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싱 후 대마법사-140화 (140/150)

140화 이루다

마베르니가 교국으로 떠난 것이 그녀의 마지막 소원인 것도 알았지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녀가 부당한 대우를 받아 죽기라도 한다면 나설 생각까지 하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며칠이 지나도 별다른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 놓고 지배력을 높이는 것에 집중하고 있던 카이는 문득 세계에 균열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작은 균열.

그 사이로 떨어져 내린 것이 세계에 허락되지 않을 정도의 격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뱀’인가?

일식은 아직 남았는데?

의아함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일단은 확인이 먼저다.

늑대가 현현한다고 해도 이만한 격을 뿜어내지는 못할 것을 알았기에 카이는 곧장 교황청이 있는 곳으로 공간 이동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두눈에 담을 수 있었다.

허공에 십 미터 정도 떠오른 채 다가오는 존재.

투신 헥토르.

그러나 그의 두 눈에는 눈동자 대신 광휘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단순히 그것만으로 교황청의 보호 마법진이 부서지고, 건물이 박살 나고 있었다.

시공을 지배하는 정도가 아니라 존재만으로 주위가 무너지고 있었다.

그제야 카이도 알았다. 세계가 정한 한계를 넘어선 힘을 투사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저 존재는 이미 투신 헥토르가 아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이질 적인 것.

그런데 교국에서는 왜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도와야하나 싶었을 때 교황청에서 상공으로 뿜어져 올라가는 신성력이 점점 거대해지고 있었다. 그것은 성급을 넘어서는 위력을 지닌 마법의 전조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상대는 세계의 한계를 넘어선 존재였으니 저 정도 마법이 통할 리가 없었다. 그래도 보고 싶었다.

교국이 준비한 것이 통할 것인지.

이 정도 규모의 마법은 카이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대충 봐도 어떤 형식으로 이뤄진 마법인지는 알 수 있었다.

신심을 가지고 적에 맞서 죽어간 이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위력을 증폭시키는 마법. 게다가 시엘이 오랜 시간 축복을 내린 성지의 힘까지 끌어와 만든 신성 마법이었다.

카이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이에 교황청의 상공에는 30미터나 되는 거대한 검이 만들어졌다. 보는 것만으로 그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마법이었다.

“심판의 검.”

성서에 나오는 피스토를 심판했다고 알려진 시엘의 검.

그 위력만큼은 확실하다. 저건 8성급 대마법사나 육체 강화자들도 막아내지 못한다. 아니, 피하지도 못한다.

필중의 마법.

그제야 제국이 쉽사리 교국을 넘보지 않은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저 하늘 신 시엘을 따르는 교도들 때문이 아니다.

지금 보여주는 저 마법. 8성급 대마법사가 시공에 간섭해도 피할 수 없는 필중의 마법이고 그 위력은 그들이라고 해도 경시할 수 없다.

교황청을 공격한다면 8성에 이른 초인을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각오를 해야만 노릴 수 있었다. 그러니 제국에서도 감히 이곳을 노리지 못했던 것.

그런 마법이 헥토르의 가슴에 꽂혔다. 심판의 검에 꿰인 헥토르.

그걸 보고 카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젠장.”

호기심이 마법사를 죽인다고 하더니.

신성력 가득한 검에 꿰인 헥토르의 몸에 균열이 일어나며 그 전신에서 광휘가 뿜어져 나온다. 심판의 검에 맺혔던 신성력을 받아 오히려 자신의 힘으로 품었다.

신성력이라는 힘은 카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힘이었다. 그런 힘을 몸에 두른 헥토르의 손에 빛나는 방패와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헥토르. 하지만 저 안에 깃든 것은 헥토르가 아니다.

전쟁의 신 마르스.

저 방패와 창이 신조만큼은 아니나 그만큼이나 강력한 무기라는 것을 알았다.

심판의 검에 담겨 있던 힘이 그 주인이 바뀐 채 고스란히 담겨 있는 창과 방패. 그걸 든 헥토르가 천천히 움직이던 것과 다르게 섬전과 같은 속도로 교황청을 향해 돌진했다.

창과 방패까지 든 헥토르의 움직임에 세계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교황청이 박살 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가만둔다면 세계가 규정한 한계 이상의 힘으로 세계가 무너질 지도 몰랐다.

그래서 카이가 공간 이동으로 그 앞을 막아섰다.

조금 전에 펼친 심판의 검에 모든 것을 쏟아냈는지 교황청을 감싸던 빛도 약해진 상태.

카이가 앞을 막아서자 헥토르가 멈춰섰다. 광휘를 뿜어내던 눈이 움직이더니 눈동자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전과 달리 빛을 뿜어내는 눈동자였다.

카이는 그런 헥토르와 눈을 마주쳤다.

“카이?”

“그래. 나다. 헥토르.”

헥토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이건 성전이다.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야.”

“아니. 미안하지만 세계가 규정한 힘을 넘어선 힘을 뿜어내고 있어. 이대로면 세계가 무너진다.”

