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146화 (146/150)

146화 계획대로

머리를 치켜들면 그 높이만 백 미터에 달하는 만큼 거대한 몸집을 가진 우로보로스의 움직임은 스쳐만 지나가도 사람들을 짓이기고 부순다.

게다가 몸을 털 때마다 떨어져 내리는 비늘은 뱀 인간으로 변해서 공격을 가하니 기사단도 쉴 틈이 없었다.

일식이 벌어진 이후로 계속되는 싸움에 기사단은 지쳤고, 조금 전 독무가 깔린 그 잠깐 사이에 말들은 죽어 나갔다.

덕분에 기사들도 바닥에 내려서서 싸우고 있었다.

카이와 늑대가 태초의 바람을 이용해서 독무를 밀어내고 있지 않았다면 싸우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터.

다행이라면 손이 닿지 않던 저 하늘에서 끌어내렸다는 점이었지만, 바닥이 이리저리 깨지고 부서져 싸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늑대의 움직임은 달랐다. 뱀의 육중한 동체가 움직이는 속도보다 빠르게 치달리는 늑대와 그 위에서 검을 휘두르는 퀸.

그 둘의 조합은 오히려 뱀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맥클렌과 위훌루도 돕고 있지만, 그들은 우로보로스의 비늘에 흠집만 내는 수준. 이제 8성 육체 강화자의 검에도 쉬이 베이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졌다.

다행이라면 그 비늘로 만든 뱀 인간의 수가 점점 줄어든다는 점이었지만, 그 정도만 해도 7성급 강자들도 애를 먹을 정도였다.

그러나 늑대와 함께 치달리며 검을 휘두르는 퀸은 달랐다. 그녀의 검은 마치 푸딩을 자르듯 우로보로스의 비늘을 가르고 들어갔다. 게다가 그녀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는 어째서인지 비늘만이 아니라 그 안의 근육까지 잘라내고 있었다.

늑대가 오히려 감탄할 정도.

<대단하군. 그렇지 않아도 깨물기는 이제 한 번밖에 쓰지 못한다. 그러니 네가 길을 열어다오.>

“얼마든지.”

퀸은 틈이 날 때마다 우로보로스의 몸통을 긋고 있었고, 뱀도 비늘을 이용한 뱀 인간을 함부로 뿌리지 못하고 그녀에게 보냈다. 물밀 듯이 밀려오는 뱀 인간들을 향해 퀸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나만 믿어.”

퀸이 숨을 고르더니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검에서 불어오는 검풍은 달려오는 뱀 인간들마저 간단히 도륙했다. 그렇게 열어준 공간을 따라 달리던 퀸의 모습에 늑대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카이를 제외하고 이만한 경지에 이르는 이가 또 있을 줄은 몰랐다. 위훌루 조차 제대로 도움이 안 되는 중에 무인지경으로 달리게 해주는 퀸 덕분에 뱀의 머리를 향해 달릴 수 있었다.

그때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린 우로보로스가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늑대가 물어뜯어 망가트렸던 세 번째 눈. 그 눈이 다시 떠지니 그 자리에는 핏빛 달이 뜨고 있었다.

늑대의 표정이 싹 굳어질 때 퀸이 말했다.

“계획대로 해. 뱀의 숨통은 네가 끊어. 저건 내가 맡을게.”

<뭐? 저건 아무리 너라고 해도 무리다.>

퀸이 그 말에 씨익 웃고는 답했다.

“아까 달이 떴을 때 봤는데 괜찮더라고.”

그리 말한 퀸이 검을 검집에 넣고는 가만히 집중했다. 그제야 늑대는 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카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격을 쌓아 올린 그녀는 검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 검처럼 변했다. 그 섬뜩한 검기에는 우루보로스의 세 번째 눈. 월안의 기운마저 잘라내고 있었다.

늑대는 퀸에게 월안은 맡기고 자신은 뱀의 숨통을 끊기로 했다. 깨물기를 이용하면 그 크기와 상관없이 그 존재를 깨물어 뜯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한 번의 기회밖에 없으니 퀸을 믿기로 했다.

퀸은 거리가 가까워지자 눈을 감은 채로 늑대의 등을 박찼다. 그런 퀸을 향해 수를 뱀의 목에 있는 비늘들이 칼날처럼 날아들었다.

