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148화 (148/150)
  • 148화 연옥

    퀸을 지키면서 싸워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제는 전력을 다하기로 했다. 신조까지 가세한다면 어떻게든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물론 피스토 하나 죽인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연옥이라는 것 또한 해결해야 할 문제처럼 보였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마음은 없었다.

    끝낸다면 오래 끌 필요는 없다.

    카이가 양손을 천천히 벌리자 그의 손안에서 휘도는 칠채마력이 둥글게 뭉치기 시작했다. 머리 위에서 신조가 떠올라 날개를 활짝 펼쳤다.

    카이의 앞을 막아선 신조의 뒤에서 카이가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카이가 펼치는 마법은 보기에는 단순해 보였다.

    칠채마력으로 만든 창을 연달아 날렸으니까. 다만 그 수가 수를 헤아리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많다는 정도가 특이한 점이었다. 비처럼 날아드는 수많은 창을 보고 피스토가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피스토의 앞으로 핏빛 거울이 모습을 드러냈다.

    쾅! 콰쾅!

    핏빛 거울은 마법을 튕겨낼 수 있는 피스토의 기술이었다. 그런데 칠채마력으로 만든 창은 어째서인지 튕겨내지 못했고, 그렇게 꽂힌 마법의 창이 결국 거울을 부쉈다.

    피스토는 가볍게 혀를 차고는 채찍을 휘둘러 날아들던 창을 쳐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피스토가 만든 채찍이 조금씩 부서지고 있다는 것을.

    보기에는 그저 핏빛 채찍일지 모르나 이것은 연옥의 힘을 결집해서 만들었기에 그 견고함은 연옥이라는 세계의 견고함에 맞먹는다.

    그런 채찍이 고작 칠채마력의 창에 맞을 때마다 조금씩 부서지고 있었다. 계속해서 날아오는 저 창 하나하나가 세계를 갉아먹을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다는 얘기.

    믿을 수 없었다.

    이 정도 위력이라면 이 공격은 성 하나를 파괴할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는 얘기였다. 이렇게 비가 오듯 쏟아지는 공격이.

    혼자서 왕국이 아니라 세계를 부술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짜증이 나는 것은 그만한 공격이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대로 계속 공격이 들어온다면 자신이 휘두르는 채찍이 계속 망가지며 힘을 낭비할 뿐이다.

    자신이 혈해에서 꺼내는 시체와 뱀은 연옥이 멀쩡한 이상 무한히 꺼내들 수 있다. 그것은 상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지쳐 나가떨어지게 할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자신이 먼저 나가떨어질 판이다.

    피스토는 그걸 깨닫고는 정면으로 승부를 내기를 포기했다.

    피스토가 핏물 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그리고는 주위에 수많은 뱀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를 쳐들고 하늘로 솟구치는 뱀을 보고 카이는 가볍게 혀를 찼다. 이렇게 시간을 끌까 봐 피스토의 본체를 노린 것이었는데 놈도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카이는 귀찮다는 듯 양손을 합쳤다.

    카이를 중심으로 칠채마력이 다시 한번 파도처럼 휩쓸고 나갔다. 파도에 휘말린 뱀이 쓰러지는 찰나. 칠채마력의 파도가 지나가기 무섭게 핏빛 채찍이 날아들었다.

    마법의 틈을 찌른 공격이었지만, 카이를 향해 날아들던 채찍은 그에게 닿지 못했다. 지척인 것 같았지만, 둘 사이의 거리가 한없이 길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채찍은 카이에게 닿지 못했다.

    그사이 카이는 옆으로 이동해서 채찍을 피했고, 신조가 그사이 하늘로 솟구쳤다.

    신조가 하늘로 올라서자 태양의 그림자가 깨지면서 그 사이로 쏟아진 핏물 때문에 핏빛으로 변했던 하늘이 일곱 빛깔로 변했다.

    신조의 날개가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카이는 신조의 눈으로 세계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정말로 혈해가 세계를 뒤덮고 있었다.

    연옥의 다른 이름 혈해. 그 혈해가 세계를 뒤덮고 있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피스토.

    이 자가 지금 연옥을 이용해 세계를 집어삼키려고 하고 있었다.

    시엘에게 복수하려던 자는 시엘이 사랑하던 이 세계마저 연옥에게 제물로 바치려 하고 있었다.

