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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43화 (143/150)
  • 143화 격전

    황궁이 무너지고 있는 모습에 테오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언제까지 구경해야 하나?”

    “아직은 견딜 만 해 보이는군요.”

    7성급 마법사와 기사들이 나서면서 거대한 뱀 인간들을 도륙하기 시작하면서 전장의 승기가 이쪽으로 기울어졌다. 7성급이라고 하면 대륙 어디서도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강자들.

    그런 그들을 쉬이 상대할 수는 없었다.

    수가 많다고 잡아먹을 수는 없다.

    더 많은 힘을 빼내야 하지만 뱀도 그렇게 여유가 많지는 않았다. 지금 뱀은 시공을 지배하고 있었으니까.

    일식이 벌어진 순간 태양의 자리를 대신해서 그 구성 요소의 하나가 되면서 얻어낸 힘으로 천체의 시간을 멈췄다.

    저 정도 대규모로 힘을 쓰는 중에 7성급 강자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분신을 풀어낸다면 본신의 힘이 약해진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쪽의 기회다.

    그걸 알기에 늑대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아직 이쪽은 8성 강자들이 한 명도 나서지 않았다. 아무리 격이 높아졌다고 해도 시간을 고정해 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이 정도 대규모로 시간을 멈추는 것은.

    그러니 기다린다.

    아직 예언에 나왔던 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피스토도 모습을 드러낼 생각을 하지 않는 중이었으니까.

    제국 제일의 곡창지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곡창지대로 이동한 사람들은 다들 주위를 두리번거리느라 바빴다.

    태양이 사라지고 갑자기 밤이 되어 하늘의 별이 보이는 이상 현상에 아이들은 겁에 질렸다.

    “엄마. 여기 어디야?”

    “그, 글쎄 모르겠구나.”

    주변에 있는 이들도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들이 찾는 것은 황궁의 사람들.

    그러나 황궁의 경비병부터 시작해 귀족들도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소란을 피우지 마라!”

    그러나 황궁 근위대에게서 시작한 소식이 전해지자 귀족들부터 시작해 모두가 작게 속닥일 뿐 소란을 피우지 못했다. 경비병들이 어디서 구한 것인지 횃불을 들고 나타나 그들을 통솔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렇게 소란이 조용해지는가 싶을 때 엄마의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코를 킁킁거리더니 물었다.

    “엄마. 이상한 냄새 나.”

    “이상한 냄새?”

    엄마도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는 살짝 인상을 굳혔다.

    “이거 설마···?”

    바닥으로 고개를 숙이니 찰박일 정도로 뭔가 차올라 있었다. 이곳은 밀밭. 바닥에 이만큼 물이 가득할 리도 없는데 이게 뭔가 싶었다.

    그때 옆에서 비명이 들렸다.

    “꺄아아악! 바닥에 피가! 피가!”

    피!

    그 말을 듣자 이게 무슨 냄새인지 깨달은 엄마가 아기를 꼭 끌어안은 채 주위를 둘러봤다. 사방에서 그 외침에 소란이 일어나는 중인 것을 보면 엄청난 양의 피가 흘러내렸다.

    그러나 지금 주위에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지?”

    여인의 뒤에서 불쑥 목소리가 들렸다.

    “뭐긴 뭐겠어?”

    여인이 뒤를 돌아보니 한 사내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시엘이 나섰다면 분명 뭔가 수를 쓸 거라 여겼거든. 우로보로스가 천체의 시간을 고정한 순간에는 아무리 신조의 대마도사라고 해도 감지에 문제가 생기지.”

    “무, 무슨 말이에요?”

    사내의 입이 길게 찢어졌다.

    “이제 식사 시간이라는 얘기지.”

    사내가 손가락을 튕긴 순간 바닥에서 찰박거리던 핏물이 빠르게 차올랐다. 이 넓은 평야에서 이 정도 속도로 차오르려면 얼마나 많은 양의 핏물이 있어야 하는 의문보다 여인은 아이를 구하기 위해 양팔로 높이 들었다.

    사내는 그런 여인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애처롭군.”

    “제, 제발 아이만은···.”

    사내는 대답 대신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드넓은 평야에 수많은 이가 차오르는 핏물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사내는 눈을 감은 채 비명을 즐겼다.

    “너무 과신했어.”

    아무리 신조의 대마도사가 이곳에도 준비를 해두었지만, 직접 오지 않는 이상 자신을 막을 수는 없었다.