헥토르의 주위에 일렁이는 공간이 깨져나가는 것을 보며 카이는 지금 상황을 일러주었다. 그 말에 헥토르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손에 들린 창과 굵은 팔뚝을 바라보던 헥토르는 그제야 카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짐작했다. 피부에 균열이 간 채로 그 사이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빛.

전쟁의 신 마르스를 몸에 품은 자신은 카이를 만나 잠깐 의식을 차렸지만, 오래 유지할 수는 없다는 것도 알았다.

자신은 화신. 신에게 몸을 내준 자였으니까.

카이를 만나 잠깐 의식을 차렸지만, 그것도 한계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럼 막아봐라.”

헥토르는 그리 말하고는 그대로 창을 들어 던졌다. 심판의 검처럼 필중의 마법은 아니었으나 그 위력은 그에 못지않았다. 카이도 막아내려면 무리가 될 수밖에 없는 공격.

카이가 공간 이동으로 피하자 한줄기 섬광이 된 창은 그대로 교황청으로 날아갔다. 그 목표가 어디였는지 파악할 틈도 없었다.

곧장 방패로 몸을 가리고 돌진해오는 헥토르를 향해 신조를 날려야 했으니까.

꽈아앙!

심판의 검에 깃들었던 신성력을 전환하여 자신의 힘으로 삼았다고 하나 신조는 그보다 더 강력했다.

신성력이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의 하나이듯, 신조 또한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였다. 그것도 아직 다른 누구도 사용하지 못하는 오직 카이만 다룰 수 있는 요소.

그렇기에 그 위력은 헥토르가 가지고 있던 빛의 방패를 으깨고 그를 뒤로 튕겨 날려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헥토르가 저만치 날아간 것을 보았지만, 카이는 그보다 교황청 쪽을 돌아보았다. 섬전처럼 날아갔던 창은 교황청이 아니라 저 지하를 노렸다.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떠올린 카이가 헥토르를 돌아보았다.

“피스토를 깨울 생각이냐?”

카이가 뒤를 돌아본 것은 용맥의 힘으로 봉인 술식을 펼쳤던 것이 깨져나간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지간한 힘으로는 깰 수 없을 거라 여겼던 봉인 술식을 단번에 뚫어버린 창.

봉인지가 깨진 순간 그 틈으로 빠져나가는 놈이 느껴졌다. 카이가 그걸 감지하고 공간 이동을 하려 할 때 그의 앞에 헥토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헥토르는 카이를 올려다보며 손을 뒤로 뻗었다. 봉인지를 부쉈던 창이 돌아와 손에 잡히자 헥토르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정확히 헥토르의 내면에 있는 자가 웃고 있었다.

“난 저 하늘의 시엘을 떨어트릴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할 생각이지.”

피스토의 봉인지를 부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시엘을 엿 먹이기에 가장 좋은 것은 시엘의 대적자를 깨우는 거다.

카이는 헛웃음을 삼키고는 헥토르의 내면에 깃들어 있는 마르스에게 물었다.

“이유는?”

“그년에게 갚아줘야 할 빚이 있거든.”

“그래서 만족하나?”

교황청의 봉인지를 부수고, 그 여파로 교황청의 건물이 반쯤 무너져 내렸다. 게다가 오랜 시간 시엘의 은총을 받아왔던 성지는 지금 마르스의 신성력이 깃들면서 그 빛이 바라고 있었다.

희생 주문까지 써서 만든 심판의 검은 이 성지에 깃들어 있던 은총 중 많은 부분을 끌어왔었고, 그 신성력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회수한 마르스가 들어서면서 그 빛이 퇴색되었다.

마르스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소리냐? 그 년이 했던 대로 나 또한 그 년의 종들을 모조리 잡아 죽일 것이다.”

마르스의 전신에서 흉포한 전의가 들끓어 오른다. 전쟁의 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가 뿜어내는 전의를 마주하니 전장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었다.

천군만마를 등에 업고 달려오는 적장의 앞에 선 느낌.

그러나 카이는 미소를 짓는다.

그게 어쨌다는 말인가?

자신은 오롯이 홀로 선 자.

인간이었으나 저 신격을 가진 존재와 마주설 수 있는 자격을 거머쥔 자였다.

“그건 내가 허락 못 하겠다.”

카이의 서늘한 대답에 마르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헥토르의 얼굴을 한 채로 굳어진 표정의 마르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지. 하지만 그건 단지 자격일 뿐이다. 애송이.”

“자격?”

9성에 오른 것을 말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지만, 답을 들을 틈은 없었다. 마르스가 창을 쥔 채로 달려들었으니까.

마르스의 창은 카이조차 막기보다는 피해야 할 정도로 강력했다. 게다가 저 빛의 방패. 신조의 공격을 막고 그 충격을 모두 해소하지는 못했지만, 다시 형태를 수복한 것을 보면 막아낼 수는 있다는 뜻이었다.

세계의 한계를 넘어서는 힘은 결국 세계를 좀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카이가 쓸 힘도 정해져 있었다.

