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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36화 (136/150)
  • 136화 준비

    아무리 카이가 태초의 속성을 다룰 수 있다고 해도 한 자리에서 용맥을 끌어와 원하는 곳에 자리하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카이는 황도에서 원하는 좌표로 이동해 용맥을 하나씩 글어오기 시작했다.

    일단 용맥을 모두 끌어내고 그 용맥의 지류를 이용해 그려내는 마법진. 용맥을 끌어오는 것과는 수준이 다른 작업이었다.

    지표면 아래로 만들어지는 용맥을 이용한 마법진이라는 것을 계획한 것은 카이였지만, 그렇게 용맥을 하나씩 끌어오면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렇게 용맥을 원하는 대로 끌어온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곳의 용맥이 사라진다는 것.

    그것은 세계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걸 알면서도 이런 방법밖에 취할 수 없었다. 단순히 이만한 대규모 마법진을 고작 공간 이동에만 사용하는 것은 낭비였다.

    세계의 균형이 깨질 정도의 작업이라면 공간 이동 후에도 자신에게도 도움이 될 마법진을 계획하는 중이었다. 그러는 중에 황궁 보고의 보물들을 옮기는 것은 모두 테오르가 직접 나르고 있었다.

    카이가 옮겨주면 편하겠지만, 황제는 숨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무리 보물들을 옮긴다고 해도 황도가 무너진다면 제국은 다시 일어서는데 못해도 수십 년은 걸릴 터였다.

    그리고 그때 다른 왕국에서 마음먹기만 한다면 제국은 갈가리 찢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테오르와 맥클렌이 멀쩡하다면 쉬이 당하지는 않으리라.

    용맥 자체를 끌어오는 것은 오래 걸릴 일이 아니었지만, 그 지맥으로 황도 전체를 아우르는 마법진을 만드는 것은 카이에게도 하루이틀 만에 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단순히 마법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간 이동을 펼친 후에도 도움을 얻기 위해 손을 쓰다 보니 무려 십 일이나 걸렸다.

    카이가 다시 황궁을 찾았을 때 클레바논은 수척해져 있었다. 그는 카이를 바라보며 담담히 물었다.

    “다 되었나?”

    “예. 공간 이동할 곳도 이미 지정해 두었습니다.”

    “거기가 어딘가? 괜히 그곳에서 굶어 죽으면 안 될 텐데.”

    “그건 아직 비밀입니다. 황도 전체의 인구가 며칠은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식량을 비밀리에 옮겨 놓겠습니다.”

    클레바논은 술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한잔하겠나?”

    카이가 순순히 술잔을 받아들자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른 클레바논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황위를 물려줄까도 고민했었네.”

    제국이 파산할 수도 있는 전쟁이 다가오고 있으니 최악의 황제로 남지 않기 위해서라도 황위를 물려줄 생각까지 했던 것. 그러나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가장 무능한 황제로 기억될지 몰라도 그 오명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만약 자식에게 물려준다면 무너진 제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영광된 이름을 남겨주고 싶었다.

    그런 고민을 하느라 수척해진 클레바논을 보며 카이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살아남기만 한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겁니다.”

    클레바논은 그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솔직히 다시 일어서는 기회는 황태자에게 주고 싶군. 그보다 공국을 지정하고 미리 넘겨야겠어. 재산도 자연스레 넘겨주고.”

    “그러시죠.”

    공국을 넘기는 데만 걸리는 시간을 10년으로 잡았는데 두 달도 되지 않아 넘기겠다는 것은 귀족들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공공연하게 제국의 재산을 빼돌릴 수 있는 방법의 하나였으니.

    카이가 옮겨주지 않는다면 테오르가 아무리 온 종일 보물을 옮겨도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카이가 이곳에서 재물이나 공간 이동시켜주고 있을 시간도 없었고.

    “이곳이 전장이 되었으니 싸울 수 있는 이들을 모아올 생각입니다.”

    “그건 편한 대로 하게. 그보다 싸울 수 있는 이들이라면 어떤 이들인가?”

    “‘뱀’도 피스토도 홀로 싸울 놈들이 아니니 그들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인원들을 추려야죠. 대륙에서 7성 이상 되는 이들을 모두 끌어모을 생각입니다.”

    “7성급 이상 모두를?”

