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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35화 (135/150)
  • 135화 계획

    델라니는 추방당했다. 그녀가 데리고 온 이들과 함께.

    자칫 잘못했으면 마베르니가 위험할 수도 있었던 일. 마베르니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손이 피범벅이 된 채로 델라니를 추방하고 돌아오니 쓰러져 있었는데 몇 년은 늙어 버린 것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어떤 포션도 통하지 않는 기색으로 침대에 누운 마베르니는 카이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카이를 부를 생각이 없었지만, 델라니가 와서 마베르니를 위협했던 것에 더해 그녀가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기에 연락을 취했다.

    세계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수련을 떠났던 카이는 그 부름을 받고 곧장 공간 이동으로 돌아왔다. 카이는 마베르니를 찾아와 그녀의 상태를 보고는 인상을 굳혔다.

    “어떻게 된 거야?”

    마베르니가 미래를 계속 보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의도하지 않아도 보인다는 것을 알고 그 미래에 대해 종종 들었다. 그렇게 미래를 볼 때마다 그녀가 힘들어하는 것이 보여 말리고 싶었지만, 그녀도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말릴 방법은 없었다.

    그런 그녀를 델라니가 찾아왔고, 무엇을 했는지 자신을 불렀다는 마베르니의 상태는 심각했다.

    카이가 마베르니의 옆에 앉아서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린 지 한참이 지나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카이를 돌아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왔어요?”

    “편히 말씀하시라니까요.”

    카이에게는 할머니처럼 느껴져 말하는 데도 마베르니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카이의 손을 잡고는 말했다.

    “종말의 날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었어요.”

    “미래를 봐도 그 날이 다시 보이지는 않았지 않습니까?”

    “맞아요. 델라니가 가지고 온 ‘피의 거울’이 아니었다면 아마 미래를 보지 못했을 거예요.”

    카이는 퀸이 그녀를 추방했다고 했지만, 델라니가 제정신이 아님을 새삼 깨달았다.

    “퀸에게 듣기로 위해를 가하려고 했다고 들었습니다.”

    마베르니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어딘가 통쾌해 보이는 구석이 있어서 카이가 오히려 의아해할 때 그녀가 답을 알려줬다.

    “제가 본 미래를 알려주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피의 거울’이 깨졌으니 다시는 그 날을 볼 수 없을 거예요.”

    그 말에는 카이도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피의 거울’이라는 기물까지 가지고 와서 다시 한번 미래를 확인하라고 했더니 ‘피의 거울’은 부수고, 본 미래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건가?

    금제를 당했던 시간에 대한 소소한 복수였던 것 같은데 저렇게 통쾌해하는 것을 보니 다행이라 여겼다.

    “어렸을 때 보았던 미래는 제 수준이 낮아서 그런지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다시 보니 알겠더군요. 제가 모든 것을 보지 않았다는 것을요.”

    “뭘 본 거죠?”

    마베르니는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알려주었다.

    “해를 삼킨 뱀과 달을 삼키는 늑대는 모두 그대로였어요. 그리고 그 전투가 벌어진 곳이 제국의 황도라는 것도 알 수 있었죠.”

    카이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의 황도는 인구 밀집도가 다른 곳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작은 소국에 비견될 정도의 인구가 밀집된 곳.

    그곳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는 것은 피스토가 원하던 것이든 ‘뱀’이 원하는 것이든 수많은 목숨을 취할 수 있다. 그걸 이용할 생각이리라.

    “그리고 ‘늑대’가 ‘뱀’을 공격했어요.”

    “예?”

    “달을 삼킨 것도 어쩌면 이유가 있었을지도 몰라요.”

    늑대가 뱀을 공격했다면 이건 귀담아들을 만했다. 지금까지는 종말의 날에 달을 삼키는 늑대라고 해서 피스토에게 넘어간 건가 걱정했는데 ‘뱀’과 싸운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이건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이네요.”

    무엇보다 전장이 정해졌다는 것은 마법사에게 있어 그보다 좋은 것이 없는 일이었다. 제국의 황도는 ‘뱀’조차 지금은 간을 볼 수 없는 곳.

    테오르와 맥클렌이 지키고 있는 곳으로 그곳에 지금 당장은 오지 못하니 놈의 눈을 피해서 함정을 파기 좋았다.

    마베르니는 카이가 생각에 잠긴 것을 보고는 조용히 손을 놓아주었다.

    “아마도 그 날을 제대로 보라고 시엘님이 능력을 거두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만큼 몸이 망가지지 않았습니까?”

    마베르니는 카이의 말에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제는 보이지 않아요.”

    “···그 말씀은.”

    “맞아요. 제게 다시 한번 제대로 볼 기회를 주시고 능력을 거둬가셨어요. 덕분에 몸이 많이 망가지기는 했지만, 조금씩 회복하는 중이에요. 어쩌면 앞으로 볼 수 없게 되었기에 더 오래 살지도 모르겠네요.”

