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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45화 (145/150)
  • 145화 추락

    지금까지는 힘을 아끼고 늑대에게 뱀을 맡기려고 했다. 신지의 보옥을 모두 되찾아서 온 늑대는 충분히 강했으니까.

    그런데 지금 뱀은 스스로 강해지고 있었다. 황궁에서의 전장에 떨어지는 뱀의 비늘도 만들어진 뱀 인간들도 그 수준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중에 눈에 띄는 것은 이제 뱀 인간들이 태초의 어둠을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까다롭고도 강해지기 시작하자 아무리 성녀의 지원을 받고 있다 해도 조금씩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이곳은 제게 맡기고 손 좀 거들어 주시죠.”

    “흐흐흐. 그래도 되나?”

    테오르가 지금까지 참았던 것을 분풀이하기라도 하려는 듯 마법을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성취가 있어 테오르의 곁에 떠오른 것은 태초의 물이었다. 저게 있는 이상 바다도 불러낼 수 있는 테오르에게 뱀 인간들은 문제가 아니었다.

    테오르가 쏟아낸 물이 거세게 전장을 휩쓰는 사이에 카이는 늑대와 뱀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둘의 싸움은 백중세였다.

    카이는 그런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가능하면 힘을 아끼려고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가족인 엘티온과 계약해서 부렸다는 것만으로 이미 짜증이 치솟아 올랐다.

    “감히.”

    카이가 힘을 끌어올리자 마력의 사슬이 점점 굵어졌고, 그 위에 맺힌 냉기도 강력해졌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이는 연달아 태초의 속성을 꺼냈다.

    얼음 위로 치달리는 뇌전이 뱀의 비늘을 태웠다.

    대지의 기운이 사슬에 깃들면서 굳건해지고,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바람이 뱀을 조금씩이지만 확실히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어디 얼마나 버티나 보자.”

    아무리 짜증이 치솟았어도 신조는 쓰지 않고 본신의 마법만으로 상대하는 중이었다. 이미 황도 전역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해진 뱀의 몸에 마법을 때려 부으며 그를 끌어내리는 중이었다.

    우로보로스는 늑대와의 싸움에 집중하는 중에 자신의 계약이 잘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집중하지 않고 있다고 해도 자신이 직접 계약한 것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잘라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만한 격을 지니지 못한 이상 어림도 없는 일이다.

    강제로 잘려나간 덕에 엘티온에게 걸어놓았던 목숨은 돌아왔으나 지금 상황에 생긴 변수는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

    이유는 몰라도 자신은 끊임없이 강해지는 중이었는데 늑대는 그러는 와중에도 쉬이 포기하지 않았다. 보옥을 모두 되찾은 것인지 신지의 힘을 고스란히 다루는 것인지 예상보다 강한 힘을 내고 있었다.

    그래서 쉬이 쓰러지지 않았다.

    그렇게 팽팽하게 싸우는 중에 자신이 만든 변수는 잘려나갔고, 늑대는 자신을 몰아붙이는 중이었다.

    천체의 시간을 고정하지만 않았어도 찢어 죽였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짜증이 났다. 게다가 갑자기 눈이 돌아간 것인지 신조의 대마도사가 쏟아내기 시작한 마법이 거슬렸다.

    태초의 어둠이 다른 태초의 속성에 비해 상성 상 우위에 있었는데 지금 연달아 쏟아지는 일곱 가지 속성의 마법 폭격은 우로보로스에게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저자의 마법은 성급을 뛰어넘는 것이라 계속해서 고통을 유발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우로보로스가 결심을 굳히고는 태초의 어둠을 강하게 뿌렸다. 고정된 천체 위로 태초의 어둠이 나타나 별빛마저 가리고 있었다.

    그렇게 하늘을 온통 뒤덮은 어둠 속에서 우로보로스의 몸이 그 그림자 속으로 숨었다. 태초의 어둠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지금 번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

    우로보로스가 어둠 속에서 세 번째 눈을 떴다.

    태초의 어둠이 세계를 가렸다. 태초의 어둠을 이만큼이나 다룰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깊이 어둠에 속한 존재인지 깨닫게 할 정도였다.

    일식으로 해가 사라진 하늘에 별만이 남아있었는데 그 별마저 가렸다.

    세상이 온통 어둠만으로 가득한 때에 하늘에 푸른 달이 떠올랐다. 가운데 길게 갈라진 것은 마치 뱀의 눈을 닮아 있었다.

    게다가 달이 품은 힘은 놀라울 정도였다.

    카이가 신조를 움직여야 하나 고민할 정도.

    그러나 그걸 본 늑대가 입을 열었다.

    <네가 말한 예언대로라면 곧 피스토가 나타날 거다. 뱀은 내게 맡겨라.>

    “저게 뭔지는 알지?”

