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일식
하늘을 올려다보던 카이의 옆에는 칼리가 부푼 배를 안고 있었다.
“이제 곧이네요.”
하늘 높이 솟은 해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일식의 시작.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기에 카이는 불러올 수 있는 모든 이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어설픈 이들은 오히려 적에게 힘이 되어줄 뿐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모은 이들은 대륙의 최정예들.
그중에 가장 믿을만한 것은 퀸의 기사단이었다. 이름하여 퀸즈 나이츠.
퀸은 카이의 곁에서 싸울 테지만, 퀸즈 나이츠는 나이트와 룩의 지휘 아래에 적과 싸울 것이다.
상대는 뱀과 피스토.
늑대가 돕는다고 하여도 쉽지 않은 싸움일 터였다. 강자들만 모으는 것이 아니라 집단전을 준비한 것은 적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7성급 이상의 강자들을 모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이 키웠던 기사단들도 모두 차출되었다. 아마 오늘이 지나고 나면 살아남은 자들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카이가 신조의 대마도사가 되었다고 해도 일식의 예언은 세계의 종말을 그려냈던 예언이었다. 그러니 이 고난을 이겨냈을 때 남은 자들이 얼마나 될지는 몰라도 대륙의 전력은 크게 깎일 터.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늑대의 말대로라면 세계의 인과라는 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누군가 진다면 누군가 떠오르는 것이 이치라고 했으니까.
카이도 이제는 그걸 이해하고 있었다.
카이의 시선은 아나벨 성녀와 맥클렌, 테오르, 위훌루, 마야에게 머물렀다. 8성에 이른 그들은 7성의 강자들과는 또 다른 위치에 있다. 그들은 시공에 간섭할 수 있는 이들로 충분히 뱀에게도 유효타를 먹일 수 있을 정도의 강자들.
마지막으로 닿은 시선에는 퀸이 있었다.
칼리의 반대편에 서서 조용히 검을 들고 서 있는 그녀.
이곳에서 자신 다음으로 가장 강한 그녀는 9성의 문턱에 올라있었다.
대륙에 사는 모든 인간이 가진 모든 전력을 끌어 모아놓은 황궁에서 카이는 일식이 시작되는 것을 보고는 칼리를 돌아보았다.
“뱀이 나타나면 이쪽의 시공이 비틀릴지 몰라요. 그러니 지금 가도록 해요.”
칼리는 카이의 말에 가만히 그를 끌어안았다. 카이는 그녀의 체온을 느끼며 가볍게 그녀의 등을 두드려줬다.
칼리는 그 손길에 애써 울음을 참았다. 지금 여기서 자신이 울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신지는 안전할 거예요.”
카이가 작정하고 싸우기 위해서 준비한 것은 칼리의 안전이었다. 다행이라면 그녀는 신지에 들 수 있었기에 늑대를 부르고 그녀를 신지로 보내기로 했다.
“꼭 돌아와요. 우리 둥둥이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어째서 배 속의 아이 태명을 둥둥이라고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칼리는 그 이름을 부르며 항상 즐거워했기에 카이도 그 이름에 정을 붙였다.
카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모습이 흐릿해지며 사라지고 그 자리에 대신 나타난 것은 머리부터 꼬리까지 길이가 40미터까지 커진 늑대였다. 그러나 그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품고 있는 힘이 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전에 보았던 마르스에 비하면 부족한 것은 그 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일 뿐 그 안에 품고 있는 힘은 마르스에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뭔 일이 있었던 거야?”
늑대의 입가가 말려 올라갔다.
<네 덕이다. 보옥 덕분에 신지의 힘을 고스란히 끌어올 수 있으니까. 정말 필요하다면 네 말대로 달도 삼킬 수 있을 것 같군.>
카이는 그 말에 미소를 짓고는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해를 가리는 그림자와 함께 황도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하늘에서부터 시작된 그림자. 황도만이 아니라 세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온전히 해가 사라진 순간 저 하늘의 시공이 굳어버렸다. 대낮에 뜬 별들 위로 ‘뱀’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하늘을 유영하며 다가오고 있는 ‘뱀’의 거대한 그림자를 본 카이는 주문을 발동했다.
카이의 발밑에서 시작해 황도 전역에 준비해 놓은 용맥들이 꿈틀거리며 마력을 공급했다.
