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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싱 후 대마법사-133화 (133/150)
  • 133화 앞서다

    전신에 뱀의 비늘을 뒤덮은 채 달려오는 우로보로스의 손끝에는 태초의 어둠이 소환되어 있었다. 고작 5성급 육신에 깃들었을 때 경시하고 있었지만, 뱀의 비늘을 두른 순간 육신의 한계는 벗었다.

    그래 봐야 7성급 육체 강화자 수준. 그러나 태초의 어둠을 소환한 것은 무시할 일이 아니었다.

    태초의 속성이 가진 힘은 누구보다 카이가 잘 알고 있었다. ‘뱀’이 얼마나 오랜 시간 태초의 어둠과 함께했는지 알기에 그 다루는 깊이는 카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일 터.

    카이는 오히려 잘 됐다고 여겼다. 신조를 얻었지만, 자신이 새로이 만든 속성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걸 사용해 보기에 적당한 상대였다.

    태초의 어둠에 둘러싸인 채 달려오던 우로보로스가 뻗은 주먹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뱀의 형상을 한 어둠이었다. 카이가 그걸 보고 공간 이동으로 피하자 입을 쩍 벌렸던 뱀이 공간을 집어삼켰다.

    빛을 베어 문 것처럼 그 자리에 어둠을 남긴 우로보로스가 연달아 공격을 퍼부었는데 카이는 태연하게 그 공격들을 흘려냈다. 만약 어두운 밤에 만났다면 훨씬 까다로웠을 테지만, 지금은 대낮이라 그 위력이 반감되었다.

    그래도 뱀의 형상이 먹어치운 곳의 공간이 어둠에 잡아 먹힌 채 빛이 사라지는 공간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었다. 카이가 피하더라도 상관하지 않고 주변 공간을 어둠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기이한 것은 어둠에 잡아먹힌 공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점점 태초의 어둠이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스스로 만든 어둠으로 점점 자신의 힘을 강화하는 형태.

    이대로 두면 안도겠다 싶어 카이는 신조를 날려 보냈다. 카이가 시공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신조 또한 공간을 격하고 나타나 그대로 우로보로스를 들이받았다.

    본능적으로 태초의 어둠으로 만든 방패로 앞을 막았지만, 단번에 어둠을 깨부순 신조가 우로보로스를 뚫고 지나갔다. 피하고 말고 할 틈도 없었다.

    단번에 가슴이 뚫린 우로보로스가 그대로 굳었고, 카이는 돌아온 신조를 머리 위에 올린 채 우로보로스를 바라보았다. 시공을 지배하는 카이에게 이 근방에서는 시공에 간섭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덕분에 우로보로스의 화신은 반응도 못하고 가슴을 뚫렸다.

    신조의 크기로 구멍이 난 우로보로스가 자신의 가슴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힘이지?”

    우로보로스의 시선이 신조를 향하기에 카이가 담담히 답했다.

    “신조의 힘이지.”

    “신조?”

    가슴에 손을 올린 우로보로스가 고개를 들어 카이를 바라보았다.

    “태초의 어둠은 상성이 거의 없는 막강한 힘인데도 안 통하다니 어떻게 된 거지?”

    우로보로스의 물음에 카이가 미소를 지은 채 손을 뻗으며 말했다.

    “그건 다음에 만나면 알려주마.”

    지금 이곳에서 뱀을 죽여도 목숨이 하나 남아있으니 어쩔 수 없다. 카이가 주먹을 움켜쥐는 순간 우로보로스의 육체가 우그러들기 시작했다.

    “이, 이건···.”

    우로보로스가 존재하는 공간 자체를 우그러트리기에 뱀의 본신 비늘로 두른 몸도 견디지 못했다. 이런 몸에 강령 되어 끌려 온 순간 격이 떨어진 것은 어쩔 수 없었던 일.

    그러나 격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지금 카이가 보여주는 신기에 저항할 수 있을까?

    이 주변 공간이 온전히 그의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행위였다.

    우로보로스는 자신의 끝이 다가왔음을 깨닫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다음에 보자고.”

    목숨이 하나 남았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는 길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한 줌 핏물이 되어 사라진 우루보로스를 바라보던 카이는 신조를 돌아보았다.

    태초의 어둠이 상성이 거의 없는 막강한 힘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지만, 태초의 어둠으로 만든 방패 따위는 종잇장처럼 찢어버리는 위력을 실감했다.

    카이는 이미 주위의 시공을 지배하는 수준에 올랐기에 신조 또한 같은 짓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상대가 반응도 하기 전에 죽여버릴 수 있었던 것.

    뱀의 그림자만 쫓다가 처음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손에 넣었다. 아마 다시 강령술을 펼친다고 해도 뱀이 불려올 일은 없을 터였다.

