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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34화 (134/150)

134화 예언

천체의 움직임을 기반으로 일식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세계는 반구형으로 생긴 것까지는 파악했다. 그리고 세계의 한계선이 있다는 것도.

이런 세계에 일식이라는 천체의 움직임이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카이는 영주성의 옥상에서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이 세계는 어떻게 돼 있는 걸까?

하늘신 시엘을 추종하기에 교국에서는 천체의 움직임에 대해 잘 알았고, 덕분에 달력을 만들었다.

일식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고민하던 카이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그러나 결론은 하나다.

일식에 그 일이 벌어진다면 그동안 카이도 전심전력으로 준비하는 거다.

마법을 통해 세계의 법칙을 틀어쥔 카이에게 있어 세계의 한계까지 힘을 투사할 수 있다는 건 알아냈지만, 실제로 싸우는데 필요한 것은 승리를 거머쥐기까지 상대를 몰아넣는 것이다.

신조는 확실한 죽음을 선고하는 공격이 될 수 있다. 시공을 지배하기만 한다면 상대가 피하지 못하게 마무리 지을 수도 있지만, 그리 간단한 싸움만은 아니다.

시공간 지배가 절대적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이 세계를 인지하고 틀어쥔 카이가 세계 안에서 싸운다면 상성상 우위에 설 수 있을 테지만 절대적이지 않다. 그러니 그럴 때를 대비해서 지배력을 늘려야 했다.

카이는 신조를 깨웠던 곳으로 돌아갔다. 세계의 중심에서 카이는 세계에 대한 지배력을 쌓는 수련을 시작했다.

카이가 무엇을 위해 수련을 떠난 지 알았기에 어지간한 일은 그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기로 했다. ‘뱀’이 나타나거나 헥토르, 피스토에 관련된 일이 아니면 연락을 취하지 않기로 했던 것.

그렇기에 교국에서 요청한 비공정을 타고 온 이들을 맞이하면서도 카이는 부르지 않았다.

전용 비공정에 페코까지 더해서 데리고 온 것은 교국의 인물들.

아나벨 성녀가 올 줄 알았는데 온 이들은 다른 이들이었다. 특히 그들 중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막대한 신성력을 품은 존재.

“반가워요. 델라니에요.”

카이가 없을 때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은 덴다르트다. 그보다 뛰어난 이들이 있지만, 사람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는 그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덴다르트요.”

“처음 보는 군요.”

덴다르트가 이름을 날리기 시작할 때는 이미 델라니가 은퇴한 이후였기에 둘이 만났던 적은 없었다.

덴다르트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일 때 불쑥 옆에서 고개를 내민 것은 메르샤였다.

“오랜만이야. 하나도 안 늙었네.”

“메르샤.”

델라니도 이곳에 오기 전에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다. 안타르시아마저 내려놓고 무결의 대마법사. 아니 인류 최초로 9성에 올랐다는 신조의 대마도사 곁에 머문다고 했다.

7성 대마법사들이 8성에 오르고자 하는 열망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럴 수 있다 싶었다.

확실히 도움이 된 것인지 전과는 다르다. 비공정의 속도도 훨씬 빨라졌고, 함께 있는 정령도 지금까지 보아왔던 정령과는 판이하게 달랐으니.

“마베르니를 데려갔다고 들었어요.”

메르샤는 그 말에 더는 대꾸하지 않고 한 발 물러났다. 덴다르트가 대신 답을 해주었다.

“그렇소. 그녀에게 안식을 주고자 모셔왔지.”

“만나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덴다르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알고 있어. 그런데도 만나보고 싶다고?”

마베르니를 데리고 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의심은 했었다. 예언하지 못하는 예언가를 필요로 하는 이는 없을 테니까.

“연락만 취해줘요. 그녀가 거절한다면 그냥 돌아가죠.”

덴다르트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에 뒤에 서 있던 테오가 인형의 보고를 듣고는 덴다르트에게 속삭였다.

“만나보겠다고 하셨습니다.”

덴다르트는 불만을 표하지 않고 옆으로 물러나며 말했다.

“한 가지 약속하죠. 마베르니님에게 허튼 수작을 부린다면 당신은 교국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비공정을 타고 왔다고 해도 그녀를 호위하는 이들은 만만한 이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기 있는 이들의 면면을 살핀 델라니는 다른 마음을 접어야만 했다.

덴다르트, 메르샤, 카메룬은 물론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여기사에 그녀의 뒤에 두 눈이 시퍼렇게 물들어 있는 이도 외견으로 보아 해적왕 시무스였다. 다른 마법사들의 기세가 막강해 잘 눈에 띄지 않은 자는 복장을 보아하니 시무스의 오른팔인 환풍의 대마법사 칼라한으로 보였다.