    <알아. 지금까지 모은 힘을 제 삼의 눈을 뜨는데 쓸 줄은 몰랐군.>

    “제 삼의 눈?”

    <사안은 눈만 안 마주치면 되지만, 저 달빛이 비치는 곳의 모든 것은 놈의 영역이 된다. 그리고 그 안에 깃들어 있는 것의 힘을 빼앗지.>

    늑대가 서늘한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걸 뜨고 있는 동안은 자신도 움직이지 못하지.>

    “그런데 어떻게 싸우려고?”

    <다만 나도 전력을 다해야 하니 정말로 피스토가 나온다고 해도 도움이 되지는 못할 거야.>

    늑대는 그리 말하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늑대의 털 위로 뻗어 나오는 것은 은빛의 광채. 은빛을 몸에 두른 늑대가 입을 열었다.

    <신지의 우두머리가 누구인지 잊은 것 같으니 다시 기억나게 해줘야지.>

    늑대는 그 말을 끝으로 빛 한점 없는 하늘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걸음 하나하나가 지나간 길에 은빛 발자국이 남았고, 단숨에 하늘로 치솟은 은빛 늑대를 보며 카이는 예언을 떠올렸다.

    달을 삼킨 늑대.

    그것이 뱀이 만들어 낸 세 번째 눈일 줄은 몰랐다.

    달을 삼키기 위해 달리는 늑대를 보며 카이는 전장을 바라보았다. 저 달이 뜬 이후로 뱀의 분신들에게 인간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뱀 본인은 못 움직여도 분신들은 움직일 수 있나 보다. 그나마 저항하고 전투에 임하고 있는 것은 8성급 강자들이다. 위훌루와 맥클렌이 나서서 휘두르는 도끼와 검 앞에서 적들은 쪼개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영향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뱀 인간들에게 기사단이 무너지고 있었다.

    카이의 시선이 다시 하늘을 향했다. 어둠을 가르는 은빛 섬광이 그대로 달을 향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늑대가 달을 향해 입을 쩍 벌렸다.

    그 눈의 크기는 늑대의 입보다 훨씬 컸지만, 그의 입은 단번에 그보다 크게 벌어졌다. 그렇게 벌어진 입으로 단번에 달을 삼키자 주박처럼 몸이 굳어 있던 이들의 몸이 풀렸다.

    뱀이 전력을 다해야 뜰 수 있다고 하던 세 번째 눈을 은빛으로 빛나던 늑대가 삼켰다.

    <크아아악!>

    뱀의 울음에 하늘이 울었다. 태초의 어둠이 걷히고, 이마에서 피를 쏟고 있는 뱀이 눈에 들어오자 카이는 저항이 약해진 것을 깨달았다.

    계속 하늘을 날던 뱀의 저항이 약해진 순간 카이는 전력을 다해서 뱀을 끌어내렸다. 마력 사슬에 끌려 하늘에 떠 있는 뱀이 추락했다.

    쿠웅!

    황도를 뒤덮을 정도로 거대했던 뱀이 떨어졌다. 그 크기만큼이나 무거운 뱀의 몸이 출렁이며 떨어지니 그 충격에 황궁의 건물들은 물론이고, 바닥도 으깨졌다.

    하늘에 있는 놈을 상대할 수 없어 떨어트렸더니 그것만으로 황도가 박살 나고 있었다.

    먼지구름이 일어나 사방을 뒤덮었다.

    저 하늘에 떠올라 일식의 순간에 시간을 고정했던 뱀은 바닥으로 끌어져 내려진 분노를 참지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드는 뱀의 머리가 저 위에서 황궁에 모인 이들을 내려다보았다. 미간에는 세 번째 눈을 떴던 곳에서 피가 쏟아져 내리는 중이었다.

    그 높이만 해도 백 미터를 넘어가는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뱀의 눈을 마주한 이들이 모두 몸이 굳을 때 늑대가 그 앞에 내려섰다.

    은빛으로 빛나는 늑대가 포효를 터트렸다.

    늑대의 하울링이 뻗어 나가자 뱀의 사안이 풀렸다. 경직된 이들이 풀려났을 때 뱀은 늑대와 그 뒤에 선 이들을 바라보며 이를 드러냈다.

    <그래. 결국은 이렇게 될 일이었지.>

    하늘에서 내려왔지만, 그 거대한 육체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협이 된다. 게다가 그 비늘의 강도는 8성은 넘어야 그나마 흠집이나 낼 수 있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뱀은 늑대를 내려다보며 입을 천천히 벌렸다.

    <너도 힘을 다 썼나 보군.>

    전신에서 은빛을 번쩍이던 늑대도 그 빛을 잃었다. 뱀이 세 번째 눈으로 달을 띄웠을 때 그것을 집어삼키기 위해 무리한 상태였다.

