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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44화 (144/150)
  • 144화 가족

    목이 떨어져 나갔다.

    늑대의 입이 가진 크기를 생각하면 이렇게 물어뜯는다고 두꺼운 우로보로스의 목이 떨어져 나간다고 보기는 힘들었지만, 우로보로스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늑대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조금 전 떨어진 목이 어둠으로 변해 흩어졌다. 그제야 뱀이 태초의 어둠을 이용해 만든 그림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두 번 사용하기 힘든 그림자 분신을 깨달은 늑대가 재차 달려들려고 할 때 허물어지던 그림자 사이로 불쑥 튀어나오는 검이 있었다.

    늑대가 반응하기도 전에 날아든 검은 무척이나 은밀하고 빨랐다. 늑대가 주위의 시공을 지배하고 있는데 그것을 가르고 들어온 검은 태초의 어둠을 두르고 있는 것은 물론 그만한 경지에 이르러야 가능한 일이었다.

    적어도 퀸이나 헥토르처럼 9성을 밟은 존재만이 가능한 것.

    늑대가 자신을 찌른 존재를 내려다보았다. 환한 금발이 눈에 띄는 소년.

    그러나 그 눈은 호박색의 눈동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뺨과 전신에 얼핏 보이는 뱀의 비늘.

    늑대가 앞발을 휘둘렀지만, 어둠이 깃든 검으로 막아낸 존재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늑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우로보로스를 바라보았다.

    “적합자를 찾은 거냐?”

    <이곳에 오기 전에 계약했다.>

    늑대는 우로보로스의 주위를 감싸는 태초의 어둠을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끝까지 저항하기는 했지만, 미리 심어 두었던 씨앗 덕분에 온전히 거둘 수 있었다. 신지의 적합자를.>

    늑대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그 어둠을 응시했다.

    <엘가의 가장 순수한 피를 이은 자로군.>

    엘도 왕국의 피를 가장 순수하게 이은 자.

    과거 신령의 숲을 찾아와 계약했던 자. 그 적합자의 재능은 대족장의 피에 버금갔었다.

    계약을 통해 단번에 8성까지 올랐던 존재.

    그러나 지금 이 자는 다르다. 단순한 계약이 아니라 뱀이 씨앗을 주고, 온전히 자신의 마지막 생명을 담아 놓았다.

    그렇기에 태초의 어둠을 다루고, 자신을 찌를 만큼 강해진 것이겠지.

    검에 찔린 상처를 통해서 태초의 어둠이 늑대의 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림자 분신을 준비하고 그 분신을 죽인 순간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적합자를 이용한 공격.

    우로보로스는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이미 그만한 준비를 해두었었다.

    늑대는 입가를 말아 올리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비록 태초의 어둠이 자신의 몸을 파고드는 중이라 해도 자신은 신지의 우두머리이자 늑대다.

    태초의 바람이 늑대의 주위를 돌며 칼날처럼 변했다.

    콰카카칵.

    발을 딛고 서 있는 우로보로스의 비늘을 갈가리 잘라내는 늑대의 눈이 어둠에 휘감기고 있는 우로보로스를 향했다.

    <결착을 내자.>

    늑대가 다시 한번 우로보로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카이는 늑대가 찔리는 것을 보았다. 그 뒷모습을 보니 깨닫는 것이 있었다.

    “엘티온?”

    어둠에 동화된 채 사라졌지만, 그 뒷모습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이름에 먹히지 않게 홀로 지낼 수 있기를 바라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던 카이였기에 엘티온이 뱀에게 넘어가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일식에 벌어질 일을 대비하기 위해 제국의 황도에서 지배력을 높이며 지내왔기에 몰랐다. 뱀이 이곳에 오기 전에 저런 개수작을 부렸을 줄은.

    카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퀸을 돌아보았다.

    “퀸. 네가 늑대를 도와줘야겠다.”

    카이의 옆에서 우로보로스를 올려다보던 퀸도 늑대를 찌른 검을 보았다. 그리고 그 뒷모습이 누구의 것인지도.

    “정말 괜찮아?”

    뱀을 죽이면 엘티온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늑대가 죽게 둘 수는 없었다.

    “괜찮아. 괜히 무리해서 생포하려다가 네가 다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아. 그러니 필요하다면.”

    잠시 말을 멈췄던 카이가 말을 이었다.

    “죽여도 좋아.”

    퀸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카이는 페코와 함께 그녀를 공간 이동으로 날려 보냈다.

    퀸은 늑대의 위로 공간 이동된 것을 느끼고는 앞을 바라보았다.

    늑대는 퀸이 자신의 등에 올라탄 것을 느끼고는 픽 웃었다.

    <네가 저 아이를 상대할 거냐?>

    “맞아. 그러니 넌 ‘뱀’을 죽여.”

    늑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몸을 날렸다. 앞을 가리는 어둠조차 밀어내는 바람의 길을 따라 달리는 늑대의 앞으로 그림자 속에서 솟구친 검이 있었다.