이만한 이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안타르시아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곳은 중립 지대이기도 했고, 만약 그 안에서 수작을 부리면 공간 이동을 하지 못하는 이상 도시를 무너트렸을 때 살아남기 힘든 곳이었으니까.

그만한 이들이 모인 곳에서 다른 마음을 먹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에 그녀는 안내를 받으며 다른 걸 물었다.

“신조의 대마도사는 어디에 있는 거죠?”

용맥을 끌어와 봉인 술식에 이용한 이적을 벌이는 마법사. 그때만 해도 9성에 오르지는 않았으니 은근히 소문나고 있는 9성 대마도사를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이곳까지 직접 올 일은 없었으니까.

델라니가 이렇게 움직이기 위해서 교황의 인가를 받았던 만큼 그녀도 호기심을 풀기 위해 물었다.

그녀의 옆에서 걷던 덴다르트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수련하러 갔소.”

“9성에 올랐는데 수련을 한다고요?”

“그만큼의 경지에 오르고도 수련해야 할만큼 상대들이 비상식 적이니까.”

“‘뱀’에 대한 이야기군요.”

“‘뱀’도 ‘뱀’이지만 피스토도 연관이 있을 듯 하니 하는 말이오. 그보다 봉인지를 지키는 것으로 알았는데 여기까지 온 이유가 무엇이오?”

델라니는 그 말에 잠시 입을 다물고 걸음을 옮기다가 답했다.

“봉인지를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었죠.”

“그게 마베르니를 만나는 일이란 것이오?”

델라니가 고개를 끄덕이자 덴다르트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녀의 안식을 방해하지 말아 주시오.”

델라니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들의 안내를 받았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영주성 뒤편에 있는 텃밭이 있는 작은 저택이었다.

따로 그녀를 위해 만든 저택으로 텃밭에서 토마토를 따던 마베르니는 델라니가 영주성에 머무는 이들의 안내를 받아 오는 모습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델라니는 자신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이는 마베르니를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한참 어린 나이였던 마베르니가 어느새 저리 나이를 먹었나 싶었다.

델라니가 다가와서 앞에 서자 그녀를 바라보던 마베르니가 뒤에 선 이들을 돌아보았다.

“저를 찾아왔으니 그만들 가보세요.”

그 말에 메르샤가 대뜸 나섰다.

“무슨 소리야? 뭔 짓을 할지 모르니 우리가 곁에 있어야지.”

“괜찮아요. 나눌 이야기가 많으니 둘이 만나고 싶어요.”

마베르니의 신성력이 상당하다고 하나 델라니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걱정스레 바라보는데 덴다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경고하는데 만약 마베르니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책임은 교국이 져야 할 것이오.”

델라니는 그 말에 눈을 질끈 감았다. 제국에서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교국이다. 그런 교국을 상대로 감히 책임을 운운할 수 있는 이들은 없었다.

그게 설령 8성에 오른 자라고 해도.

그러나 덴다르트가 저리 말하는 것은 그만큼 9성에 오른 대마도사의 영향 탓이겠지.

덴다르트가 일행들을 데리고 물러나자 마베르니는 그제야 델라니를 바라보았다.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적대감은 없는 것 같았지만, 그 눈빛은 어째서인지 자신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것 같아 심기가 불편했다.

“안으로 드시죠.”

마베르니를 따라간 델라니는 그녀의 저택을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단출한 저택에는 인형 하나가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차를 내오는 모습에 델라니는 응접실의 소파에 앉아 마베르니를 바라보았다.

“다시 미래를 보는 건가?”

“아직 그 힘을 거둬가지 않으신 것을 보면 시엘님의 뜻이겠죠.”

마베르니가 보았던 종말의 형태는 교국이 상상하던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수정을 가하고 그녀에게 금제를 했는데 그 금제를 풀었더니 다시 미래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미래를 보는 그녀의 능력을 거두지 않은 것만 보아도 시엘은 마베르니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얘기였다.

오늘 마베르니를 직접 찾아온 것도 그녀가 미래를 보는 능력이 남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던 것. 이제 그걸 확인했으니 용건을 꺼낼 때였다.

델라니는 품에서 둥근 원판을 꺼내 앞에 놓았다.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마베르니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나?”

“보이더군요.”

델라니는 그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 마베르니는 미래를 보기 위해서는 오랜 기도를 드려 마음과 몸을 정갈히 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특별히 기도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그게 가능하다고 하니 전보다 능력이 더 늘어난 것일까?

“그렇다면 내가 뭘 원하는지도 알겠네?”

마베르니는 델라니의 물음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셨군요.”

외모만으로 본다면 마베르니가 지금의 델라니의 어머니뻘이지만, 반대로 델라니가 마베르니의 어머니뻘 나이였다. 그런데도 저런 태도를 보이니 속이 뒤집혔다.

