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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49화 (149/150)
  • 149화 둘이서

    연옥이 카이의 세계를 먹으려고 한 이상 그 둘은 양립할 수 없는 사이였다.

    피스토가 연옥의 주인인양 굴었지만, 그 태도를 보고 깨달았다. 연옥의 의지를 대변하는 껍데기일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연옥을 자극했다. 연옥이 부서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과연 그 자극이 통했는지 피스토의 껍데기 안으로 연옥의 의지가 들어왔다.

    오직 말살의 의지를 품은 채 자신을 마주한 자.

    “그래. 세계를 처먹는 너를 제대로 마주하고 싶었다.”

    확실히 카이가 살던 세계와는 격이 달랐다. 세계에도 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카이가 작정하고 격을 일으켰음에도 연옥의 의지가 일어나는 데까지 한참이 걸렸다.

    그런 만큼 지금 카이도 온전히 자신의 격을 개방한 상태였다.

    지금까지 신이란 세계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는 달랐다.

    자신도 오롯이 모든 격을 개방했고, 세계를 적대하고 있었으니까.

    마주한 것만으로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언제는 만만한 이들만 상대해왔던가?

    신조를 머리 위에 띄운 채 카이도 양손에 칠채마력을 띄웠다. 다행이라면 칠채마력 자체는 카이의 고유한 속성이었고, 그 힘은 차원의 벽을 넘어서도 쓸 수 있다는 점이었다.

    카이는 양손으로 끌어모은 칠채마력을 쏟아내기보다는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사방으로 세웠다.

    콰콰쾅!

    연옥의 살의가 칠채마력의 가시에 닿으며 폭발이 일어났고, 그 충돌의 여파로 혈해가 뒤로 밀려났다. 카이도 그 충격의 여파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이건 단순한 전초전일 뿐이었다.

    카이가 자신을 찍어누르려는 연옥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려고 했던 것.

    연옥이 그간 몇 개나 되는 세계를 집어먹었던 것인지 그 위력은 확실히 남달랐다. 그러나 카이는 연옥의 힘을 파악하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실제로 카이가 노리는 것은 연옥의 의지가 온전히 피스토의 육신에 들어가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고슴도치처럼 칠채마력을 펼쳐서 공간을 확보했던 것.

    그 칠채마력이 닿는 공간까지가 카이가 지배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카이는 자신의 공간에 맞닿아 있는 피스토의 앞으로 공간 이동했다.

    카이가 공간 이동으로 코앞에 다가오자 기회를 놓치지 않을 생각인지 손을 뻗어 목을 틀어쥐었다.

    말도 하지 못하고 눈을 붉게 물들인 채 오직 죽인다는 의지만 내뿜는 존재에게 목을 틀어 쥐였음에도 카이는 오히려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말도 못하지?”

    말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다. 이미 손에 들어온 카이의 맥을 느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흉소를 마주한 채 카이가 손을 들어 그의 팔목을 잡았다.

    카이의 힘이 세계의 의지를 담은 피스토의 손목을 풀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카이는 그저 손목에 손을 올린 채로 칠채마력을 끌어올렸다. 카이의 칠채마력이 단숨에 피스토의 손목부터 시작해서 그의 어깨를 타고 올라 몸을 둘렀다.

    <크륵?>

    카이는 피스토의 몸에 칠채마력으로 마법진을 그렸다. 그의 육체의 굴곡을 따라 만들어진 강력한 마법진.

    카이의 칠채마력 대부분이 들어갈 정도로 강력한 마법진이었다. 임시로 상대의 육체에 그려 넣은 마법진을 생각한 것은 피스토의 육체에서 연옥의 의지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든 거다.

    피스토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 육체를 차지한 것은 카이를 완전히 죽이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는데 그 안에 갇힌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카이의 목을 틀어쥔 쥐금 그대로 죽이면 될 일이었으니까.

    그때 신조가 그대로 피스토의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다.

    콰앙!

    카이는 그걸로 승부가 날 거라 믿었다. 연옥의 의지를 피스토의 육신에 가둔 채 신조로 끝장을 내면 될 거라고.

    그런데 차원의 벽도 뚫었던 신조의 돌진이 피스토의 가슴을 뚫을 수 없었다. 뒤로 튕겨 혈해 속으로 밀려난 피스토는 오히려 신조의 날개를 양손으로 쥐고 있었다.