    연옥이 무리해서까지 태양의 그림자를 깨고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 세계마저 집어삼키려고 한다는 뜻이었다.

    이대로 두면 세계의 모든 인간이 연옥에게 잡아 먹힌다. 그러니 그 전에 피스토를 처리하고 연옥도 밀어내야 했다.

    “결국, 연옥으로 들어가야 하나?”

    피스토는 정면 승부가 위험하다고 여겼는지 혈해의 반대편. 연옥으로 몸을 숨긴 채 시체들만 일으켜서 힘을 깎아내려 하는 꼴을 보니 시간을 끌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 놈을 쫓아가서 상대해야 할 판이다.

    카이의 뜻을 이해한 신조가 그대로 내리꽂혔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떨어져 내렸다.

    쩌저적!

    태양의 그림자를 깨고 혈해가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이제는 반대로 세계를 뒤덮은 혈해의 벽을 깨고 그 너머로 카이가 신조와 함께 건너갔다.

    카이가 신조와 함께 차원의 벽을 깨고 연옥으로 넘어가니 그곳에서 숨조차 마음대로 쉴 수 없었다. 그러나 곧 주변의 공간이 밀려나며 숨을 쉬는 것이 수월해졌다.

    카이는 그제야 주위를 돌아보았다.

    마치 물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온통 사방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카이의 시공 지배력이 뻗어 나가자 점점 핏물이 밀려났다.

    카이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신조가 깨부수고 들어온 차원의 벽 덕분에 세계를 넘보던 핏물이 이곳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만큼이나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놓으면 연옥도 세계를 집어삼키기 힘들다.

    그걸 알기에 카이는 구멍을 뚫어 놓고 기다렸다. 이곳에 숨어 있으면 될 줄 알았나 본데 연옥으로 들어오니 오히려 놈이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과연 카이의 지배력이 닿지 않는 곳에 피스토가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이곳까지 쫓아올 줄은 몰랐는데?>

    “네가 깔아놓은 판에서 놀아줄 생각은 없었거든.”

    카이의 대꾸에 피스토가 키득거렸다.

    <이쪽 판에서 놀아주시겠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죠.>

    피스토는 카이가 이곳으로 넘어온 덕에 연옥이 세계를 집어삼키기 힘들어졌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곳은 자신의 세계다.

    여기서라면 자신은 신과 같은 힘을 낼 수 있다.

    <그럼 그만 죽어주시죠.>

    피스토가 손을 뻗자 주변의 핏물이 옥죄어 온다. 카이는 자신의 지배력을 짓누르는 압력에 미간을 찌푸렸다.

    연옥은 피스토의 세계였고, 온 세계가 적대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깨달았다.

    카이는 그런 압박감 속에서 무심히 피스토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피스토가 제대로 보인다.

    피스토는 시엘에게 배신당해 어떤 꼴을 당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격을 잃었다. 그리고 그 격은 연옥을 지배하면서 다시 쌓은 것.

    아니, 저것은 피스토가 격을 쌓았다기보다 연옥이라는 세계가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세계를 지배했다고 해도 이만큼이나 세계의 힘을 제 마음대로 다룰 수는 없다. 세계에게 허락받았던 카이도 세계의 힘을 이만큼이나 다룰 수 없었으니까.

    “이곳이 네 세계니 너에게 유리한 것 같지?”

    <그야 당연하죠. 지금 당신이 꼼짝도 못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가 내 세계가 아니라서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거든.”

    카이는 신조를 손에 올리고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원래 세계에서는 카이도 힘을 끝까지 끌어낼 수 없었다. 세계가 허락한 힘까지만 낼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어떤가?

    굳이 세계의 허락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 세계가 무너져도 카이가 손해 볼 것은 없었으니까.

    카이의 손 위에서 신조가 찬란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카이가 품은 칠채마력이 더해지면서 신조가 천천히 날개를 펄럭였다.

    카이의 손 위에 올라올 정도로 작았지만, 그 날갯짓 한 번에 짓누르던 핏물이 갈라지고 있었다.

    피스토가 그 모습에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뭐하는 짓이죠?>

    “보면 알잖아. 내 한계가 어딘지 시험해 보는 중이다.”

    그제야 카이가 무슨 짓을 하는지 깨달은 피스토가 비명을 내질렀다.