    비록 온전히 깨어나지 않은 피스토라고 해도 충분히 신조의 대마도사의 눈을 속여서 저 많은 인간을 손에 넣었다. 연옥의 혈해가 저들을 집어삼키면 부족한 격과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기다려라.”

    시엘이 그토록 사랑했던 이 세계를 혈해로 뒤덮어 버릴 테니까.

    우로보로스를 바라보던 카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곳에서의 승기는 자신들이 잡고 있는데 점점 우로보로스의 힘이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7성 기사와 대마법사들이 나서면서 아군의 전력이 우세한대도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건 믿기 힘들었다.

    “무슨 일인 것 같아?”

    <모르겠군. 하지만 비늘색이 달라졌다.>

    떨어지는 비늘이 검붉어졌다. 마치 핏물처럼 변한 비늘은 그 수가 몇 개 안 되었다. 고작해야 서른 개. 그런데 거기서 일어나는 존재들은 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쩌엉!

    처음으로 7성급 기사의 검이 막혔다. 그 모습을 보고 아나벨이 입을 열었다.

    “제가 먼저 시작할게요.”

    아나벨은 8성에 올랐지만, 전투에 특화된 이가 아니다. 그녀의 신성 마법이 펼쳐지자 황궁 전역에 푸른 빛이 뻗어 나갔다. 동심원을 그리며 뻗어 나간 신성 마법의 도움을 얻은 이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전보다 더 단단해지고 빨라진 뱀 인간들을 상대하면서도 7성급 기사들이 더욱 빨라져서 공격에 당하지 않았다. 그들이 시간을 끄는 사이에 7성급 대마법사들이 마법을 꽂아 넣기 시작하자 다시 승기를 빼앗아 왔다.

    다만 그사이에 뱀의 크기가 더 커졌다. 처음 등장했을 때의 두 배가 넘을 정도로 커졌다.

    둥글게 몸을 말고 있는 거대한 뱀의 그림자가 별빛을 가리며 하늘을 유영하고 있었다.

    예언에서 봤다는 그 거대한 뱀이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카이는 잠시 기다렸다. 만약 전력이 밀리고 있다면 무리해서라도 나서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치열하게 싸우는 이들을 지켜보며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카이도 그냥 대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황도의 모든 사람을 내보내며 가열되었던 용맥의 힘을 끌어모으는 중이다. 신조로만 싸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은 대마도사.

    마르스와 싸우면서 용맥의 힘을 이용한 공격이 통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저 하늘에 떠 있는 놈을 끌어내리기 위해서 준비하는 중이었다.

    9성급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서는 카이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카이는 늑대를 돌아보았다.

    “준비됐다.”

    무지막지한 주문을 사용한 탓에 가열되었던 용맥으로 흘러온 마력이 충만하게 차오른 것을 느낀 카이가 마법을 사용하기 전에 늑대를 돌아보았다.

    <잠깐. 놈이 뭔가를 한다.>

    카이가 그 말에 고개를 들자 확실히 뭔가 달라졌다. 점점 거대해진 우로보로스가 황도의 하늘을 거의 뒤덮는 것을 보고 카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끄집어 내리자.”

    상대가 뭔가 수작을 부리기 전에 끝을 봐야 한다. 카이가 손을 들어 올리자 그의 손 끝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태초의 마력.

    그리고 카이가 이끌어 낸 태초의 마력을 따라 용맥에서 솟구치는 사슬이 황도 곳곳에서 날아올랐다.

    일곱 개의 사슬이 날아올라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우로보로스를 휘감았다.

    콰드드득.

    우로보로스는 자신의 몸을 휘감은 사슬을 보고 눈을 떴다.

    지금까지 갑작스레 몸에서 커지는 힘을 느끼고 있었던 우로보로스였기에 반응이 조금 늦었다. 그러나 일곱 개의 사슬이 자신의 몸을 휘감고 끌어내리는 것을 느꼈다.

    천체의 시간을 고정하기 위해서는 하늘에 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시간의 고정이 끝나고 태양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면 이만큼 힘을 키우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쯧.>

    가볍게 혀를 찬 우로보로스의 비늘이 바짝 일어섰다. 검붉은 비늘이 일어서면서 사슬을 밀어냈지만, 용맥의 힘을 끌어다 만든 사슬은 쉽게 잘리지 않았다.

    그러나 우로보로스도 끌려 내려오던 것이 멈췄다. 늑대가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시간을 끌 필요는 없지.>

    늑대가 그리 말하고 땅을 박찼다. 바닥을 으깨며 솟구친 늑대가 포효했다.