    신조가 뚫지 못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카이도 신조가 붙잡힐 줄은 몰랐다. 게다가 신조를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줄도 몰랐다.

    카이가 세계가 허락했던 것을 넘어 오롯이 자신의 격을 개방하고 힘을 키웠지만, 몇 개의 세계를 잡아먹은 연옥의 의지를 대변하는 저 육체는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강도와 힘을 지니고 있었다.

    카이의 예상을 뛰어넘은 일.

    저 육신에 의지를 봉하는데 들어간 칠채마력은 카이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쉬운 일이 없지.”

    일식의 순간에 천체의 시간이 멈춘 채 균열이 일어나 쏟아진 핏빛 비는 세계 전체를 집어삼킬 듯 범람해 왔지만, 그보다 더 커다란 구멍을 뚫고 차원의 벽을 넘은 카이 덕분에 핏빛 수면이 더 높아지지는 않고 유지되는 중이었다.

    피스토가 사라지니 온갖 괴물들이 규칙도 없이 몸을 일으켜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아무리 8성의 강자들이라고 해도 그 힘이 무한하지는 않아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체를 상대하면서 점점 지치고 있었다.

    차원의 벽을 뚫고 넘어간 카이가 뭔가 해주기를 바라며 어떻게든 버티고 있던 이들은 그들의 뒤에서 일어나는 하늘까지 닿을 듯한 검기에 전투 중이라는 것도 잊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퀸을.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을.

    그리고 그녀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운 검기를.

    하늘을 뚫을 듯 솟구친 검기 앞에 모두가 숨을 죽일 때 퀸은 눈도 뜨지 않은 채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검이 그려낸 궤적이 황도를 휩쓸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훑어가는 검기에 몸이 굳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에게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깨달았다. 대신 뒤를 돌아보니 혈해에서 일어났던 모든 시체가 반으로 잘려있었다.

    퀸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주위에 서 있던 위훌루를 바라보았다.

    “아빠는?”

    “피스토를 쫓아 연옥으로 넘어갔다.”

    퀸은 그 말에 연옥으로 향하는 구멍을 바라보았다. 카이가 뚫어서 그곳으로 쏟아지는 핏물을 바라보던 퀸이 주저하지 않고 검을 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검을 내리긋더니 다시 한번 차원의 벽을 가르고는 뛰어들었다.

    퀸은 벌어진 틈을 통해 연옥으로 들어가서는 앞에 보이는 광경을 두 눈에 담았다.

    그녀가 보석을 온전히 흡수하면서 이룬 격으로 뛰어든 곳에서 믿기 힘든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칠채마력으로 몸을 휘감은 피스토의 손에 신조가 붙들려 있었다. 신조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는 퀸이 가장 잘 알았다. 그걸 손으로 쥘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던 것.

    퀸은 그걸 믿을 수 없었기에 떨어져 내리며 검을 휘둘렀다.

    혈해의 핏물이 반으로 잘리고 그대로 돌진한 퀸의 검이 신조를 쥐고 있는 피스토의 손가락을 잘랐다.

    검으로 격을 쌓은 퀸은 보석을 섭취하면서 온전한 격을 얻었다고 여겼는데도 이렇게 저항력을 느낄 줄은 몰랐다. 그만큼이나 피스토의 육신이 단단하다는 얘기.

    하지만 손가락은 모조리 잘라낼 수 있었다. 손가락이 잘리며 신조를 놓친 피스토가 퀸을 마주 바라보았다.

    피처럼 붉은 눈으로 퀸을 바라보며 손을 뻗고 있었다. 카이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피스토의 손목을 쳐내고 그대로 검을 따라 긋다가 그대로 그 마음에 들지 않는 눈을 베었다.

    <끄아악!>

    말조차 뱉어내지 못하지만, 고통의 비명은 내질렀다.

    “퀸!”

    “내가 처리할게!”

    퀸의 검이 그대로 피스토의 가슴을 베었다.

    쩌저적!

    피스토의 가슴이 쩍 갈라졌지만, 퀸의 인상도 굳어졌다. 퀸의 손에 들린 헬리움으로 만든 검에 균열이 갔다. 헬리움으로 만든 검으로도 퀸의 검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했다.

