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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38화 (138/150)
  • 138화 또 다른 예언

    제국의 황도로 돌아온 카이는 자신이 머무는 곳으로 모든 7성급 강자들을 소환했다.

    소환의 반지로 불려온 이들의 시선이 모두 카이에게 향했다. 카이가 9성에 올라 그들에게 강제로 소환의 반지를 끼울 때 이후로 처음 만난 것.

    카이가 8성에 오를 때 대부분 대륙의 큰손으로 만났던 이들이지만, 지금은 카이의 소환에 응해 모일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했다.

    그것에 불만을 가진 이들도 있었지만, 정말로 소환되자 그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 갑작스러운 만남에 그들은 불만이 있었지만, 감히 표하지 못했다.

    카이는 그들을 한차례 훑어본 후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폭풍의 기사 안드레스가 암살당했다.”

    그 한 마디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7성급 강자들은 서로 붙기 전에 승패를 장담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가 죽었다는 건 이곳에 있는 누구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누구에게 당한 겁니까?”

    카이는 그 물음에 순순히 답했다.

    “투신 헥토르다.”

    모두가 숨을 죽이는 것을 보고 카이가 소환의 반지 하나를 들어 보였다.

    “이건 안드레스가 끼고 있던 소환의 반지. 알다시피 이 반지는 뺄 수 없지. 미리 말해두지 않았지만, 이걸 빼는 순간 바로 알아볼 수 있지.”

    카이는 소환의 반지를 좌우로 돌리며 말을 이었다.

    “물론 손가락을 자르면 내가 알 수 있었지. 투신 헥토르는 안드레스의 손가락을 잡아 뽑고 있었기에 이상을 파악할 수 있었고, 확인하러 갔다가 만났다. 투신 헥토르.”

    카이는 소환의 반지를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투신 헥토르는 8성의 한계를 넘어 이제는 시공을 지배하는 수준에 올랐기에 급히 소집했다. 놈이 선공을 취하면 내가 나선다고 해도 구할 수가 없더군. 소환의 반지를 들킨 이상 공간 이동이 가능해진 헥토르의 손에서 살아남으려면 일단 모두 몸을 빼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언질을 줄 기회는 줬어야 하는 것 아니오? 그냥 자리를 비우면 얼마나 귀찮아질지 알고 있소?”

    카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고작 돈이 걸린 문제일 테지. 이렇게 모두를 소환해서 한 자리에 모아둬야 해. 적어도 이곳에서는 아무리 헥토르라고 해도 수작을 부리지 못하니까.”

    “설마 이곳에 계속 있어야 한다는 겁니까?”

    카이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식이 있을 때까지 이곳에 있어야 한다.”

    마탑 연합의 마스터 룬드그린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내가 비록 하는 일이 별로 없다고 해도 약속한 시각까지 진행하던 일이 있었네.”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너희 다 뒈질뻔한 걸 구해줬더니 뭔 개소리야?”

    룬드그린은 그제야 한쪽에 조용히 앉아있던 이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숨을 죽였다.

    카이는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냥 소환해서 시간만 죽이라고 부른 거 아니야. 마법사님들은 여기 테오르님이 가르침을 주실 거고, 육체 사용자들은 여기 맥클랜님이 가르침을 주실 겁니다.”

    그 말에 모인 이들은 표정을 굳혔다. 8성에 오른 기사와 대마법사의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놓치기에는 너무 유혹적이었다. 그들이 자리를 비운 것 때문에 대륙이 시끌시끌해지겠지만, 그들도 8성에 오르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켜고 있던 이들이다.

    그들의 가르침을 받을 기회를 얻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곳에서 마음 편히 수련에 집중들 해. 일식에서 살아남고 싶으면.”

    그나마 ‘일식’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모아놓은 이들. 얼마나 흉험한 싸움이 될지 모르는 지금은 그들을 가르쳐서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까지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헥토르가 돌아오자 우로보로스는 천천히 눈을 떴다. 함께 보낸 분신이 돌아오면서 당시의 기억을 되찾은 우로보로스가 헥토르를 빤히 바라보았다.

    <···너?>

    “뭘 그리 놀라?”

    우로보로스는 잠시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장 쓸만한 녀석이라 함께 하기로 했지만, 너무 강해졌다. 다른 마음을 품어도 충분할 정도로.

    이건 단순히 재능의 영역이 아니다.

    신조의 대마도사가 그만한 힘을 얻은 것은 세계가 선택했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헥토르는 아니다.

    그만한 재능도, 선택도 받지 못한 자가 이만한 경지에 든다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의 개입이 있었다는 얘기다.