쏘아낸 속도나 단단함의 강도를 생각했을 때 저 비늘이 날아오는 곳에서는 늑대도 무사하기 힘들다고 여겼다.

태초의 바람을 이용해서 막아야 하나 고민했을 때 퀸이 달렸다. 눈을 뜨지도 않은 채 날아오는 비늘을 피하고 박차고 움직이는 모습은 늑대의 눈에도 경이로울 정도였다.

검을 든 인간이 검으로 만든 격을 밟고 섰을 때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가?

마법사로서 9성에 올라 대마도사가 된 카이도 자신만큼이나 격이 쌓였지만, 검으로 격을 쌓아올린 퀸 또한 솔직히 신격을 지닌 것 같았다.

검신.

그 말이 절로 튀어나올 정도였을 때 앞으로 나아가던 퀸이 검을 뽑았다.

늑대는 자신의 등에 오를 때만 해도 퀸이 저 정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또 한 번 성장해서 우로보로스의 월안을 향해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검이 그려내는 궤적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가?

그 궤적에 들어간 모든 것이 잘려나간다. 비늘로 공격하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꼈는지 다급하게 쌓아 올린 비늘로 월안은 숨기려고 했지만, 그 위로 지나간 궤적은 그 뒤의 세상까지 모두 베었다.

그 검격이 어느 정도였냐면 그 궤적에 잠깐 하늘이 보일 정도였다.

천체의 시간은 고정되어 있었는데 고정되어 있던 시간마저 베어낼 정도의 검격.

퀸에게도 무리였는지 그녀는 실끊어진 연처럼 떨어졌고, 늑대는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퀸의 몸이 얼마나 단단한지 알았기에 지금은 퀸을 받아주기 보다 늑대를 끝내야 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상대가 얼마나 크든 깨물기에 걸리면 끝을 볼 수 있었으니까.

떨어지는 퀸을 카이가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퀸이 힘겹게 미소 지은 채 카이를 올려다 봤다.

“아빠. 나 잘했어?”

“응. 잘했어.”

솔직히 퀸이 이 정도까지 해줄 줄은 몰랐다. 9성에 살짝 발을 걸치고 있던 그녀는 지금 싸우는 중에 오히려 온전히 올라서고 있었다.

그녀의 검에 서린 격은 카이도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만한 격을 이룬다는 것은 세계가 허락해야 한다고 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만큼 힘을 투사하고 나니 지쳐 버렸다는 점. 그래도 그녀 덕분에 늑대가 뱀과 치고받을 전장이 만들어졌다.

카이가 퀸을 품에 안은 채 고개를 들어 위를 살필 때 그녀가 속삭였다.

“아빠. 나 그거 줘 봐.”

“그거?”

“보석.”

카이는 그 말에 떠오른 것이 있어 헬리움을 태초의 불꽃으로 녹였던 보석을 꺼내줬다. 퀸은 그걸 꿀꺽 삼키더니 바닥에 앉아 눈을 감았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카이가 그 앞을 막아섰다.

예전에는 소화하지 못했던 것을 달라고 하고 삼킨 것을 보면 그녀가 더 성장했음을 알았다. 헬리움만으로는 그 부족함을 채울 수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

카이는 퀸이 성장할 기회를 놓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녀는 이미 생각 이상으로 잘해줬으니까.

저 높은 곳에서 뱀이 입을 쩍 벌리며 독을 내뿜었고, 그런 뱀을 향해 늑대의 입이 쩍 벌어졌다.

으적.

뱀이 쏘아낸 맹독 브레스는 마주하는 것을 모두 녹일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다. 뿌리던 독무와는 그 수준이 다른 끔찍할 정도의 위력.

그런데 늑대는 그걸 피하지 않았다. 맹독 브레스를 그대로 뒤집어쓰면서 깨물기를 펼쳤다.

늑대의 입 크기로는 가당치도 않은 뱀의 머리가 마치 사과를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사라졌다. 뱀의 맹독 브레스가 뱀 최강의 기술이라면 늑대의 깨물기 또한 비슷한 수준의 기술.

그것이 무엇이든 그 크기가 얼마만 하든 상관하지 않고 깨물어 삼킬 수 있는 기술.

처음 공격은 태초의 어둠으로 만든 그림자를 삼키는 데 썼고, 두 번째는 뱀의 세 번째 눈 월안을 삼키는 데 썼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으로 뱀의 머리를 집어삼켰다.