    어둠을 휘감은 검.

    퀸은 그제야 늑대에게서 뛰어내리며 검을 휘둘렀다.

    쩌엉!

    퀸이 검을 막는 사이에 늑대는 앞으로 달려갔다. 그런 늑대를 쫓으려고 하는 상대를 향해 퀸이 검을 뻗었다.

    카라랑!

    연달아 날아드는 검격에 엘티온이 황급히 검을 들어 흘려냈다. 그러나 흘려내는 것만으로 자세가 무너질 정도로 퀸이 휘두른 검에 깃들어 있는 강격이었다.

    엘티온이 뒤로 물러나서는 퀸을 향해 검을 들어 올렸다. 지금 다른 곳에 시선을 둘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엘티온을 보며 퀸이 검을 어깨에 척하니 걸친 채 물었다.

    “나 기억 안 나나 봐?”

    “네가 누군데?”

    “퀸.”

    누군지 알려주었음에도 알아보지 못하는 엘티온을 보며 퀸은 가볍게 혀를 찼다.

    “문제가 생기면 아빠한테 말했어야지.”

    퀸이 그리 말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엘티온은 태초의 어둠을 몸에 두른 채 검을 휘둘렀다. 그 안에 깃들어 있는 검력은 강대했지만, 퀸은 그 검을 대수롭지 않게 쳐냈다.

    태초의 어둠이 지닌 힘을 빌리고 격이 높아졌다고 하나 태생이 뱀인 우로보로스에게 기인한 힘.

    그러나 검이란, 검술이란, 검도란.

    인간이 쌓아온 역사였다. 그리고 퀸은 그런 검으로 정상에 오른 이.

    홀로 쌓아온 검도에도 격이 서린다.

    태어나기를 인공적으로 태어났다고 하나, 우연이 만들어낸 그녀의 영혼은 필연으로 찾아온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태어난 퀸이 쌓아온 검의 길. 검도에 서린 격.

    그 격은 태초의 어둠을 감쌌으나 그 힘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엘티온이 막기에는 너무나 강대했다.

    쩡! 쩡!

    일격을 받을 때마다 엘티온을 감싸고 있던 태초의 어둠이 찢겨 나간다. 그리고 조금씩 뒤로 밀리는 엘티온의 걸음이 위태롭다.

    퀸은 그런 엘티온을 몰아가며 말했다.

    “엘티온.”

    그 부름에 간신히 검을 받아내던 엘티온이 힘겹게 답했다.

    “···왜?”

    “네가 비록 아빠의 피를 잇지는 못했지만.”

    쾅! 콰앙!

    점점 뒤로 밀리는 엘티온이 이를 뿌득 갈며 어떻게든 버티려 했다.

    엘티온은 뱀이 넘기고 간 선물로 눈부신 성장을 겪고 있었다. 이렇게 성장한다면 아버지 카이의 곁에 설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그렇게 성장하던 엘티온을 찾아온 것은 처음 자신의 방 그림자에 숨어 있던 우로보로스가 아니었다. 왕궁을 집어 삼킬 정도로 거대해진 우로보로스의 눈을 마주한 순간 엘티온은 자신의 의식이 뒤섞이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의식 안에 자리 잡은 것은 의식이 아니라 의지였다.

    뱀의 의지.

    사고하는 것은 엘티온이었지만, 그 의지만큼은 뱀의 것을 따라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엘티온은 자신을 가로막고 있던 벽을 단 한걸음에 뚫고 나아갔다.

    그렇게 경지에 오른 엘티온은 뱀이 만들어 놓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때를 기다렸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어떤지도 몰랐다.

    그저 때가 되었을 때 나와 눈앞의 거대한 늑대를 가지고 있는 어둠으로 찌를 뿐이었다.

    그리고서 알았다.

    늑대가 아버지 카이와 함께 하는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 자신을 향해 검을 내리치는 여인도 아버지와 함께하는 이라는 것을.

    자신은 그토록 아끼던 아버지 카이의 대척점에 서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머리로는 알아도 의지는 뱀의 것이 되어버린 몸.

    그저 앞에 있는 여인을 죽이기 위해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두를 뿐이다.

    “아빠를 아버지로 여긴다면.”

    콰앙!

    그러나 점점 자세가 무너진다. 태초의 어둠을 휘두르며 벽을 넘어왔던 엘티온이 감당하기에는 퀸에 담긴 거력이, 격이 너무나 강대했다.

    “정신 차려!”

    꽈아앙!

    그 위력이 어찌나 강력했는지 딛고 있던 뱀의 비늘이 으깨질 정도였다.

    “네가 진짜 아빠의 아들이라면!”

    퀸이 날린 일격에 엘티온은 뱀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찔한 부유감에 눈살을 찌푸린 엘티온은 오히려 다행이라 여겼다.

    퀸에게서 멀어질 수 있다는 것에.