    아우우우우.

    늑대의 하울링에 우로보로스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바짝 일어섰던 비늘이 차라락 내려앉으며 천천히 끌어내려 지기 시작했다.

    늑대가 앞발로 우로보로스의 몸통에 발톱을 박아넣고 사납게 세운 이빨로 깨물었다. 어지간한 공격에는 흠집도 나지 않았던 우로보로스의 비늘이 단번에 깨지며 그 안의 살점을 드러냈다.

    크게 한입 뜯어내 씹어 삼킨 늑대는 곧장 우로보로스의 등에 올라타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길이가 10km를 넘어선 우로보로스의 몸의 일부를 뜯어 먹는다고 해도 얼마되지 않는다.

    그러니 치명적인 곳을 노려야 했다.

    늑대가 우로보로스의 머리를 향해 달려갈 때 비늘이 다시 일어서면서 칼날처럼 늑대를 노렸다.

    늑대는 앞발을 휘둘러 비늘을 부수면서 더 빠르게 달렸다. 삽시간에 좁혀지는 거리.

    저 멀리 우로보로스가 고개를 들어 자신을 보는 것이 느껴졌다.

    카이가 신조를 날리지 않은 것은 예언에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피스토와의 싸움에서 신조를 전력으로 다뤄야 한다고 했던가?

    그러니 우로보로스는 자신이 처리한다. 신지의 배신자를 상대하는 건 자신이 할 일이다.

    그렇게 달리던 늑대는 우로보로스와 눈이 마주치자 순간 몸이 굳는 것이 느껴졌다.

    늑대에게 포효가 있듯 뱀에게는 사안이 있다. 그 눈빛을 마주한 자는 굳는다.

    같은 격을 지닌 늑대는 그에 저항할 수 있지만, 잠깐 몸이 굳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잠깐의 시간, 저 멀리 날아드는 것이 있었다.

    우로보로스의 몸이 커질수록 몸의 두께도 두꺼워졌다. 그렇게 두꺼워진 꼬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이만큼 커지면 몸이 둔할 만도 한데 그 속도는 섬전과도 같았다.

    그제야 늑대는 천체의 시간을 굳힌 뱀이 이곳의 시간을 틀어쥐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안에 굳어진 찰나. 늑대가 사안을 풀어내는 시간 동안 늑대의 지배력이 닿지 않는 곳에서 휘두른 꼬리가 늑대를 후려갈겼다.

    콰앙!

    다급히 몸을 비틀어 정타를 피했지만, 온전히 피해내지 못한 늑대가 유성우처럼 떨어져 내렸다. 늑대가 태초의 바람을 불러 그 바람으로 몸이 느려지게 했지만, 그 정도로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늑대의 주위로 깊은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괜찮아?”

    태초의 순수 마력으로 만든 사슬에 마력을 공급하며 뱀을 끌어내리던 카이의 물음에 늑대가 몸을 뒤집어 일으켰다.

    <괜찮다.>

    늑대는 그리 말하고는 다시 땅을 박차고 솟구쳤다.

    카이는 그런 늑대의 뒷모습을 보며 인상을 굳혔다. 뱀을 묶어서 끌어내리고 있던 사슬은 꼬리 쪽에도 묶여 있었다. 그런데 뱀이 휘두르는 순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건 카이의 마법에 문제가 있었다기 보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강해지고 있는 뱀 때문이었다.

    뭘까?

    지금 저 뱀을 강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뭔지 파악하지도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일곱 개의 용맥이 가진 마력을 더해서 만든 사슬로도 끌어 내리지 못할 정도로 강해지는 뱀의 힘은 불길했다.

    예언을 무시하고 자신도 함께 힘을 보태야 할까?

    피스토가 자신의 세계를 드러내고 나타난다면 카이라고 해도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래서 일단은 늑대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기왕하는 것 도움을 주기 위해 태초의 얼음을 소환했다. 태초의 순수 마력으로 만든 사슬이 끌어 내리는 힘이 부족하다면 거기에 냉기를 더한다.

    콰드드득.

    사슬이 얼어붙으며 그 주위에 닿아 있는 뱀의 비늘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둔해진 뱀의 등 위로 늑대가 치달리기 시작했다.

    우로보로스가 사안을 발휘했지만, 늑대는 이미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 태초의 바람이 알려주는 바람의 길을 따라 달린다.

    카이가 만들어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간 늑대가 우로보로스의 목을 물었다.

    돌싱 후 대마법사-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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