    그 정도 존재라면 한 번 당한 일에 또 당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카이는 콜린스 일행을 돌아보았다. 에빌 마탑이 ‘뱀’에게 농락당했던 것에 대한 복수도 복수지만, 그들에게도 보상해 주기로 했던 것이 있었다.

    정말로 뱀의 목숨 중 하나를 줄일 수 있었으니 카이는 그들을 인정해줄 생각이었다.

    카이는 진금화 열 개를 그들에게 던져주고는 말했다.

    “수고했다. 덕분에 싸움이 조금 수월해졌군.”

    그리 말한 카이가 공간 이동으로 사라지자 콜린스는 진금화를 주워들며 중얼거렸다.

    “신조의 대마도사에 대해 알리고 앞으로는 그와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군.”

    8성의 대마법사만 해도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존재였는데 9성의 대마도사라니?

    그 강력함을 눈앞에서 보았다.

    공간 자체를 일그러트려 그 안에 있는 존재를 한 줌 핏물로 만드는 것. 공간 이동을 할 수 없는 자는 거기에 걸리면 그냥 죽었다고 보면 된다.

    인외의 존재가 되어버린 카이에 대한 두려움에 고개를 휘휘 내저은 콜린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귀한 재료를 얻었다. 수거해라.”

    한 줌 핏물이라고 해도 저 ‘뱀’을 강령시킨 육신이었다. 그 핏물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크하하악!>

    괴성을 지르며 몸을 꿈틀거린 우로보로스가 고개를 쳐들자 동굴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돌부스러기가 떨어지는 것을 간단히 쳐낸 헥토르가 인상을 굳힌 채 물었다.

    “왜 난동이냐?”

    한참을 요동치던 우로보로스가 헥토르를 내려다보았다.

    <강령 당해서 목숨 하나를 잃었다.>

    헥토르는 그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너만한 존재가 저항도 못 했다고?”

    <그래. 아무리 소화 중이라 가수면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믿을 수 없는 대상 지정 강령술이었다.>

    우로보로스의 비늘이 촤라라락 일어났고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공할 독기에 손을 휘휘 내저은 헥토르가 물었다.

    “놈과 싸워 본 거냐?”

    <그래. 놈은 시공을 지배하고 있었다. 정면 승부는 피해야겠어.>

    헥토르는 그 말에 오히려 투기를 일으켰다.

    “시공을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한다고?”

    <국소 부위였지만 놈의 주위의 시공은 놈이 지배한다. 그에 저항할만한 놈이 있을지 모르겠군.>

    헥토르는 그 말에 어떤 영감을 얻었다. 여기서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인간이 넘을 생각도 못 했던 9성의 벽을 넘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자신도 그것에 대해 도전하고 있었지만, 그 방법을 짐작도 못 했었으니까.

    하지만 시공을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만 해도 상당한 소득이었다.

    벽을 넘는 방법이 아니라 벽을 넘어 손에 얻은 결과를 아는 것만으로도 영감을 얻을 정도의 재능. 헥토르는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소화나 해라. 어차피 당분간은 꼼짝도 못할 것 같으니.”

    <잠깐.>

    독기가 형태를 이뤄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거대한 독진을 만든 뱀이 다시 몸을 웅크리더니 눈을 감았다.

    일만 명의 인간을 집어삼킨 우로보로스는 소화만 해내도 전과는 다른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마침 때도 다가오고 있으니 이대로 힘을 키우는 것이 최선이다.

    카이는 ‘뱀’의 목숨을 취하고는 곧장 공간 이동으로 신지로 향했다. 대족장을 만나 간단히 ‘뱀’의 목숨을 취했음을 알려주고 공간 이동으로 신지의 늑대를 만나러 갔다.

    늑대는 카이의 방문에 눈을 뜨고는 몸을 일으켰다.

    <왔는가?>

    카이는 늑대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직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이기에 카이는 안심하고는 말을 꺼냈다.

    “‘뱀’을 강제로 강령시켜서 목숨 하나를 취했다. 놈에게 남은 것은 이제 하나의 목숨이야.”

    늑대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대단하군. 역시 너를 선택하기를 잘한 것 같다.>

    카이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면 늑대는 처음부터 자신에게 호의적이었다. 그것이 뱀을 상대하기 위한 패로 쓰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그래. 그런데 ‘뱀’이 인간의 영육을 무차별적으로 집어삼키고 있다. 그것만으로 ‘뱀’이 강해질 수 있나?”

    늑대는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인신 공양은 우로보로스가 받아왔었다. 다른 신령들이 반대해서 더는 받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우로보로스는 충분히 강해질 수 있다.>

    “피스토의 영향은 아닌 건가?”

    <피스토의 파편을 삼켰다고 했으니 아마 어떤 계약을 했을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됐다면 조금 더 빨리 본신의 힘을 되찾을지도 모르겠다.>

    카이는 늑대를 빤히 바라보았다.