    그 인원이 많지는 않지만, 그 정도는 되어야 도움이 된다.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클레바논은 술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멋지군. 제국의 운명. 아니지 세계의 운명을 다른 이에게 맡길 날이 올 줄은 몰랐지만 잘 부탁하네.”

    카이는 그 말에 술잔을 싹 비우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눈앞에서 사라진 카이가 있던 곳을 바라보던 황제도 술잔을 비웠다.

    제국에서 발표한 클란드라 황녀에게 공국을 내린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대륙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에빌 마탑에서 시작했던 9성의 벽을 넘은 최초의 대마도사에 대한 소문이 훨씬 더 소란스러웠으니까.

    많은 이들이 갑론을박하고 있었지만, 카이는 굳이 나서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7성급 강자들을 찾아가 소환 반지를 전해주었다.

    때가 되면 강제로 소환할 수 있는 반지. 소환되기 전까지는 벗지도 못한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이 불만을 표하기도 했지만, 카이는 이번 일에 있어서만큼은 그들을 강제했다.

    시공을 지배하는 카이의 힘과 격은 7성은 제대로 느끼지 못하지만, 결과로서 그들을 이해시켰다. 감히 다른 생각조차 품지 못할 만큼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그들은 순순히 반지를 꼈다.

    그것은 조용히 벌어진 일. 외부에서는 그 사실을 아는 이들이 거의 없었다.

    대신 카이가 9성에 올랐다는 것에 대해 갑론을박하던 것들이 점점 사그라들었고, 많은 이들이 인류 최초로 9성에 오른 이의 등장에 귀추를 주목했다.

    카이는 그 모든 일을 해결하고는 제국 황궁에 머물기 시작했다. 온전히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행동. 시간을 들여 이곳에 잔향을 남기는 것이 아닌 지배력을 높이는 행동이었다.

    전장을 확정 지었기에 가능했던 행동.

    상대가 시공을 지배할 수 있어도 이곳에서만큼은 그게 불가능하다.

    다만 황도 전체에 지배력을 쌓아가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자신에게 이로운 전장을 만드는 일.

    조금씩이지만 결전의 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클란드라는 자신의 공국의 임시 수도에 세워진 성의 발코니에 서서 성을 돌아보았다. 멜라임 왕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곳이라 국경을 위협 받을 일은 거의 없었다.

    멜라임 왕국은 산맥에 사는 소국이었고, 그들은 외부에 힘을 투사하기보다는 자국을 지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이들이었으니까.

    자급자족하고 있는 멜라임 왕국은 외부와 소통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과 국경을 마주하게 한 것은 오히려 공국의 안전을 높여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멜라임 왕국이 지키고 있는 산맥 너머에 있는 길로운 왕국도 멜라임 때문에 제국에게 시비를 걸지는 못했으니까.

    그런 곳에 공국을 내준 것은 배려이기도 했지만, 시험이기도 했다. 공국 내부에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것이 거의 없으니 확장은 불가능했다.

    클란드라는 공국을 내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이곳을 짐작했다. 그녀가 원한 것은 지금까지 수교의 문을 닫고 있던 멜라임 왕국과의 교섭을 통해 길로운 왕국과 제국 사이의 무역을 관장해서 돈을 벌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라면 클란드라는 어려울 것이 없다고 여겼다.

    십 년 정도 걸릴 일이라 멜라임 왕국과 어떻게 교섭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불쑥 찾아온 카이가 제국 황도가 종말의 날 격전지가 될 거라는 말을 들었다.

    클레바논을 찾아온 것이었기에 자신은 듣지 못했을 수도 있는 말.

    덕분에 십 년은 걸렸을 일이 한 달도 되지 않아 공국에 대해 선포하고 직할령을 떼어내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렇게 물려받은 공국은 온전히 자신의 것은 아니었다.

    황궁의 재산을 빼돌리려는 방편이기도 했기에 지금도 막대한 자산이 이곳으로 옮겨 오고 있었다. 황태자에게도 황도가 전장이 된다는 것은 비밀로 한 터라 황궁의 재산이 공국으로 너무 많이 할당된 것이 아니냐는 투정까지 할 정도로.

    황도가 무너지고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었을 때 토해내야 할 돈이지만, 이만한 돈은 쥐고 있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된다.