    그러나 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엘티온을 따라 떨어져 내리는 중이었다.

    어떤 힘도 두르지 않고, 오직 자신의 몸에 깃들어 있는 힘과 격만을 두른 여인.

    엘티온은 그 모습이 눈부시다 여겼다.

    검을 든 자로서 자신도 그리되고자 했던 곳에 도달한 여인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엘티온의 몸은 그의 것이었지만, 그 의지만큼은 뱀의 것. 퀸과 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엘티온의 몸이 어둠에 휘감긴 채 공간 이동을 하려는데 몸이 덜컥 굳은 채 움직여지지 않았다. 엘티온의 눈이 커질 때 퀸이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지금 이곳은 내 영역이다.”

    시공을 지배하는 퀸의 영역 안에서 공간 이동조차 그녀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것이 설령 태초의 어둠을 통한 것이라도 말이다.

    “그리고 아빠를 만나거든 인사 잘해라.”

    다시 날아드는 일검을 받아낸 엘티온은 한줄기 유성처럼 황궁으로 떨어졌다.

    쿠웅!

    엘티온이 떨어지며 일으킨 충격에 바닥이 움푹 꺼졌다. 엘티온의 의지는 어떻게든 돌아올 방법을 찾으라고 하고 있었지만, 엘티온은 자신의 가슴에 발을 올리고 있는 퀸이 보였다.

    “고개를 들어라. 엘티온.”

    그 말에 고개를 천천히 든 엘티온은 자신이 만든 크레이터 위에 서 있는 카이를 볼 수 있었다.

    바닥에 누워 올려다본 카이는 머리 위에 일곱 빛깔의 신조를 올리고 태초의 마력과 태초의 얼음을 소환한 채 저 하늘 위의 뱀을 끌어내리려 하고 있었다.

    집중한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엘티온의 가슴 속에 뭔가 울컥하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엘티온은 몸을 뒤집어 일으키기 무섭게 땅을 박찼다. 카이에 대한 반가움이 가득했으나 튀어나가는 그의 몸은 뱀의 의지로 움직이고 있었다.

    카이는 마법을 쓰는 중에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엘티온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 시선에 깃든 것은 씁쓸함이었다.

    “미안하다.”

    엘티온은 더 다가가지 못했다.

    어느새 다가온 퀸이 휘두른 검이 엘티온을 베었다. 피를 뿌리며 휘청이는 엘티온을 보고 카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이 신경 써주지 못해서 뱀의 수하가 되어버린 아들을 보면서 카이의 눈빛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카이의 앞에서 엘티온이 무릎을 꿇었다.

    그런 엘티온의 뒤에 선 퀸이 깊게 숨을 내쉬었다.

    “엘티온.”

    카이의 부름에 엘티온이 무릎을 꿇은 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엘티온은 카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

    카이는 엘티온이 쏟아내는 눈물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퀸을 보았다. 카이의 눈에는 보기 드물게 놀라움이 깃들어 있었다.

    “퀸?”

    퀸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힘들었어.”

    퀸은 엘티온에게 다가와 그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인사 잘하라고 했지?”

    퀸의 손길을 느낀 엘티온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비록 자신이 사고했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은 뱀의 의지였는데 지금은 그 의지가 느껴지지 않았다.

    엘티온이 놀라 퀸을 돌아보자 그녀가 미소를 지은 채 턱짓했다. 그 모습에 엘티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뱀이 남겨 놓았던 씨앗. 그것 덕에 얻었던 강대한 힘이 모두 사라졌지만, 뱀의 의지 또한 사라졌다. 자신의 몸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엘티온이 카이를 향해 달려가 그를 끌어 안았다.

    카이는 그런 엘티온의 등을 두드려주며 퀸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맙다.”

    퀸이 어떻게 뱀의 의지만을 잘라냈는지는 모르겠다. 뱀의 계약을 잘라내는 것이 가능할까?

    저 위에 우로보로스가 늑대와 싸우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라고 해도 뱀의 계약을 베었다는 것은 물체가 아니라 개념을 베어냈다는 얘기였다.

    시공을 지배하는 것과는 또 다른 얘기였다.

    카이는 대견하다는 듯 퀸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숙여 엘티온을 바라보았다.

    “엘티온. 나중에 보자.”

    “저도 싸울게요.”

    카이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엘티온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끝나고, 끝나고 얘기하자.”

    엘티온은 그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은 아직 아버지의 곁에 설 자격이 없음을 깨달았다.

    “아버지 영지로 보내주세요. 그곳에서 기다릴게요.”

    “그래. 가서 기다려라.”

    카이는 엘티온을 공간 이동으로 날려 보냈다. 천체의 시간은 고정되어 있었지만, 지상인 황도의 시공은 카이가 지배하고 있었기에 날려보내기 어렵지 않았다.

    엘티온을 날려보낸 카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 새끼가 가족을 건드려?”

    돌싱 후 대마법사-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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