    “너는 어떻지?”

    <나 말인가?>

    “뱀과 싸우게 된다면 도와준다고 했으니 신지를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 본신의 힘을 되찾은 ‘뱀’을 상대할 수 있겠냐는 물음이다.”

    늑대는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보옥을 모두 쓴다면 모를까 나 혼자 힘만으로는 인간의 영육을 삼켜 힘을 되찾은 ‘뱀’을 감당하지 못할 거다.>

    카이는 늑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넌 신지에서 나오지 마.”

    <무슨 소린가?>

    “나 혼자 상대한다.”

    카이는 예언이 이뤄질 가능성을 무시하지 않았다. 늑대가 본신의 힘을 되찾지 못해 제대로 힘을 낼 수 없다면 ‘뱀’을 상대하는 것은 카이가 혼자하면 될 일이다.

    이번에 신조의 힘을 확인하고 자신의 힘이 어느 수준까지 되는지 확인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늑대는 심유한 눈으로 카이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언제든 네가 날 부르면 네 곁으로 가마.>

    보옥을 품고 나와도 늑대는 처음 카이가 ‘뱀’을 만났을 때 정도의 힘밖에 내지 못할 터. 8성 언저리의 힘이라면 굳이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마음은 받기로 했다.

    “그래. 필요하면 부르지.”

    자신이 부르지 않으면 될 일이었으니까.

    카이는 손을 휘휘 내젓고는 신지를 떠났다. 카이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던 늑대는 잠시 그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다가 앞발을 모으고 그 위에 턱을 괴었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루보로스. 인간의 영육을 취하다니, 무엇이 그리 급한 건가?>

    오랜 친구에 대한 한탄과 함께 늑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칼리와 하루를 보낸 카이는 공간 이동으로 영지로 돌아왔다. 테오에게 연락을 들었던 이들은 모두 카이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가 돌아오자 벌떼처럼 몰려왔다.

    언제나 겪던 일이었는데 이제는 몰려오는 이들이 더 늘어났다. 두 눈이 시퍼렇게 멍이 든 시무스와 칼라한까지 더해졌으니까.

    “간 일은 어떻게 됐냐?”

    덴다르트의 물음에 카이가 미소를 지은 채 답했다.

    “잘 됐습니다. ‘뱀’의 목숨을 하나 더 취할 수 있었으니까요.”

    “놈을 죽였다고?”

    “흑마법사들이 찾아낸 강령술식을 손봐서 강제로 강령시킨 덕분이죠. 붙어보니 할만하더군요.”

    카이의 대답에 모두들 환한 미소를 지었다. 시무스와 칼라한도 피스토에 대한 것만 생각하고 이곳에 왔다가 ‘뱀’의 존재에 대해서 듣고는 긴장하고 있었다.

    가히 신격에 달한 존재가 대륙 곳곳에서 일만 명이 넘는 인간을 잡아먹고 힘을 키우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모골이 송연해졌으니까.

    “자세히 얘기 좀 해 봐.”

    덴다르트의 부탁에 카이가 이번에 있었던 강령술식진에 대한 이야기와 ‘뱀’을 죽인 이야기를 마치 무용담처럼 얘기해야 했다. 그리고 그 얘기를 들은 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지금까지 ‘뱀’이 벌인 일의 뒤꽁무니만 쫓다가 처음으로 놈을 앞질렀으니까.

    “또 당하지는 않겠지?”

    “예. 그리고 예언을 생각하면 아마 놈과 싸울 날은 정해져 있을 겁니다."

    마베르니의 예언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녀의 예언이 미래의 어떤 시점을 본 것이라면 그 일은 반드시 일어날 테니까.

    늑대에 대해서는 최대한 주의하고 있지만, 뱀과의 싸움은 반드시 이뤄지리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때 응접실로 마베르니가 인형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왔다. 다른 이들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 없기도 했지만, 마베르니에게는 편안한 안식처가 되기를 바랐기에 이런 회의에 불러온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직접 회의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마베르니가 자리에 앉아서 잠시 숨을 고르더니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알아낸 사실이 있어요.”

    “뭐죠?”

    마베르니가 손짓하자 인형이 달력을 가져왔다. 마베르니는 달력을 빠르게 넘기더니 한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해를 삼키는 ‘뱀’. 태초의 어둠을 다루는 ‘뱀’이 일을 벌인다면 이 날일 거예요.”

    모두의 시선이 그녀가 짚은 날짜를 확인했다. 하늘신 시엘을 모시는 교국에서 발행한 달력의 날짜에는 ‘일식’이라고 적혀 있었다.

    “일식?”

    카이의 물음에 마베르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를 삼키는 것이 달이 될지 ‘뱀’이 될지 몰라도 그 날이 확실해요.”

    고작 석 달밖에 남지 않았다.

    돌싱 후 대마법사-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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