    마베르니는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러니 내 걱정하지 말아요. 오히려 너무 오래 살아서 걱정할지도 몰라요?”

    카이는 그녀가 위로해주기 위해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만 년을 사신다고 해도 제가 돌보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마베르니는 카이가 역시 남다르다고 여겼다. 만 년이라, 미래를 보지 못하게 되었지만 느낌이 온다. 이 몸으로는 아마 그 날을 넘기기 힘들 거라는 걸.

    그러나 괜한 근심 거리를 안겨줄 필요는 없으리라.

    “그럼 잠시 쉴게요.”

    카이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침대에 눕는 것을 돌봐주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카이가 사라진 자리를 가만히 바라보던 마베르니는 자신의 소명을 다했음을 깨닫고 눈을 감은 채 편히 숨을 내쉬었다.

    허락된 남은 시간동안 정리해야 할 것들도 있고, 폭로해야 할 것도 있으니 얼른 몸을 회복해야 했다.

    마베르니의 이야기를 듣고 온 카이가 모인 일행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덴다르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교국에 본때를 보여줘야겠군.”

    카이는 그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원한다면 신조를 데리고 가서 교황청을 으깨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적을 늘릴 때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힘을 끌어와 적과 상대하는 데 써야 하는 상황.

    두 번이나 같은 것을 보았다면 시엘은 직접 이 일에 끼어들기보다 예언을 통해 미래를 대비하라는 뜻을 내비쳤다는 얘기다.

    무슨 연유인지 그 이상의 것은 하지 못한다는 것 같으니 카이도 그에 맞춰 상황을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늑대가 뱀과 싸운다고 해도 지금 뱀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일만 명을 소화하고 나타날 뱀이 얼마나 강해질지 알 수 없었으니까.

    카이가 이만한 힘을 얻어서 인과가 비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늑대에게만 뱀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니 도움이 될 방법들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다행이라면 격전지를 알아냈다는 것이죠.”

    “알아냈다고 해도 이번 일은 만만치 않겠어. 제국의 황도에 사는 이들을 빼내면 적들도 상황을 파악할 테니 미리 빼낼 수도 없잖아.”

    카이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대규모 마법진을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마법진?”

    “일식 때 제국의 황도에 있는 이중 격전에 참전하지 않을 이들을 이동 시킬 공간 이동 마법진을요.”

    카이가 대수롭지 않게 한 말에 모두들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거기 있는 이들의 수가 족히 몇백만은 될 텐데? 그들을 한 번에 날려 보낸다고?”

    덴다르트의 의문에 카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한 규모의 마법진을 만들어야 되겠죠.”

    한 마디로 제국의 황도를 비울 만큼 막대한 마법진을 만들겠다는 선포. 과연 제국에서 들어줄 것인가는 둘째치고 가능하기는 한 건가 싶었다.

    게이트와도 수준이 다른 마법진이었으니까.

    카이는 미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

    “일단 황제에게 상황을 설명하러 다녀오겠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되겠어? 너 수련하기에도 바쁜데?”

    카이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리고는 답했다.

    “오히려 잘 됐죠. 결전장이 정해졌다면 오히려 훨씬 지배력을 높이기 쉬워질 테니까요.”

    “뭐 도와줄 건 없을까?”

    카이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제국의 황도 전체에 들어가는 마법진을 구상하고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누가 돕는다고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수준도 아니었고.

    카이에게 도움이 될 정도의 마법사라면 테오르 정도니 그건 제국에 가서 도움을 얻으면 될 일이었다.

    “도움은 가서 받도록 하죠.”

    그 말을 끝으로 카이는 곧장 황궁으로 공간 이동했다. 황궁의 마법진을 이미 한 번 살펴보았던 데다가 9성에 오른 카이는 단번에 황제의 앞으로 공간 이동할 수 있었다.

    클레바논은 클란드라와 대담을 나누는 중이었다. 그런 곳에 불쑥 나타난 카이를 보고 황제의 친위대가 달려왔지만, 클레바논이 손을 들어 막았다.

    자신의 거처로 아무렇지 않게 들어올 수 있는 카이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기에 알고 있었다. 그가 9성에 올랐다는 얘기를 들었다.

    테오르와 맥클렌이 동시에 달려들어도 어쩔 수 없는 상대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클레바논이 친위대를 물렸을 때 불쑥 그곳으로 테오르가 나타났다.

    아무래도 카이의 등장을 감지한 것 같았다.

    그렇게 나타난 테오르는 카이와 그의 머리 위에 있는 신조를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볼 때마다 놀라게 하는 녀석이었다.