해가 사라진 어두운 밤에 황도 전역에서 솟구친 황금빛 빛이 하늘까지 솟구쳤다. 그렇게 빛을 일으킨 카이가 양손을 활짝 펼친 순간 황도 전역의 공간 이동 마법진이 작동했다.
황궁에 준비된 전력을 제외한 모두가 사라지는 공간 이동 마법진.
황도 전역에서 동시에 사람들이 사라진다.
그걸 본 ‘뱀’, 우로보로스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저 아래에서 인간을 모두 대피시킨 마법. 저것은 설령 신격을 이룬 자라고 해도 단번에 이뤄낼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조차도 저만한 마법을 구현하려면 적어도 한 달 이상이 걸릴 일이다. 무엇보다 저만한 동력을 끌어올린 것부터가 믿기 힘든 일이었다.
일식의 순간. 세계의 요소 중 하나가 사라지는 순간에 그 자리를 대신하며 그 순간을 고정하느라 강대해진 그의 힘 중 상당수를 썼다.
황도에 가장 많은 인간이 있어 그들을 잡아먹어 온전히 힘을 되찾으려고 했던 우로보로스의 계획을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인간들을 모조리 돌려보낸 자.
머리 위에 신조를 올린 자의 곁에 있던 늑대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만한 힘을 품은 채 신지 밖으로 나온 것을 보면 보옥을 모두 되찾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가볍게 혀를 찬 우로보로스가 입을 열었다.
<철저히 준비했군.>
그 말에 늑대가 미소를 지었다.
<넌 선을 넘었다.>
<크흐흐흐. 선? 이 세계는 원래 우리의 것이었다!>
늑대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불쌍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고, 그걸 본 우로보로스는 비늘을 세웠다.
비록 인간의 영육을 섭취하지는 못했지만, 세계를 속여 그 구성 요소의 한 자리를 차지한 지금은 점점 힘이 강해지고 있었다. 점점 예전의 몸을 되찾아 하늘을 뒤덮고 있었지만, 이 순간의 고정이 풀리면 잃어버릴 터.
그러니 그 전에 저 아래에 있는 빛나는 자들을 먹어치우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했다.
그래야 이 세계를 삼킬 수 있을 테니까.
우로보로스가 하늘 위에서 몸을 부르르 떨자 그의 비늘이 하늘에서부터 떨어져 내렸다.
쿵! 쿵! 쿵! 쿵!
우로보로스가 커졌던 만큼 그 비늘 하나하나의 크기도 거대했다. 수천 개의 비늘이 바닥에 떨어졌고, 비늘이 형태를 이뤘다.
뱀의 머리를 지닌 존재는 두 다리로 바닥을 딛고 서서 두 팔을 뽑아냈다. 그 수천 개의 존재는 뱀 인간.
그들이 내뿜는 스산한 살기에 그곳에 모인 이들이 숨을 깊게 몰아쉬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호박색 눈동자를 가진 수천 마리의 뱀 인간.
하늘에서 점점 커지는 우로보로스의 그림자가 별이 가득한 하늘을 가리는 중에 지상에는 수천 마리의 뱀 인간이 조금씩 다가온다.
카이는 그걸 가만히 바라보다가 하늘로 빛의 마법을 쏘아 올렸다. 작은 구체였지만, 황궁 상공에 떠오른 빛의 구체가 폭발하는 순간 황궁을 대낮처럼 밝혔다.
뱀 인간들이 그 순간 달려들기 시작했다.
고작 수천이지만 신장 3미터가 넘어가는 그들의 돌진은 황궁 전역을 울리고 있었다.
카이는 굳이 그들을 향해 마법을 쏟아내지 않았다. 지금 상대해야 하는 것은 저 하늘의 뱀이었으니까.
달려오는 뱀 인간들을 바라보던 퀸이 턱짓하자 나이트와 룩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장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타고 있는 전투 인형 마와 함께 달리는 그들의 뒤로 기사단들도 내달리기 시작했다.
전투마를 타고 달리는 대륙의 이름 있는 기사단의 선두는 퀸즈 나이츠가 장식하고 있었다.
급격하게 좁혀지는 거리.
뱀 인간들이 팔을 휘두르는데 그 팔이 길게 길어져 뱀의 형태로 변했다. 나이트는 머리를 향해 날아드는 뱀의 공격에 고개를 숙여 피하고는 그대로 들고 있던 창을 내질렀다.