    아마도 조금 전 같은 위력은 낼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하늘에서 떨어진 뱀도 마찬가지.

    아무래도 진흙탕 싸움이 될 것 같았다.

    뱀은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멈췄던 천체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면서 해를 가렸던 그림자가 조금씩 드러나며 어둠이 가시기 시작했다.

    카이는 고정되었던 천체의 시간이 흐르면서 이상이 생겼음을 알았다. 전투에 집중하는 중이라 몰랐지만, 지금은 알 수 있었다.

    “젠장!”

    황도의 백성들을 모두 날려 보냈었는데 그들의 반응이 없었다. 뱀에게 영육이 먹히지 않게 빼냈더니 오히려 엉뚱한 놈이 그들을 잡아먹었다.

    “피스토!”

    카이의 외침이 하늘에 닿기도 전에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던 태양이 다시 사라졌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흘러 다시 일식이 됐다.

    그림자가 드리워진 황궁에서 카이는 태양의 그림자를 보았다. 태양의 그림자에 균열이 일어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균열이 깨지며 핏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에 난 구멍에서 쏟아지는 피 비가 삽시간에 바닥에서 차오르기 시작했다. 황궁만이 아니라 황도 전역에 차오르는 핏물이 발목까지 찰랑이는 것을 느끼며 카이는 이를 뿌득 갈았다.

    “어서 나와라. 피스토.”

    그러나 피스토는 나오지 않았고 황도에 차오르던 핏물이 우로보로스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우로보로스는 자신의 몸에 스며드는 핏물에 눈이 붉게 물들어 갔다.

    <하, 결국 이럴 생각이었나?>

    우로보로스는 자신의 힘이 강해졌던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피스토가 강해지면서 자신에게도 그 힘이 전해졌던 것. 자신과 피스토가 생각보다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지금도 핏물을 통해서 자신에게 힘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런 우로보로스의 머리로 전해져왔다.

    <시간을 끌어줘요.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죠?>

    <내가 네 마음대로 움직여 줄 줄 아나?>

    피스토의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말을 이었다.

    <시작은 당신이 한 거잖아요. 그 정도면 시간은 끌 수 있을 거예요. 우리 둘의 목표는 어차피 같다는 거 확인했잖아요.>

    우로보로스는 황도에서 차오르는 핏물이 자신의 몸에 들어오면서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몸집이 더 커지지는 않았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력이 강해진 상황.

    앞에 있는 늑대를 짓이기기에는 충분하다.

    피스토의 뜻대로 놀아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칼춤 한 번 추기에는 적당했다.

    <그래. 한 번 어울려주마.>

    우로보로스는 땅에 떨어진 지금 피스토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싸울 수 없음을 알았다. 그렇기에 지금은 그 힘을 이용해서 적들과 싸울 차례다.

    우로보로스의 비늘이 핏빛으로 온전히 변하고 그 눈도 붉게 물든 채 앞에 있는 자들을 내려다본다.

    몸에 끓어 넘치는 힘은 눈앞에 있는 자들을 깔아뭉개기에는 충분했다.

    우로보로스가 입을 벌리며 비늘을 세우자 그곳에서 사방으로 독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바닥에 깔린 핏빛 독무가 조금씩 주위로 번지기 시작했다.

    그때 늑대의 주위에서 불어온 바람이 삽시간에 독무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태초의 바람을 이용한 폭풍에 독무가 밀어 올려지는 것을 보고 우로보로스가 키득 웃고는 태초의 어둠을 불러냈다.

    어둠으로 바람을 막자 밀려 올라가던 독무가 다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아나벨이 양손을 모을 때 카이가 그녀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지금 나서시면 안 됩니다.”

    아나벨은 시엘이 세계에 뿌려놓은 모든 신성력의 결정체. 그녀가 힘을 쓸 곳은 이곳이 아니라 피스토와의 결전이다.

    “아직은 아닙니다.”

    그리 말한 카이가 태초의 바람을 일으켰다. 늑대 혼자서는 저 독무를 밀어내지 못하겠지만 카이가 가세하니 다르다. 혼자가 아닌 둘이 함께하자 독무가 밀려 올라갔고, 우로보로스는 그 모습에 입을 쩌억 벌리며 달려들었다.

    피스토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 이상 카이가 전력으로 뱀을 상대할 수는 없다. 예언처럼 피스토의 출현이 확실한 이상 카이가 전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

    “퀸!”

    그러나 이미 개념까지 베어낼 수 있는 그녀라면 다르다.

    “기다렸어요!”

    퀸이 어느새 늑대에게 올라탄 채 둘이 뱀을 향해 치달렸다.

    돌싱 후 대마법사-계획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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