격을 쌓고 올라왔다고 해도 몇 개의 세계에 달하는 혈해를 베어낸 것만 보아도 얼마나 고절한 경지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었다.

    다시 차원의 벽을 뚫고 돌아오니 세계를 뒤덮었던 핏물은 다 빠져나간 상태였다. 의지도 없고, 연옥의 힘도 크게 줄었다.

    혼돈이 일어났을 때 그것마저 베어냈기에 제대로 된 힘을 내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인간이 느끼기에는 아득한 시간이.

    연옥과 연관된 다른 세계들이 어찌 되었는지는 궁금했지만, 넘어갈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세계 전부에 허리 높이까지 핏물이 차올랐다가 빠진 핏물 덕분에 지금은 진창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살아남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카이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정되었던 천체의 시간이 다시 흐르고 있었다. 다시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고,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낀 카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다행이라면 자신도 퀸도 이곳에 머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세계가 신격을 감당하지 못하면 어쩌나 했던 걱정이 무색했다.

    그게 세계의 구성 요소 중인 시엘의 신성력이 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나의 구성 요소가 사라지면 그 자리를 대신할 수도 있을 테니까.

    카이가 퀸과 함께 돌아오자 생존자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카이는 고개를 돌려 그들을 살폈다. 많은 이들이 죽었다.

    7성급에서도 살아남은 이가 절반이 안 되었다. 그나마 8성급에서 죽은 이가 없다는 것은 다행이라 할만했다.

    “제자야! 어떻게 된 거냐!”

    다행이라면 피투성이가 되었다고 해도 멀쩡히 살아있는 덴다르트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끝났어요.”

    연옥의 주인이었던 피스토도 죽었고, 연옥의 온전한 의지도 베어냈다.

    의지를 잃은 연옥이 혼돈에 휩싸였을 때 그냥 빠져나왔다면 아마도 연옥은 연결된 모든 세계를 집어삼키려고 발악했을 터였다.

    그러나 그 혼돈마저 잘라내고 돌아왔기에 연옥은 끝났다.

    카이가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 끝났습니다.”

    카이의 선언이 떨어지자 그곳에 모인 이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종말의 예언을 듣고, 아니면 카이에게 끌려와서 강제로 싸웠던 그들은 그제야 모든 것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덴다르트가 와락 카이를 끌어안았을 때 그의 등을 두드려준 카이가 입을 열었다.

    “잠깐 문 좀 닫을게요.”

    카이의 어깨 위에 올라 앉아있던 신조가 날개를 펄럭이자 일곱 빛깔의 광채가 뿜어져 나와 열려있던 차원의 틈을 메웠다.

    그렇게 문을 닫은 카이가 모인 이들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뱀과 피스토에 이어 연옥까지.

    그 셋이 움직여 벌인 일로 제국은 무너졌다.

    황도에 있는 모든 이들을 공간 이동으로 날려 보냈지만, 그것을 노린 피스토에게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다행이라면 황제가 황태자를 미리 다른 곳으로 보내 그가 죽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황도에 있던 귀족 대부분이 죽었고, 황도에 머물던 중앙군을 비롯해 근위기사 대부분이 죽었다.

    검성 맥클렌은 황태자를 향해 돌아갔고, 테오르는 클란드라의 공국으로 떠났다.

    검성 맥클렌이 버티고 있으니 제국이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는 쉬운 일이 아닐 거라 모두가 여겼다.

    그리고 신성 교국도 과거의 영광은 잊어야만 했다.

    더는 세계에 신성력을 지닌 이가 없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나벨 성녀의 죽음에 카이가 직접 추모의 말을 남겼다는 점이다.

    이번 종말을 막은 것이 9성에 이른 신조의 대마도사 카이였다는 것이 모두 전해졌다. 세계의 모든 곳에 핏물이 차오르던 것을 기억하는 이들은 카이가 세계의 구원자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의 추모는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어떤 왕국도 감히 신성 교국을 탐내지 못했다.

    그만큼 카이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전후처리만으로 세계의 모든 왕국이 들썩이는 동안 카이는 신지에서 늑대를 만났다. 신지로 돌아왔음에도 늑대는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뱀의 독을 뒤집어쓴 것은 큰 위험이었으니까.

    카이가 늑대에게 다가가서 살펴보았지만, 자신은 회복에 관련된 능력은 없었다. 그건 신조도 마찬가지.