    <연옥이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이러는 겁니까!>

    “알게 뭐야?”

    카이는 간단히 답하고는 계속해서 자신과 신조의 힘을 끌어올렸다. 카이의 칠채마력이 신조에게 들어가며 힘을 키웠고, 신조는 그 힘을 카이에게 전해주며 무한히 힘을 키우고 있었다.

    벌써 세계가 진감하는 것을 느끼고 피스토가 채찍을 휘둘렀다.

    쫘아악!

    피스토의 채찍질에 카이가 지배하던 공간이 쩍하고 찢어졌지만, 카이에게는 닿지 않았다. 신조와 함께 힘을 끌어올리며 그 힘이 주변으로 투사하는 중이라 연옥의 힘을 집중한 채찍질도 그 힘에 튕겨 나갔다.

    피스토는 포기하지 않고 거칠게 채찍질을 시작했다. 멈췄다가는 연옥이 깨져나갈 수도 있을 판이라 어쩔 수 없었다.

    카이는 세계의 허락을 넘어선 힘을 끌어내는 중이었다. 연옥이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균열이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연옥에 연결된 것은 그쪽 세계만이 아니란 말입니다!>

    카이는 그 말에 잠깐 관심을 보였지만, 지금 다른 세계까지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종말이 코앞까지 다가온 데다가 연옥이 세계를 잠식하고 있는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인가?

    내 세계가 사라질 판인데?

    카이는 한없이 힘을 끌어올리고 자신의 격도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세계가 허락한 것이 아닌 오롯이 자신이 이룩한 격. 지금까지는 세계가 허락한 선에서만 움직였지만, 이곳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곳에서 제대로 적을 말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을, 격을 끝없이 끌어올려야 했다.

    피스토는 자신이 채찍을 아무리 휘둘러도 닿지 않는 것을 보고는 천천히 채찍을 내렸다. 피스토는 카이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자신도, 시엘도 세계가 허락한 신이었다.

    당시에는 여럿이 세계의 허락하에 존재할 수 있었지만, 세계의 힘이 쇠락하면서 머물 수 있는 이들이 줄었다.

    정령왕들이 정령계로 떠나고, 태초의 짐승들은 신지로 떠났다. 자신은 연옥에 처박혔고, 시엘도 천상 궁전에 머물며 신성력만 투사할 뿐 세계에 머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새로운 구성 요소를 만들어내고 떡 하니 신격을 차지한 것이 저 카이라는 자였다.

    세계가 신격을 지닌 자를 허락한 것이 아니다. 저자는 새로운 구성 요소를 만들어내면서 몰락해 가던 세계에 신격을 지닌 자가 머물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저자가 이룩한 업적 덕분이었다.

    그런 자가 온전히 자신의 격을 드러내는 것을 바라보던 피스토는 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시엘에 대한 복수는 이뤄진 상황.

    자신의 뒤를 이은 후배 신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다만 이제 그를 상대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다.

    자신은 연옥의 의지를 표현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말 그대로 껍질만 남아 이 세계의 의사를 대표했던 것뿐. 그러나 연옥이 위기에 몰린 지금 자신의 의식은 가라앉고 대신 연옥의 선명한 의지가 떠올랐다.

    핏빛으로 물든 눈.

    지금 그 안에 깃든 것은 오직 이 세계, 연옥의 의지.

    자신의 허락도 구하지 않은 눈앞의 존재를 말살하기 위해 수면 아래에서 올라온 연옥의 순수한 의지였다.

    천천히 손을 내밀자 그 의지를 따라 연옥의 힘이 움직인다.

    카이는 자신을 옥죄는 기운이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것을

    느끼고 시선을 들어 눈앞에 있는 피스토를 보았다.

    피스토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에 깃들어 있는 것은 피스토가 아님을 알았다.

    온 세계가 자신을 적대하는 느낌. 게다가 연옥은 어째서인지 자신이 살던 세계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말조차 못하는 오직 말살의 의지만 지닌 피스토를 보며 카이는 양팔을 벌렸다.

    그의 양손 위에 올려져 있던 신조가 몸을 키우기 시작했다. 자신을 옥죄는 세계의 힘을 밀어내며 활짝 날개를 펼친 신조를 머리 위에 띄운 카이가 앞에 선 존재를 바라보았다.

    “기다리고 있었다.”

    돌싱 후 대마법사-둘이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