특히 교국을 위해서 자신이 하는 일을 인정하지 못하고 잘못된 길인 양 구는 모습은 부아가 치밀었지만,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

“다시 한번 확인해 보려는 거야.”

마베르니는 손을 내밀어 델라니가 가져온 원판을 쓰다듬었다.

“그렇다고 ‘피의 거울’까지 가져올 줄은 몰랐어요.”

“확실히 해야 하니까.”

그리 말한 델라니가 품에서 단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길게 베어서 핏물을 원판 위에 떨어트렸다.

원판에 떨어진 핏물이 시엘의 성호의 형상을 나타내는가 싶더니 점점 번져 원판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피를 흘린 델라니가 마베르니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지금의 너라면 끝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확인해 보겠니?”

‘피의 거울’은 신성력을 머금은 핏물을 통해서 보는 능력을 강화해주는 것. 피가 머금고 있는 신성력에 따라 그 효과는 강해진다.

델라니가 성녀의 위에서 내려왔다고 하나 오랜 시간 기도를 통해 쌓아온 신성력은 7성급에서 내려오지 않았으니 그녀의 신성력이 깃든 ‘피의 거울’이라면 전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리라.

마베르니는 ‘피의 거울’을 내려다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안식을 얻기 위해 이곳에 온 뒤로 과거보다 오히려 더 자주 미래가 보인다. 자신이 현재를 사는지 미래를 사는지 가끔 헷갈릴 정도로 미래가 보일 지경.

덕분에 몸이 많이 축났다. 신성력이 늘어났다고 해도 노화한 몸이 견디기는 힘들었다.

전보다 더 쉽게 볼 수 있게 된 덕에 그나마 버텼지, 그러지 않았다면 진즉에 무너졌으리라.

그런데 ‘피의 거울’은 더 멀리, 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걸 본다면 마베르니가 무너질 가능성이 컸다. 델라니는 그걸 알면서도 이걸 가져와 자신 앞에 내밀었을 가능성이 컸다.

마베르니는 그녀가 왜 이러는지 알면서도 ‘피의 거울’을 치우지 못했다. 자신이 금제에서 깨어나 이 자리에 있고, 더욱 미래를 선명하고 자주 볼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시엘이 그걸 허락했기 때문이라 믿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다가온 이 현실도 이유가 있는 것일 터.

마베르니는 ‘피의 거울’을 양손으로 쥐고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그녀가 고개를 숙여 ‘피의 거울’을 바라보자 그 표면이 일렁이며 미래를 내보였다.

과거에 보았을 때는 끔찍할 정도로 거대한 격에 짓눌려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해를 삼킨 ‘뱀’이 만든 어둠 속에서 아련히 나타난 달을 삼킨 늑대.

세계가 갈라지며 쏟아지는 핏물이 해일처럼 일어나 뒤덮는 곳. 그곳이 어딘지가 보였다.

제국의 황도.

가장 많은 이가 사는 그곳이 핏물에 뒤덮여 혈해가 되고 피스토가 모습을 드러낼 때 하늘을 뒤덮을 거대한 빛의 날개를 펼치는 신조가 눈에 들어왔다.

그 신조의 빛이 사방을 뒤덮는 순간 늑대가 뱀을 향해 달려들었다.

전보다 더 많은 것을 보았지만, 그쯤에서 눈앞이 아득해지며 튕겨 나온 마베르니가 왈칵 핏물을 토해냈다. 칠공에서 피를 흘리는 마베르니가 양손으로 ‘피의 거울’을 움켜쥐었다.

쩌엉!

원판이 산산이 조각나 흩어지는 모습에 델라니의 눈이 커졌을 때 마베르니가 양손을 피로 물들인 채 탁자에 양손을 올렸다. 피범벅인 그녀의 손바닥 모양으로 탁자에 손자국이 찍혔을 때 마베르니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입에서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당신은 이 예언을 들을 자격이 없어요.”

“···뭐?”

감히 교국의 보물을 부수고 이렇게 당당하게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델라니의 눈에 섬뜩한 빛이 어렸다.

무슨 예언인지 몰라도 자신에게 말 못 하는 것을 보면 분명 교국에게 이로울 예언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 예언은 영원히 묻혀야 했다.

이곳에서 마베르니에게 손을 쓴다는 것은 멍청한 짓임이 틀림없었지만, 교국의 영광에 모든 것을 마친 델라니는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여겼다.

“감히!”

델라니가 신성력을 일으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때 그녀는 서늘한 감각을 느꼈다. 델라니가 눈만 움직여 내려다보니 그녀의 목에는 검이 한 자루 닿아 있었다.

그 검날을 따라 시선을 옮긴 델라니는 기이한 기색의 여기사를 볼 수 있었다.

“아줌마. 움직이면 목 떨어진다?”

퀸이 그녀를 향해 웃고 있었다.

돌싱 후 대마법사-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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