    <어쩔 수 없지. 뱀을 죽인 대가로 여기면 된다. 신지의 우두머리는 다른 이가 맡아도 될 일이고.>

    그때 카이의 옆으로 퀸이 불쑥 나타났다. 카이가 돌아보니 퀸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여기 있을 것 같아서.”

    퀸은 그리 말하고는 늑대에게 다가와 검을 휘둘렀다. 늑대가 반항할 틈도 없었다. 늑대의 녹아내린 상처를 베어내는 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던 검격에 카이가 놀라서 기겁할 정도였다.

    “퀸.”

    “괜찮아. 아빠.”

    과연 그 말대로 독에 녹아내리던 곳을 퀸이 베어낸 뒤로는 그 독이 퍼지지도 않았고, 몸이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 독이 회복되려는 늑대의 육신을 갉아먹던 것을 멈춘 덕이었다.

    신지의 힘 덕분인지 늑대가 빠르게 회복됐다.

    늑대는 카이와 퀸을 돌아보다가 고개를 천천히 내저었다.

    <이런 도움까지 받을 줄은 몰랐군.>

    “그러게. 그건 나도 몰랐네.”

    카이의 말에 늑대는 그 둘을 돌아보며 물었다.

    <신지는 자네의 도움을 잊지 않을 걸세.>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세계가 위험해서 나섰고, 연옥이 세계를 집어삼키려고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카이는 멀뚱히 늑대를 바라보다 물었다.

    “그런데 내 아이는 대족장 안 해도 되지?”

    늑대는 그런 카이의 물음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대족장의 핏줄은 정해진 것이었다면 몸을 회복하는 대로 다른 핏줄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뱀의 자리가 빈 만큼 여유가 생겼으니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군.>

    “그럼 칼리도 이제 대족장 내려놓는다?”

    <그래. 그리해라. 고작 그 정도로는 다 갚지 못할 빚이니.>

    늑대는 그리 말하고는 천천히 앞발에 자신의 머리를 묻었다. 카이는 그런 늑대를 바라보다가 퀸과 함께 공간 이동으로 떠났다.

    9성에 오른 뒤로 퀸도 공간 이동을 태연하게 해댔다. 굳이 검을 뽑아 공간을 가를 필요도 없이 마음의 검을 세우는 것만으로 어디든 이동할 수 있었다.

    카이가 도착한 곳은 칼리의 천막이었다. 칼리는 카이가 오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뭐가요? 어디 문제 생겼어요?”

    “신지와의 연결이 끊어졌어요.”

    카이는 그 말에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그건 제가 늑대와 얘기했어요. 대족장은 다른 쪽으로 넘기기로.”

    “예?”

    “대족장의 혈통을 다른 쪽으로 넘기기로 해서 더는 그일 안해도 된다고요. 우리 애도 대족장 물려받을 필요 없고요.”

    칼리는 그 말에 멍하니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지금까지 신지와 연결된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살았다. 단명한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욕심을 부려 카이를 안았고, 아이를 가진 것이 다행이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신지와의 연결이 끊겼다고 하니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이 부정당한 것 같으면서도 묘한 안도감이 왔다.

    자신의 인생은 상관없었지만, 뱃속의 아이까지 단명하는 삶을 원하지는 않았으니까.

    그것이 지금까지 대족장을 이어온 그녀의 삶에 대한 부정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그게 모두 카이의 덕분이라는 것은 알았다.

    “고마워요.”

    카이는 그런 칼리를 꼭 안아주고는 등을 토닥여줬다. 전후처리가 아직 많이 남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칼리를 안으니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리는 그런 카이를 안은 채 조용히 속삭였다.

    “무사히 돌아와 줘서 고마워요.”

    “다 끝났어요. 이제는 내가 계속 곁에 있을게요.”

    카이와 칼리가 마주 보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핏빛 바다가 세계 모두를 뒤덮었던 것은 모두가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날을 사람들은 혈해의 날이라고 불렀고, 그날 죽은 수많은 이의 죽음을 기렸다.

    제국은 새로운 황제가 올라섰지만, 국력은 크게 줄어든 상황이었다. 오히려 클란드라의 공국에 테오르가 머물렀기에 공국의 성장세가 가팔랐다.

    이대로 간다면 오히려 클란드라 공국이 제국을 앞지를 수도 있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렇게 세계는 아픔을 딛고 일어나는 중이었다.