    <언제부터냐?>

    “조금 됐지. 왜?”

    <너 나랑 함께하겠다고 한 것도 네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였나?>

    “그런 셈이지.”

    헥토르는 순순히 인정했다.

    <지금 밝힌 이유가 뭐냐? 내가 널 잡아먹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

    헥토르가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가능할까?”

    헥토르가 그리 말하며 시공을 지배하자 우로보로스의 눈빛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지금 만약 헥토르와 싸운다면 놈을 죽일 수는 있다.

    하지만 소화도 제대로 하지 못한 지금 헥토르와 싸운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렇게 힘을 잃어서는 일식에 맞춰 계획한 일을 벌일 수 없다.

    헥토르도 그걸 알고 하는 수작이다.

    <···진짜로 원하는 게 뭐냐?>

    “많은 걸 원한 건 아니야. 네가 신지에서 가지고 나온 보옥이 필요하다.”

    <너 감히···!>

    “인간의 영육을 그만큼 소화한 너에게는 이제 의미가 없잖아.”

    <처음부터 이걸 노린 거였나?>

    “아니. 처음에는 그저 널 따라 수많은 강자와 싸우며 이 갈증을 해소할 생각이었는데 내가 준비가 되었음을 알았기에 그걸 확인했고, 이제 내 계획을 실현할 생각인 거지.”

    우로보로스는 그 말에 헛웃음을 흘렸다. 보옥이 가진 힘은 외게의 힘을 현계에 현현할 수 있도록 하는 힘. 자신이 신지에서 현계에 힘을 발현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

    이곳에서 영육을 소화하며 힘을 얻은 지금은 큰 필요가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헥토르가 그걸 가지게 되면 다르다. 저자가 원하는 것은 보옥을 이용해 전쟁의 신을 현현하게 하려는 것. 스스로 그릇을 자처하기까지 하니 정말로 전쟁의 신을 현현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보옥은 줄 수 있다. 하지만 날 방해하게 둘 수는 없어.>

    “널 방해할 마음은 없다. 난 내 일을 할 뿐이니.”

    보옥을 내놓고 보내던가 아니면 이 자와 싸워야 하는데 수지가 맞지 않았다. 소화를 포기하고 싸워서도 승산은 있지만, 피해가 크다. 그리되면 일식을 놓치게 될 터.

    그걸 알기에 헥토르가 이런 제안을 해온 것이겠지.

    우로보로스가 천천히 입을 벌리자 혓바닥 위에 놓인 보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날 적대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면 내주마.>

    “얼마든지.”

    헥토르가 손을 들어 올리며 마력을 일으켰다. 주위의 마나가 그와 공명하기 시작했다.

    “나 헥토르는 우로보로스를 적대하지 않겠다.”

    헥토르가 시공을 지배한다고 해도 마나의 맹약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그걸 알았기에 우로보로스도 순순히 보옥을 넘겼다.

    보옥을 받아든 헥토르가 씨익 웃고는 답했다.

    “함께해서 즐거웠다. 다시는 보지 말자.”

    그 말을 끝으로 사라진 헥토르를 바라보던 우로보로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맹약도 맹약이지만, 놈이 자신과 운명이 교차했다면 그 정도는 명징하게 느꼈을 터였다.

    그래도 만약을 위해 맹약을 받고 보냈다.

    전쟁의 신을 현현한다면 그것 자체로 모든 시선이 쏠릴 터. 그렇게 세간의 시선이 쏠리는 동안 자신은 소화를 마치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면 될 일이다.

    영지에서 추방당하고 돌아온 델라니는 봉인지로 돌아갔다. 마베르니는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복수라는 마냥 미소 짓던 그 얼굴이 잊히지 않았다.

    이 세계에 유일한 신 시엘이 주도하지 못하는 종말이라니?

    그래서 확인하기 위했던 ‘피의 거울’도 부서졌다. 예언가는 성녀보다도 귀한 존재들.

    예언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만 태어나는 이들. 마베르니 이후로 태어난 예언가가 없었다. 어쩌면 그녀가 살아있기에 다음 예언가가 태어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손에 있었다면 대답하지 않는 그녀를 죽이고 다음 예언가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일식, 종말의 날에 설령 시엘이 주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을 생각해서라도 그녀를 죽였을 터. 그러나 모든 것이 실패했다.

    마베르니를 지키던 퀸이라는 존재.

    성기사들이 반응조차 못 하는 괴물. 8성에 이른 기사라면 홀로 무슨 짓까지 할 수 있을지 잘 알고 있기에 수작도 부리지 못하고 추방당했다.