단숨에 거리를 좁힌 마르스의 창이 날아들 때 카이는 빙옥을 꺼냈다. 과거에는 빙옥으로 그저 상대를 가두거나 자신의 몸을 감싸는 데 썼지만, 지금은 단단하게 굳은 빙옥을 비스듬히 세워 흘려내는 것도 가능했다.

콰카칵!

태초의 얼음을 다룬 빙옥이 산산이 박살 났지만, 그래도 창을 흘려내는 것은 성공했다. 창이 흘려내진 순간 날아든 것은 방패의 날이었다.

전쟁의 신이라는 위명에 어울릴 만큼 마르스의 움직임은 사고를 가속한 카이의 인지에도 빈틈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빨랐다.

카이는 자신의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방패의 날을 보며 신조를 날렸다. 지척에서 날아가는 신조의 움직임은 마르스의 움직임보다도 빨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르스도 신조에게 그냥 당하지 않았다. 날아드는 신조를 방패로 튕겨내기까지 했으니까.

한 번 부딪쳐 보고 마르스는 카이의 가장 강력한 수가 뭔지 파악해 냈다. 신조를 이용한 공격. 신조의 격과 위력은 이미 파악했고, 카이가 빙옥으로 자신의 창을 흘려낸 것처럼 날아드는 신조를 튕겨냈다.

그러나 카이는 그렇게 만들어진 팀을 놓칠 정도로 어리숙한 마법사가 아니었다. 그렇게 드러난 틈으로 카이의 전격 마법이 날아가 꽂혔다.

파지지직.

그 위력은 성급으로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영창도 수인도 필요 없었지만. 그 위력만큼은 8성의 육체에 깃든 마르스도 받아넘길 수 없을 정도였다.

날카롭게 벼려낸 뇌전의 창은 그대로 복부를 관통했지만, 마르스의 상처는 금세 아물었다. 다만 공격을 이어가지는 못하고 충격에 뒤로 밀려났던 마르스를 향해 바닥을 부수고 올라오는 사슬이 있었다.

그것은 마르스가 부쉈던 봉인지의 봉인 술식을 이루고 있던 용맥의 마나를 이용한 사슬. 굵직한 사슬이 단숨에 마르스를 휘감았다.

“고작 이딴 거로!”

카이도 큰 욕심을 낸 것은 아니었다. 결정타는 신조가 낼 것이나 그 과정을 엮어가는 마법사인 자신이 할 일.

그래서 지금 이곳에서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할 생각에 봉인지에 만들었닥 끊어진 봉인 술식에 다시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런데 봉인지에서 튀어나온 사슬은 그가 예상하던 위력 이상의 힘을 냈다.

그리고 그것이 시엘의 신성력이라는 것까지도 짐작하기 까지는 찰나.

마르스가 단숨에 끊어내려고 했던 사슬은 용맥의 마나와 시엘의 신성력이 더해지며 쉽게 끊어지지 않았고, 그렇게 만들어진 틈으로 신조가 날았다.

카이가 원하지 않아도 신조는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신조가 뚫고 지나간 자리에 마르스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났다.

마르스의 심장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것은 피가 아니라 빛이었다. 빛의 폭포가 쏟아져 내리면서 급격하게 마르스의 격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저 빛 하나하나가 모두 마르스가 이곳에 머물기 위한 신성력이었으니까.

그러나 마르스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죽어가는 자라고는 믿기 힘든 표정이었다.

“뭐가 그리 좋은 거냐?”

마르스는 자신의 가슴에 난 구멍에서 쏟아지는 빛을 내려다보며 답했다.

“이것으로 이 땅에 시엘의 축복은 없어졌으니까.”

그제야 은총이 가득했던 땅에서 시엘의 영향력이 옅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르스는 흡족하다는 듯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어갔다.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이것으로 이제 이 땅에 시엘의 성녀는 태어나지 않는다.”

마르스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핏물처럼 웃는 그의 입에서 빛이 튀어나왔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너의 목소리는 더는 이 세계에 닿지 않는다. 크흐하하하.”

고작 그걸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건가 싶었지만, 마르스는 이 세계에서 시엘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자신의 성혈을 쏟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자였다.

그렇게 쏟아내던 빛이 점점 색이 옅어지더니 붉은 피가 되었을 때 헥토르의 눈빛이 돌아왔다. 그는 카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덕분에 원하던 것을 이뤘다.”

신을 품고, 그의 뜻을 행하는 것이 신도가 얻을 수 있는 극치의 열망이었다. 그걸 풀어낸 헥토르는 그 가공할 수준의 무력과 격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교황청에 추락하는 헥토르를 내려다보던 카이도 하늘에 시선을 주었다.

정말 시엘의 은총이 더는 이곳에 내려오지 않는 것인가?

마르스의 말처럼 교황청에 가득했던 시엘의 빛은 혼탁하게 변해버렸다.

이래서 시엘은 일식에 나서지 못했던 건가?

잠시 사색에 잠겼던 카이의 어깨 위에 올라온 신조가 부리로 그를 두드렸고 돌아본 카이의 시선에 신조가 물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신조의 부리에 보옥이 하나 물려 있었다.

돌싱 후 대마법사-보옥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