    그런 중에 카이의 영지 위로 비공정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페코와 계약했어도 8성에는 오르지 못한 메르샤였지만, 부릴 수 있는 비공정의 수도 속도도 압도적으로 늘어났다.

    그런 그녀가 한날한시에 영지의 상공에 띄운 비공정에서 사람들이 속속 내리기 시작했다.

    클란드라 황녀와 테오르가 비공정에서 내렸고, 다른 비공정에서는 클로이트 황태자와 검성 맥클렌이 내렸다. 또 하나의 비공정에서는 아론 라이드 교황도 내렸다.

    또 하나의 비공정에는 카메룬과 덴다르트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개인 비공정에서 내린 메르샤까지 익숙한 얼굴들이 비공정에서 내렸다.

    그런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퀸이었다.

    “왔어?”

    제국의 황제도, 공국의 여왕도, 교국의 교황을 맞이하면서도 퀸의 태도는 여상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카이와 함께 세계를 구한 9성급 검신인 그녀의 태도는 제국의 황제조차 눈 아래로 보아도 될 정도였으니까.

    퀸이 사람들을 안내한 곳에는 카이가 남자 아기 한 명을 품에 안고 어르고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의 아기는 똘망똘망한 눈을 빛내며 카이의 품에 안긴 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칼리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잠깐 아기를 맡은 카이는 한참 애를 먹는 중이었다.

    카이는 아이를 어르다가 들어오는 이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애 생일에 굳이 찾아오실 필요 없는데.”

    덴다르트가 그 말에 얼른 다가와 아이를 받아서 품에 안았다.

    “꺄!”

    카이는 그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지금 한 시간째 얼러도 울음을 그치지 않던 아이가 덴다르트에게는 이렇게 반갑게 웃음을 터트리는 것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어째 저보다 스승님을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당연하지.”

    덴다르트는 방랑 마법사단을 그냥 둘 수 없다고 단장직을 맡았다. 영지에 머무는 시간보다 방랑 마법사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시간이 많아져 자주오지 못한 덴다르트는 그사이 수염이 많이 자랐다.

    그런 덴다르트의 수염을 잡아당기며 꺄꺄 거리는 아기였다.

    “데일이 잘 생긴 건 아는 거지.”

    카이는 잠시 덴다르트를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수염을 길러야 하나?”

    카이의 중얼거림에 뒤에서 나타난 칼리가 그의 허리를 살며시 끌어안으며 말했다.

    “수염 기르면 안 안아 줄 거예요.”

    카이는 그 말에 조용히 칼리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려주고는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 모습에 클란드라 여왕이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 그들의 모습을 기껍게 바라보고 있었다.

    포탈을 넘어온 신령족의 대표 위훌루와 마야도 그 모습을 보고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비록 신지의 대족장에서 내려왔지만, 칼리는 여전히 그들이 모시는 이였다. 새로운 대족장이 될 뻔했던 데일은 그들의 사랑도 듬뿍 받고 있었으니까.

    칼리의 품에서 생긋 웃으며 덴다르트의 수염을 향해 손을 데일의 앞으로 커다란 케이크가 준비되었다. 초 하나 달랑 올라간 케이크.

    카이가 사람들 앞에 나서며 말했다.

    “모두 데일의 첫 번째 생일을 축하하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카이와 퀸이 9성에 이른 대마도사와 검신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의 아들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든 일정을 뒤로 미루고 참석했다.

    대륙의 7성급 이상의 강자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카이가 초에 불을 붙이고는 데일을 돌아보았다.

    “데일. 이제 불 끄자.”

    데일은 칼리의 품에 안긴 채 케이크 앞으로 데려가자 그 촛불을 빤히 바라보다가 손뼉을 쳤다.

    푸화하하학!

    그 순간 치솟는 불길에 모인 이들 모두 놀라 뒤로 물러났다.

    “꺄하하하!”

    데일이 웃으며 치는 박수에 점점 더 불길이 무섭게 치솟아 올랐다. 그 모습을 보며 덴다르트가 카이를 돌아보며 물었다.

    “뭐냐? 저거 태초의 불꽃 아니냐?”

    “그, 그러게요?”

    고작 한 살.

    태초의 불꽃을 누구의 가르침도 받지 않은 채 피워올린 아기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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