    9성에 올랐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보니 그 격이 느껴졌다. 저번에 일어났던 이변이 카이가 벌인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때 세계가 진감한 존재를 감지한 것은 그만이 아니라 맥클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느꼈던 만큼은 아니나 그 힘과 격을 품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곧 맥클렌도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그도 카이를 보고는 검에 손도 대지 않고 황제의 옆에 조용히 섰다. 검을 뽑는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탓이었다.

    카이는 그 둘까지 모인 것을 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예언가가 본 종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단순히 ‘뱀’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종말을 얘기하니 다들 기가찬 표정이었다.

    “그게 언젠가?”

    클레바논의 물음에 카이가 손을 뻗자 저 멀리 준비되어 있던 달력이 날아와 그들 앞에 떨어졌다. 카이는 그중 일식이 있는 날을 짚었다.

    이제 두 달 조금 넘게 남아있었다.

    “일식이 벌어지는 날. 뱀이 해를 삼키고, 늑대가 달을 삼킬 겁니다. 그리고 피스토가 세계를 쪼개고 들어와 혈해로 만들 겁니다.”

    클레바논은 잠시 말을 멈췄고, 테오르가 대신 물었다.

    “일식이라는 것 자체가 해가 사라지는 날이 아닌가?”

    “맞아요. 그리고 태초의 어둠을 다루는 ‘뱀’에게 가장 어울리는 날이죠.”

    테오르는 카이가 주고 갔던 태초의 물을 가지고도 아직 태초의 속성을 소환하지 못하고 있었다. 새삼 재능의 영역이라는 것을 깨달은 테오르도 간간히 도전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는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 말을 전해주러 왔다면 나에게 오면 됐을 것을 왜 이곳으로 온 건가?”

    카이는 그 물음에 자신의 용건을 꺼냈다.

    “그 마지막 격전장이 이곳 제국의 황도가 될 겁니다. 그리고 적들은 이곳에 모인 수많은 이들을 먹어 힘을 키울 거고요.”

    모인 이들의 표정이 싹 굳었다. 카이는 그런 그들에게 담담히 자신의 계획을 일러줬다.

    “그래서 대규모 공간 이동 마법진을 만들 생각입니다.”

    “게이트를 열겠다는 건가?”

    카이는 고개를 내젓고는 답했다.

    “단번에 다른 곳으로 보내 버릴 겁니다. 게이트를 통해 빠져나갈 시간 따위는 없어요.”

    테오르는 그 말에 기가 차 했다. 대마법사에 오른 그이기에 지금 카이의 계획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지 알고 있었다.

    “대상 지정도 아니고 황도 전역에 있는 이들을 단번에 보낸다는 건가? 그들에게 사전에 알리지도 않고?”

    카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테오르가 반박하듯 물었다.

    “그런 마법진을 만들었다고 치세. 황도 전역에 수백만에 달하는 이들을 단번에 날려버릴 마법진을 만들었다고 쳐도 그만한 동력을 어디서 끌어올 생각인가?”

    카이는 그 말에 담담히 답했다.

    “용맥을 끌어올 겁니다.”

    그 말에 클레바논이 환한 미소를 지었지만, 테오르는 고개를 내저었다.

    “용맥으로 해결될 수준이 아닐세. 자네 영지의 보호 마법진을 보았지만,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수준이 아닌가?”

    카이는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라고 안 했습니다.”

    테오르가 그 말에 침묵했다.

    카이가 계획한 황도에 있는 수백만에 달하는 인구를 단번에 전이시킬 마법진은 일곱 개의 용맥을 끌어와 그 마력을 융합해서 사용할 계획이었다.

    테오르는 종말이 다가온다는 것보다 그만한 대규모 마법진을 만든다는 것 자체에 관심을 가졌다. 그만한 크기의 마법진은 아마도 단발성일지 몰라도 역사에 기록될 정도의 일이다.

    “나도 함께하겠네.”

    “안 될 겁니다.”

    “응?”

    “황도 전체에 마정석 가루로 마법진을 그릴 수 없으니 이 일은 오직 저만 할 수 있어요.”

    용맥의 지류를 이용해서 마법진을 만들어야 파괴될 염려도 없다.

    카이는 고개를 돌려 황제를 바라보았다.

    “옮길 수 있는 것은 사람뿐입니다. 그리고 이건 극비 작업이기 때문에 외부에 알려지면 안 돼요.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 외에는 누구도 몰라야 합니다.”

    그제야 클레바논 황제는 이 일이 미치는 여파를 깨달았다.

    “전장이 된다는 것은 오랜 역사를 지닌 황도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거군.”

    원하지 않았음에도 전장으로 선택된 것. 클레바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젠장.”

    기를 쓰고 제국의 내실을 다졌는데 이 천문학적인 피해를 생각하면 파산당할 수도 있었다.

    돌싱 후 대마법사-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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