맹독 브레스를 삼킬 수도 있었음에도 끝을 보기 위해 뱀의 머리를 삼킨 것.

대신에 맹독 브레스를 고스란히 뒤집어쓴 늑대의 털과 가죽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뼈가 보일 정도로 치명적인 독.

늑대가 추락하듯 떨어지는 것을 카이가 마력의 사슬을 던져서 받아냈다. 마력의 사슬로 떨어지는 충격을 상쇄한 카이가 떨어진 늑대의 곁으로 다가갔다.

맹독은 뱀이 가진 능력. 그 능력으로 쌓아 올린 것이니만큼 그 위력은 퀸이 날린 검격 만큼이나 강력했기에 늑대도 고스란히 뒤집어쓴 것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걸고 한 도박에 가까웠다.

늑대는 카이 앞에서 풀썩 쓰러져서는 힘겹게 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보고 카이가 다가갔지만,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천천히 처리해도 됐잖아.”

<끝은 내가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카이는 뼈가 보이는 늑대의 옆구리와 머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회복할 수 있겠어?”

<모르겠구나.>

늑대도 확신할 수 없을 만큼의 치명상. 그래도 늑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가죽이 녹아내려 이가 드러나는 상황에서도 늑대는 자신이 할 일을 다했다는 듯 안도하고 있었다.

카이는 그런 늑대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옆에서 아나벨이 다가와 신성 회복 마법을 사용했지만, 회복은 되지 않았다.

<괜히 힘 뺄 필요 없다. 시엘이 직접 힘을 쓴 것이 아니라면 그 정도로 회복될 상처가 아니니.>

늑대는 그리 말하고는 카이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해결할 걸세. 오늘 살아남기만 한다면.>

그 말에 카이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었다. 머리가 사라진 뱀의 몸이 천천히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쿠웅!

100미터에 달하는 굵직한 뱀이 떨어지면서 바닥이 부서지고 흙먼지가 솟구쳤다.

카이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일식이 벌어진 순간 시간을 멈추고 해를 가린 그림자에 균열이 일어난 그대로였다.

“피스토. 이제 나오지?”

카이는 굳이 소리치지 않았지만, 피스토는 분명히 그 목소리를 들었을 터였다. 카이가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중에 뱀의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육체가 녹아내리면서 핏물이 되니 삽시간에 바닥에서 핏물이 차오른다. 아까 전보다 빠르게 솟아오르는 핏물은 단번에 발목을 넘어 무릎까지 올랐다.

점점 차오르는 핏물을 보며 카이가 미간을 찌푸릴 때 하늘에 떠 있던 태양의 그림자에서 난 균열이 점점 커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피스토.

활짝 펼쳐진 날개를 펄럭이는 피스토는 진한 미소를 지은 채 내려오고 있었다.

그의 등장부터 시간이 느릿하게 흐른다.

홀로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내려오는 피스토가 바닥에 내려서는 동안 모두가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게 내려선 피스토가 바닥에 손을 뻗자 그의 파편이 날아가 흡수되었다.

피스토가 씨익 웃고는 손을 뻗자 늑대에게서도 파편이 뽑혀 날아갔다. 카이가 붙들려고 했지만, 단번에 피스토의 손에 들어갔다.

피스토는 그렇게 완전해졌다.

일곱 가지 파편을 온전히 회수한 피스토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카이를 바라보았다. 환한 미소를 지은 피스토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카이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피스토를 쏘아보았다.

“너. 황도 사람들 어떻게 했어?”

<아, 선물은 잘 받았습니다. 덕분에 이만한 힘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카이가 이를 뿌득 가는 모습에도 피스토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게다가 뱀을 죽여주신 덕분에 일이 더 수월해졌군요.>

“뭐가 수월해졌다는 거야?”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그와는 계약으로 엮여 있었습니다. 뱀이 죽으면 그 영혼은 제 것이 되는 것이었죠. 대신 저는 영육을 이용해 힘을 키우는 법을 전해주었고요.>

“그래서?”

<이제 뱀은 제 것입니다.>

피스토가 느긋하게 손을 들자 허리까지 차올랐던 핏물 위로 솟구치는 것이 있었다. 크기는 현저히 줄었지만, 그것은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피스토가 뱀의 머리 위에서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모든 것은 저의 계획대로 됐습니다!>

돌싱 후 대마법사-죽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