콰앙!
나이트의 돌진이 적중한 순간 뱀 인간은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튕겨 날아갔다. 그 육중한 몸을 날려버릴 정도의 충격량을 선사했지만, 돌진에 사용한 랜스 또한 박살 났다.
나이트의 뒤를 따르던 기사단의 랜스도 각기 뱀 인간들의 몸에 박혔다.
뱀 인간들이 튕겨 날아가 바닥을 굴렀지만, 그렇게 쓰러진 자들을 보면서도 나이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이 정도 충격이면 어지간한 몬스터들도 박살이 날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는데 랜스 차지에 당한 뱀 인간들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으니까.
그 몸의 강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 움직임은 나이트가 충분히 따라 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 육체의 내구성은 어지간한 공격이 통하지 않을 정도라는 것을 알았다.
말없이 검을 뽑아 든 나이트의 검 위로 불꽃이 맺히는 동안 뱀 인간들과 기사단이 격돌했다. 그리고 비명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카이는 부서져 나가는 뱀 인간보다 그들에게 잡아 먹히는 인간들을 보았다. 그렇게 죽은 인간들이 늘어갈수록 저 상공에 있는 뱀의 힘이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곳에 있는 이들이 가진 영육의 힘은 일반인과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 만큼 그들 하나하나를 잡아먹을 때마다 뱀의 힘이 커지는 것이겠지.
그러나 뱀 인간의 수도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뱀 인간의 육신은 단단했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의 수준도 상당했다. 대륙의 최정예들을 모아 놓았는데 그리 쉽게 무너질 리가 없었다.
그렇게 돌진하던 나이트가 처음으로 멈춘 것은 지금까지 보였던 뱀과 확연히 다른 자를 만나면서였다. 키는 5미터에 달하고 비늘의 색도 검은 존재.
뱀 인간이 휘두른 팔은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속도와 위력을 지녔다.
콰카칵!
나이트가 방패로 흘려냈지만, 그 위력에 말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말 또한 전투 인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그대로 뱀 인간의 배를 들이받았다.
쿠그그극.
5미터에 달하는 뱀 인간은 그 충격을 그대로 받아냈다. 뒤로 밀려나긴 했지만, 왼팔을 내리쳐 전투마의 머리를 으깼다.
나이트는 전투마가 죽는 그 순간에 이미 몸을 날려 뱀 인간의 명치에 검을 꽂아 넣었다. 사선으로 깊숙이 들어간 검에 뱀 인간이 비명을 지르며 주먹을 휘둘렀다.
방패로 받아낸 나이트가 저 멀리 날아가 바닥을 구르는 것을 보고 뱀 인간이 포효를 내지를 때 그 목을 잘라내는 자가 있었다.
7성급 기사 바위의 기사 엔타로의 대검이 뱀 인간의 목을 잘라냈다.
“괜찮은가?”
처음부터 나서지는 않았지만, 그들도 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유달리 강해 보이는 거구의 뱀 인간들이 나타났을 때 움직였다.
거구의 뱀 인간들이 나타나며 전장의 분위기가 기우나 싶었지만, 7성급 강자들이 나서면서 다시 전장의 분위기를 되찾아 왔다.
저 하늘에 떠 있던 우로보로스는 인간의 영육을 잡아먹으며 강해지는 속도와 그들을 잡아 죽이기 위해 내보낸 것들에서 조금씩 자신이 손해를 보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인간과 달리 자신이 부리는 비늘을 이용해 만드는 뱀 인간은 무한하다. 그러나 인간은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 것.
우로보로스는 저 밑에 있는 카이와 늑대를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그나마 자신과 싸울 수 있는 존재는 저 둘이다.
자신은 인간의 영육을 취하면서 더 강해졌지만, 늑대는 신지의 힘을 품고 튀어나왔다. 그러나 지금의 신지는 완벽하지 않았다.
자신까지 있어야 신지의 온전한 힘을 낼 수 있지만, 자신이 나온 순간부터 신지는 과거에 비해 약해졌으니까.
다만 카이는 달랐다. 저 신조의 대마도사는 무엇을 기다리는지 자신과 싸우려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시간은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우로보로스는 어리석은 자들을 비웃으며 자신의 힘을 키우기 시작했다.
돌싱 후 대마법사-격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