    피스토는 쩍 벌어진 가슴의 상처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곧장 퀸을 향해 다가왔다. 단숨에 간격이 좁혀질 때 카이가 퀸의 뒤로 공간 이동으로 다가와서는 그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냥은 안 돼.”

    “그래 보이네.”

    카이도 자신의 온전한 격이라면 가능할 줄 알았는데 안 되는 건 안 되는가 보다. 자신의 신조만으로 놈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지금 필요한 것은 시기적절하게 나타난 퀸이었다.

    오로지 검으로 쌓아온 격에 보석을 온전히 손에 넣고 나니 신격을 이뤄 검신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존재가 되어 나타난 퀸 덕분에 싸울 힘을 얻었다.

    혼자는 힘들어도 둘이면 가능하다.

    “네가 베어라.”

    신조가 날아와 퀸의 손에 들린 검을 감쌌다. 검의 형태로 그 손에 신조가 들렸다.

    칠채마력으로 만들어진 신조.

    그걸 손에 쥐고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검의 형태로 된 신조를 가장 강력하게 다룰 수 있는 것은 오직 퀸뿐이다.

    퀸이 신조로 된 검을 쥐고는 마주 다가오는 피스토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촤악!

    피스토의 팔이 잘렸다. 게다가 피스토의 벌어진 가슴을 향해 퀸이 신조를 꽂아 넣었다.

    검의 형태로 변했던 신조가 피스토의 가슴을 통해 안으로 파고들었다. 피스토의 육신 안에 깃들어 있는 존재를 향해 파고든 신조가 그 안에 갇혀 있던 연옥의 의지를 짓이겨 불태워버렸다.

    신조의 힘만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나 퀸의 검격은 그 악의조차 흠집을 냈고, 완벽하지 못한 악의는 신조를 견디지 못했다.

    피스토의 육신 전체에 균열이 나며 그 몸 안쪽에서 일곱 가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찌나 고통스러운지 발버둥 치는 피스토를 바라보던 퀸은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헬리움은 이미 박살이 난 상황.

    퀸은 고통스러워하는 피스토를 바라보며 빈손을 들어 올렸다. 그녀가 휘두른 손의 궤적에 걸린 피스토의 수급이 날아올랐다.

    그 모습에 카이가 감탄했다. 지금 날린 검격에 담긴 힘은 신조에도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한 세계의 의지가 고스란히 갇힌 채 죽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카이도 모르고 있었지만, 적어도 연옥이 자신들의 세계를 탐하지 못할 거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연옥이 지금까지 몇 개의 세계를 집어삼킬 수 있었던 것은 그걸 진두지휘할 수 있는 머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그 머리 역할을 하던 피스토가 죽었으니까.

    연옥을 이루고 있는 혈해가 이리저리 휘몰려 뒤섞이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형태를 이루지 못하고 혼돈으로 뒤섞인 세계를 보며 카이가 손을 내밀었다.

    피스토의 육신 안에서 그 의지를 태우고 집어삼켰던 신조는 전보다 더 거대해져서 카이에게로 돌아왔다.

    카이는 그런 신조를 퀸에게 건네며 말했다.

    “딸. 이 혼돈 베지 않으면 맞닿아 있는 세계들이 위험해 보여.”

    퀸은 카이의 말에 그 신조의 다리를 잡았다. 신조가 검의 형태로 변하자 퀸은 카이를 돌아보았다.

    태연하게 세계를 베라고 하는 아빠를 보며 퀸은 미소를 지었다.

    “아빠가 원한다면.”

    퀸은 그 믿음이 즐거웠다. 퀸은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검을 내리그었다.

    일곱 가지 빛을 뿜어내는 궤적이 혼돈으로 가득한 연옥을 가로 질렀다.

    무질서하게 움직이던 혼돈의 혈해가 그 검격에 질서를 되찾고 반으로 잘려나갔다.

    반으로 갈라진 혈해 앞에서 퀸이 뒤돌아섰다. 퀸은 카이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 잘했어?”

    “응. 역시 내 딸이다.”

    아무리 의지가 없다고 해도 몇 개의 세계를 집어삼켰던 연옥의 혼돈을 단 일 검으로 정리하고도 환하게 웃고 있는 딸을 보니 새삼 잘 키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싱 후 대마법사-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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