    클란드라는 고개를 돌려 테오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굳이 이곳까지 오실 필요는 없었잖아요.”

    테오르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놈을 따라다녀 보았는데 내가 얻을 것이 없었거든. 게다가 황궁의 비처에 놈이 있는 이상 지금 가장 안전한 곳은 황궁이야. 그러니 내가 그곳에 있을 필요는 없지.”

    “앞으로 저와 함께 지내실 것도 아니시잖아요.”

    “왜? 나 내쫓으려고?”

    “태사께서 머무신다면야 천금이 아깝지 않죠.”

    제국 정도가 아니면 품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테오르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고민 중이다. 그나마 황족 중에서 가장 마음이 잘 맞는 것이 너이기도 했고, 제대로 된 전력을 곁에 두지 않은 채 공국의 여왕이 된다면 널 만만히 보는 놈들도 있을 테니까.”

    황제의 딸이자 공국의 여왕인 그녀를 감히 만만히 볼 이들은 없을 테지만, 테오르가 함께한다면 두려울 것이 없기도 했다.

    “황궁의 연구실을 옮겨야 해서 그나마 자리 잡은 이곳에다가 지으려고. 대신 내 이름을 쓸 수 있게 해주마.”

    공국에 수몰의 대마법사가 머문다는 것을 알리는 것만으로 공국의 위세가 달라진다.

    “고마워요.”

    “고맙기는. 그놈이 널 친구로 생각하는데 잘 보여야지.”

    클란드라는 공국에 걸맞은 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바빠 정신이 없었는데 테오르의 너스레에 풋 웃고 말았다.

    “태사.”

    “왜?”

    “죽지 마세요.”

    7성 이상을 소환한다는 것은 그만한 이들만 싸울 자격이 있다는 말이었다. 8성에 이른 테오르는 필히 참석해야 했다.

    테오르는 그 말에 자신의 팔을 만지며 답했다.

    “받은 건 갚아야지. 그리고 어디가서 죽을 정도로 호락호락한 실력은 아니야.”

    소화 중이던 우로보로스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의 앞에 서 있는 헥토르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냐?>

    “힘 좀 빌려줘.”

    <왜?>

    헥토르가 손을 들어 주먹을 쥐어보고는 답했다.

    “바깥 상황을 좀 알아보려고.”

    우로보로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굳이?>

    헥토르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시공을 간섭하는 것을 넘어 시공을 지배하는 것이 9성이 되어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깨달음이 있었다.

    그래서 이제 어느 정도 시공을 지배하는 수준까지 왔다. 벽을 넘어서 얻을 수 있는 결과를 먼저 취함으로 벽을 넘었나 싶었지만, 자신은 반만 넘었음을 알고 있었다.

    “확인해 볼 것이 있다. 그리고 확실히 벽을 넘으려면 놈도 만나봐야 해.”

    <놈을 만나면 빠져나오지 못한다.>

    “아니. 이번에는 빠져 나올 수 있다. 공간 이동만 도와줘.”

    헥토르의 확언에 우로보로스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픽 웃고 말았다.

    <소화가 다 되지 않아 제대로 된 힘을 빌려줄 수는 없지만, 고작 공간 이동이라면 가능하지. 누구를 만나러 갈 거냐?>

    “폭풍의 기사 안드레스. 7성급 기사인데 언제 한 번 손봐주려고 벼르고 있었거든.”

    <왜 손을 안 봐준 거냐?>

    헥토르가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손을 봐주려고 했더니 제국으로 도망쳤었거든.”

    미치광이만큼은 아니지만 헥토르도 안하무인으로 살아왔던 자였다.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전쟁의 신을 비난했었나 본데 그러고도 살아남으려면 제국의 그늘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기도 했다.

    7성급 기사라면 대륙 어디에서도 큰소리칠 수 있지만, 감히 전쟁의 신을 비난했다면 제국 외에는 몸을 숨길 곳이 없었다.

    <너 뒤끝이 있군.>

    “잊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서.”

    우로보로스는 더는 고민하지 않고 자신의 그림자에 깃들어 있는 어둠을 꺼내 헥토르에게 보내주었다. 헥토르가 어둠의 뱀과 함께 사라지자 우로보로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제 일식이 멀지 않았다. 그리고 소화도 멀지 않았다.

    돌싱 후 대마법사-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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