    봉인지에 돌아온 뒤로 델라니는 조용히 칩거한 채로 봉인지를 지키는 것에만 집중했다.

    예언가가 귀하디 귀한 존재지만 교국 내에서의 입지는 성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제 입맛대로 했던 것.

    그래서 금제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델라니가 한숨을 내쉬며 봉인지를 바라보고 있을 때 무녀 하나가 다가왔다. 외부의 연락을 전하는 무녀가 다가와서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델라니는 성녀에서 은퇴하고 봉인지를 지키면서 알았다. 과거에 성녀일 때 알고 지내던 이들과는 완전히 연이 끊겼음을. 찾아오는 손님 하나 없음을.

    대를 이어 새로운 성녀에게 그 지위를 물려주면 그 인연까지 모두 새로운 성녀가 끌고 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자신을 찾아온 손님이라니?

    “불러와.”

    무녀가 물러났다가 데리고 온 손님을 보고 델라니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곳에서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인물이 그곳에 서 있었다.

    “마베르니 네가 여기에는 무슨 생각으로 온 거냐?”

    자신을 비웃고 예언을 알려주지 않고 추방했던 마베르니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솔직히 새로운 예언자를 구하기 위해 그녀를 죽이고 싶어 했던 델라니였기에 더욱 그녀의 방문이 믿기지 않았다.

    “당신에게 예언을 알려줄 수는 없었어요. 일식에 일어나는 일은 우리 교단이 힘을 쓸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델라니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자 마베르니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예언은 여전히 말해주지 못해요. 이미 시엘 님께 고해했거든요.”

    고위 성직자는 고해하는 것이 가능했다. 오직 시엘에게만 전하는 이야기는 그 고해를 마치면 온전히 잊어버린다. 그런데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뭘까?

    “그럼 뭘 원하는 거지?”

    마베르니는 잠시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있는 봉인지를 돌아보았다. 델라니가 이곳에 자신을 초대했다는 것은 다른 마음을 먹은 것임도 알았지만, 일부러 이곳에 왔다.

    델라니가 찾아와 ‘피의 거울’을 통해 새로운 예언을 본 것은 의도치 않은 일이었지만, 그렇게 폭증한 예언을 보면서 왜 당시에 교국이 그 일에 연관이 없게 된 것인지도 필연적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봉인지에 갇혀 절대로 피스토가 나올 리가 없음에도 그가 모습을 드러낸 이유까지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카이에게 전하지 않은 것은 그 일은 오직 교국의 일이었다. 그들이 끌어안고 해결해야 할 일.

    “전쟁의 신에 대해 알고 계시죠?”

    “마르스를 말하는 건가?”

    “예. 전쟁의 신 교단이요. 교국에서 말살했던 전쟁의 신 교단에서 투신이 태어났다는 것은 알고 계시죠?”

    “알지. 그 괴물.”

    사실 투신 헥토르는 몇 번이나 죽이고자 했었다. 전쟁의 신 교단을 이단으로 규정, 이단 심문관들과 성기사는 물론이고 당시 델라니까지 나서서 전쟁의 신 교단을 밀어버렸다.

    감히 성전이라고 불릴 만큼 치열했던 날.

    제국이 교국을 쓰러트리지 못하는 이유처럼 그렇게 밀어버렸던 전쟁의 신 교단의 교도들은 대륙 각지에 흩어져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중 헥토르라는 괴물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자신의 교단에 대해 숨기고 수많은 대련을 일삼는 것으로 유명했던 녀석이 6성에 올랐을 때 전쟁의 신을 따르는 신도라는 것을 알아냈다.

    사실 은근히 흘리고 다녔기에 알아냈던 것. 수많은 이단심문관들이 암암리에 그를 암살하고자 했지만, 모두가 실패하고 오히려 7성에 올라버렸다.

    그때부터 이미 투신이라 불리던 그는 죽이기에는 너무 커져 버렸다. 그러던 헥토르가 8성에 오르면서 일이 커졌다.

    다행이라면 헥토르도 교국을 상대로 시비를 걸어오지는 않았다. 대신 교국에서 헥토르의 눈치를 보고 델라니가 성녀에서 은퇴했다.

    “그런데 투신은 왜?”

    “그가 올 거예요.”

    델라니의 표정이 싹 굳어졌다. 지금까지 투신은 교국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왜 갑자기 교국을 온다는 건가?

    델라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본 거야?”

    마베르니는 그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뜻이 옳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저 또한 시엘의 종. 교국과 함께하기 위해 왔어요.”

    돌싱 후 대마법사-흙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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